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손 잡아요. 이제 괜찮습니다.”

GQ 11월 9일은 ‘소방의 날’이죠. 오늘 인터뷰의 시작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LS 반갑습니다. 10년 차 소방공무원이자 두 딸아이의 아빠인 조이상입니다.
GQ 제가 소방관님을 처음 알게 된 건 책을 통해서였어요.
LS 고맙습니다. 5년 전쯤 <오늘도 구하겠습니다!>(푸른향기)라는 소방 에세이집을 발간했습니다.
GQ 소방공무원들의 근무 환경을 떠올려보면 굉장히 긴박한 걸로 짐작되는데요, 그래서 단순히 생각하면 책을 쓰는 게 결코 쉽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걸까요?
LS 개인으로서 보면 어려서부터 기록하는 걸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쭉 일기를 써왔고, 언젠가는 에세이를 써서 지인들에게 나누어준 적도 있을 정도로 무언가를 쓰고, 남기는 걸 좋아했습니다. 이런 저의 성향에 소방공무원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극한 상황들이 더해지면서 ‘소방 에세이’ 형태의 기록물이 되었던 것 같아요. 현장에 나가면 정말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 때가 많거든요. 단순하고 평범한 저의 삶과는 전혀 다른 질감의 현장을 마주했을 때, 그때의 상황들을 하나씩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기록이 모여 책이 되었고요.
GQ 그래서 책이 굉장히 생생하게 읽혔습니다. 오늘 나눌 이야기도 책에 나오는 상황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소방관들이 마주하는 현장에 대해서 소방관님께 직접 들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LS 좋습니다. 무엇보다 공익적인 입장에서 소방공무원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돼서 영광입니다.
GQ 책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 건 출동 범위와 내용이 생각보다 넓고 다양하다는 것이었어요.
LS 화재와 구급, 구조 활동이 소방공무원들의 기본 출동 내용인데 여기에 추가로 ‘생활안전활동’이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출입문 개방, 승강기 인명 구조, 벌집 제거 같은 일들이 해당되죠. 이런 유형의 출동 상황도 많습니다. 출동 범위는 이렇게 네 가지로 정해져 있고, 이 범위 안에 다양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죠.
GQ 출동은 상황실의 지령을 통해 이뤄지죠?
LS 맞습니다. 119 접수를 받은 상황실에서 위험한 상황의 정도를 판단해 현장부서에 지령을 내립니다. 그러면 출동하게 되는 거죠. 그렇게 출동이 떨어져서 나가보면 가끔씩 힘이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벌 한 마리를 잡아달라는 민원 같은. 그래도 해야죠. 저희는 해야 합니다.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GQ 대응하는 출동 환경이 다양한 만큼 훈련과 공부의 양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LS 영화 <소방관>에 나오는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군대는 한 번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매일 훈련하지만, 여기는 훈련과 실전이 혼재되어 있다.” 소방관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화재와 구조, 구급 훈련을 하고 있는데, 지령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면 조금 전 훈련했던 내용을 그대로 행동합니다. ‘훈련과 실전의 혼재’라는 표현이 정확하죠. 뿐만 아니라 소방관들은 각자 관심 있는 분야에 따라 추가로 역량을 더합니다. 이를테면 응급구조사, 인명구조사, 화재조사관, 소방설비기사, 소방시설관리사, 소방기술사 등의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거나 획득하고 있죠. 소방관이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각자 한 걸음씩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GQ 소방관들의 든든한 역량을 믿는 것보다 우선 되어야 할 건 예방이겠죠. 소방관님은 책에서도 ‘소방안전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거듭 이야기했습니다.
LS 그렇습니다. 사실 경험에 의한 피난을 제외하고는 ‘교육’으로 위험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관련해서 두 장면을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하나는 2003년에 일어난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입니다. 당시 객실의 화재 초기 영상을 보면 모두가 가만히 앉아 있어요. 다른 하나는 작년에 일어난 화성시 이차전지 폭발 사고인데, 역시 초기 대응 모습을 보면 이차전지 화재를 소화기로 꺼보려 하는 모습이 포착됩니다. 두 경우 모두 화재안전교육을 받았다면 일어나지 않았거나, 혹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기에 소방관으로서는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이 이는 게 사실입니다. 교육은 곧 예방으로 연결되니까, 결코 결과론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GQ ‘교육’으로 위험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LS 누구든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그런데 이런 경험은 하지 말아야겠죠. 그래서 교육을 통해 알아두자는 거죠. 교육은 당연히 국가의 몫이고요. 생명과 직결되는 내용이기에 이는 더 많은 곳에서 자주 이뤄져야 합니다. 여기에는 화재뿐만 아니라 CPR 교육과 같은 안전교육도 물론 포함되고요. 같은 이유에서 안전 불감증도 교육을 통해 지워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GQ 현장은 어떤가요? 처리 내용과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어려움이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LS 이국종 교수가 쓴 책 <골든아워>(흐름출판)에서 소방관은 ‘공공재’로 표현됩니다. 소방관의 입장에서 보면 ‘공공재’라는 표현이 좀 차갑게 느껴집니다만, 국민들께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저희 소방관들은 도움을 주기 위해 온 사람임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출동 현장에 나가보면 아직까지도 저희를 하대하거나 비상식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몇몇이 있거든요. 5분 안에 안 왔다고, 7분이나 걸렸다며 시간을 재며 기다리고 있던 한 아저씨가 생각나네요.
GQ 이뿐만이 아닐 겁니다. 출동 현장의 위험성을 고려한 소방관들의 외상후스트레스(PTSD) 장애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습니다.
LS 제 경우를 말씀드리면 고양이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이 녀석이 8차로 대로로 도망을 갔어요. 찰나의 순간이었고, 결국 차에 치여 죽게 됐습니다. 구조하려던 고양이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이 복잡한 상황 전부를 목격한 후론 정말이지 꽤 오랫동안 힘들었어요. 괴로웠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 하지만 비슷한 출동 상황은 거듭될 수밖에 없고, 저는 그때마다 싫은 기억과 싸워야만 했고, 늘 이런 반복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엔 둔감해지더라고요. 로봇이 된 거죠.
GQ 비슷한 상황을 반복해 마주하면서 그것을 극복한다는 게 사실 시작부터 불가한 일이 아닌가 싶고요.
LS 케이스라면 세 가지 정도인 것 같아요. 저처럼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 무뎌지든 자연스럽게 잊히든. 다른 방법은 예방에 가까운데요, 사실 이도 어렵긴 하죠. 끔찍한 장면을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전문가와의 상담.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가야죠.
GQ 소방관들의 PTSD만큼 자주, 또 많이 거론되는 게 있습니다. 근무 환경 개선에 관한 내용들이죠.
LS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근무 환경은 분명히 개선되고 있습니다. 소방공무원이 된 지 10년째인데 네, 예전과 비교해보면 많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을 언급하자면 크게는 소방서나 119안전센터의 보수부터 새로 건축되는 시설들의 현대화 등 환경 개선이 대표적이고, 작게는 우리 소방관들의 개인보호 장비 교체 건과 같은 내용도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이 좋아졌어요. 결국 예산 문제인데요, 이는 전적으로 국민 공감이 행정부의 예산 수립으로 환원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한 일이죠. 동시에 이 국민 공감이 소방관 희생의 결과라는 건 안타까운 마음이고요.
GQ 실생활에서 소방관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미처 알지 못해서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LS 국민께서 무탈한 것이 가장 큰 도움이라고 말씀드리면 너무 몽상적일까요?(미소) 전 딱 두 가지만 당부드리고 싶어요. 첫 번째는 위기 상황이라면 지체 없이 119에 연결해주세요. 당사자든, 목격자든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바로 통화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심폐소생술과 하임리히법, 이 두 가진 반드시 익혀두시길 당부드립니다. 언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기억해주세요.
GQ 소방관의 일은 ‘손을 잡아주는 일’이라고 늘 생각하신다고요.
LS 출동이 걸렸습니다. 새벽 3시쯤,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이가 도와달라며 울고 있는 상황이었죠. 사다리를 타고 창문으로 진입해 아이를 구조할 때 대원들이 그 아이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어요. “괜찮아, 엄마 곧 오실 거야.” 그 장면을 보며 든 생각이었어요. 그래, 우리의 일은 손을 잡아서 온기를 나누면 되는 일이라고. 그러면 되는 일이라고요.
GQ 조이상 소방관이 그리는 안전은 어떤 모습일까요?
LS 저는 소방의 많은 분야 중에서 예방에 관심이 많아요. 화재 진압보다 전 단계죠.
GQ 조금 전 말씀하셨던 부분이군요.
LS 맞습니다. 그래서 ‘예방’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하나씩 공부하며 부딪혀보고 있는데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전문가가 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끝으로 묵묵히 일하는 저희 소방관들에게 조용한 응원을 보내주시는 모든 국민께 감사하다는 인사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 응원이 곧 저희의 손을 잡아주시는 것이니까요.
EXPERT
∙ 천안서북소방서에서 화재진압대원과 구급대원으로 활동 중.
∙ 소방관 노래 ‘우리는 간다’를 작사, 작곡했으며, 책 <오늘도 구하겠습니다!>(푸른향기)를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