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호텔의 다정한 기물들

2025.05.15.김은희

그곳에 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WHERE THE WIND BLOWS

차 주전자인 다관, 물 식힘 그릇인 숙우, 다과를 놓고 즐기기 좋은 굽 접시와 같이 차를 즐기는 데 핵심적인 기물이 간결하게 준비돼 있다. 다기, 청화 백자, 숯을 소재로 한 아트워크, 모두 포시즌스 호텔 서울 제작. 고시볼을 포함한 웰컴 푸드는 때마다 다르게 제공된다. 잭살 홍차, 티스토리. 테이블 조명, 폰타나 아르테. 은근한 곡선이 아름다운 의자, 글로벌 얼라이스.

NOSTALGIA HILLO齋 “한옥은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창을 열면 바람이 다녀가고 대청에 앉으면 하늘이 가까워져요.” 처마 밑에 앉은 볼에 바람이 스칠 때, 정성영 지배인이 건넨 이야기가 온전해졌다. 바람이 오가고 하늘과 가까운 집. 그러한 서울 북촌의 예스런 한옥에 노스텔지어가 요즘의 손길을 더했다. 서까래 아래에는 김지선 작가가 비닐을 재활용해 한지 질감처럼 만든 조명이 호롱불처럼 하늘거리고, 임정주 작가의 탄화목 벤치는 자연스레 굴곡진 한옥의 선과 함께 흐른다. 솜씨 좋은 한국 작가들과 손잡고 문손잡이부터 휴지걸이까지 어느 사소한 찰나도 요란하지 않게 빚은 이곳에서 호텔의 지배인 또한 여행자로서 사랑하는 순간은 이헌정 작가가 만든 테이블에 앉을 때. “원초적인 형태의 테이블이 대청과 어우러지며 빛과 그림자를 담아내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이곳에 앉아 사계절 변하는 마당을 바라보면 저절로 현실을 벗어나 차경에 빠져들게 될 거예요.” 사진은 그 테이블에 앉아 바라본 풍경. 차경 속 검고 곧게 드리워져 있던 모시 발 사이로 바람이 다녀갔다.

ART + DECOR

한국의 풍경에서 채집한 색과 선을 담은 소파와 테이블, 움베르트&포예 × 조선 팰리스. 테마와 주제에 따라 변하는 칵테일 키트. 핀란드의 테누 진과 한국 화요의 소주 키가 있다. 키 소주 45ml 혹은 테누 진 30ml를 잔에 따르고, 조선 호텔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하우스 커피&티 브랜드 비벤떼의 히비스커스 티를 넣어 2분간 우리면 한강의 석양을 닮은 칵테일이 완성된다.

JOSUN PALACE 목요일 오후 5시 53분. 파노라마 창 너머로 뻗은 테헤란로가 검은 바퀴들로 채워지고, 고개 돌려 오른편으로는 빌딩 숲이 저마다의 높낮이로 그래프를 이룬다. 이 풍경을 회색 도시라고 하던가. 그러나 그것은 익숙함에 멀어버린 시선. 서울, 한국, 조선이라 불린 나라를 바라보는 이국인에게 이 도시는 노랗고 푸른 생기가 곳곳에 감돌고 각진 모서리 없이 둥그스름 맺힌 곡선들이 아름다운 생태계다.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듀오 에밀리 움베르트와 크리스토퍼 포예가 바라본 서울은 그러하다. 대칭적이고 기하학적인 아르데코 양식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방을 거닐어본다. 문창살을 닮은 우드 미니 바 장을 열어 칵테일 키트를 꺼낸다. 기와 곡선, 어쩌면 배흘림기둥이 떠오르는 다리의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궁궐 담장 안팎에서 스친 색이 스민 듯한 패브릭 소파에 앉아 칵테일 레시피 카드를 열어본다. 그사이 멀리 노을이 피어오르고 콘크리트와 유리 벽이 저마다 물든다. 레시피 카드의 이름은 ‘Beyond Your Imagination’, 상상 너머. 자, 이제 무슨 색을 주조해볼까.

SOULFUL MOMENTS

차 주전자인 다관, 물 식힘 그릇인 숙우, 다과를 놓고 즐기기 좋은 굽 접시와 같이 차를 즐기는 데 핵심적인 기물이 간결하게 준비돼 있다. 다기, 청화 백자, 숯을 소재로 한 아트워크, 모두 포시즌스 호텔 서울 제작. 고시볼을 포함한 웰컴 푸드는 때마다 다르게 제공된다. 잭살 홍차, 티스토리. 테이블 조명, 폰타나 아르테. 은근한 곡선이 아름다운 의자, 글로벌 얼라이스.

FOUR SEASONS HOTEL SEOUL 호텔 회전문을 밀고 들어설 때마다 고대한다. 비일상적인 시간, 무경험의 미지가 이 문을 돌아나올 때면 일상에 옮겨붙어 와 있기를. 포시즌스 호텔은 그러한 시간을 점잖게 건넨다. “향긋한 서울의 순간 Seoul-ful Moments”처럼. 웰컴 티로 준비된 잭살 홍차는 한국 차의 고장인 하동에서 예부터 마셔오던 마실거리다. 어린 찻잎을 햇볕에 말리는 동시에 발효시켜서 일반 홍차보다 달큰하다. 하동 사람들은 이 잭살 홍차에 유자와 생강 등을 가미해 마셨다는데, 그 대신 웰컴 푸드로 준비되는 고시볼을 곁들여도 즐겁다. 고시볼은 찹쌀을 숙성시켜 만든 발효 과자에 딸기, 키위, 녹차, 콩 등 과일이나 우리 곡식을 곱게 갈아 입힌 한 입 거리 다과. 조선시대 선비의 공간인 사랑방에서 얻은 영감을 담은 공간 속, 사방탁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테이블과 붓을 걸던 필가를 닮은 TV 프레임, 전통 문갑 형태를 모티프로 한 가구가 단정하게 자리한 곁에 앉아 스르르 녹는다는 묘사가 부끄럽지 않은 고시볼에 잭살 홍차를 마시고 있노라면 창밖의 도시 풍경이 이토록 산뜻할 수가 없다.

LET IT FLOW

‘풀의 강 위에’라는 뜻이 담긴 콰테말라 사카파 Zacapa 지역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럼인 론 사카파 23, 5대 코냑 중 하나인 마르텔 코르동 블루같이 특별한 코냑과 럼, 위스키, 데킬라, 진 등 기주를 선별해둔 콘래드 서울의 리큐르 큐레이션 중 한국에서 생산되는 개성 있는 진을 소개하고자 선정한 코리 진 Kori Gin. 하우스 오브 헤리티지 증류소에서 빚는다.

CONRAD SEOUL “계피를 불에 그을려 향을 내면 풍미가 더 깊어진다고 해요.” 강승연 지배인이 바텐더에게 배워온 팁을 따라 계피 스틱에 불을 붙이자 짙고 따뜻한 향이 피어오른다. 진한 초콜릿 맛이 머금어지기도, 밤의 초원의 검붉은 나무가 떠오르기도 하는 근사한 향에 집으로 돌아가면 당장 찬장 구석에 팽개쳐둔 계피 스틱을 심지 삼아 삶에 향기를 불어넣어야겠다는 총기가 차오른다. 유용한 풍류를 전해준 바텐더는 콘래드 서울 37 그릴&바의바텐더 팀 리더 김윤성 지배인이다. 펜트하우스 미니 바 리스트 중에서도 쉽고 색다르게 즐길 만한 한 모금을 묻자 이에 곁들여 돌아온 팁이다. 운치와 어우러지는 한 모금은 ‘코리안 허벌 진’이라 소개 붙은 코리 진에 식혜를 더한 칵테일. “코리 진은 인삼, 감초 같은 한방 재료 10가지로 빚어 산의 향, 흙의 향이 특징이에요. 전통 식혜를 더하면 단맛이 조화를 이룹니다. 캔 식혜로도 충분해요.” 칵테일에 정답은 없으니 1대 1, 혹은 기호에 따라 맛을 탐험해보기를 권하는 김윤성 지배인의 다정한 안내를 품에 담고 다시 계피에 불을 붙인다. 한강은 흐르고 밤은 기니까.

    포토그래퍼
    김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