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뱅킹을 찾아서

손바닥으로 돈을 굴리는 세상이다. 한 달 동안 ‘금융 어플’ 을 써봤다.



아이폰을 쓴 지 6개월이 지났다. 애인도 6개월이 지나면 일요일 오후 <전국 노래자랑>을 보는 것처럼 나른해지는데, 아이폰은 아직 선도가 괜찮다. 물론 어플리케이션을 가지고 노는 시간이 반의 반의 반으로 짧아졌지만, 다운 받아 열어본 뒤 지우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주는 어플은 여전히 등장하고 있으니까. 각종 브랜드에서 내놓은 (에두른 흔적이 역력한) 홍보 어플, 유용성이라곤 1픽셀만큼도 없는데 어쩐지 매우 쓸만하단 착각이 드는 어플, 순위권에 자주 등장하는 카마수트라 어플까지…. 매일 밤 자기 전에 새로 순위에 올라온 어플을 받아두고, 다음 날 아침 출근하는 길에 한 번씩 열어보는 게 무가지를 펼쳐보는 것보다 훨씬 신이 난다.

어플 시장에도 트렌드라는 게 있다면 최근엔 금융사 어플이 대세다. 출시되자마자 컴백한 아이돌의 티저 영상처럼 단숨에 순위권에 오른다. 요 몇 주간 출시된 은행이나 증권사, 카드사 어플을 모두 다운로드해보니 아이폰 화면을 하나 가득채우고도 몇 개가 넘어갔다. 그래서 침 발라 돈 세듯, 스마트폰 뱅킹 서비스를 마음먹고 꼼꼼하게 써보기로 했다.

무료로 공개된 하나, 기업, 신한 은행의 어플을 차례로 다운 받았다. 컴퓨터를 켜고 공인인증서를 스마트폰으로 보내는 작업을 먼저 진행했다. 보안 절차에 대해선 해킹에 취약하다는 말들이 많은데, 아직까진 컴퓨터에 받아둔 공인인증서를 스마트폰과 맞추는 작업을 간단히 하면 뱅킹을 시작할 수 있다. 내 돈의 보안이 이 알량한 숫자 맞추기에 걸렸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를 꾹꾹 ‘터치’ 했다.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오는 바람에 이 과정을 처음부터 세 번이나 거듭해야 했다. 기대를 품고 들어가 보니 3사의 스마트 뱅킹은 기본적인 인터넷 뱅킹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돈도 이체한다는 뿌리 얕은 자부심이 생긴다는 게 다르긴 했지만…. 3개의 어플은 디자인과 구성을 제외한 거래 조회, 이체, 펀드, 환율, 지로 납부, 긴급 출금, 영업점 검색 등의 내실은 서로 비슷했다. 기업은행이 자사의 광고 동영상을 추가했다는 정도가 차이점이랄까? 디자인 면에선 신한은행이 반 보 정도 앞섰을까? 시도 때도 없이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이체할 수 있어 편하긴 했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진부한 뱅킹이 아니라 진보한 뱅킹이라면, 돈이 입금되면 ‘빵빠레’ 라도 한번 울려주고 계좌의 표지를 내 맘대로 꾸민다거나 통장 잔고에 따라 아이폰 화면에 실물 화폐를 차곡차곡 쌓는 부가서비스, 하다못해 거래 내역을 트위터로 내보내는 기능이 있으면 좋으련만….

내친김에 증권사에서 내놓은 어플도 다운 받았다. 증권 시세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어플은 국내외 각종 언론 매체까지 합쳐 수십 가지. 그중엔 실제로 증권 거래를 할 수 있는 어플도 있었는데, 인터넷으로 주식 거래를 하는 HTS 프로그램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을 수십 겹의 정보가 펼쳐졌다. 드레스만 34,898개가 올라와 있는 미국의 쇼핑 어플, ‘숍스타일’ 을 발견한 이후, 두 번째로 ‘양’에 놀란 어플이다. 그중 화면 구성과 디자인이 가장 단정한 키움증권 어플로 직접 거래를 해봤다. 기존의 소모성 어플이 A4용지라면 증권사 어플은 책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료의 부피를 화면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기술이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에 코끼리 발을 밀어 넣는 것보다 대단한 일처럼 보였다. 자기 전에는 키움증권 어플에 들어가 무료로 볼 수 있는 증권 동영상 강좌를 한 편씩 보고 잠들었다. 하지만 증권 거래를 성사시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작은 화면이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았고, 아이폰으로 주식 거래를 하려니 왠지 과소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 충동구매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돈을 쓰는 행위는 생각보다 보수성이 강했다.

은행과 증권사의 어플을 다 써본 뒤에는 가계부 어플을 다운로드 받았다. 하나은행에서 만든 가계부도 충분해 보였지만, 공부 못하는 학생이 좋은 문구를 찾는 기분으로 1만원짜리 가계부 어플을 구매했다. 하루 단위로 돈의 드나듬을 기록할 수 있는 결벽증같은 가계부였다. 현재의 자산, 심지어 지갑 속의 돈까지 놓치지 않고 아이폰에 기록할 수 있었고, 지출하는 항목도 입맛에 맞게 세분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의 재정 상태를 이 어플에 입력하려면 내년이 돼도 다 못할 것 같았다. 매일 쓰는 돈을 동전 하나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의심하면서 일주일에 걸쳐 가까스로 자산 등록을 끝냈다. 이 고된 작업을 하다 보니 아이폰 가계부는 개인의 상태를 냉철하고 냉혹하게 기록하는 최고난도의 방법 같았다. 이건 돼지고기를 안심, 등심, 삽겹살, 목살로 나누는 것처럼 나의 현 지위를 수입, 지출, 고정지출, 카드, 부채로 확실히 구획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하루도 완벽하게 가계부를 완성하진 못했다. 돈을 쓰는 건 순간이라서 쓰고 난 뒤 기록의 과정을 거치는 건, 날아다니는 먼지를 잡는 것처럼 힘들었다.

16개가 넘는 금융 어플을 깔아놓고 보니, 속옷에 아이폰 주머니라도 하나 만들어놔야 할 것 같다. 이 아이폰을 분실하면 그땐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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