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은 지고 싶지 않다

가수 데뷔 20주년 같은 말이 그는 싫다고 했다. 훈련하고 싸우고 탐험하고 걷는 중이라고도 했다. 힘들다며 웃었고, 노력해야 한다며 외치기도 했다. 이상은은 지금 그렇다.

드레스와 재킷과 네 손가락에 동시에 들어가는 반지는 모두 마르틴 마르지엘라
드레스와 재킷과 네 손가락에 동시에 들어가는 반지는 모두 마르틴 마르지엘라

광주와 울산에서 공연하고 오늘 새벽에 서울로 왔다고 들었다.
텔레비전 라이브 무대였다. 광주에선 한 10곡 가까이 불렀다.

공항에서 막 돌아온 사람 같은 어떤 피곤과 어떤 왕성함, 어느새 당신에게 참 익숙한 모습이다.
광주에선 몸이 안좋아서 거의 자다 일어나서 노래한 셈이 되었다.

당신의 관객들이 조용해진 지 꽤 오래되었다. 문득 이상하진 않나?
흐름을 타는 거다. 이런 무대에선 너무 어려운 노래를 부르지 말자, 돌고래자리 불러달라고 하면 그러자, 그런 식이다. 뭔가 맞춰가는 게 좋다.

하지만 무대 위의 당신은 항상 불안해 보인다.
비욕 같은 사람의 무대도 어떤 안정감은 없을 것 같다. 비욕과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아니다. 비욕은 제멋대로 하겠지만, 당신은 자꾸 망설인다.
그러니까, 뭐랄까, 대중적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진 않을 거야라는 생각은 있다.

팬이나 관객을 불편해하는 것도 같다.
아니다. 팬이 많이 없다. 파리에 갔을 때 보자르 다니는 어떤 학생이 팬이라고 해서 그래, 너 똑똑한데, 너 같은 애나 좋아하니까 앨범이 몇 장 안 나가지, 그런 과격한 농담을 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한국에서 공연을 이어간다는 건 어떤 걸까. 광주를 가고, 울산을 가고…. 얼마전 시규어 로스의 DVD <Heima>를 보고 아득해졌다.
아이슬란드는 멋진 나라니까.

당신은 멋있진 않은 나라에서 노래한다.
늘 어떤 결핍과 싸워왔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했다. 가리고, 숨기고, 외국의 힘도 빌리고. 데뷔 20년이 되어서, 정말 이제야 조금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면 내 말이 어떻게 들릴까?

그러니 당신을 불굴의 탐험가라 불러야 하나?
개척자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이런 생각도 들지만, 개척, 개척, 그런다.

열세 번째 앨범이 나오고 몇 개월이 지났다. 어떤가? 막연하게라도.
광주 테스코에 닌텐도 게임팩 <말랑말랑 두뇌교실>을 사러갔다가 없길래, 옆에 시디코너를 둘러봤다. 그나마 팔리는 시디를 구비해놓았을 그곳에 내 시디가 있어서, 드디어! 이제야! 이런 느낌이 들었다. 광주 테스코에 내 시디가 있다.

그 앨범을 통째로 듣기도 하나? 판매는 어떤가?
꽤 괜찮다. 뭐 한 7천 장쯤? 굉장히 좋아하는 앨범이다. 편안히 들을 수 있는 내 첫 번째 음반이기도 하다. 다른 건 너무 불안하다.

처음 들었을 때, ‘삶은 여행’이란 노래는‘언젠가는’이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반응은 좋다. 하지만 앨범은 안 산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다른 방법’에 대해 가수인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대안은 없다. 국영 스튜디오 같은 걸 생각할 만큼 심각하다.

대중 음악이 아예 끝난 건 아닐까?
노래 만들고 노래 부르고 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 20년을 했다. 나는 지고 싶지가 않다. 그게 문제다. 미친 거 같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가수나 스타, 이런 것하고 성격이 안 맞는다. 화가가 되는 게 나았을 것도 같다. 대인공포도 있고.

그런 거짓말이 어딨나. 당신이 인디언 분장하고 ‘담다디’부르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버젓이 있다.
나이 드니까 더 겁이 생기는 걸까? 사실은 얼마전에 음악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파리에 있는 한 교수님이 와서 공부나 해라 그래서 한번 가봤다.

이미 졸업장 없이 다닌 학교가 다섯 손가락 아닌가?
난 졸업장이 필요없다. 뭐랄까, 그냥 음악한다는 거 자체가 어렵다. 그걸 타개해보고 극복하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방법을 찾는게 너무 어렵다. 아무도 하라는 사람이 없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그만둘지도 모른다.

날벼락도 갑자기 내리치지만, 갑자기 무슨 소린가?
오랫동안 그래왔다. 다만 어렸을 땐, 그런 생각을 안하려고 애를 썼는데 이제 정신이 드는 거다. 어? 이거 너무 오래 걸리는데? 하지 말라는 거 아닌가? 하지만 방법을 다시 생각하긴 한다. 일본에 다시 갈까?

굳이 한국에서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꾸 한숨이 난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단 한 명도 모를 거다. 엄청난 재난이다. 그저 의연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박수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탬버린을 흔들며 삼천리 방방곡곡을 발칵 뒤집은 지 20년이 되었다. ’20주년’이란 말이 당신에겐 어떤가?
사람들이 원하니까 뭔가 하게 될 거다. 만약 여기가 파리였다면 좀더 삐딱하게, 좀더 알아듣는 사람끼리 할 수 있는 쪽으로 갔을 거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나를 보는 게 싫다. 20주년 그러니까 질질 끌려가서, 해야 되니까 뭔가 하고 올 거다.

당신에게 다른 여자 가수들이란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이 뭐 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내 일만 한다. <GQ>는 <에스콰이어>에 관심 있나?

그건….
그런 거다. 그냥 내가 갈 길을 간다. 대부분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다. 어떻게 잘 할까, 매일 생각한다. 그런 고민은 다 우리가 지금 뭔가 해야하는 기둥이기 때문 아닐까?

당신이 그런 교수님 같은 말을 할 때마다 누군가는 삐딱해지기도 한다. 대가인 척한다고.
어떤 완성을 말할 수는 없다. “이상은 걘 아직도 문제가 많아”그럴 수도 있다. 왜냐면 남동생으로 봤을 때 아직 멀었으니까. 또 아버지로서 보면 아직도 철딱서니 없는 딸일 수도 있다. 쉰 정도 되어서, “이제 이상은 쟤가 나나 무스크리 정도 되는 거 같애. 옆에서 줄곧 팼더니 저 인간이 그렇게 됐어.”이렇게 되면 괜찮은 거 아닌가 생각한다. 가능성은 모르겠고 무조건 행군 중이다. 그래 왔고, 그러고 있다. 지금도 과정이다.

자신이 마음에 드나?
점검해볼 시기가 아닌 것 같다. 더 가야 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가다가 당신이, 노래를 부르고 또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런 순수하고 단순한 수순을 잃어버리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객석의 열광 같은 거, 욕심이 사라지진 않았나?
전혀. 이제 팬들도 다같이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10대 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고등학생 중에 새로 생겨나는 팬들이 있다. ‘난 너희랑 달라’ 이런 애들. 얘네들이 이번 음반을 듣고 옛날 음반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당신은 늘 스스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시집 간 친구들에게 살림 잘해라 인사하고 돌아서서는, 나 언제 클럽 가지? 생각한다. 난 혼자 잘 논다. 괜찮다. 클럽에서 춤추는게 할 줄 아는 유일한 운동이다.

당신의 열 세 번째 앨범은 정말 좋은 앨범이다.
다행이다. 인내심을 갖고 고통스러워도 걸어가야 한다는 걸 절절히 깨달았다. 그 전에도 노력은 했다. 하지만 13집은 이를 악물고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다. 나온 앨범을 보면서 이런거구나라고 느꼈다. 고통스럽게 훈련 받듯 해야 음악도 좋은 결과를 얻는다.

핸드볼 선수들 얘기 같다.
훈련! 훈련! 인내심! 인내심! 운동이랑 노래랑 가깝다. 노래하면 근육도 생기고 목소리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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