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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O에 맞게 노래 고르는 방법, 92세 윌리 넬슨의 인생 꿀팁

2025.12.16.조서형, Grayson Haver Currin

미국의 아이콘이 된 윌리 넬슨은 만 92세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경력에 캐나다 구스 캠페인을 추가했다. 그가 상황에 맞춰 어떤 노래를 부를지 고르는 법, 밥 딜런과의 신곡 작업, 그리고 우주에게 감사하는 마음까지 삶의 꿀팁을 공유한다.

하루 더하거나 덜하거나, 윌리 넬슨은 지금까지 48,702,240분을 살아왔다.

그 이유만으로도, 92세인 넬슨에게 10분의 인터뷰를 진행하겠냐는 의뢰를 받고 주저했다. 어떻게 하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중 한 명이자 가장 독창적인 기타리스트, 이 나라와 컨트리 음악을 규정지은 작곡가, 그리고 활동가와 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은 아이콘에게 10분 안에 의미 있는 질문을 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난 12분을 구걸했고, 그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대화가 15분까지 갈 수도 있다고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질문 몇 개 남았어?”라고 물을 거고, 그게 시계에 상관없이 내가 대화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신호라고 경고받았다.

당신이 넬슨의 골수 팬이 아니라면, 그가 “Crazy”를 쓰고 데뷔 앨범을 발표한 지 60년이 넘은 지금, 그가 가수로서 거의 전성기 수준의 기량과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른다. 지난 2년 동안만 해도 그는 네 장의 놀라울 만큼 서로 다른 앨범을 발표했고, 플레이밍 립스, 머얼 해거드, 로드니 크로웰, 톰 웨이츠는 물론이고 본인의 곡까지도, 그의 목소리는 곡마다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감싸며 불렀다. 그 모습은 밥 딜런이 전설적인 가수 페리 코모에 대해 쓴 글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부르는 모든 노래의 모든 순간 속에 살았다. 예술가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넬슨을 상징처럼, 토템처럼 여기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92세임에도 여전히 완벽한 아티스트이며, 우리 시대 최고의 노래 해석자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더욱이 올해 가을, 넬슨은 딜런과 함께한 아웃로 뮤직 페스티벌의 10번째 공연을 마쳤을 뿐만 아니라, 미니애폴리스에서 37,000명 앞에서 열린 팜에이드 40주년 공연을 CNN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빨간 반다나 아래서는 1,100달러짜리 리플렉티브 재킷을 입고 환상적으로 멋져 보인다.

넬슨은 결국 내게 “질문 몇 개 남았냐”고 묻지 않았다. 그는 마우이에 있는 집에서 쉬고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며 추수감사절에 찾아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10분, 12분, 15분을 넘기며 나는 더 질문해도 되냐고 물었고, 그는 인생과 음악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해줬다. 몇 년 전 돌리 파튼과 오후 내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둘은 내 남부 출신 조부모를 떠올리게 했다. 돌리는 하나의 이야기를 15분 동안 우아하게 펼쳐냈다면, 넬슨은 부드럽고 자상하면서도 몇 마디의 담백한 문장으로 수십 년을 압축했다.

30분 가까이 되었을 때, 나는 넬슨에게 질문은 충분하다며, 당신의 시간을 더 욕심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웃으며 콜로라도에 있는 내 집에 대해 조금 묻더니, 자신이 예전에 그곳에 집이 있었다고 말했다. “음, 나도 당신과 이야기해서 좋았어.” 그는 마침내 말했다. 재킷에 대한 이야기는 끝내 꺼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언급하지 않는 노래에 대해 묻고 싶어요. 거의 25년 전, 당신은 훌륭한 Tin Hat Trio와 함께 “Willow Weep for Me”를 녹음했죠. 저는 처음 들었을 때 울었고, 지금도 들으면 눈물이 나요. 수십 년이 지나도 당신을 그렇게 만드는 노래가 있나요?
넬슨: 그래, 몇 개 있어. “Angel Flying Too Close to the Ground”가 하나고, “Always on My Mind”도 그렇지. 다른 사람 노래로는 많아. “Stardust,” “Moonlight in Vermont,” 헹크 윌리엄스가 한 건 뭐든, 밥 윌스도. 좋은 음악은 정말 많아. 나는 여전히 음악이 우리를 모두 하나로 묶는다고 생각해. 정치는 모두를 갈라놓지만, 음악은 다시 모아주지.

당신은 정말 오랫동안, 정말 많이 투어를 했죠. 무대에서 그런 ‘함께함’을 보는 것이 계속 투어를 하게 하는 이유인가요?
넬슨: 그들은 두 시간 동안 손뼉 치고 따라 부르고, 기분이 나아져서 돌아가. 음악에선 다들 동의하지. 그리고 나도 항상 기분이 더 좋아져.

저는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어 포기한 가족 농장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팜 에이드에 감사드리고, 40주년 축하드려요. 그런데 가족 농부를 돕는다는, 농부들이 살아남게 한다는 사명은 오히려 점점 더 어렵고 절박해지는 것처럼 보여요. 답답하지 않나요?
넬슨: 아마 30년 전쯤엔 답답했지. 근데 이제는 작은 가족 농부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과 상대하는 데 익숙해졌어. 지금은 좀 다르게 봐. 작은 가족 농부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작은 가족 농부도 있어. 그 사람들은 모든 도움이 필요해, 그래서 40년 동안 우리가 그걸 도우려고 한 거지. 그건 마치 내 사람들을 돕는 것 같아, 왜냐하면 나도 농장에서 자랐으니까.

농장에서 가장 하기 싫었던 일은 뭐였나요?
넬슨: 목화도 따고, 옥수수도 뽑고, 건초도 묶지… 그런 것들 다 하는데, 하나도 재미없어. 한여름 땡볕에 하는데 재미가 있을 리가 없지. 그래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하게 돼. 그리고 몇 달러라도 받지.

당신은 많은 미국인들이 ‘대마초는 무서운 게 아니며, 악한 것도 아니다’라고 믿도록 도왔죠. 그런데 아직도 합법이 아닌 지역이 많아요. 그 저항은 어디서 온다고 보세요?
넬슨: 모르겠어. 이제는 뭐든 놀랍지 않은 나이니까. 양쪽 모두 봐왔어. 정치적 헛소리도 봤고, 난 그냥 비켜나서 음악에 집중해. 그게 내가 진짜로 관심 있는 전부야. 한동안 폐 때문에 피우는 걸 쉬어야 했어. 담배 같은 걸로 너무 혹사했거든. 그래서 쉬어줬지. 나뿐 아니라 그런 걸 겪는 사람들도 많을 거야.

지난 13년 동안 당신은 버디 캐넌과 거의 20장의 앨범을 만들었죠. 그리고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The Border는 정말 놀라웠는데, 특히 “Kiss Me When You’re Through.” 두 분의 관계가 그렇게 잘 맞는 이유는 뭐예요?
넬슨: 우리는 둘 다 작곡가고 기타리스트야. 내가 노래 아이디어를 주면, 그는 그걸 받아서 쓰고 녹음하고 다시 보내줘. 그는 훌륭한 작곡가야. 밥 딜런이랑도 얼마 전 같이 곡을 쓰는 이야기를 했는데, 딜런이 “네 마음을 읽을 수 없어”라는 아이디어를 냈어. 우리는 “네 마음을 읽을 수 없어. 글자가 너무 작아”로 시작했지. 그걸 버디에게 넘겼고, 그는 그걸 멋진 노래로 만들었어. 딜런의 아이디어를 그렇게 만든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야.

지난해 말에는 아들 미카가 프로듀싱한 Last Leaf on the Tree도 발표했죠. 그 앨범에서 벡, 플레이밍 립스, 니나 시몬을 커버했어요. 어떤 곡이 가장 기뻤나요?
넬슨: 미카가 전체 앨범을 정말 잘 프로듀싱했다고 생각해. 정말 자랑스러웠어. 하지만 “Last Leaf”는 놀라운 노래야. 톰 웨이츠는 정말 좋은 곡을 썼지. 그 안의 모든 단어가 내 삶과 맞닿아 있어.

버디와 미카와 함께한 작업 이야기에 대해 말하자면, 당신은 정말 스튜디오에서 계속 바쁘죠. 지난 2년간만 해도 네 장의 앨범을 냈어요. 녹음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요? 연주자들과의 케미, 새로운 노래를 탐색하는 즐거움, 자기 목소리에 놀라는 순간 때문인가요?
넬슨: 그 모든 게 다 맞아. 게다가 노래하는 건 최고의 운동 중 하나야. 폐는 몸에서 가장 큰 근육이고, 많이 쓸수록 더 건강해지지. (참고로 폐는 실제 근육이 아니지만, 말하려는 바는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아직도 음을 맞출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야. 나 92살이야, 이 나이에 뭐라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

얼마 전 지미 로저스의 기타 뒷면을 봤어요. 어니스트 터브도 썼던 그 기타요. 뒤에 “THANKS”라고 크게 적힌 그 기타요.
넬슨: “고맙다(Thanks)”는 말은 내가 내 무의식적으로 계속 말하는 단어야. 지금까지 내게 일어난 모든 일에 정말 감사해. 좋은 일이 너무 많았어. 난 정말 운이 좋았고, 다른 사람들은 못 했을지도 모르는 일도 해냈지. 내 주변엔 나처럼 운 좋은 친구들도 많아. 우리는 한동안 모든 걸 잘못했지만, 결국 배웠고 이제는 더 잘하고 있지. 그래, 인생은 좋아.

인생과 음악은 좋지만, 음악 산업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죠. 당신의 많은 아이들이 음악을 했어요. 그 위험 때문에 말린 적은 없었나요?
넬슨: 전혀. 그냥 알고 있으라고 했지. 우리 집에는 늘 악기가 있었어. 피아노, 기타, 드럼 뭐든.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 원하는 걸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거야.

Workin’ Man에서 가장 좋았던 건 2022년에 세상을 떠난 여동생 보비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I Think I’ll Just Stay Here And Drink”에서 그녀는 정말 훌륭하죠. 둘이 함께 연주한 첫 기억은 뭔가요?
넬슨: 우리가 살아온 내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는 피아노 스툴에 앉아서 그녀가 연주하는 걸 듣던 거야. 내가 네다섯 살도 안 됐을 때겠지. 그녀는 “In the Mood,” “Down Yonder” 같은 걸 하고는 했어. 뭐든 연주할 수 있었지. 위대한 복음송도 다 알고 있었고. 그녀는 놀라웠어. 인생에서 마음 아프고 힘든 일이 많았고, 많은 사람들은 견디지 못했을 거야. 그녀는 강했고, 90대까지 버텼지. 열심히 산 사람이야.

그런 힘든 시간들이 그녀의 연주에 담겨 있다고 느꼈나요?
넬슨: 모든 음에. 정말 모든 음에.

당신의 목소리도 같다고 생각하나요? 92년간의 경험이 담기는 통로라는 점에서요?
넬슨: 아, 그래, 물론이지. 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 그 노래는 안 불러.

당신의 마틴 기타, 트리거는 음악 역사상 가장 알아보기 쉬운 악기 중 하나죠. 생긴 모습도 그렇고, 소리도 그렇고요. 그 모든 긁힌 자국, 서명, 금들 중 가장 의미 있는 건 뭔가요?
넬슨: 첫 번째가 아닐까 싶어. 리온 러셀에게 기타에 사인해달라고 했고, 난 “좋아, 대신 너도 내 것에 해줘”라고 했지. 그게 시작이었어. 아마 그때는 샌안토니오에서 같이 공연하고 있었을 거야. 사람들은 그걸 좋아했고, 나도 그들이 하는 걸 즐겼어. 재밌잖아.

이 기타가 오래 함께할 거라는 걸, 그 특별한 소리를 가졌다는 걸 얼마나 빨리 깨달았나요?
넬슨: 웃기는 점은, 난 그 기타를 보지도 않고 샀다는 거야. 내슈빌 사람과 통화를 했고, 그가 “마틴 20이 있어요”라고 했지. 나는 그게 뭔지 몰랐지만, “얼마?”라고 물었어. 150달러라고 했고, 내가 바로 전에 로핑용 말도 150달러에 샀거든. 그래서 “음, 나쁜 거래는 아니겠는데?”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기타를 보고, 한 음을 치자마자 이건 다르다는 걸 알았어. 장고 라인하르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야. 이 기타가 그의 소리와 같진 않지만, 이 기타로 얻는 소리가 그의 음악과 소통하게 해줘. 첫 번째로 어떤 음을 쳤는지는 기억 안 나, 튜닝하느라 아마 가장 낮은 E줄이었을 거야.

여기는 GQ니까 패션 이야기도 해야죠. 빨간 반다나가 상징이 된 건 언제 알았나요?
넬슨: 뭐, 이 땋은 머리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날 생각하면서 그걸 떠올리지. 반다나는 편리해. 제 역할을 하지. 아내 앤젤로는 지금도 매일 밤 그걸 접어줘.

당신의 스타일 중 또 하나는 빨간, 흰, 파란 색의 기타 스트랩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늘 애국심과 흥미로운 관계였고, 이 나라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것처럼 보여요. 요즘 많은 사람이 이 나라에 대해 희망을 잃고 있어요. 당신은 무엇에서 희망을 찾나요?
넬슨: 희망을 찾을 이유는 언제나 있어. 내가 쓴 노래 중에 “원하는 걸 상상하고, 그다음에는 길을 비켜라.”라는 가사가 있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원하는 걸 상상하고, 그냥 비켜. 스스로 막지 말고. 일어나게 두는 거야.

지금 당신이 상상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Nelson: 좋은 하루야. 가족이 오고 있고,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걸 상상할 수 있어.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야.

Grayson Haver Currin
사진
Canada Goose
출처
www.gq.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