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GQ>가 선정한 올해의 남자들

이슈, 유행가, 시청률, 시상식, 수상자, 그러다말겠지 싶은 뉴스, 저러다 꺾이겠지 싶은 인물, 금방지나가나 했던 불황, 심지어 1년… 모든게 한때로만 보였다. 12월이 되고 우리는 깨닫는다. 기억하지 않는한 간직할 수 없음을. <GQ>가 선정한 올해의 남자들을 소개한다.

이순재 백일섭
한 집에 삼대가 모여 살았다. 가장이 세 명 있었다. 그 낯선 풍경을, 모두가 사랑했다.

<엄마가 뿔났다>에, 가족에 대한 거창한 문학적 비유가 깃들어 있진 않았다. 수틀리면 소리 지르고, 잘못하면 야단맞고, 서운하면 토로했다. 좋을 땐, 그냥 좋다고 했다. 조금은 수줍어하면서. “잘난 사람들 얘기가 아니었지. 가족들 다 교육 수준이 높아 봐요. 아버지와 아들이 둘 다 잘나다 보면 바닥에 흐르는 인간적 교감이 별로 없다고. <엄마가 뿔났다> 가족들은 직접적이고 소박했지. 그런 충돌과 소통이 진짜 아니겠어?”(이순재)

아들 백일섭은 ‘아부지, 아부지’하면서 살가웠다. 아버지 이순재는 인자하고 정 많은 할아버지 가장이었다. 택시 운전으로 일가를 이뤘는데, ‘공부를 좀 잘 해서 성공했으면’싶었던 아들은 세탁소 사장이 됐다. 아들의 살가움엔 그런 미안함도 있었다. 미처,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으니까. 아들들은 대개 그런 마음을 안고 살기도 한다. “부자지간은 원초적이면서도 긴밀한 관계지, 백일섭이하고 나는 아주 소박한 아버지와 아들이었어요. 평상시엔 친구지마는.”(이순재) “요즘은 그런 가족이 많지 않아요. 다 흩어져 있지. <엄마가 뿔났다>처럼 작은 사건으로 집안 전체가 뒤집어지고, 그러지 않잖아. 귀찮기도 하지마는, 다들‘저런 가족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을 거예요. 나도 많이 배웠지. 아부지한테 다정하게 해본 적도 없고, 같이 생활을 안 했고, 엄마한테도 불효를 많이 했구나 느꼈어요. 마누라한테 소홀했던 부분도, 지금까진 ‘그래도 되겠거니…’하고 살아왔다고. 인생을 많이 배웠지. 지금까지 이렇게 연기자를 느끼게 만든 작품은 없었어요.”(백일섭)

김수현 작가의 대본은, 누구 하나 홀대하는 법이 없었다. ‘스타’ 두 명 캐스팅 해 놓고 억지춘향으로 늘려가는 드라마에선 주연만 돋보인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건 출연료밖에 없다. “80~90퍼센트가 망해가요. 스타 군단 데리고 있는 애들이 거의 망한다고. 흘러간 소재 갖다가 붙이니 될 리가 있나. 비싼 애들 써서 아직도 <친구>, <쉬리> 비스무레한 것들 만들고 있어요. 미쳤지.”(백일섭)

“<베토벤 바이러스>는 MBC가 ‘샌드위치 드라마’로 만든 거라고. 근데 백억씩 들인 작품들을 다 잡았어요. 김명민이가 아마 박신양이나 송일국이보단 못 받고 찍었을걸? 3천, 4천, 요즘은 8천 소리도 나와. 애들 그렇게 돈 줘서 프로덕션이 망해요.”(이순재)

<엄마가 뿔났다>에 스타는 필요없었다. 어머니의 독립, 할아버지의 사랑. 노년의 ‘로맨스’는 아옹다옹 어린 사랑보다 깊었다. “나중엔 늙은이들이 이끌었어. 우리가 40퍼센트 올렸다고. 김 작가 드라마 안에 인물들은, 단역을 해도 눈에 띄게 돼 있어요. 아버지도, 보통 아버지가 아니야. 인간적 고뇌가 있고 그러니까 아버지가 살아나는 거야. 그건 가족에 대한 공감대였어요. <하이킥>도 그랬잖아, 주먹질, 때리는 게 스킨십이었지. 얼마나 정겨워요? 가족은, 향수처럼 항상 마음속에 살아있는 거예요.”(이순재)

한 명 한 명, 모나고 모자라 보여서 더 인간적이었던 배역들은 <엄마가 뿔났다> 안에서 조화로웠다. 현실에선 없어져 가는, 한국적 가족의 어떤 원형이었다. 따뜻했다. 2008년 내내 그랬다. 어른들의 힘이었다.

이순재의 턱시도수트는 장광효카루소, 드레스셔츠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보타이는 란스미어. 백일섭의 턱시도 수트와 드레스셔츠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보타이는 란스미어, 커머밴드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이순재의 턱시도수트는 장광효카루소, 드레스셔츠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보타이는 란스미어. 백일섭의 턱시도 수트와 드레스셔츠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보타이는 란스미어, 커머밴드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의상 협찬/ 마에스트로
의상 협찬/ 마에스트로

김명민
그가 드라마에 나오면 행여 대본이 엉성하거나 상대의 연기가 불안하거나 전개가 널을 뛰어도, 모두 김명민을 본다.

김명민이 장준혁이던 시절, 그리고 그가 죽는 마지막 회. 허공에 대고 수술을 집도하는 장준혁의 손동작이 생각난다. 그리고 올해, <베토벤 바이러스>로 김명민이 돌아왔다. 이번엔 손동작에 훨씬 더 리듬을 넣어서. 냉정히 말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는 여기저기 엉성하다. 전문직 드라마로 보기엔 ‘전문’의 비중이 적고, 에피소드 드라마로 보기엔 사건과 수습의 반복이 다소 단조로우며, 멜로 드라마로 보기엔 상대가 두루두루 어색하다. 이 불안한 드라마를 ‘신드롬’으로 끌어올린 건 김명민이다. 그의 지휘가 실제 오케스트라를 이끌 정도로 뛰어나고, 손짓이나 표정 연기가 출중했다는 게 다가 아니다. 김명민은 드라마 안에서도 강마에가 되고 드라마 밖에서도 강마에가 되는 바람에…. 사실 장준혁과 강마에 사이에는 류재우(<리턴>)와 조대영(<무방비 도시>)도 있었다. 류재우는 외과의였고 조대영은 형사였지만 장준혁이나 강마에 만큼 입체적인 얼굴은 아니었다. 어떤 배우가 연기해도 비슷할 전형적인 캐릭터 앞에서 김명민의 명도는 조금 흐려진다. 대신 누구나 쉽게 연기하지 않는(못 하는) 캐릭터일 때 곱절은 선명해진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시작할 즈음 그는 “나만 왜 이렇게 어려운 역할을 맡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말 모를까? 당연히 김명민만큼 잘 할 배우가 없기 때문이라는 걸?


박진영

그는 국가 대표다. 엔터테인먼트 선수단 감독이다. 현역 선수로도 가끔 뛰는 팔팔한 감독이다.

<GQ>의 마감 때는 모두 11시가 넘어 퇴근한다고 했더니 무척 부러워했다. 자신은 새벽을 지나 날밤 까는 날도 수두룩하다고 했다. 세상에, <GQ> 마감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박진영은 그렇게 빠져 산다. 지금도 뉴욕 어디에 빠져 있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엉덩이에 그렇게 채찍을 때려 대는 성격은 어쩔 수 없다. 원님이 금지령을 내려도 골방에서 숨 막히게 일할 사람이다. 대통령이 시킨 것도 아니고, 욕심 많은 사장 밑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라마단을 맞은 무슬림처럼 취해 산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고 물어도 마뜩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서슴없이 ‘평생’이라는데, 주변에서 좀 말려줘야 할 것 같다. 저러다가 목성까지 진출할지도 모른다니까. 현재 박진영의 미국 성공기는 숨가쁜 진행형이다. 7월에 말했었다. “임정희는 모든 게 준비되어 있어요. (올해 안에 빌보드 10위 안에 진입하는 일이)잘될 거 같아요. 보컬 선생 두 명을 두고 1년 반을 연습했어요. 노래도 잘 하고, 외모도 훌륭하고, 피아노도 치고, 기타도 치고, 타이틀 곡도 너무 좋아요. 그런데 큰일을 벌이려니까 돈도 많이 들고 법적인 문제도 참 복잡해요.” 마지막 말이 과속방지턱처럼 걸리지만 걱정은 안 한다. 박진영이 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2008년은 아직 한 달하고도 반씩이나 남았다.


태양

올해 가요계의 최전방엔 ‘나만 바라봐’가 있었다. 그곳에 태양이 빛났다.

칭찬 받는 거 좋아하나? 그냥 그렇다. 비판 받는 것도 좋아한다.

비판 받는 게 좋다고? 혼나는 일에 익숙한 편이라서. 익숙하다고 좋기까지야. 어쨌든 관심이라고 생각하니까.

올해 참 잘했다고 칭찬 좀 하려던 건데 얘기가 꼬이고 있다. 아, 하하. “감사합니다.”

당신의 2008년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글쎄, 정신없었다, 정도?

아이돌, 더구나 대형 기획사 출신의 아이돌이 뭘 하면, 온전히 그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누군가 만들어준 노래, 누군가 다듬어준 춤, 심지어 누군가 써줬을지도 모르는 1위 소감…. 근데 당신의 무대는 좀 달랐다. 솔로 무대만큼은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노래를 하는 가장 큰 이유도 어떻게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진심은 어려운 말이다. 혹은 애매한 말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뭘 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 모두 포함된다. 당신의 진심이란 어떤 건가? 일단 음악이다. 어릴 때부터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음악을 진짜로 한다는 생각이 중심에 있었고, 모든 일을 즐겁게 하려고 노력했다.

노력했다는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는 뜻인가? 그렇다. 음악을 마냥 좋아했던 어릴 때랑 좀 달라진 게, 음악을 일로 느끼니까 책임감이 생긴다. 그래서 즐거우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음악할 때 가장 행복하니까 당연히 노력해야 하지 않나?

당신이 빛났던 건 팔할이 무대 탓이다. 무대는 무서운 곳이다. 가짜는 들통나기 쉽고, 진심이라고 꼭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일단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무대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그냥 무대에 설 수만 있어서 행복한 것보다 내 생각과 의지가 들어간 완벽한 뭔가를 만들어 냈을 때 진짜 행복하다.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나만 바라봐’를 위한 무대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일단 가사를 잘 표현하고 싶었다. 나쁜 남자의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그런 걸 표현할 때 남자들의 숨길 수 없는 순진함 같은 게 있지 않나? 어떻게 보면, 무대에서 나쁜 남자로 보이지 않도록 표현했다는 게 맞겠다.

그게 다 계산된 거였다니. 이 시스템을 너무 만만하게 봤나 보다. 어쨌든 난 나쁜 남자는 아니다.

증거를 원한다. 적어도 바람을 피워보진 않았다.

그렇게 간단할 수가! 솔로 활동이야말로 바람같지 않았나? 당신 말대로 ‘정신없이’ 보낸 한 해 속에서 생각하면, 구멍이 뚫린 기분일 것 같기도 하고. 뭔가 허전한 느낌 말인가? 많이 느낀다. 슬슬 연말이다 보니 부쩍 더 느낀다. 올해는 빅뱅 활동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고, 많은 앨범이 나왔고, 콘서트도 많이 했지만, 나 혼자서만 이뤄놓은 것에 대해서는 많이 허전하다.

빅뱅 속의 태양은 확실히 솔로보다 재미없어 보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솔로 활동을 할 때도, 뭔가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게 나를 허전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때는 여름이었고, 지금은 겨울이다. 뭐가 달라졌나? 일단 내 노래가 생겼다는 게 달라졌다. 그동안 빅뱅 활동 하면서 나를 몰랐던 사람들이 “쟤가 저런 노래를 하고, 저런 춤을 출 수 있는 애구나” 알아봐준다는 게 좋다.

빅뱅의 의미에도 변화가 생겼나? 빨리 빅뱅 활동 끝내고 솔로 활동해야지 같은. 아니라고 대답할 줄 알지만, 혹시나 묻는다. 하하, 그런 생각은 없다. 어쨌든 빅뱅 활동이 솔로 활동으로 이어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빅뱅 활동을 열심히 하면 또 좋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항상 당신만을 기다리진 않는다. 일단 당신은 너무 바쁘다. 맞다. 바쁘다. 매번 한계에 부딪히는 것 같다. 피곤함의 한계, 배고픔의 한계, 바쁘다는 건 참 많은 한계에 부딪힌다는 말이다.

빅뱅 멤버 중에 혼자 유일하게 안 쓰러졌다고? 건강하다. 열심히 운동해온 것에 스스로 감사한다.

유일하게 안 쓰러진 멤버라는 것에서도 당신을 생각할 수 있다. 건강하구나, 술 안마시겠구나, 교회 꼬박꼬박 나가겠구나. 별로 재미는 없겠구나. 아니다. 재미있다. 진지한 얘기를 하면 재밌다고들 웃는다. 나로선 의아한 일이긴 하다.

소년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능글맞거나 타락하거나 그런 태양을 생각할 수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나? 나도 그런 게 걱정이다. 늘 같은 이미지로 보인다. 바르고, 한결같을 것 같고, 변화 없을 거 같고.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을 거다.

뭔가 조짐이 보이나? 일이년 지나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누나들이나 팬들은 내가 무조건 첫사랑이랑 결혼할 거라고 말하지만….
어울린다. 근데 정말 자신 없다. 그렇게 이미지가 박혀 버리는 것도 너무 싫다.

어른이 해도 되는 모든 걸 해도 되는 나이다. 그건 ‘소년’ 태양에게 어떤 생각을 주나? 참 많은 유혹을 준다.

유혹이라는 단어가 새삼 살아있는 말로 느껴진다. 컨트롤이 안될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 그런 유혹들이 많이….

유혹엔 빠져야 제맛 아닌가? 어느날 분위기에 휩쓸려 한 잔 두 잔 하다 보니 취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 말도 느리게 들리고 기분이 막 업되고, 이래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구나, 그때 이후로 고민이 많이 됐다.

술 취하는 느낌 때문에 고민이 됐다고? 아직 멀었다. 너무 강한 걸로 시작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그 왜빨대로 마시는데 불을 붙여서 이렇게 먹는 거, 그걸 마셨다.

태양이 불 붙은 술을 마신다, 라니. ‘컨셉트’가 따로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취한다는 느낌만 들고 끝났다.

결국 다시 소년으로 돌아왔군. 당신이 첫사랑과 결혼한다에 한 표 던지고 싶어진다. 아니다. 그러진 않을 거 같다.첫번째 만난 여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럼 누가 당신의 첫사랑이 되고 싶겠나? 하하. 무대에서도 계속 좋은 방향으로 하려고 하는 것처럼 연인관계도 처음은 미숙하겠지만 점점 나아지면서 확실히 정리될 것 같다.

사람들은 모르는 뜻밖의 당신이 있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직하진 않다. 물론 그러려고 노력은 하지만 생각만큼은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마음에 드나? 내가 나를…. 그렇다. 근데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내 자신을 좀 엄격하게 대하는 편이다.

어떤 이십대를 살고 싶나? 군대 가기 전까지 정말 세계적인 무대에 서는 자랑스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인정받고싶다. 음악적인 달란트나, 노래나, 무대적인 면이나 더 인정 받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해왔다. YG가 아닐지는 모르지만 가수가 안 될 거라는 생각은 절대 안 했다.

멍해지는 시간이 있나? 많다.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면 끝까지 간다. 생각의 끝까지 보고 오는 편이다.

끝에는 뭐가 있나? 우주? 끝에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빠지는데, 결국 별 의미는 없다. 일단 멍해지는 거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 남는 건 없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 과정에서 결과물을 얻는다.

스타를 기록한답시고 난장판이 벌어진 세상이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매체가 당신을 채집한다. 정작 당신 스스로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기록하나? 기도한다. 종교적인 의미를 배제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하루를 보냈고 어떤 잘못을 했고….

2008년에 당신이 가장 잘못한 건 뭔가? 너무 많다.

잘한 게 열두 광주리니 부담없이 말해도 될 것 같다. 말이 문제다. 본의 아니게 나오는 말들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다.

사람들은 당신이 보여주는 만큼만 본다. 대신 원하는 건 그만큼 많아질 거다. 올해 당신이 보여준 것 이상을 원할 거고, 그건 너무 정당한 바람이다. 어쩔 셈인가? 계획대로라면 내년쯤 다시 솔로 활동을 할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떻게 될진 모른다.

당신이 많은 유혹을 체험한 후라면 더 좋을 것 같다. 하하. “네.”
에디터/ 장우철


김병만
희극의 정점은 비극에 닿는다. 김병만의 희극은 생활에 가깝다.

달인 김병만은, 지난 16년간 개그맨 공채만 5만7천 번 정도 실패했다. 준비한 소품을 꺼내 놓지도 못하고 시험장을 나서야 했던 적도 있었다. 면접관 앞에만 서면 시야가 좁아졌다. 하얗게 눈멀었다. “사람들 웃기는 걸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친구들만 웃길 줄 알았지, 심사위원 앞에선 심하게 긴장했어요. 제가 실은 ‘지난 16년간 심사위원 앞에서 긴장만 해온 소심 김병만 선생’이거든요. 연극 무대에서 많이 깨졌지만, 지금도 카메라 앞에선 100%가 안 나와요. 울렁증이 있어서.” 한편, 객석에선 달인 눈동자만 굴러가도 웃음이 터졌다. 대사가 없는 찰나는 종종 시선만으로 채워졌다. 코너는 짧았고 김병만은 작았지만 존재감은 육중했다. “후배들한테도 항상 시선을 강조해요. 주성치, 찰리 채플린, 찰리 쉰도 눈이 좋았어요.” 그가 언급한 희극배우들의 눈빛이, 하나같이 슬퍼 보이는 건 우연 같지 않았다.

KBS 개그맨 공채 합격 전화를 받았던 2002년의 찜질방과 2008년 한국방송대상 코미디언 대상을 받은 무대에선 의식할 새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울어요. 울고 나면 항상 새로운 세계가 보였어요.” 그래서일까? 이번엔 정극이다. MBC <종합병원2>에서 레지던트 2년차인 최진상(차태현)의 친구 역으로 촬영이 한창이다. “개그는 보따리를 들고 무대에서 나눠주는 느낌, 연기는 할 때마다 제 안에 쌓이는 느낌이에요.” 웃기는 아이디어는 안에서 솟고, 연기는 밖으로부터 채워 나간다. 지금 김병만은 그렇다. 자, 그럼 여기서 왕비호 윤형빈 씨에게 달인으로서 한 말씀. “걔는 그렇게 쭉 가라고 하세요. 저는 저고, 왕비호는 왕비호니까요. 아, 정경미 포에버 그만 하고 얼른 결혼하라고.”

윤형빈
왕비호는 계산으로 탄생한 캐릭터다. 개그는, 감각이 전부가 아니다. 윤형빈은, ‘평범한 윤형빈’을 잊고 싶었다. “난 왕비호야!” 그래도 다리와 겨드랑이털은 좀 가리고 나오지 싶었다. 하지만 노렸던 바다.
평범한 건 지겨웠으니까. <개그 콘서트>의 윤형빈은 지난 4년 동안 웃음의 경로를 트는 역할만 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내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나 생각했어요. (신)봉선이, (박)휘순이, (변)기수 같은 동기애들은 막 치고 올라갔는데.” 그러다 준비한 게 왕비호다.

독설 아닌 독설을 시작한 것도, 그 대상이 가수였던 것도 계산에 있었다. “팬덤이 가장 강렬한 분야잖아요. ‘야, 서태지!’ 했을 때 객석에선‘안 돼…’ 그랬어요. 그런 임팩트가 강하면 강할수록 군침이 돌죠. ‘야, 박지성!’ 그러면 이름 자체에 임팩트가 있잖아요.”

왕비호의 독설엔 공감할 수밖에 없는 구석이 있었다. 없는 말은 안했다. 억지 부릴 땐 여자친구를 ‘이용했다.’ “원더걸스 소희! 귀여운 척하지마, 정경미가 더 예뻐!” 이런 식으로. “국민요정 정경미 포에버! 하고 외치는 게 작은 면죄부가 되는 것 같아요. 아, 쟤가 여자 친구를 많이 생각하는 착한 애구나, 생각하시나 봐요.”

열심히만 했던 4년보다 지난 몇 개월의 계산으로 얻은 게 더 많아서, 그게 허망해서, 달콤할 때 고꾸라지고 싶지 않아서 지금은 몇 개의 코너를 더 준비하고 있다. 강박적이다. 왕비호를 만들 때도 그랬다.자, 그럼 여기서 달인 김병만 선생에게도 한 말씀. “거 뭐 스타들한테나 뭐라고 하는 거지 조그만 애한테 뭐라고 하나? 근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개그 생활 10년 만에 좀 잘 되나 싶더니, 왕비호한테 완전히 묻혔어.”


홍승완

디자이너 홍승완은 옷은 ‘사물’이되, 옷을 입는 건 ‘마음’이라고 말했다.

홍승완을 만날 땐 일부러 약간 작은 재킷을 입는다. 단추를 당겨 채우는 순간, 어깨며 등이 팽팽하게 일어서는 기분이 들고 자세도 달라진다. 의자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있자니, 모처럼 일찍 일어난 아침인 듯 제 스스로 대견하다. 블라인드의 각도를 조절해서 부드러운 빛만 모으는 청결하고 조용한 작업실. 홍승완은 작은 쿠키 모양의 단추가 달린 트위드 재킷과 칼라가 둥근 셔츠, 체크무늬 조끼를 입었다.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났어도 ‘그간의 안부’를 묻는 습관. 빨강과 녹색이 섞인 줄무늬 양말을 신은 채, 그는 물처럼 엷게 웃는다.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홍승완은 분명히 사대부였을 거에요.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청바지를 입고 나이키를 신었어도, 과거 어느 날 화랑이거나 선비였을 게 보이는 남자들. 사대부들은 요즘 말로 하면 ‘엣지’의 끝이었어요. 갓의 각도가 약간만 틀어져도 난봉꾼 취급을 받았죠. 외출하기 전에 옷 매무새 정리하는 걸 아버지한테들 배웠대요. 사대부가 남았으면 서울의 패션도 지금하고는 달랐을 거예요. 남자가 옷을 갖춰 입을 때 드는 각오랄까, 그런 게 이어졌겠죠.

요즘은 각오가 지나친 남자들도 많아요. 각오에 찬 구두와 각오에 찬 안경과 각오에 찬 셔츠를 입고 각오에 찬 차에서 내리잖아요. 아, 각오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그런 게 아니고, 부담스러운 결심 말고 그냥 마음이요.

지난 번 9월 쇼 때, 비가 많이 왔죠? 쇼가 끝나고 국립박물관 계단을 뛰어내려올 때 입김이 하얗게 날리는 게 보였어요. 그날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비가 왔어요. 다들 그대로는 못한다고 말렸는데, 하고 싶다고, 그냥 하겠다고 그랬죠. 지금도 축축한 공기가 착 가라앉아 있던 피팅룸이 기억나요.

1월에 만났을 때 얘기했던 걸 10월쯤 만났을 때 이미 다 끝냈다고 했죠. 올해의 홍승완은 느릿느릿 마당을 산책하던 선비한테 누가 말고삐를 쥐어주고 냅다 달리게 만든 것 같아요. 신년에 적어놓은 것들을 다 이루는 해는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2008년은 그랬어요. 일본에서 두 번 전시회 하고 서울에서도 쇼를 했고. 작년 서울역 컬렉션 끝내고 얻은 기운이 너무 많아서 쇼는 어떻게든 매년 하기로 마음 먹었거든요. 2006년에 컬렉션을 하고 한동안 쇼를 안 했는데 그 사이에 참 얼마나 지루하던지. 내가 왜 이렇게 사는 게 재미없나 생각해보니까 그게 쇼를 안 해서 그렇더라고요. 디자이너가 쇼를 안 하는 건, 그러니까…

가수가 노래를 안 하는 것 같은 거죠. 화가가 그림을 안 그리고. 그런 기분이 맞아요. 정말로 그래요.

내년도 올해 같을까요? 일본 쇼룸의 친구가 ‘홍상, 홍상은 맞춤을 해야 해. 손님이랑 오래 얘기하고 홍차도 마시고 친해지면서 천천히 그 사람이 평생 제일 아낄 수트를 만드는 게 딱 홍상 체질이야’하는데 그걸 다시 해보고 싶단 마음도 들었어요. 과감한 손님에게는 눈에 띄는 옷도 만들어주고 싶어요. 한국 남자들은 대중 속으로 숨고 싶어해요. 옷을 입는 게 남들하고 달라 보이려는 게 아니고, 비슷해 보이려고 입는 것 같으니까.
눈에 띄는 옷이라면 어떤 거요? 골프 치는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넥타이 같은 거요? 설마 그런 거요? 우선은 체크요. 체크 수트와 체크 셔츠.

올해 아직 못한 일이 남았나요? 아들하고 여행을 가려고 약속을 몇 번이나 하고, 아직 못 갔죠. 튼튼한 배낭은 벌써 사놨어요. 큰 거하고 작은 거 하나씩.
에디터/ 강지영


김영광과 윤진욱

파리와 밀라노 컬렉션은 백인 모델들을 편애해왔다. 올해 그 자리엔 Young과 Jin이 있었다.

2년 전 인천항이 내려다보이는 공원에서 김영광은 맥아더 장군 동상처럼 굳어있었다. 노련한 형들 틈에서 10센티미터는 더 긴, 스무 살 신인 모델의 팔다리는 엉거주춤했다. 촬영이 끝나고 늦은 점심으로 자장면을 주문한 뒤에야 몸만 어른이 된 소년의 불안한 눈빛이 평온해졌다. 윤진욱도 스무 살에 모델이 됐다. 2004년 홍은주 컬렉션에서 두건을 쓰고 첫 ‘워킹’이란 걸 했는데, 가 그를 처음 본 건 작년 가을이었다. 모델 에이전시 건물 앞에 피터팬 같은 남자애가 퉁퉁한 배낭을 메고 여자친구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그 건물 오디션에서 만난 흐릿한 열망의 눈동자들과는 좀 다른 천진한 표정 때문에, 그 호리호리한 몸을 보고도 그저 지나가는 학생인 줄 알았다. 윤진욱은 올 여름 파리에서 챙이 늘어진 예쁜 밀짚모자를 쓰고 랑방 쇼에 섰다. 지금 스타일닷컴 사이트를 검색하면 랑방 말고도 새하얀 보테가 베네타 면 수트를 입고 동그란 눈을 반짝이는 그의 사진이 나온다. 김영광은 1년 전 첫 밀라노 여행에서, 상반신을 말머리처럼 곧추 세우고 골반을 비틀며 또각거리는 한국식 워킹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산책처럼 걸어야 한다는 걸 영어보다 먼저 체득했고, 연이어 에트로와 디올 옴므, 우영미 컬렉션에 섰다. 보통 밀라노나 파리에서 한 디자이너가 세우는 모델은 30명 내외. 그중 유색인종은 없는 게 보통, 많아야 한 명이다. 여자 모델보다 유색인종에 더 인색한 게 남자라서, 게다가 믿을 만한 안목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지목했다는 점에서, 그 둘의 존재감은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1등한 동생 못지않다. 시작이 꽤 좋다. 하지만 “5년쯤 후에 배우가 돼 있을 거 같다”는 김영광은 미니시리즈 <그들이 사는 세상> 촬영 스케줄 때문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세계 모델’의 포부는 잠시 보류다. “모델이란 그냥 즐겨야 한다”는 윤진욱의 바람처럼 둘은 아직 젊고 즐길 시간은 충분하다.

전준호, 김동수, 송진우
진부한 의구심이 생긴다. 야구는 무엇으로 하는가? 딱 하나만 알 것 같다. 분명 나이는 아니란 것.

스포츠 뉴스에서 이 셋을 보고 ‘그가, 그가 맞나?’ 고개를 갸웃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맞다. 옛날옛날부터 보아왔던 그 송진우, 김동수, 전준호다. 물론 여전히 현역이다. 운동 선수가 마흔 즈음에도 ‘날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이들은 보여주었다. “야구밖에 모르고 살았어요. 지금까지 뛰고 있다는 게 저 자신도 놀라워요. 솔직히 생각 못한 일이에요.” 김동수는 9월에 포수 첫 20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LG 트윈스에 있던 시절 &#8211; 벌써 17, 18년 전 얘기다 &#8211; 프로 선수로서의 마음가짐을 가르쳐준 백인천 감독을 가장 인상 깊은 지도자로 꼽는다. 내년부터 플레잉 코치로 뛰게 됐는데, 어린 선수들과 대화가 잘 통할지 걱정이라고 한다. 하긴, 고졸 신인 중엔 그가 데뷔한 해에 태어난 선수도 있으니까.

전준호는 6월에 2000번째 경기에 출장했고, 9월엔 2000번째 안타를 때렸다.‘2000경기 &#8211; 2000안타’만으로도 최초인데, 7월엔 18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에도 성공했다. 한 스포츠지와의 인터뷰에선 내년에 30도루에 도전하겠단 포부까지 밝혔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런데 연차가 오래됐어도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후배들에게, 야구 선수로 사는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고요.” 현대 유니콘스에서 김재박 감독과 함께 했던 야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도 했다. “야구의 묘미는 역시 직감에 의한 작전 아니겠어요?”

더불어 송진우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미 마운드 위에서 커다란 야구장 전체의 존경을 받는 선수가 됐다. 200승, 2000탈삼진, 최고령 승리, 최고령 경기 출장 같은 기록들은 그의 한 시절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초년병 시절 송진우는 더블헤더 1차전에 마무리로 나갔다가 2차전에 선발로 등판한 적도 있다. “제가 보기보단 근성이 있어요.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죽을 힘을 다해 해내는 편이에요. 몸은 혹독하게 훈련을 할수록 강해지는 거예요. 며칠 쉰다고 몸 상태가 좋아지는 게 아니란 걸 젊은 선수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물컵을 집거나 악수를 청할 때도, 예의 그 깔끔한 투구 폼처럼 동작이 매끄럽고 날렵했다. 지나고 나면 우리에게 기쁨이었던 순간들도 결국 한 줄 기록으로만 남을 뿐이다. 이들은 다음 시즌에도 야구장 위에서 던지고 치고 달릴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납득 가능한 현실인가? 셋의 나이는 단지 숫자이므로 기록하지 않겠다.

전준호 선수가 입은 턱시도 수트는 랑방 by 무이, 드레스셔츠는 마르니 by 분더숍, 보타이는 란스미어, 슈즈는 루이 비통,김동수 선수가 입은 턱시도 수트와 드레스셔츠, 타이는 모두 루이 비통 송진우 선수가 입은 턱시도 수트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드레스셔츠와 포켓치프는 제냐, 머플러는 킬거 by 분더숍, 안경은 제냐 by 세원 ITC
전준호 선수가 입은 턱시도 수트는 랑방 by 무이, 드레스셔츠는 마르니 by 분더숍, 보타이는 란스미어, 슈즈는 루이 비통,
김동수 선수가 입은 턱시도 수트와 드레스셔츠, 타이는 모두 루이 비통
송진우 선수가 입은 턱시도 수트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드레스셔츠와 포켓치프는 제냐, 머플러는 킬거 by 분더숍, 안경은 제냐 by 세원 ITC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도시에서만 살기는 젊음이 아깝잖아’라는, 너무 옳아서 충격적이었던 말을 했던 두 청년은 올해 도시에서 즐거운 한 해를 보냈다.

한국에서 세련된 음악이란 대체 뭘까? 언제나 그랬듯, 한국 것보다는 영국 것, 미국 것, 일본 것이 먼저 보였다. 작년 말에 나왔고 올 한 해 클럽에서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들을 수 있었던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첫 앨범 <우리는 깨끗하다>는 일종의 모범답안이었다. 두살 차이의 오래된 친구 조웅(기타, 사진 오른쪽)과 임병학(베이스, 사진 왼쪽)으로 구성된 그들은 도시와 젊음과 연애에 대해 한국말로 노래했다. 드럼 대신 ‘찍어서’ 만든 비트는 그들의 음악을 록보다는 댄스나 팝으로 들리게 했다. “일부러는 아니고, 둘이서만 하려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조웅의 말이다. 어쨌거나 그들의 음악은 사람들이 도시를 새롭다고 느끼던 시절의 ‘한국 가요’를 생각나게 한다. 네온사인 같은 공기, 야하지만 질척하지 않은 기운, 영어로 바꿀 수 없는 한국어 가사. 그들은 그걸 ‘복고’가 아니라 ‘21세기의 대답’으로 내놓음으로써 음악적 광채를 갖게 되었다. 김완선과 유앤미블루가 함께하거나 조용필의 ‘꿈’을 댄스버전으로 만든 것 같달까? ‘도시에서만 살기는 젊음이 아깝잖아(도시생활)’라거나 ‘뽀뽀나 할까? 말해 뭐해(뽀뽀)’ 혹은 ‘어쩌다 우리 눈이 맞아 붉어진 맘을 끌어안고 함께 뛰어갔지(안타까운 로맨스)’ 같은 가사에 춤을 추는 일은 어떤가? 공연장에서도 자신감 하나만으로 사람들을 춤추게 했던 그들은 지금 ‘곱 배’ 더 좋을 다음 앨범을 준비 중이다. “2집까지는 해봐야 알겠죠.” 적어도 내년 초에는 새 노래를 들을 수 있을 듯 하다. 조웅이 묻는다. “올해 즐거웠지? 난 괜찮았던 것 같아.” 오래된 친구 임병학은 그저 웃는다. ‘말해 뭐해.’

송호창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변호사 송호창이 있었다.

새벽 6시. 변호사 송호창이 시청광장에 도착했다. 그는 올해 이곳에 자주 왔었다. 시작은 소고기와 촛불이었다. 그리고 KBS, 삼성, 국가보안법, 대운하, FTA, 인터넷…. 끝이 없다. 올해 대한민국의 평균 데시벨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을 것이다. 송호창은 그 모든 곳에서‘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또렷했고, 흥분하지 않았음에도 강해 보였다. “물론 속은 터지죠. 그런데 상대방이 억지를 쓰거나 소리를 높이면 저는 오히려 차분해져요.” 역시 차분하다. 그리고 ‘젠틀’하다. 그 인상 안에는 십여 년간의 노동운동과 도금공장에서 일하며 주변부터 바꾸려 했던 이십대 시절의 강직함이 잠복해 있다. “그렇게는 뭔가 바꾸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됐어요. 폭력으로 바꾸는 건 안돼요.” 그는 자신을 ‘정보제공자’라고 표현한다.‘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사무처장이자 대변인이기도 하다. 애초에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변호사가 됐다. “아닌지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 때문에 진실을 호도하는 사람들과는 싸울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설득해야죠.” 그는 올한해, ‘주장’보다는 올바른 ‘정보’로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켰다. TV에서, 기자회견장에서, 신문에서, 광장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새로운 세대가 필요한 시점이에요.”그는 다음 대변인을 위한 젊은 팀을 꾸리고 있다. 그리고 민변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모든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향유하는 사회가 되기엔 많이 부족해요. 사실 ‘완벽한 민주주의’란 건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민주주의를 위한’이란 이름은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그말이 끝나자 동이 트기 시작했다. 촬영을 마친 그는 서둘러 출근했다. 곧 2009년이다.

조용필
그는 노래했다. 관객은 한 곡도 안 빼놓고 다 따라불렀다. 조용필의 40주년은 그토록 생생했다.

“이 노래 알아요?” 네모난 무대가 레일을 타고 대전 월드컵 경기장 한가운데로 나왔다. 조용필은 다음 노래로 ‘돌아오지 않는 강’을 하겠다고 말했다. 얼떨결에 시선이 마주쳤는데, 이 노래를 아느냐고 묻는다. 안다고 소리친다. 그 청승, 그 맺힘, 그 세월을 온전히 다 아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노래를 안다. 쪽지에 가사를 써서 외운 적은 없지만, 알고 있다. 조용필은 그 노래를 느리게 불렀다. 조용필의 가수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 <The History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지난 5월 서울 잠실에서 시작해 팔도를 누비며 대만원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서, 오히려 콘서트를 안 하면 심심하다며 무대에 오른다. 어디 올해만의 일인가. 40년째, 그는 죽기살기로 했다. 혼이 빠지도록 노래하면서도 기침 한 번 하지 않는다. 멋부린답시고 원곡과 다른 애드리브를 취하지도 않는다. 옛날의 영광과 오늘의 소회? 그런 거 없다. 그는 타오르고, 객석은 느낀다. 그리고 가끔 웃는다. “사진 찍으세요. 자, 이쪽도 찍으세요.” 휴대전화를 든 관객들을 위한 포토타임이다. 사방에서 “오빠”를 외친다. 남자 관객이라고 ‘형’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는 무조건 “오빠”니까. 조용필 ‘오빠’의 열 아홉번째 앨범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일이야말로 조용필을 ‘국민 가수’라고 칭하는 모든 국민들의 의무다. “아주 강한 기타 위주의 앨범이 될 거”라는 그 앨범 말이다. 연말, 서울에서 앙코르 콘서트가 열린다. 거기 안 가고 어딜 갈까 싶다.
에디터/ 장우철

베이징 올림픽 감독들
올림픽 메달은 눈물이다. 우리를 유난히 감격스럽게 했던 안병근, 노민상, 오승우, 김세혁 감독을 만났다.

남자 유도 안병근 감독은 용인대학교 무도대 연구실에서 오후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최민호, 김주진, 왕기춘, 김재범 이렇게 네 명 중에서 금메달이 두 개는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할 때도 어깨와 고개가 발랐다. 둥지 굵은 나무같았다. “올림픽을 앞두고 기춘이하고 재범이가 몸이 아팠습니다. 감독으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괴로웠습니다.” 나무는 흔들리지 않고 말한다. “훈련이 안 된 선수는 선수가 아닙니다. 결과론입니다만, 모든 훈련 과정을 완벽하게 소화한 선수는 최민호뿐이었습니다. 2연패가 목표라면 지금부터 마음을 다잡고 훈련에만 몰두해야 합니다.” 한결같이 엄하고 날마다 건재할 것, 이것이 감독 안병근의 숙명이었다.

노민상 수영 감독은 올림픽 기념관에서 대한수영연맹 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부모님께서수영하는 걸 이해를 못하셨습니다. 옷 벗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며. 저는 그런 환경이 서러웠습니다.” 자라면서 그는 중국과 일본의 수영 선수들이 유럽 선수들과 대등하게 맞붙는 것을 보았다. 그때부터 외국의 수영 서적을 펴 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이론을 훈련에 접목시키면서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체계가 세워졌다. 자신이 깨달은 것을 지도자들에게 알리고 수영 이론을 보다 세밀하게 정립하기 위해 ‘노민상 수영 연구소’도 설립했다. 사무실 안엔 작은 저금통이 있었다. 동전 하나라도 모아 발전 기금으로 쓰자는 생각 때문에….

여자 역도 오승우 감독은 태릉선수촌에서 대표 선수들의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자 역도 48kg 임정아는 같은 무게를 든 대만 선수보다 체중이 510g 더 나가 메달을 못 땄다. “10kg이나 감량하고 시합에 나갔는데… ” 메달을 딴 기쁨 못지않게 메달을 못 딴 슬픔도 크다. 결국 감독이란 오늘 웃고, 내일은 우는 존재다. 그는 앞으로 한국 여자 역도가 중국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좋은 선수란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야 하는데, 장미란의 금메달이 국민들의 시름까지 번쩍 들어 올린 것 같아 대견하고 기쁘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지도 몇 달이 지났는데 그는 여전히 근심 많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웃을 땐 가족같이 친근하다. “우리 감독님 정말 좋은 분이에요”라고 했던 장미란의 말, 이젠 알겠다.

김세혁 감독은 소속팀에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년 7월에 시작된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은 올해 5월에 끝났다. 정작 올림픽을 준비할 시간은 90여일 밖에 없었다. “올림픽에서 메달 따는 것보다 국내 선발전에서 우승하는 게 더 힘듭니다. 그래서 태권도는 2연패가 안 나오는 겁니다.” 녹초가 된 선수들의 체력과 승부욕을 끌어올리기 위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장기 구보를 시켰다. “다들 울면서 뛰었습니다. 안 뛰면 여기서 다 죽는 거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김세혁 감독은 역대 국가대표 선수 중 기술이 가장 뛰어난 선수로 68kg에서 금메달을 딴 손태진을 꼽았다. 둘은 삼성 에스원 태권도단 소속이다. “전무후무한 2연패를 만들어 보려고, 방송 출연도 안 시키고 훈련부터 시작했습니다. 국민들께서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시면 거기에 부응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의 말엔, 태권도가 금메달 따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바람이 하얀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사진가 최영진
최영진은 올해 <서쪽바다 새만금>이라는 사진집을 냈다.그 책은 인문서이자 과학서이면서 강력한 사회 비평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이름의 전시를 개최해 가슴에 사무치는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주에도 새만금에 다녀왔다. 지금도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니 갯벌이 변해가는 모습을 계속 담아야 한다.

사진을 보니, 그 바다엔 죽어 부스러진 물고기나 깃털이 뽑힌 새가 잔뜩 있을 것 같다. 아주 많다. 이젠 개발 자체가 인간의 거대한 퍼포먼스처럼 느껴진다.

그 퍼포먼스를 담는 매체로서 사진은 얼마나 적합한가? 사진이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기호학적으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기록은 사진가로서 책임이 아닐까 한다.

책임을 이야기하는 사진작가로 사는 건 대체 무엇인가? 새만금을 비롯해 서해안의 갯벌과 해수욕장, 섬을 찍는 이 프로젝트를 15년에서 20년 정도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책임을 가진다는 것이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게 아니다. 방조제를 다시 트자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기록물을 남겨 놓고 후세가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사진이 현실을 무섭도록 정확히 반영해도 보는 이가 의식이 없다면 큰일 아닌가? 무수하게 많은 철새들이 죽어가고, 물고기가 죽어가도 우리나라 언론은 지금까지 모두 침묵하고 있다. 심지어 제보를 했더니“당연히 죽어야 할 게 죽는 거 아니냐”는 말도 했다. 그런데 태안 기름유출사고 때는 달랐다. 가마우치 한 마리 죽은 모습을 찍으려고 모든 언론이 혈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 새가 그 새 아닌가?

직접적이고 파괴적인 것에 비해 서서히 변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일까? 서서히 변한다고 느끼는 건 사람의 입장이다. 생명체들은 몸부림치며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지난번 촬영 때도 청둥오리 한 마리가 염생식물 숲에서 길을 잃고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있는걸봤다. 그걸 잡아서 물속에 넣어 줬더니 신이 나서 도망가는 걸 봤다.

서해안 해수욕장 시리즈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 건가? 서해안에는 개발도 있지만,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공간도 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행복해하는 모습은 해수욕장 사진을 통해서 볼 수 있다. 굉장히 이중적인 일이다.

자연공간이 아닌 도시를 찍기도 했다. 오래된 아파트 외벽에 비친 그림자나 오래되고 낡은 창문 사진은 도시를 찍었다기보다는 도시 속 인공물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인간의 구조물들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자연으로 회귀하는 본성이 있다. 사실 나는 도시의 이방인이다. 오히려 바다 앞에 있을 때가 편하다.

그림자가 애잔하다. 벽은 차단이다. 거기에 기댄 나무 그림자를 많이 찍었다. 그림자는 실존이 아닌, 빛에 의해 드리워진 모조품이다. 그래서 슬픈 느낌이 난다. 반면 당신의 책상 뒤에 붙어 있는 가족 사진은 또 포근하다. 서해안 갯벌 사진만 찍은 건 아니다. 매일 찍을 수 있는 가족의 모습도 오랫동안 사진에 담아왔다. 가족이 붕괴되는 요즘 세태가 두렵다. 내년엔 가족 시리즈로 전시를 하고 싶다.

그는 천천히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못 찍어서”라고 했지만 오래 보면 더 다양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다음 주에도 서해안으로 간다고 했다.

하정우, 나홍진, 김윤석
세 남자는 한 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신뢰를 경험했다. 그건 <추격자>에 없는 감정이었다.

촬영 후 모니터에 뜬 사진을 보고)
나홍진 셋이 같이 찍은 것 같지가 않아요.
하정우 신기하다.
김윤석 (멀리서 통화 중) 어 그래 그래, 언제 한번 날 잡아서 한 잔 하자. 정신없다 요새. 오케이 알았어.
색 보정 작업도 직접 하시는 거예요?
사진가 그럼요.
(슬쩍 다가와서) 합성이지?
사진가 합성한 거 아닌데.
아, 나만 놀림 받을 거 같아. 목은 또 왜 주름이 잡혀서….
사진가 지워 줄게요(웃음).

인터뷰부터 하자. 셋 다 <추격자>로 처음 만난 거 아닌가? 몇 편 같이 찍은 사이처럼 보인다.
안 친해질 리가 없지.
고생해서?
그것도 그렇고, 촬영 전부터 대화를 워낙 많이 했으니까.
나중에는 말이 아니라 표정과 제스처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대화를 많이 한다고 믿음이 생기진 않는다. 나홍진 감독은 데뷔작이었고, 촬영일자도 빡빡했고, 예산도 적었다. 불화가 일어날 조건으로는 최상이었다.
우린 불화라는 게 없었다. 요리로 비교하면 ‘난 쟤가 마음에 안들어’ 혹은 ‘이건 내가 생각했던 캐릭터와 달라’ 이런 것들은 우리 도마 위에 없었다. 여기서 1분을 더 끓일 것인가, 양파를 넣어서 단맛을 좀 더 살릴 것인가 같은, 굉장히 섬세한 부분들에 대한 얘기만 했다.
크랭크인 전에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지 합의한 상태로 시작했다. 그래서 없는 걸 억지로 만들어내거나 자기도 모르는 걸 요구하는 경우가 없었다.

‘서로 믿는다’는 순간이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현장도 많다.
그러니까 누구누구의 페르소나 같은 개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호흡이 섬세하게 맞아 떨어지고 나면 다른 배우와 거기까지 경험할 확률이 낮다. 우리는 첫 작품에서, 빠른 시기에 그런 걸 경험했다.

언제였는지 기억하나?
영화 초반의 골목길 사고 장면. 실제로 두 배우가 처음 만나는 신이었다. 굉장히 불안했다. 제일 중요한 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현장 편집본을 보고 나니 ‘우리 영화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제일 기분이 좋았던 때가 망원지구대 장면이었다. 지영민이 “죽였어요” 하니까 진술서를 쓰던 경찰관이 “예?”하면서 놀라는데 느낌이 왔다. 이 배우가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가고 있구나, 우리가 가고자 했던 방향으로 힘을 받겠구나, 이후에 찍을 장면들에서 힘이 얼마나 더 증폭될지 상상도 못하겠구나. 가슴이 막 뛰었다.

지나고 나니 그렇게 느껴지는것 아닌가? 나홍진과 김윤석 사이에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걸 다툼이라고 하면 안 된다. 아마 엄중호가 사라진 미진의 승용차에서 기다리는 장면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게 촬영하면서 제일 의견차가 컸던 신이다. 사실 둘 중 어떻게 해도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을 장면이다.
예를 들면 컵을 두 손가락으로 들 것이냐, 새끼 손가락을 살짝 걸칠 것이냐 뭐 그런 거. 반대로 그 정도나 돼야 이견이 생길 정도였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현장에서 합의가 안 되면 슛이 들어가질 않았으니까.

<STRONG>관객들이 제일 섬뜩하게 느끼는 이미지는 하정우의 살인장면과 그 무표정하고 태연한 얼굴이었다.<BR>나 </STRONG>하정우는 전쟁터에 마실 나가는 사람처럼 카메라 앞으로 간다. 너무 부드럽게. 당시엔 지금하고 인상이 완전 달랐다. 평소에도 굉장히 날카로웠고 인상 자체가 무서웠다. <BR><BR><STRONG>김윤석은 안 무서웠나?</STRONG> <STRONG>여기 처음 들어왔을 땐 주변 공기까지 다 바뀌더라.</STRONG> <BR><STRONG>김</STRONG> 내가 뭘 어쨌다고(웃음). <BR><BR><STRONG>어쩌지 않아도 어떤 기운이 느껴진다.</STRONG> <BR><STRONG>나 </STRONG>나도 처음에는 너무 무섭고, 어렵고 말 걸기도 힘들었다. 지금은 부드럽… 진 않아도 굉장히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BR><BR><STRONG>그래 보인다는 걸 알고 있나? <BR>김</STRONG> 내 이미지가 강하다거나 말 붙이기 어려운 표정을 하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물론 연기자니까 예민한 면이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내가 편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다. <BR><STRONG>나</STRONG> 횟집에서 처음 만났었는데 그때 무서운 가운데… 된장찌개가 떠올랐달까. <BR><STRONG>김</STRONG> 그게 뭐야(웃음). <BR><STRONG><BR>하정우는 대부분 <멋진 하루>의 모습이 실제 모습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보면 표정 자체가 굳어 있다. 말수도 제일 적다.</STRONG> <BR><STRONG>하</STRONG> 굳어 있다기보다 평온한 상태다. 가만히 있는 거다. <BR><STRONG>나</STRONG> 처음 만났을 땐 먼저 마음을 확 열었다. 빨리 서로를 알아야 된다면서 노크를 먼저 해줘서 고마웠다.<BR><BR> <STRONG>당신이 감독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BR>나</STRONG> 일하는 관계로 처음 만났으니까. 실제로는 안 그럴 거 같다.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BR><STRONG><BR>나홍진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올해는 좀 변했을 것 같다. 첫 영화도 잘됐고, 몇 달 전엔 결혼도 했다.</STRONG> <BR><STRONG>하</STRONG> 그대로인 것 같다. <BR><STRONG>김</STRONG> 좀 깨끗해졌나(웃음)? <BR><STRONG>나</STRONG> 생활이든 뭐든 모든 게 그대로다. <BR><STRONG><BR>그게 가능한가?</STRONG> <BR>나 나도 결혼하면 변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똑같았다. 불안했던 건 영화가 잘 되어서 시건방을 떨지나 않을까 하는 거. 그것만 아니면 좋겠다. <BR><STRONG><BR>첫 변신작, 첫 주연작, 첫 장편작이었다. <BR>하</STRONG> 좋은 사람들, 좋은 작품, 상업적인 성공. 이상적인 삼박자였다 <BR><STRONG>김</STRONG> 가끔 밤에 혼자서 DVD를 본다. 보면서 우리가 했던 일들, 진지했던 순간들을 느낀다. 한번씩 보면 속이 따뜻하다. <BR><STRONG>나</STRONG> 모든 면에서 크게 발전했다. 나는 신인이다. 근거가 없는 자다. 그런 자를 신뢰해 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신이든, 인간이든, 지나가는 강아지든 감사하고 싶다. <BR><STRONG>김</STRONG> 오랜만에 밥 먹으러 가자. 신사동 아구찜 집 어디지? 여기서 많이 걸리나? <BR><STRONG>나</STRONG> 나가면 바로예요. <BR>에디터/ 문성원

하정우가 입은 수트는 루이비통, 블랙 터틀넥 니트는 타임 옴므, 슈즈는 프라다, 안경은 제냐 바이 세원 ITC, 나홍진 감독이 입은 턱시도 수트는 구찌, 드레스셔츠는 랑방, 타이와 슈즈는 디올, 김윤석이 입은 티셔츠는 릭오웬스, 셔츠와 바지, 부츠는 앤 드뮐뮈스터, 가죽 점퍼는 닐바렛
하정우가 입은 수트는 루이비통, 블랙 터틀넥 니트는 타임 옴므, 슈즈는 프라다, 안경은 제냐 바이 세원 ITC,
나홍진 감독이 입은 턱시도 수트는 구찌, 드레스셔츠는 랑방, 타이와 슈즈는 디올,
김윤석이 입은 티셔츠는 릭오웬스, 셔츠와 바지, 부츠는 앤 드뮐뮈스터, 가죽 점퍼는 닐바렛

란스미어의 남자들
신사를 위한 셀렉트숍 란스미어는 올해 패션 대신 품위를 전달해 주었다.

흥선대원군의 사랑채였던 노안당 마당에 네 사람이 서 있다. 그들의 성장盛裝위로 매화나무 그늘이 쏟아진다. 란스미어에서 일하는 이 남자들은 왼쪽부터 최영중 청담점장, 박성준 머천다이저, 남훈 브랜드 매니저, 장병찬 사원이다.
차림에서 단박에 느껴지듯 란스미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말을 고른다면, ‘클래식’이다. 멋지고 좋다는 건 알겠으나 단추 하나 잠그는 데만 팔만대장경을 읊어댈 것 같기도 한 그 말.

“꼭 고전적인 복식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몸에 어울리는 실루엣과 천연 소재를 이용해 기능성과 미적 감성이 어우러진 옷을 입자는 것이 란스미어의 방향입니다.”(남훈)

쉽게쉽게 빨리빨리 무조건 싸게, 하는 식으로는 닿을 수 없는, 아톨리니를 걸치고 엔조 보나페를 신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닌, 요컨대 란스미어의 제안은 ‘지금 여기에서의 클래식’이다. 시작은 모호했다. 야멸치게 말해 그건 ‘시장’의 문제였다. 한국에 과연 클래식 시장이 있을까 하는 의심. 하지만 란스미어는 성공했다. “매우 만족합니다. 관심과 만족 모두 높았습니다.”(최영중)

“수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향하는 남자들의 높은 취향을 만족시킬 콘텐츠가 없었던 겁니다.”(남훈)
란스미어는 또한 청한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린다면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입니다. 분명 남성 복식엔 기본 룰이 있으니까요.”(박성준)

형식 없는 내용이란 맥을 못추는 법이고, 범절이나 격식은 따지냐 안 따지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 맞는 사람이 되려는 태도에서 가치를 갖는다. 그래서일까? 란스미어의 고객들에겐 ‘배운다’라는, 다른 옷가게 손님에게는 없는 생각이 있다. “저 역시 더 많이 배우면서 저만의 워드로브를 갖춰나가야겠지요.”(장병찬)

촬영 스태프들과 악수를 나눈 란스미어의 남자들이 노안당을 떠난다. 살며시 뒷짐을 쥐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팔짱을 낀 채거나 자연스레 내두르거나, 그럴 수밖에 없는 품위가 흐른다. 네 남자의 걸음을 보며 다린 듯 생각이 가지런해진다. 사람이 옷을 만들지만, 과연 옷 또한 사람을 만든다는 명쾌한 진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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