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겨울이 좋아, 하얀 눈이 좋아

E.L.노란빛 구름이 창문을 누른다. 안개나 먼지나 연기처럼 불투명한 빛. 고정되지 않은 빛. 눈 앞을 불명확하게 만드는 그 빛이 커다란 눈송이들과 아파트 주위의 보안등 때문인 건 나중에 알았다. 눈은 규칙적인 세로로 내리지 않는다. 미친 듯 휘젓고 올라가고 흐느적거리다 소리 없이 유리창에 부딪힌다. 술 마셔서 제정신을 잃은 신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아님 그냥 일어나서, 왜인지 생각하면서, 집들을 비추는더 큰 집들의 검은 창문들을 쳐다본다. 눈은, 새벽 미친 시간대에 잠자는 대신 일어나 헤매는 평화, 당신이 아직 즐기길 바라는 평화, 창문을 통해 찾는 것보다 지금 더 잘 알 것 같은 평화이다.하지만, 그 눈은 올 겨울에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눈, 다른 사람은 다 잊은 우수, 백만 개의 질문을 가진 백만 개의 꿈, 엉킨 숨들의 속삭임,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열망을 설명할 수 없었던 눈물이기도 하다…. 이런 오전은 너무 나약하고 의기소침하고 혼자라서 앞뒤로 삼십 센티미터 움직이기도 무섭다.

눈은 계속 잡지를 만들라고 종용하는 수천 개의 하이쿠, 세 줄짜리 운율이 없는 시 같다. 하지만 매달 종이 한 장 위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 내 자신을 출산하거나 처형해 온 세월, 결국 내 자신의 칼에 꽂힌 처지, 살사 댄서들처럼 하나, 둘… 일곱, 세고는 업 앤 백하는, 자꾸 늘어나는 역설.왜 나는 이 일 말고 다른 걸 선택하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삶의 가변성을 알기 위해 애쓰지 않았을까. 알고 싶어하지조차 않았을까. 책 만드는 일 모두를 통해, 선동가나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었거나, 혹은 괴팍한 외양의 소년에서 허세 부리는 중년까지, 남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단계의 과장된 버전을 취할 수 있었을 텐데도.오직 과민한 자부심만이 남았다. 입는 것과 말하는 것에 있어서의 자부심, 사소한 좌절과 구차한 변덕 속에서 가까스로 품위를 찾게해주던 자부심, 너무나 얇은 무질서 속에서 <지큐>가 나에게 가르쳐준 기술을 떠올리게 만드는 자부심(라 스칼라 박스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상사와의 조찬에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공공 장소에서 어떻게 닥치고 있어야 하는지, 위트라는 무기 없이 어떻게 구애할 수있는지…), 기술 자체는 빈약하지만, 잡지와 나 사이 긴밀한 교환의 증거가 된 자부심. 나는 글 쓰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그냥 더 쓸 수 있거나 덜 쓸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뒤엔 고동치는 자판의 창백한 터치만 남았다. 쓰여지지 않는 글들은 쓰여지기 위해 기다리지 않는다. 쓰여지길 기다리는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는 세상에 없다.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쓰여지고 나서야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 전엔 공상에 불과하다.

에디터의 삶 역시 설명할수 없다. 때리는 것도 소리 지르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안 쓰는 것도,애처로운 유행에 널뛰는 것도 저항하는 것도 아닌 이상한 경계, 빈곤과 부의 가시철사에 갇힌 한심한 게토. 늘 뭔가를 표현하는 데 소용되는 순전한 불, 무한히 지속되는 마감의 간섭, 통례적 형식인 자기 발견에 대한 불안, 안 좋은 일은 늘 그 자리로 돌아오듯, 머리가 빠지고 환상을 잃어버리듯, 즐거움, 결심, 독립성, 위축의 미친 순환, 어쩜 항상해왔던 일에 또 다른 재발명을 섞는 변함없이 무익한 탐색 작업, 삶의한 조각조차 잃는 게 두려워 모든 걸 다 하려 애쓰다 망가진 꼴, 급기야 자신을 쳐서 눕히고 말 일을 위해 비이성적 긍정으로 움직인 불균형 상태, 결국 풀리지 않는 매듭. 하지만 밑천과 재료를 다 써버렸을때조차 에디터들은 자신을 받치고 있는 게 창조적 기능인지, 직업의식인지, 아님 뭔지도 모를 것들 밑에 그냥 깔려버렸는지, 아예 모르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할 수 있다면 계속 할 뿐인 자들이다. 이달 Editing Editor 페이지를 보면 당신도 가슴 아프게 인정할 것이다.내가 에디터로서의 세월로부터 배운 건 폐쇄였다. 닫고선 사라지는 완벽한 버림. 남길 수 없는 흔적들의 가차 없는 덮음. 그것이 인생에서 잘라낸 에디터로서의 세월을 아쉬워하지 않는 이유이다. 모든걸 하얗게 지우면서도 무음인 새벽의 눈송이가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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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