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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의 본사가 있는 굿우드 Goodwood는 영국 남쪽, 웨스트 서식스 West Sussex주의 작은 도시, 치체스터 Chichester에 있다. 치체스터는 아늑하고 조용해서 아름다운 도시인데, ‘동네’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릴 정도로 소박한 풍경을 가졌다. 그렇지만 다른 무엇보다 아득히 먼 시간을 삼키고서 침묵하듯 존재하는 몇몇의 중세 건축물이 특히 매혹적인데, 그 앞을 지날 때면 이미 영국에 들어와 있으나 이국적인, 낯설어 새롭게 느껴지는 장면들이어서 나는 그때마다 물고기처럼 입을 벌리고서 걸었다.
12세기에 지은 치체스터 대성당을 비롯해 주변 대부분의 건물에는 시간이 새겨놓은 지층 같은 얼룩들이 선명했다. 또 정말 그러진 않았지만 벽에 코를 대면 지나간 것들의 쿰쿰한 냄새가 날 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시간이 잠든 도시, 너른 초원과 오래된 집들이 꼭 동화 속 그림처럼 실제하는 도시, 나무와 풀밭이 많아 바람에는 싱그러운 흙 냄새가 묻고, 낮이면 볕마다 잎을 통과한 초록 등불이 일렁이는 도시, 그런 한갓지고 평화로운 도시에 ‘홈 오브 롤스로이스’, 롤스로이스의 본사가 있다.
본사는 도시를 닮았다. 저 혼자 우뚝 솟거나 따로 튀지 않고, 굿우드의 너른 들판과 함께 낮고 넓게 존재한다. 그래서 직사각형의 담백한 건물은 굿우드의 품 안에서 그대로 고요하다.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대부분의 건축물이 그러하듯 좋은 건축은 그것이 놓이는 도시 환경과 맥을 함께한다. 이를테면 현대적으로는 헤더웍이 뉴욕에 건축한 베슬이 그렇고, 고전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창덕궁 후원이 그렇다. 롤스로이스의 본사, ‘홈 오브 롤스로이스’도 마찬가지였다. 본사는 세계적인 하이테크 건축의 선구자로 회자되는 니콜라스 그림쇼 Nicholas Grimshaw의 ‘그림쇼 건축사무소 Grimshaw Architects’에서 설계를 맡았는데, 그런 이유로 주변 환경과 건축물, 건축과 엔지니어링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그림쇼의 건축 철학이 여기, ‘홈 오브 롤스로이스’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건물 전체를 길게 두른 유리창, ‘글라스 마일’을 통해 자연광이 생산 공정 라인을 환히 비출 수 있게 한 설계와 공장 전체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간명하게 짠 레이아웃이 그랬다. 이처럼 본사 곳곳에서 그림쇼의 ‘지속 가능성’을 발견할 때면 롤스로이스의 ‘지속 가능한’ 철학도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본사는 2003년에 첫 문을 열었다. 당시 직원 수는 2백여 명, 차도 하루에 단 한 대만 생산했을 정도로 그 규모는 작았다. 하지만 지금은 2천5백여 명이 근무할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전체 공급망을 기준으로 하면 7천5백여 개의 일자리가 집계될 정도로 롤스로이스의 성장세는 빠르고 안정적이다. 그런데 이처럼 기업의 일자리가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지게 되면, 이는 곧 지역 경제의 지표로 연결된다. 롤스로이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제로도 롤스로이스는 치체스터를 포함한 주변 지역에서 인재를 채용하고 있고, 지역 대학교와 협력해 인턴십도 꾸준히 운영 중이다. 결과적으로도 서식스주와 치체스터 및 인근 카운티에서 롤스로이스 연간 기여액의 20퍼센트가 창출되고 있다고 하니, 롤스로이스가 그리는 기업과 지역의 동반 성장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롤스로이스의 ‘지속 가능한’ 운영은 더 있다. ‘지속 가능한’ 운영의 방법은 본사 주변의 자연환경까지 확장된다. 실제로 본사가 있는 곳은 40만 그루 이상의 주요 관목과 식물, 더불어 다양한 곤충과 조류, 동물들의 서식지로, 약 5만1천여 평(42에이커)이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다른 무엇보다 이곳에 사는 25만 마리의 꿀벌은 생태계 구성에서 불가결한 존재로서 지자체와 환경 단체로부터 특별 대상으로 관리되어 왔는데, 롤스로이스는 이에 양봉장을 직접 운영하며 환경 보호와 지역 사회 기여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사실 롤스로이스는 설립 초기부터 지역의 지속 가능한 농업 및 환경 단체인 ‘굿우드 에스테이트’와함께 야생 동물 보호와 생물 다양성 증진과 관련한 프로젝트들을 여럿 추진해왔다. 이에 본사 홍보를 담당하는 앤드류는 이렇게 말했다. “홈 오브 롤스로이스의 역할은 단순히 차를 생산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역 구성원들, 나아가 자연환경과의 지속 가능한 공존도 우리의 업무입니다.”
롤스로이스는 설립 20주년이 되던 2023년 8월, ‘홈 오브 롤스로이스’의 대규모 확장 계획을 발표했다. 코치빌드와 비스포크의 주문 제작을 위한 생산 능력을 강화하고, 스펙터를 시작으로 하는 차세대 전기차 시대를 대비하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는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바로 보며, 롤스로이스의 기반을 정비하고 또 새로 더하여 늘 지켜 오던 그들의 가치를 흔들림 없이 잇는 일이다. 당연하게도 롤스로이스는 대량 생산을 지향하는 브랜드가 아니기에, 이들의 확장이 생산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할 수 있게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 본사 로비에는 이런 헨리 로이스 경 Sir Henry Royce의 격언이 새겨져 있다. “Strive for perfection in everything you do.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라.” 세대를 잇는 장인 정신, 롤스로이스의 옳은 신념 아래서 다시 확장되어 새로워질 그들의 미래를 향해, 먼 이곳에서 여름날의 소낙비 같은 박수를 전한다.
BLACK BADGE SPECTRE
롤스로이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모델, 블랙 배지 스펙터는 롤스로이스의 순수 전기 모델, 스펙터의 고성능 버전이다. 최고출력 6백59마력(4백85킬로와트), 최대토크 1천75나노미터의 압도적인 성능을 갖췄다. 이 놀라운 수치는 인피니티와 스피리티드 모드 작동 시에 모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시속 1백 킬로미터까지 단 4.3초 만에 도달하는 놀라운 가속력도 함께 체감할 수 있다.
굿우드 홈 오브 롤스로이스에서 건져 올린 흥미로운 사실들
① 모든 롤스로이스는 본사에서 생산되며, 생산된 차량 중 완전히 똑같은 차량은 단 한 대도 없다.
② 하루 생산량은 약 28대, 1년이면 5천5백~6천 대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③ 롤스로이스 1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인원은 약 90명, 소요 시간은 약 6백 시간 정도가 든다. 특별한 경우엔 4년이 걸리기도 한다.
④ 투 톤 스펙터는 한 달에 단 2 대만 생산된다.
⑤ 고객은 4만4천여 개의 외장 색상 중 원하는 색을 선택할 수 있으며, 원하는 색이 없을 경우 직접 개발해 제공하기도 한다.
⑥ 색의 깊이와 반사 정도를 위해 도장은 최소 7단계부터 최대 20단계까지 레이어를 쌓아가며 완성한다.
⑦ 전 세계의 태양광을 샘플로 갖고 있다. 완성된 차의 컬러가 고객의 나라에서 실제로 어떻게 빛나는지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
⑧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차체 측면을 가로지르는 코치 라인을 그리는 장인은 단 1명이 아닌, 4명의 장인이 담당한다. 코치 라인을 그리는 붓은 뻣뻣한 다람쥐 털로 만들었으며, 팬텀, 컬리넌, 고스트의 경우 3밀리미터, 스펙터는 4밀리미터의 두께로 그린다.
⑨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에 들어가는 8백~1천6백 개의 라이트는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2명이 총 9시간을 작업해 1대 분을 완성한다.
①⓪ 생산 라인 위에 배치된 여러 대의 모니터에는 고객의 나라가 국기로 표시된다. 이를 통해 작업자들은 지금 만들고 있는 모델이 어느 나라로 출고되는지 알 수 있다. 고객 역시 생산 라인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을 사진으로 받아볼 수 있다.
①① 팬텀은 ‘갤러리’로 불리는 클린룸에서 최종 공정이 마무리된다. 철저하게 관리된 갤러리에는 단 2명의 작업자만 출입할 수 있고, 작업자는 의료용 수술복을 항상 착용한다. 오염 방지를 위해 화장품과 헤어 제품, 향수 등의 사용이 일절 금지된다.
①② 롤스로이스에 쓰이는 모든 가죽은 고산 지대에서 사육한 황소의 가죽만을 사용한다. 모기와 같은 해충 자국부터 임신으로 인한 가죽 변형이 없는 고급 가죽만을 얻기 위함이다.
①③ 여성 작업자의 비율은 1/3, 대부분은 섬세함이 요구되는 비스포크 공정 과정에 투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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