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호의 꿈

박찬호는 우승을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그는 양키즈를 선택했다. 서른여덟 박찬호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다.” 지난해 연말 박찬호는 지인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무슨 소린지 고개를 갸웃하는 지인에게 이번엔 “투구가 무엇인지 알았다” 라며 환하게 웃었다. 도통 못 알아들을 소리였다. 그때 박찬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랬다. “투구는 타자를 제압하려고 공을 뿌리는 동작이아니라 내가 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지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걸 30대 중반에야 알았다.” 2002년 6천500만 달러(약 7백80억원)에 5년간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했던 박찬호는 계약기간 동안 33승 33패 평균자책 5.56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특히 전매특허였던 강속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였을까. 야구전문가들은 “타자를 윽박지르던 예전의 박찬호는 잊어라” 고 충고했다. 팬들도 기대를 접었다. 그러나 박찬호는 아니었다. 그는 끝까지 ‘부활’ 을 외쳤다. 그러던 2009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지는 일’ 이 투구임을 깨달은 뒤부터 그는 달라졌다. 속구보다 제구에 신경 쓰는 투수가, 선발보다 팀의 승리를 위해 불펜에서 희생할 줄 아는 베테랑이 됐다. 미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구단인 뉴욕 양키스가 그를 영입한 것은 이러한 그의 변화를 높이 산 까닭이다. 보직은 불펜이 거의 확실하다. 쟁쟁한 양키즈 선발진을 뚫고 들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불펜이라고 마음을 놓을 수도 없다. 데이비드 로버트슨, 알프레도 아세베스, 다마소 마르테 등이 지키는 불펜은 아메리칸리그에서 정상급이다. 여차하면 언제든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수 있다는 뜻이다. 다행이라면 불펜에 박찬호 급의 베테랑이 마무리 투수인 마리아노 리베라 정도밖에는 없다는 것.박찬호는 양키스를 선택한 이유를 “월드시리즈 챔피언 반지를 끼기 위해서” 라고 했다. 그의 오랜 숙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박찬호의 또 다른 깨달음이 있다. ‘인간은 종종 목표 획득보다 목표 추구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설령 박찬호가 반지를 끼는 데 실패해도그가 슬퍼하지 않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동희 / MBC ESPN 해설위원

지난 시즌 후 박찬호는 자유계약선수(FA)가 됐다. 예전처럼 특급 FA는 아니지만 지난 시즌 필라델피아에서 월드시리즈 준우승에도 기여했던 만큼 ‘자리 걱정’ 은 하지 않아도 됐다. 필라델피아는 박찬호에게 지난해 연봉에서 50만 달러(약 6억원)가 인상된 3백만 달러를 제시했다. 또 마운드 보강이 절실했던 시카고 컵스는 박찬호에게 선발투수를 내밀었다. 박찬호는 그러나 지난해 우승팀 양키스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다. 조건은 필라델피아의 절반인 1백50만 달러(옵션 포함). 더구나 양키스는 박찬호가 선발투수가 아닌 불펜투수라고 못박았다. 박찬호가 좋은 조건들을 뿌리치고 양키 군단에 합류한 이유는 하나, 월드시리즈 우승 때문이다. 올해로 17년째를 맞는 박찬호지만 우승 반지가 없다. 지난해 준우승이 최고성적이다. CC 사바시아, A.J 버넷, 앤디 페티트, 하비에르 바스케스까지 4명을 선발투수로 확정한 양키스는 필 휴즈, 자바 챔벌레인, 채드 고댄, 서지오 미트레 등 4명 중 한 명을 5선발로 낙점할 계획이다. 5선발에서 탈락한 3명은 박찬호와 불펜 경쟁을 하게 된다. 필라델피아에서보다 험난한 조건이다. 그러나 그는 이 길을 택했다. 전성기 때만 한 불같은 강속구는 없지만 17년 경력에서 묻어나는 노련미는 박찬호만의 무기다. 더구나 지난 시즌 필라델피아에서 불펜투수로 활약하며 노하우까지 쌓았다. 조 지라디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현지 언론들도 박찬호의 개막전 25인 로스터 포함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만 1백20승을 쌓아올린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천하의’ 양키스라고는 하지만 ‛1백20승 투수’ 박찬호이기에 충분히 해볼 만하다. 올가을 팀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한다면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를 호령하는 박찬호의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최경호 / 한국일보 기자

박찬호는 우승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그가 선호하던 필라델피아 덕아웃의 끈끈한 분위기, 친숙한 내셔널리그, 더 많은 연봉까지. 그러나 작년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즈를 상대로 아쉬운 패배를 경험한 박찬호였기에 그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하게 보인다. 승자의 세리모니를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잔인한 일이 또 뭘까. 시즌을 일찍 접은 선수가 TV 앞에서 “음, 양키즈가 우승했군” 이라 수긍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단지 그가 우승을 향한 열망 때문에 무모한 이적을 했다고 말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양키즈로 가서 그가 얻는 것도 많다. 우선 ‘양키즈를 상대하지 않는 것’ 이다. 작년 팀타율 2위(.283), 홈런 1위(244개), 득점 1위(915점) 팀을 월드시리즈에서 한 번 더 만나는 것은 정말 불편한 일일 터다. 또한 양키즈에서 활약할 수 있다면 다시 그는 ‘전국구’ 가 될 수 있다. 박찬호는 입버릇처럼 마흔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라 말해왔다. 뉴욕 언론은 잊혀져가던 이름을 다시 시장의 ‘핫 이슈’ 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니,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훌륭한 선택이다. 단, 현재 박찬호의 위치가 지난 시즌 막판 필라델피아에서와 달리 ‘붙박이 셋업맨’ 이 아니라는 점이 걸린다. 5선발 경쟁을 하게 될 필 휴즈와 조바 체임벌린을 비롯, (탈락한 한 명이 셋업맨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양키즈가 프로젝트형 불펜 선수로 키우고 있는 데이빗 로버트슨 역시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린다. 적은 연봉의 단기계약 선수 박찬호가 초반에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경우, 불펜에서 쫓겨날 가능성도 있다. 다시 말해 박찬호가 양키즈 마운드라는 ‘야생’ 에서 한 시즌을 ‘생존’ 할 수만 있다면, 그가 손에 우승컵을 들고 있을 확률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에디터/ 유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