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비만과 편견

E.L.

불과 3주 전에 입(을 수 있)었던 셔츠를 꺼내 들고 망설인다. 그새 다시 만삭이 되었으니 입어봤자 또 울룩불룩 꽈배기 단추가 될 테지. 이럴 때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 자들, 자유자재로 지방을 저장하거나 배출하는 자들을 발본색원해 내년까지 손 들고 있으라고, 윽박지르고 싶어진다.
어떤 자리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논의는 허리에 생긴 변화다. 다들, 가슴 아래 살의 축적 장소를 미안하게 만져보며 늘어난 몸을 탓하고,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으면 이 지경이 됐겠냐고 동의를 구하며 이야기의 전채를 먹는다. 그건 한 자리의 모두를 감염시킨다는 점에서 결핵과 같다. 침대에서 빠져 나가려면 기중기가 필요한 몸이건, 바람에 불려갈 지푸라기 같은 몸이건, 강박엔 예외가 없다.

내 경우, 5킬로그램만 빼면 보기 좋겠단 소린 참 많이 들었다. 내 생각도 같다. 하지만 당장 술부터 끊어봐, 라는 다정한 조언은 내가 ‘성실한 과대섭취자’ 는 아니라고 해도 참 난감하게 만든다. 고릴라가 나무 이파리를 사랑하는 게 자연스럽듯 나에겐 저녁 술이 그렇다. 어쨌든, 보상 음식을 대체하는 건 종종 다른 보상 음식 아닌가.

음식은 확실히 큰 위안이다. 녹말을 다량 섭취하면 기분 좋아져, 같은 의학적 이유가 아니라, 숙취 끝의 북어국, 하굣길 주전부리들의 단순한 위로. 그러나 음식이 나고, 내가 바로 음식이라면 벗어날 길이 없다. 부르주아 돼지가 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결국 모든 사이즈의 양복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 번이라도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이라면 늘어난 몸무게를 더는 게 악처였던 전 부인과 재결합하기보다 힘들단 걸 안다. 체중은 뼈나 십자수, 섹스의 구조처럼 개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생물학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디어는 더 작게 보이는 법을 악착같이 가르친다. 비만은 개인적, 사회적 재앙이라서. 우리만의 열역학 첫 번째 법칙 속에서 뚱뚱한 사람들은 일단 메스껍다. (그들은 팝 문화와의 상호 측면에서 전복적 집단으로 대표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본다면 반역, 저항, 거절이라는 새 용어의 무게를 지닌다.) 그건 일종의 가학적 그룹 테라피와 같다. 뚱뚱한 사람들이 말라깽이로 가득 찬 방 안 가운데서, 난 무지하게 탐욕스러워, 자제도 모르고, 게으르기 짝이 없어… 라며 울먹여도 결국 공분을 사는 테라피.

그러나 몸무게는 계속 늘어난다. 요새 남자들은 1970년대보다 못해도 7킬로그램은 더 나갈 것이다. 보통 사람의 몸도 자꾸 무거워지니, 원래 무거웠던 사람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비만을 가르는 기준은 갈수록 야박해져서, 애들이고 어른이고 과체중 비율이며 체질량지수가 몇 년 전엔 상상도 못했을 만큼 늘었다.

사람들의 추가된 부피는 사방에서 돈을 부른다. 비행기는 뚱땡이들 때문에 연료 값을 엄청 들여야 하고, 병원은 특별한 휠체어를 제작해야 하고, 빌딩 회전문은 더 넓혀야 하고, 장례식과 관도 커져야 할 테다. (결국 정부는 칼로리 높은 간식에 고리대금 같은 세를 부과하고, 식품 광고를 규제하고, 공공 시설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제한하게 되지 않을까….) 비만 문제는 단순 건강 시스템 안에서 발발하지만, 사회학적 측면은 보다 심화돼 있다. 즉, 통풍은 한때 왕족들에게 일어나는 병이었고, 사람들은 뚱뚱해질수록 중산층 계급 아래로 내려온다는 식이다. 어떤 이가 뚱뚱하다는 선언은 누가 단지 가난하다는 주장과는 다르지만, 둘 사이는 불편할 만큼 가깝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사람 10억 명은 너무나 적은 열량 섭취로 고통 받는데, 빈곤 수치 위를 약간 넘는 이들의 체중은 오히려 급속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살찌는 게 굶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신세계의 질서와 역학 속에서 고칼로리가 축적된 싼 식품을 살 수 있다 해도, 그 식품들 거개가 할 수 있는 한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진 것들이라면, 과체중과 영양결핍은 동시에 찾아올 수밖에 없다. 이런 종류의 숙명론과 입씨름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 평생을 초경량급 권투선수 같은 몸을 갖고 싶었으나, 불어터진 몸은 오래전부터 약속된 신의 계획 같기만 하다. 내게 빨래판 같은 복근을 주려고만 했다면 날 아리조나 평원에 떨어뜨렸겠지. 시뻘건 태양 아래 바위 절벽으로 내몰면 먹을 것도 없겠다, 절로 그렇게 되겠지. 그러나, 여기는 바다가 맥주 같은 나라, 아직도 세상에 돼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고기를 먹어치우는 나라. 돼지처럼 먹으면 뚱뚱한 부르주아 돼지가 된다. 적어도 몸의 어떤 부분은 버릇없는 롤케이크 돼지로 보일 것이다. 아무리 옷으로 몸을 조여도 살의 고른 재분배는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빨간 머리칼을 가진 사람이나, 장구를 신들린 듯 치는 사람처럼, 나는 선천적으로 다이어트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을 뿐이다.

… 인간 유아는 다들 뚱뚱한데, 뚱뚱해도 예뻐들 하는데, 뚱뚱한 어른들은 멸시 받는다. 이것이야말로 몸이 가진 불평등이자, 다들 나이 들기 싫어하는 이유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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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