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렇게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문영남 작가의 <수상한 삼형제>, 임성한 작가의 <보석비빔밥>, 김순옥 작가의 <천사의 유혹>에서 열 두명의 캐릭터를 뽑았다. 사람은 다 똑같다는 말이 여기서도 통할까?

신우섭(한진희) [천사의 유혹]

박현정(드라마 평론가) 쓰러뜨려야 할 궁극의 목표이자 절대악인 캐릭터답게 포효하는 박력이 출중하다. 일상 대화법도 우렁찬 것이 중견 배우의 발음 발성법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쥬라기공원>에서 벨로시랩터 무리를 일격에 쳐부수는 티렉스의 한 방을 기대한다.
강명석(〈10 아시아〉 기자) 주아란의 복수극을 성공시키기 위한 악당 바보 캐릭터. 사람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일 만큼 잔인하지만, 주아란과 남주승의 사기 행각에 아무런 의심 없이 잘도 속아 넘어간다. 김순옥 작가의 복수가 무서운 건 상대의 IQ를 떨어뜨리게 만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문성원(에디터)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서 영리함을 빼면 이런 인물이 나오지 않을까. 의심을 너무 쉽게 풀어버리는 버릇만 고치면 누구든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간만에 등장한 ‘현실적인 절대악’ 캐릭터라 그 기운만으로도 즐겁다. 그걸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노란색 렌즈 안경은‘올해의 소품’으로 선정할 만하다.

궁비취(고나은) [보석비빔밥]

적당히 반듯하고, 적당히 약고,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속물이고, 적당히 능력 있고, 적당히 성질 있고,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도도하고…. 모든 면에서 평균치 이상인 건 분명하지만 또 뭔가 적당히 앙큼한 캐릭터라 얄밉다. 문영남 작가였다면‘궁적당’이라 이름 지었을 듯하다.
똑똑하다. 경우 있다. 장사 수완도 좋다. 하지만 매력은 어디에?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는 갈수록 첫 번째 여주인공의 매력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임성한 작가에게 매력 없는 콩쥐나 신데렐라를 기대한 건 아닌데 말이다.
궁비취는 엄마인 피혜자에게만 설교를 늘어놓는다. 임성한 드라마의 상징은 누굴 만나도 설교조로 말하는 주인공 아니었나? 무엇보다 하는 짓은 안 똑똑한데 설정부터 실제 캐릭터까지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는 것 같아 답답함은 더하다. 일단 지금 같은 시대에 맨 식빵으로 만든샌드위치로 장사를 해서 성공하긴 힘들지 않나?

김현찰(오대규) [수상한 삼형제]

돈 세는 기계를 집에 구비해두고, 저녁마다 돈세고 묶어서 쌓아두는 게 일과인 삼형제 중 차남.세상에선 돈이 최고라지만 집 안에선 돈보다 장남(건강), 돈보다 계급(이상)인 부모 틈에서 언제나 찬밥인 신세다. 엄마가 ‘에일리언’, 장모가 ‘프레데터’같은 탓에 삶의 질이 형편없는 현찰부부에게 작가의 가호가 있길 빈다.
잘생겼지만 구두쇠고, 구두쇠지만 남들에게 진상을 부리지 않는다. 남편으로서는 인정머리없고, 비즈니스를 할 때는 친절한 남자가 된다.그만큼 균형을 잘 맞춘 캐릭터.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에서 현실적인 매력을 말할 수 있는 남자 캐릭터가 나오는 것도 새로운 구경거리다.
이름만 보면 돈만 밝히는 안하무인형 같지만, 의외로 드라마에서 제일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캐릭터다. 방 안에 거대한 1만원짜리 프린트와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액자를 걸어두는 것 빼고는‘사람 괜찮네’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히려 기분이 복잡해진다.

남주승(김태현) [천사의 유혹]

질투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사람보다는 기계에 가까운 캐릭터. 그의 정부 주아란도 지적했듯, 애인은 물론 시청자까지 지쳐가도 찌푸린 얼굴을 펼 수 없다. 물론 그는 “사람 좋게 허허허 하는 현우형과는 달”리“세상으로부터 받은 게 없”기에 그럴 수밖에 없노라 강변한다. 그런 그가 좋다고 난리를 치는 주아란이 신기할 뿐이다.
주아란의 복수극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창조된 만능 인간 가제트. 주아란이 한 마디만 하면 무엇이든 해낸다. 당연히 캐릭터 현실성 제로. 거기에 느끼하기까지 하다. 이런 캐릭터로 복수와 불륜이 버무려진 치정극을 쓰는 작가는 시청자에게 복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남주승과 주아란의 관계는 <X파일>에서의 멀더와 스컬리 같다. 애정신이 있을 뿐 둘은 복수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동업자로만 보인다. 김태현의 외모에서 자꾸 이영표가 어른거려 진지한 순간에도 ‘헛다리’나 ‘재간둥이’ 같은 단어가 떠올라 감정이입이 힘들다는 건 괜한 소리지만.

피혜자(한혜숙) [보석비빔밥]

1~2회 부부싸움 신에서, 실제 부부싸움을 지겹게 본 사람조차 채널을 돌릴 만큼 간담 서늘한 리얼리티를 보여줬다. 언쟁물 장르의 창시자이자대가로 불리는 임성한 작가의 진정한 페르소나 중하나다. 그의 열연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캐릭터에 대한 미움만으로 배우를 한 대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경우는 오랜만이다. 멀쩡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드라마를‘ 막장’으로 만드는 대마왕. 혹은 임성한 작가의 시청률 제조기. 자식들이 생각하는 가장 끔찍한 엄마의 모습을 짜증날 만큼 일반 가족의 생활 안에 그려냈다.
‘내가 제일 불쌍해 게임’에서 늘 1등을 차지하려는, 그리고 결국은 차지하는 캐릭터다. 이페이지에 나오는 12명의 캐릭터가 싸운다면 별재주 없이도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건 시청자 입장에서는 가장 인내심이 필요한 캐릭터란 뜻이다. 동시에 그녀가 없으면 드라마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별로 남지 않을 거란 얘기도 된다. 그걸 작가의 장기로 봐야 할까?

김건강(안내상) [수상한 삼형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거짓말쟁이에, 반쯤 사기꾼에, 워낙 경우가 없는 탓에 이 정도의 무능과 민폐라면 봐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강지처클럽] 때부터 절실한 억양으로 어미를 종결하는 안내상 특유의 연기에 힘입어 집집마다 한 명씩 있기 마련인 낙오자 멤버의 진수를 보여준다.
문영남 작가의 ‘이름으로 캐릭터 설명하기’가 빚어낸 실수. 어디가 건강한 남자인지 전혀 모르겠다. 어정쩡하고 무능력한 캐릭터라는 설정을 가져가느라 오히려 캐릭터의 날카로움까지 사라졌다. 안내상의 연기도 가끔씩 [조강지처 클럽]과 헷갈린다.
미룰 수 있는 일은 죽을 때까지 미루는 종류의 인간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무능력하다. 안내상은 이제 이런 역할을 하도 많이 해서 ‘안내상형 캐릭터’라고 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것 같다.무능력의 농도는 어느 때보다 높은 편인데, 많이 봐서 그런지 크게 즐겁지는 않다. 그래도 자주 보고 싶다는 마음은 든다. 안쓰러워서는 아니다.

주아란(이소연) [천사의 유혹]

매사에 안달하는 표정이라든가 교양이나 품위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말투 등 주아란에 최적화된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이소연. 그러나 캐릭터의 전체적인 박력이 전작의 신애리에 미치지 못하는 탓에, 벌써 식상할 조짐이 보인다. 특히 끈적한 BGM이 깔릴 때 하는 새내기 여대생 같은 리액션이 대본상 캐릭터인지 연기 과실인지 모르겠으나 2009년형 악녀 치곤 정말 ‘깬다’.
<아내의 유혹>의 민소희에서 다시 점 빼고 전신성형한 것 같은 캐릭터. 말투까지 거의 똑같다 보니 이소연의 연기마저 장서희와 비슷해 보인다. 좀더 젊어서 그런지 더 야한 신들을 소화할 수는 있다.
이름은 좋다. 똑같은 짓을 해도 더 못된 것 같다.그래서 서러움만 가득할 것 같은 이름의 구은재(<아내의 유혹>) 보다 덜 동정하게 된다. 거기에 이소연의 외모를 합치니, 구은재의 상황에 처한 신애리가 된다. 그게 좀 애매해 보인다.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나이가 들면 피혜자와 계솔이를 섞은 캐릭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건 기대가 된다.

카일(마이클 블렁크) [보석비빔밥]

로버트 할리처럼 경상도 남자 같은 외국인이 주는 이질적 매력이… 있다면 있다. 여태 드라마 속 외국인 캐릭터는 대부분 꽃미남이었다. 그들은 분위기 한껏 잡았다 어색한 발음으로 깨면서 추락하곤 했는데, 그에 비해 낫다면 낫다.
영어학원 Z등급 코스 다니면서 나 영어한다며 안쓰럽게 혀 굴리는 사람을 보는 것 같은 캐릭터.외국인이라곤 하는데 한국인과 차이가 없다.아직도 외국인이 신기한 사람들을 위한 전시용 캐릭터인 듯하다. 그래도 임성한 작가의 다른 남자주인공과 다르게 느끼하지 않은 건 다행이다.
로버트 할리보다는 이한우 계열로 볼 수 있는 외국인 연기다. 코믹한 감초 역할보다는 정극연기를 하는 주요 캐릭터에 가깝기 때문이다.그런데 라스베이거스 호텔 집안 출신인데 한국에서스님이 되길 바란다는 설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것도 좀 웃기긴 하다. 선하고 점잖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오지랖도 넓고 자기 자랑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런 간극이 어쩌면 임성한 식 기괴함일텐데, 캐스팅까지 딱 들어맞는다.

엄청난(도지원) [수상한 삼형제]

채털리 부인을 재떨이 부인으로 착각하는‘E여대’나온 여자. 70∼80년대를 풍미했으나 OECD 가입과 함께 시들해진 ‘콩글리쉬 유머’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하는 걸로 봐서 60대 시청층을 위한 개그를 담당할 가능성이 높다. 예상 외로, 보고 있으면 흥겹다는 점에서 자신의 두뇌 나이도측정 가능하다.
아이를 버리고 사는 여자라는 설정은 숱하게 봤다.‘엄청난’ 이름이 아깝다.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유형의 캐릭터지만 그러기엔 사연만 있을 뿐 더 큰 문제를 일으킬 만한 성격이나 원인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게‘ 막장’보다야 낫긴 하겠지만.
짤막한 상황이나 대사에서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그게 다였다. 대부분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하는 말이라서 그럴 것이다. 말이 증발하고 나면 딱히 남는 게 없다. 인물 소개에는‘엄청난 비밀’을 가졌다고 하는데 지금 같은식이라면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신현우(한상진), 안재성(배수빈) [천사의 유혹]

‘허허허’하던 신현우가 어딘가 퇴폐미를 풍기는 안재성으로 변신한 모습이 그럴듯하다. 어딘가 아픈 듯하기도 하고 불안한 듯 짜증나는 듯 예민해보이는 배수빈의 외모가 일단 합격점. ‘복수기계’들 틈바구니에서 그래도 감정의 모호함을보여주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아내의 유혹>의 민소희에서 점 빼고 전신성형한 뒤 성전환도 한 버전. 아무리 말도 안되는 설정도 열심히 연기하는 두 배우 탓에 참사는 막았다. 신현우가 안재성으로 변한 뒤 벌이는 느끼한 작업에 넘어가는 걸 보면 주아란도 많이외로웠던 것 같다.
닥종이 인형 만들기가 취미인 종류의 남자를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안재성의 등장은 더 이상 그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반갑다.그래도 요리나 드럼도 금방 배운다는 설정은 닥종이 인형이 아니었다면 설득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독기를 품은 캐릭터가 하나 더 나왔다는 건반가운데, 주인공이 너무 늦게 등장한 게 아닌가하는 불안이 있다

궁루비(소이현) [보석비빔밥]

예쁜 20대 서민계급 여성의 리얼리티를 제대로 보여준다. 언니 궁비취가 나름대로 중산계급의 교양이나 말투, 행동을 익혔다면 루비는 전형적인 서민 여성이다. 그 점이 매력일 수도 있지만 본인이 꿈꾸는 신분상승에는 치명적인 결점이 된다. 이에 한국적인 계급성이나 특질에 무지한 외국인(카일)과 엮인다는 점에서 작가의 세태를 꿰뚫는 통찰이 돋보인다.
속물적이지만 못되지는 않았다. 이런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남성 시청자들에게 현실에서 한 번쯤 만나면 재밌게 데이트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품게 만든다. 다른 연기자와 비교해 유난히 눈에 띄는 소이현의 캐스팅도 적절한 선택.
‘사랑스런 속물’로 정리할 수 있다. 바라는 걸 솔직하게 말하고 행하는, 제일 덜 꼬인 인물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엄지원이 연기한공 현희를 생각하면 비슷하다. 실제로 주변에 있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내에서는 칙칙한 분위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간호사복장도 잘 어울린다.

계솔이(이보희) [수상한 삼형제]

‘개소리’를 연상케 하는 그녀의 이름을 두고 ‘설마…’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 설마 맞다. 대한민국의 악당 시어머니 캐릭터는 아무리 그려내도 그 끝이 없는 듯하다. 역시나 최악의 시어머니로 그려지고 있는 사돈 전과자(이효춘)와의 임박한 대결이 기대를 모은다. <에어리언 vs. 프레데터>를 능가하는 세기의 대결이 될 듯.
<수상한 삼형제>는 문영남 작가의 전작들보다 한층 얌전하다. 하지만 누군가 사건은 만들어줘야 하는 법. 그러니 어쩌랴. ‘되도 않는 개소리’하면서사건 일으킬 막장 캐릭터라도 있어야지. 지금까지는 제일 열심히 뛰어주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고전적인‘탕아’형 캐릭터다. 그러나 문영남식 대사에다 충청도 사투리가 들어가고 계솔이란 이름까지 붙으니 파괴력은 몇배로 늘어난다. <보석비빔밥>의 이태리, 끝순이와 함께 삼각편대를 이루면 공격력이 끝내줄 것 같다. 물론 둘은 윙 플레이어 고스트라이커는 계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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