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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 다리 위에서

2015.10.20유지성

스타킹에 열광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GQ_스타킹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다. 곡선이 예쁘다, 속살이 궁금하다는 판단 이전에 반응하는 본능에 가깝다. 가슴과 큰 엉덩이(혹은 넓은 골반)를 힐끗거리는 데 믿거나 말거나 진화론적 근거가 있다면, 과연 지나간 여자의 스타킹을 고개를 돌려서까지 보는 건 대체 어떤 이유 때문인 걸까. 그것은 몸의 일부도 아닌데. 벗어 던지고 나면 그만인 겉옷도 속옷도 아닌 애매한 뭔가일 뿐인데. 물론 그것을 벗는 혹은 벗기는 방법은 다른 옷과 다를 수 있겠으나, 그저 스타킹을 보고 벌떡 반응하는 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진 않는 듯하다. 과연 하이힐과 함께라면, 그 걸음의 소리까지도 한 세트로 들릴 지경. 그러니 스타킹을 봤을 때 드는 생각보다 스타킹에 자극받는 신경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훨씬 더 논리적이지 않을는지. 이것이 남자들만 꽁꽁 싸맨 채 알고 있는 그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스타킹은 대표적인 페티시의 사례로 꼽히지만, 사실 페티시란 관점에서 접근하기엔 스타킹에 대한 애호는 너무나도 보편적이다. 너도 나도 다 같이 좋아하는 것을 특정한 취향이라 말하지는 않으니까. 유행과도 별 상관이 없으니, 차라리 고전이나 전통이라는 말이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한편 스타킹은 가을을 알아채는 단서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두꺼운 옷을 입을 때 간편한 캔버스 운동화보다는 묵직한 구두를 골라 신 듯, 스타킹 역시 단지 맨다리로 다니기 힘겨울 만큼 추워지는 순간 찾게 되는 물건은 아닌 듯하다. 그러니 달력의 24절기처럼 실제 기온보다 앞서 불쑥 눈에 띄곤 한다. 예고 없이 스타킹을 신은 여자를 처음 보는 순간 놀랍고 반가운 맘과 함께 생각한다. 가을이군.

스타킹의 두께는 ‘데니아’란 단위로 구분한다는 것도 배웠다. 데니아 수가 낮을수록 촘촘하고 부드럽다. 스타킹의 투명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살면서 뭔가를 세는 단위 중 가장 늦게 체득한 것이 아닐까. 물론 알고 있다고 “이건 30 데니아 맞지?” 같은 바보 같은 질문을 한적은 없다. 속으로 혼자 판단하고 어쩌다 그게 맞다는 걸 알게 되면 나름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가며 대개 스타킹은 점점 두꺼워지니, 개인의 선호에 따라 좋아하는 계절 또한 좀 다를 수 있겠지. 여기서부터 취향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검정색이든 커피색이든 살색이든 흰색이든, 그것이 투명하든 불투명하든, 망사라면 손가락 하나쯤 들어가는 밀도든 그것보다 몇 배쯤 넓은 것이든, 팬티스타킹이든 밴드 스타킹이든 (드물겠지만) 판타롱 스타킹이든. 레깅스와 무릎 위로 올라오는 사이하이 삭스까지도 그 범주에 집어넣을 수 있을까?

어쩌면 스타킹은 만능의 물건인지도 모른다. 올이 나가면 나간 대로 섹시하다는 소리를 듣고, 줄줄 흘러내리는 밴드 스타킹의 단점을 해소하기 위한 용도의 가터벨트는 기능을 훌쩍 뛰어넘는 대단한 마력을 발휘하곤 하니까. 팬티스타킹이라면 과연 뭐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그 허벅지부터 색이 짙어지는 부분이 속옷보다 더 자극적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결국 어떤 식으로든 즉각적으로 열광하게 된다는 점만큼은 동일한 채로, 스타킹은 그렇게 알쏭달쏭하고 흥미로운 물건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촉감. 만지기 전에 보고 있을 때부터 은근한 흥분 상태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나, 그 촉감이야말로 유일한 스타킹만의 것이다. 여자의 몸에서 남자의 몸에는 없는 부분에 더욱 호기심이 생기듯, 남자의 옷장엔 그런 질감의 물건이 없으니 더욱 애가 타기 마련. 더욱이 스타킹은 옷가게에서 만져볼 수 있는 종류의 물건도 아니다. 그러니 종종 그 스타킹의 감촉이 도화선이 되어 앞으로 돌진하는 순간을 맞곤 한다.

역설적으로, 침대에서의 스타킹은 기대만큼 폭발적이진 않다. 물론 스타킹으로 여러 시도를 해볼 수도 있겠지만, 체위에 관해서든 오럴 섹스를 할 때든 결정적 순간엔 방해가 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래서 결국 벗어 땅에 내동댕이치는 경우가 많다. 그때부터 스타킹은 마법 같은 힘을 잃는다. 여자가 몸에 걸친 모든 것 중 제일 유혹적인 물건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그리고 벗고 잔다. 그러니 영원히 알 수 없다.

달리기를 할 때 레깅스를 신거나 비행기를 탈 때 압박 스타킹을 신는 일이야 생길 수도 있겠으나, 이 스타킹에 대해서라면. 그렇게 탐닉한다. 결국 워낙 미지의 영역이다 보니 대책 없이 이끌리게 되는 걸까? 역시나 영영 모를 일이다. 신어볼까?

    에디터
    유지성
    일러스트
    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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