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잇스탠드의 냄새

“오빠, 자러 가자. 나 안 한 지 오래됐어.” 그날 밤, 이 한 마디로 잔인한 ‘후각의 밤’이 시작됐다. 이른 아침에 거리로 나왔을 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린 당연히 취해 있었다. 술집은 지하에 있었다. 브라운아이드걸스가 부르는 노래를 몇 번이나 반복해 들었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가 취한 머릿속에서 무한반복으로 맴돌았다. 소파 아래 어딘가 피어 있을 것 같은 곰팡이, 소주, 담배, 화장품, 향수. 대학가 술집에선 항상 이런 냄새가 난다. 귀는 시끄럽고, 코는 어지럽다.

“내 눈이 낮아진 거니, 네가 예뻐진 거니?”

빨개진 볼을 보고 당황한 건 나였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으니까. 유혹 같은 걸 할 생각은 없었다. 이런 농담쯤은 여유 있게 받아치던 여자애였고, 부담도 없었다.

“왜 그러셔? 그땐 그렇게 모른 척하더니. 오랜만에 만나니까 여자로 보여?”

“응? 뭐라… 응? ”

“무슨 남자가 그렇게 둔해?”

“내가 뭘? 둔하긴 한데, 너한테 둔하단 얘기 들을 만한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우린 ‘알던 사이’였다. 한때 친했지만 일 년에 한 두번 정도 연락하는 사이,“ 다음 주에 만나자”해놓고 깜빡 잊는 사이. 그래도, 언제든 전화하면 살갑게 통화하는 사이. 가끔만 생각났다.

친했을 땐 항상 아슬아슬했다. 난 어렸고, 취한 여자를 꼬드겨 자는 건 반쯤은 죄라고 생각했다. 청교도적 영문학도였다. 이 여자애가 오히려 적극적이었다. 어깨에 기대기도, 허벅지에 손을 올리기도, 내 손등에 자기 손바닥을 포개기도 했다. 그리고 헤어졌다. 웃으면서 모른 척했다.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관계에 진중한 신사인 척하면서도 여지는 남겨 놓는, 섹스는 일종의 보험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때 생각났다. 둘 다 어렸을 때, 하려다 말았을 때.

“너, 4년 전 얘기 하는 거야?”

“….”

그러고 보니 2004년, 여럿이 모인 술자리에서 둘 다 불콰하게 취했을 땐 키스할 뻔하기도 했다. 사귈 생각은 없었다. 난 1년 예정으로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그전에 엉큼한 추억을 남기고 싶은 생각은, 남자들이 입대 전에 흔히 하는 생각과 다를 바 없었다.‘ 한 번 자고 말지 뭐’ 딱 그거였다.‘ 출국’은 무책임한 이기심에 대한 현실적인 면죄부였다.

여자애의 입술이 귀에서 볼로, 볼에서 입술로 다가올 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었다.‘ 오늘 키스하고 3개월 사귀자, 그리고 출국하자. 그럼 그만이다. 가만, 콘돔은 있나?’ 그러고 4년 만이었다.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추억은, 언제나 사춘기 소년 같았다.

“너, 살 빠졌다?”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렇다. 늙어가는 거지.”

“풉, 너 스물다섯 아니니? 늙어간단 소리가 나오니?”

과연, 통통했던 몸은 젖살이 빠져 있었다. 서툴렀던 화장도 자리를 잡았다. 베이지색 외투를 벗고 자리에 앉았을 땐, 쇄골이 하얗게 드러났다. 목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선은 전보다 가늘어졌다. 허리가 보고 싶었다. 다리도 보고 싶었다. 살 냄새를 맡고, 만지다 움켜쥐고 싶었다.

소주를 마실 땐 안주 대신 콜라를 마시는 습관은 4년 전과 같았다. 대학가 술집 앞에서 나오는‘최신 유행곡 메들리’도 그때와 다를바 없었다. 세 병쯤 마셨을 땐, 시야가 좁아졌다. 입술만 보이다, 손가락만 보이다, 쇄골만 보이다, 가슴골만 보이다,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뇌가, 알코올에 절어 갔다.

술집엔 다른 여자들도 많았다. 점원이 입은 치마는 짧았다. 팬티선이 보일 정도로‘타이트’했다. 다른 테이블에 음식을 나를 땐 티셔츠와 바지 사이로 허리살이 보였다. 옆구리는 지나치게 날렵하지 않았다. 도톰했다. 아무렇게나 입어도 벗은 몸을 상상하게 만드는 몸이었다.

여자애와의 대화는 그럭저럭이었다. 늙어가는 얘기(둘 다 이십대인 주제에),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얘기, 그게 벌써 6개월 전이라는 얘기, 오늘은 이미 친구네 집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는 얘기, 집에 안 들어가도 된다는 얘기, 나랑 잘지도 모른다는 얘기. 그럭저럭이었다. 담배 연기가 매캐했다.

“오빠, 자러 가자. 나 안 한 지 오래됐어.”

미리 얘기하지만, 이날 밤은 여기까지가 좋았다. 자러 가는 길엔 대학 신입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하수구에 대고 토악질을 해댔다. 라면가락 같은 게 긴 생머리 끝에 붙어 있었다. 옆에 있던 남자애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등을 두드렸다. 그렇게 걱정하면서 등 두드려 주다, 어깨 빌려주다, 너희도 모텔에서 쉬어가겠지.

웃긴 밤의 시작이었다. 원나잇스탠드는 술기운이 가시기 전까지가 좋다. 아슬아슬, 옷 벗기 전까지만 재밌다. 모텔에 들어갔을 땐 이미 지루해졌다. 감각만 예민해졌다. 마리화나를 피우면 이렇게 된다고 들었다. 오감이 예민해진다고. 특히 후각이. 대략 20분 전에 마음속으로 쓴 시나리오대로, 우린 키스했다. 다시 소주를 한 잔 들이켠 것 같았다. 입속은 따뜻하니까, 덥힌 소주를 마시는 것 같았다. 혀는 전혀 조심스럽지 않았다. 깊숙이 들어왔다.

키스가 달콤하네, 레몬 맛이 났네 하는 건 이런 밤과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다. 아까 먹은 밥, 찌개, 소주 사이로 콜라 맛이 나긴 했다. 여자애의 입속에 머물러 있던 냄새가 내 코로 올라왔다. 동시에, 이날 밤에 우릴 둘러쌌던 모든 냄새가 같이 올라왔다.

서늘한 밤, 뜨거운 국물, 곰팡이 핀 벽, 점원 머리카락에서 나던 샴푸냄새까지. 여자애는 이미 내 몸을 훑기 시작했다. 정신이 혼미해진 건 이 아이의 살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여기서 그만하고 싶었지만 빌어먹을 매너 때문에.

여자앤 야동처럼 움직였다. 몸짓은 대체로 기계적이었다. 이때부터 당황스럽기 시작했다. 야동처럼 움직이는 여자, 무서운 학습이라고 생각했다. 야동은 남성을 위한 판타지가 아니었나? 여자는 야동보단 은유적이고, 기계적이기보단 섬세한 감정의 교류를 원하는 게 아니었나? 아니었다. 이 애는 철저히 남자를 위한 섹스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어떤 남자들한테 길들여진 거니, 너?’ 서글퍼져서 묻지 않았다.

서글퍼졌다는 건 그냥 감상이고, 실은 질려서 그랬다. 일단의 과정을 마치고 다시 얼굴을 마주했을 때, 예민해진 후각으로 오만가지 냄새가 침공해왔다. 따뜻했던 건 이 여자애의 입속만이 아니었다. 방은, 이미 들어설 때부터 후끈거렸다. 공기 중엔 수증기가 떠다녔다. 누군가 샤워를 마치고 나선 지 10분 정도밖에 안 된 것처럼. 수증기 알갱이마다 덥혀진 먼지가 떠다녔다. 어딘가 빨아 놓은 지 오래된 걸레가 하나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오래된 먼지 냄새에 익숙해졌을 땐 입술과 목 언저리에 묻어 있던 침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모텔 리넨은 호텔처럼 바삭거리지 않았다. 눅눅했다. 술집 소파처럼, 얼룩진 벽처럼. 흡사 냄새의 융단폭격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기서 그만하고 싶었다. 아무리 취했어도, 마른 침 냄새까지 생생하게 불쾌한 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매너 때문에. 폭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빠, 좋아?”

‘4년 만에 만난 여자애야, 그만 했으면 좋겠구나.’ 말하는 대신 바지를 벗겼다. 신랑 입장하고, 신부 입장하고, 주례사 하고, 축가 부르고 마치는 20분짜리 결혼식처럼 수순대로, 시나리오대로. 팬티도 벗겼다. 그러지 말 걸 그랬다. ‘냄새의 역습’이랄까. 소설가 김훈은 여자의 음부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를 맡고 바다를 떠올렸더랬다. 소금을 잔뜩 머금은 바닷물과 빛이 만나 생명을 잉태하는 공간으로서. 소설가 한승원은 <포구>에서 ‘여자의 음부같은 갯벌’이라고 썼다. 같은 맥락이다. 여성과 바다, 물과 생명. 지금까진 공감했지만 이날 밤은 아니었다. 생명은, 관능은, 사랑하는 여자를 안을 때만 느껴지는 비밀스런 쾌락이었다. 그래야 절정일 수 있었다. 여자애의 몸이 쾌락에 꿈틀거리긴 했는데, 본의 아니게 가뭄에 뭍으로 올라온 생선 파닥거리듯했다. 헐떡거리는 목은 아가미 같았다. 신음소리까지 거슬렸다. 이날의 비린내는, 생명과는 무관했다.

“그래서, 했어 안했어?”

친구들은 물었다. 그렇지, 남자들은 그게 중요하지. 하지만 중요한 얘긴 이미 다 했다. 남은 건 아침이다. 나는 잠들지 않았다. 자고싶지도 않았고, 피곤하지도 않았다. 새벽을 기다려, 여자애를 깨우고, 밖으로 나왔다. 상쾌한 아침 공기만이 내 코를, 이 날의 비뚤어진 관능을 씻어주리라고 절박하게 기대하면서.

“오늘 일은….”

“어머? 촌스럽게. 그럴 수도 있지. 또 봐, 우리.”

토요일 이른 새벽 대학가는 황량하다. 진동하던 술 냄새는 지난밤 막차가 다 쓸어갔다. 남은 건 클럽 전단들, 짝을 못 찾은 사람들의 황무지적 배회, 신발까지 벗어놓고 자동차 보닛 위에 잠든 누추한 남자, 하수구에 걸린 토악물이다. 산뜻한 건 공기뿐이다. 술과 냄새에 절은 머리를 새벽 공기에 씻었다. 그제야, 피로가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