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살에 빠져 일주일에 5일은 인조 잔디에서 살았던 날이 있었다. 컴퓨터 앞보다 골대 앞에 있을 때 마음이 더 편한 에디터가 경기장에서 본 다양한 사람들에 관하여.

몇 년 전부터 축구에 푹 빠졌다. 보는 축구보다는 직접 하는 축구. 엄밀히 말하면 큰 축구보다는 풋살을 더 좋아한다. 오늘 양민혁이 코번트리 시티에서 선발 출전할지는 몰라도 우리 팀에 누가 나오는지는 꼼꼼하게 체크한다. 일주일에 두 번은 풋살화를 신는다. 많으면 세 번. 어떤 날은 6시간 동안 세 경기를 연달아 한 날도 있다. 근데 가끔은 축구보다 사람이 더 재미있을 때도 있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지만, 인간의 종류는 놀라울 정도로 다채롭다.
축구에 진심인 사람
총무, 경기장 예약, 공 관리, 단톡방 공지까지 모두 도맡아 한다. 비가 오면 대체 구장을 알아보고, 인원이 부족하면 직접 연락을 돌리거나 ‘모두의 풋살’ 카페에 글을 올려서 용병을 모집하기도 한다. 이 사람이 없으면 팀은 자연스럽게 흩어질 수도 있다.

늘 지각하는 사람
7시 경기면 이 사람은 7시 20분에 나타난다. 가끔은 한 시간 넘게 늦는 날도 있다. 이유는 항상 있다. 차가 막혀서, 늦잠을 자서, 아이를 재우고 나오느라. 이 사람 한 명 때문에 경기를 늦게 시작한 날도 있다. 어떻게 이렇게 매번 늦을 수 있을까? 얄밉고 팀에서 빼버리고 싶은데, 또 축구는 잘한다. 모두가 불평하지만, 그냥 이해해 줄 수밖에 없다.
꼭 하나씩 빠뜨리는 사람
“혹시 축구화 270 사이즈 남는 거 있는 사람?”, “팀조끼 안 가져왔는데, 한 번만 빌려줄 수 있어?” 이 사람은 늘 누군가의 물건을 빌려서 쓴다. 그리고 그 물건은 축축하게 땀범벅이 되어 돌아온다. 할머니 댁 메주처럼 익숙한 냄새. 이 사람 덕분에 여분의 팀 조끼를 더 사기로 했다.

경기보다 뒤풀이가 더 중요한 사람
“오늘 맥주 한잔해야지?” 전반전이 끝나자마자 오늘 뭐 먹을지부터 묻는다. 패스보다 메뉴 추천이 빠른 사람, 이 사람의 머릿속에는 포메이션보다 맛집 지도가 더 선명하다. 열심히 뛰어다니는데 살이 안 빠지는 데에는 이 사람의 지분이 크다.
경기장에서 성격이 달라지는 사람
평소에는 예의바르고 깍뜻한데 축구만 시작하면 승부욕이 온몸을 지배하는 사람도 있다. 패스 한 번 잘못주면 “하…” 하면서 한숨을 쉬고, 슈팅이 빗나가면 “아, 제발!” 외치며 소리를 지른다. 가끔은 상대팀에게 너무 거칠게 해서 싸움이 날 뻔한 적도 있다. 하지만 경기장을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예의 바른 청년이 된다.

내로남불
자기 실수는 “아, 아쉽네”, “그럴 수도 있지”라며 관대하지만, 남의 실수에는 바로 쌍욕을 박아버리는 사람도 있다. 뒤에서 “네가 막았어야지!”, “옆에 공간 있었잖아! 패스했어야지!”라며 잔소리를 하는 사람. 가끔은 혼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근데 이 사람 덕분에 축구 실력이 느는 것도 있다.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이 사람은 분위기 메이커다. 신입이 오면 제일 먼저 인사를 건네고, 실수한 팀원에게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며 기를 살려준다. 실력보다 태도가 팀을 만든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