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영은 부서지지 않는다.

GQ 화이트 리넨 셔츠, 바지, 시원하고도 편하게 입고 오셨네요.
JY 화보 촬영 날은 웬만하면 셔츠를 입어야 옷 갈아입기 편하다는 말을 예전에 들어서, 네. 원래 셔츠를 좋아하기도 해요.
GQ 오늘 어떤 옷차림일지 궁금했거든요. 출근할 때 뭘 입을지 고민하던 신입 아나운서에게 옷차림이 이미지를 구축한다고, 평소 앵커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본인 신입 때는 항상 수트 차림으로 다녔다던 조언이 인상 깊어서요.
JY 앵커같이 입어라, 앵커하고 싶으면. 그랬죠. 예전에는 이런 슬리퍼를 못 신었을 텐데(앞은 막히고 뒤는 트인 자신의 블로퍼를 보여주며) 여름이고, 이제 저도 뭐 조금은 내려놓게 되는 것 같긴 해요.(웃음) 셔츠 단추도 끝까지 안 잠가도 되고. 편하게, 좀 캐주얼하게. 원체 성격이 그런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GQ 그러게요. 옷차림을 그저 겉치레가 아니라 마음가짐에 빗댔던 것이기도 했다고 생각해요. 수트라는, 앵커라는 갑옷에서 자유로워진 지금은 어때요?
JY 큰 전제 조건은 달라진 것 같지 않아요. 물론 만약 제가 보도국에 출근한다고 생각하면 옷에 주름이 졌는지 보다 살피거나 조금 더 보수적인 스타일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가짐은 앵커를 하든 하지 않든, 어쨌든 우리는 프로로 일하는 거잖아요. 전 여전히 제가 프로라고 생각하고, 더 큰 필드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좀 더 여유가 생긴 것? 그리고 좀 더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 하지만 저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까지는 강지영 아나운서라는 틀이 있기 때문에 그걸 지금부터 막 와장창 깨고 싶진 않아요. 부드러운 트랜지션 Transition으로 가고 싶고, 그게 저이기도 하고.

GQ 강지영이 말하는 프로란 뭐예요?
JY 자기가 하는 일에 책임지는 사람. 자기가 하는 말, 자기가 하는 행동이 어떻게 진행돼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에 대해 책임을 온전하게 지는 것. 저는 요즘 그게 곧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뭐 그렇게 거창한 정의는 없는데 그게 프로고, 그게 어른이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하는 일에 책임지는 것.
GQ <데블스 플랜 2>에 왜 참여했냐는 저스틴 민 씨의 질문에 플레이어로서 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죠. 프리랜서 결심 이후로 이제는 곳곳이 플레이어로서의 연속이지 않을까 싶어요.
JY 매번 도전이에요. 회사에 소속돼서 뭔가를 할 때는 약간 가늠됐다고 해야 하나? 내가 어느 정도 노출되고 이런 정도의 모습으로 나오겠지 가늠이 되는데, 이젠 성격이 너무 다른 프로그램에 나가보기도 하고, 거기는 그들만의 완성된 세팅 안에 제가 들어가는 경우이기도 하니까 내 마음 같아서는 이만큼을 보여주고 싶지만 또 그렇게 무리해선 안 되잖아요. 그 속도를 조절하고, 그 호흡을 읽어야 하고, 그런데 그런 기회가 단발적이니까 매번 ‘첼린징’ 해요. 잘했나? 끝나고 항상 그 생각해요. 뭘 하든. 괜찮았나? 내가 내 몫을 충분히 했나? 그런 생각하면서 돌아와요. 내 퍼포먼스를 잘 해내야만 다음이 있잖아요.

GQ 플레이어 강지영이 가진 장점은 무엇인가요?
JY 항상 제일 많이 듣는 건 냉철할 것 같다, 이성적일 것 같다.
GQ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해요?
JY 저는 제가 회사 생활할 땐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GQ 추구미군요.(웃음)
JY 나름의 제가 쌓으려고 했던, 제가 일하는 방식은 그렇게 따뜻하지만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일하려고 만난 거니까. 피드백도 바로바로 오가는 편이고, 그러다 보면 따뜻한 피드백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뭐가 잘못됐을 땐 왜 이렇게 된 걸까 바로 확인하고 해결해야 하니까.
GQ 시청자로서 <데블스 플랜 2> 속 플레이어 강지영의 장점은 앞뒤가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JY 아! 그래요?(미소 짓는다.) 적어도 제가 그런 인간 군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어요. 최소한, 그러니까 경쟁이라 함은, 정정당당한 세팅 안에서 속이지 않으면서, 할 수 있을 만큼 하고 안 되면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GQ 그런 기조가 서바이벌 게임 프로그램을 통해 일면 엿보이기도 했지만 이 책을 관통하고도 있다고 느껴요. 2024년까지의 사회생활기죠.
JY 하하하하하. 출판사에서 제안하셨을 때 안 쓴다고 계속 거부하다가, 그런데 그 시점쯤 한 서너 군데서 연락이 온 거예요. 이렇게까지 제안이 오는 거 보면 내가 그래도 할 얘기가 있나 보다, 한번 써볼까 했죠. 그리고 (출간 제안한 출판사) 대표님이 그 얘기를 했어요. 제가 부담스럽다, 안 쓰겠다 했더니 당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보기에는 뭐 막 그래 보이지만 뒤에서는 이런 고뇌도 하고, 고심도 하고,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라는 걸 쓰면 어떠냐. 그런 거라면 저도 글쓰기가 좀 더 수월할 것 같았어요. 제가 일기를 많이 써서 거기에서 갖고 온 것도 있고, 정말 딱 사회 초년생 직장 생활하시는 분들에게 이런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식으로 써봤어요.
GQ 그래서, 사회 초년생 시절 옆방에서 들려오던 자신의 뒷담화에 강지영 씨는 어떻게 행동했어요?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말이죠.
JY 그때 알았어요. 제가 정말 못하고 있다는 걸. 제가 암기해서 주르르륵 하는 걸 별로 진짜 잘 못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방청객도 많던 시절이었어요. 방청객이 앞에 있는데도 NG를 몇 번 냈기 때문에 잘 안 되고 있다는 건 저도 알았지만···, 그냥, 모르겠어요. 누구 탓을 하진 않았어요. 이게 현실이구나. 이게 내 실력이고, 이렇게 가다가 난 여기서 못 살아남는다, 그 생각밖에 안 했던 것 같아요. ‘너어어무’ 챙피한 거예요. 이 상황이 벌어진 건 나만 알지만 울면서 나가다 누가 보게 되는 것도 싫고, 거기가 저희 휴게실이었는데, 그래서 혼자 엄청 울다가, 눈물 닦고, 얼굴 (상태 어떤가) 좀 보고, 그러고 아나운서실로 갔어요.

GQ 초년생의 정의, 아니면 인간적인 진심으로, 왜 앞뒤 다르시냐 짚지는 않고요?
JY 그렇게 해서 바뀌는 게 없잖아요.
GQ 어쨌든 내가 부족하니까?
JY 내가 부족하니까. 그가 악감정을 가지고 강지영이라는 사람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실력이 부족해서 말한 거니까. 제가 울면서 “저 사실 들었는데요” 한들 뭐가 바뀌겠어요. 그럼 나는 진짜 잘해서 이런 일 없게 해야겠다. 진짜 수치스럽지만 내가 진짜 잘해야겠다. 항상 그 생각을 했어요. 그런 위치에 갈 때까진 그냥 입 다물고 열심히 하자. 여기는 프로의 세계다. 실력 있고 잘하면 그게 진짜 파워잖아요. 힘이 없으면 힘을 키워야죠. 그게 정공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탓하지 않고 내가 내 길을 떳떳하게 가야지, 그래야 무너져도 제가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고 해야 되나? 그렇게 살려고 했어요.
GQ 제목은 직접 지었어요? <때로는 간절함조차 아플 때가 있었다>.
JY 아뇨, 제목은 제가 직접 짓진 못 했고요, 이렇게 대화하다 담당 편집자님이 지어주셨어요. 저는 사실 약간은 서정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냥 딱 단어였으면 했는데. 짧게. 그런데 그러면 이 책이 뭘 담았는지 모를 것 같다 하셔서 전문가분들 의견을 따랐죠.
GQ 강지영 식으로 지어본다면 어땠을까요?
JY 그때 제목으로 뭐가 있었지? 예를 들면 <그땐 그랬지> 이런 식의 되게 짤막한. 하하하하. <그럴 수 있어> 이런 식의.

GQ 그럴 수 있는데 왜 최근 <고나리자>에서 이 책을 중고로 팔러 나온 아나운서 지망생에게는 그랬어요, 아나운서 직업 추천하지 않는다고.
JY 네, 추천하지 않는다.(웃음) 왜냐하면 제가 아나운서를 시작할 때의 방송 환경과 너무 다르고, 저도 이렇게 오래 걸린 시간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는데, 잘됐으니까 이렇게 나와서 얘기하지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을 거예요.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인데 잘 안 풀렸을 수도 있어요. 이건 너무 많은 운이 관장하기 때문에. 그래서 누군가 이 험난한 길을 간다고 했을 때 “안 되면 어떡할 거야? 그것도 생각하면서 하는 거야? 그래도 괜찮아? 도전 자체가 즐거워?” 묻게 되는 거예요. 전 제가 그래도 상당히 독기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대에게도) 이 정도가 있는지 가늠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내가 쉽게 권할 수 없다. 방송가에서 뽑을 때도 보면 학력도 보고, 뭐도 보고, 그런데 끼도 있어야 돼요. 연예인 못지않은 끼도 있어야 하면서 운도 따라야 하고, 직장인이니까 또 사회생활도 견뎌야 해요. 요구하는 게 너무 많아요. 쉽지 않아요.
GQ 끊임없이 나를 성장시켜야 하는 게 버겁고 지칠 때가 있다고 했죠.
JY 무슨 일이든 힘들죠. 하지만 아나운서 일은 제가 해봤으니까 말해줄 수 있죠.

GQ 그럼에도 그러니까 성장해야 된다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 관리해야 된다고 다시 채찍질을···.(웃음) 당근은 언제 주는 거예요. 왜 맨날 채찍질해요.
JY 하하하하하. 아니 그런데, 아나운서 지망생이라서 그렇게 얘기한 게 아니라 사실 모든 직장인, 밥벌이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은 다 그 고민이잖아요. 왜냐하면 ‘원 오브 뎀 One Of Them’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끊임없이 내가 어떤 면에서 더 발전할 수 있지?, “무슨 일 하면 걔지” 하고 어떻게 하면 이 업계에서 톱을 찍어볼 수 있을까? 정말 손에 꼽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왜냐하면 일류들의 싸움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해야 된다고 얘기를 하게 되죠.
GQ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어요? 자기 관리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JY 제가 생각했을 땐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점점 명확해지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일을 원하고 해야 되면, 하고 싶은 걸 조금씩 포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저는 요즘 40대를 앞두고 가장 큰 경쟁력이 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제게는 체력 같아요. 40대 들어가서는 체력이 있는 사람을 아무도 못 이길 것 같아요. 체력이 정말 많은 걸 관장하거든요. 정신력도 그렇고, 말을 잘하고 싶다? 그것도 체력이 있어야 해요. 그럼 체력을 가꾸려면 뭘 해야지? 너무 간단하죠.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죠. 잘 먹고, 잘 자고, 쓸데없는 거 안 하고. 그런데 말이 쉽지 재밌는 일은 다 밤에 벌어지는데.(웃음) 하지만 체력이 부족해서 “못 해, 못 해” 이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으니까 예전보다 술은 덜 마시고, 대신 더 뛰게 되는 거죠. 그게 자기 관리이지 않을까요?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걸 채워가는 것. 베스트 버전 오브 유어셀프 Best Version Of Yourself.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만족스러운 내 자신인가 돌아보고, 그게 아니면 조금 더 노력해보는 것.

GQ ‘고나지라’ 강지영일지라도 누가 좀 ‘고나리’ 해줬으면 하는 건요?
JY 요즘은 우선순위가 엉망 같아요. 하고 싶은 리스트를 쭉 적으면 한 열 개 되는데 그거를 그렇게 적기만 해서는 안 돼서 좀 더 체계적으로 시간 관리를 하면 좋겠어요. 회사에 다닐 땐 출퇴근 사이 할 일이 정해져 있었지만 이제는 제가 제 삶을 꾸려가는 거니까. 이렇게 하면 좀 더 재밌을까, 뭘 더 해볼 수 있을까, 시간을 좀 더 쪼개서 체계적으로 관리해야겠다 싶어요.
GQ 강지영의 베스트 버전은 어떤가요?
JY 우선은 잘 착륙하고 싶어요. 아나운서 방송인이라는 애매한 그레이 에리어 Gray Area에 있다고 생각해서 제 확실한 컬러가 생기면 좋겠어요. 제가 저를 봤을 때 예전부터 새로운 것들, 재밌겠다 싶은 것들, 내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것들을 직관적으로 느껴왔다고 생각해요. 그게 앞으로도 선택의 기준이 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제 분야가 생기겠죠? 여성 방송인으로서 뭔가를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요즘 꽂혀 있는 건 아까도 말했지만 체력. 그래서 요새 러닝을 좀 많이 해요. 심폐지구력에 좋다고 해서. 확실히 달라요. 10킬로미터는 무난하게 잘 뛰어보려고요.
GQ 요즘 가장 많이 차지하는 감정과 0.1퍼센트라도 드는, 외면하려 하지만 불쑥 불쑥 드는 감정은 뭐예요?
JY 가장 많이 드는 감정은 열정. 진짜 초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저를 다시 한번 알리는 자리잖아요. 이 커다란 게임에서 나는 정말 신입이구나, 그렇다면 신입처럼 초심으로 겸손하게. 하지만 또 나름의 방송 내공은 있어 완전 신입은 아니니까,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제가 마음에 들어요 저는. 그래서 가장 많이 드는 건 열정. 그런데 거기 따라와주지 않는 이 체력에 대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거기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이 불쑥불쑥 있죠.
GQ 그러게요. 신발끈을 다시 조일 때마다 그 마음이 늘 당찰 순 없을 것 같아요.
JY 그런데, 그냥 해요. 감정은 감정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두려움은 대부분 우리 상상에서 온대요. 상상했던 두려운 일 가운데 현실화될 수 있는 건 거의 없어요. 그리고 불안하고 두려워도 하는 사람이 결국엔 세상을 바꾸고 하고 싶은 대로 살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도 두렵지만 ‘두려운 건 두려운 거야, 하면 해’. 다 그렇잖아요, 닥치면 해요 또. 그래서 상황에 두렵다고 저를 옭아매지 않고 그래도 하려고 해요. 저스트 두 잇 Just Do It. 그 말이 진짜 엄청 파워풀하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짧게 보고 나온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길게 보면 오래 한 사람이 결국엔 이기는 게임 아닌가 싶어요. 저는 힘들어도 하고, 귀찮아도 하고, 무서워도 하고, 안 되면 또 될 때까지 해요. 결국 하면 뭐가 되어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