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도 통화가 되나요

청각이 예민한 여자에게, 섹스는 꼭 만나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화기 너머 베이비페이스의 ‘When Your Body Gets Weak’ 가 들려왔다. “이거 좋지 않아요?” 여자가 웃었다. 여자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통화할 땐 서로 노래를 들려주곤 했다. 소리의 먹먹한 질감이 가끔은 AM 라디오 같았다. 스피커와 전화가 멀어질수록 귀를 기울였고, 가까워지면 따라 불렀다.

“가사랑 멜로디랑 잘 안 어울리죠? 그게 또 묘미고.”
대답은 전주가 나오는 동안에 했다. “남자들 같아요. 달콤한 음률에 야릇한 가사. 아닌 척, 아닌 척하면서도, 목표는 단 하나.”

오히려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일까? 술잔 한번 부딪친 적 없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음악과 연애와 섹스. 그녀가 말을 이어나갔다.
“가사도 이상하잖아요. ‘당신의 몸이 약해질 때, 당신을 눕힐 거’ 라니, 인정사정도 없는 그런 건가?”

피식 웃음이 났다. 우스웠다기보다는, 저런 말을 하는 여자가 좋아서. ‘Get Weak’ 의 적절한 뜻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들먹일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그녀 말대로, 목표는 하나 아닌가.
“가사가 진짜 남자네. 돌봐주는 척, 동정하는 척하면서도 결국은 눕히고 싶은, 그런 거?”

그녀가 꺄르륵 하고 웃었다. 꺄르륵 하고 웃는 여자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털이 고른 고양이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를 만난 건 한 음악 동호회였다. 나는 운영자, 여자는 신입 회원이었다. 운영자는 책임감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스물아홉’ 살의 ‘직장인’ 이 동호회에 가입하는 건, 일종의 암호 같았다. 외로움의 신호 또는 공감에 대한 갈구. 메신저나 전화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자는 스무 살 여대생처럼 별 거 아닌 말에 껌뻑 죽지도 않았고, 스물다섯 살 복학생처럼 지루한 소리를 늘어놓지도 않았다.

주로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전화를 했다. 여자는 버스 안에서 전화를 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항상 조용한 집에서 전화를 했고, 통화 중인 양쪽 방에서는 언제나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여자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꼭 이런 노래만 틀더라?”
마빈 게이의 ‘Let’s Get It On’ 이었다. 당도가 높은 초콜릿같이, 손대기만 해도 진하게 묻는, 그런 음악.

“좋지 않아요? 난 귀가 예민한가 봐. 이런 음악 들으면서 가끔 흥분하는 것 같아요. 그걸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섹스할 때도 귀를 애무해주는 게 제일 좋겠네요?”
“맞아요.”
농담이었는데, 사뭇 진지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음악도 집에서만 듣는 거예요?”
“음… 그건 반반? 말했잖아요. 버스에서 전화하는 사람들, 별로 라고.”

반반이라 하니, 불현듯 공중도덕을 단단히 준수하는 여자와 거리낌 없이 섹스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 피우는 여자는 다 쉬운 여자’따위의 몹쓸 편견이지만, 이미 떠오른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원래 남자는 시각이, 여자는 청각이 민감하다고 하잖아요.”
“그거랑은 좀 달라요. 많이.”

그만 얼버무리려 했더니, 뭐가 또 다르다며 정색을 한다. 여자의 방 스피커에서 맥스웰의 ‘Til the Cops Come Knockin’ 이 흘러나왔다. 통화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긴 정적이흘렀다. ‘경찰이 문을 두드릴 때까지라니, 제목 한번 상상력 풍부하게 잘 지었네.’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도중에, 여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 배 아래가, 좀 아파요.”
두 손에 넘치는 숫자의 여자를 만나도 아직 잘 모르겠는 게 딱 두 가지 있다. 여자가 아플 때, 그리고 여자가 울 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네? 어디요?”
“여기, 배 아래.”
“아랫배요? 많이 아파요?”
“아니, 더 아래.”

점점 짙어지는 노래의 질감만큼이나, 여자의 목소리가 눅눅해져 있었다.

“더 아래 어디요? 약은 먹었어요?”
“배 아래…. 어딘지 알겠어요?”
“네?”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이럴까? ‘어디’ 가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거기’ 는 아니겠지. 설령 맞다 해도 그걸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선뜻 이야기할 수는 없다. 상대가 머뭇거리자, 여자는 점점 집요해져 갔다.

“어딘지 알겠냐구요.”
“….”

보통 세 번 정도 만나면 섹스를 하니까, 통화 시간으로 치면 그 정도는 이미 예전에 넘겼다. 그래서 이런 건가? 그러면 차라리 만나자고 하지 난데없이 왜 이럴까? 해뜰 때까지 하고도 남을 10개 이상의 체위를 알고, 트로잔이니 사가미니 콘돔의 종류를 꿰고 있어도 이런 건 처음이었다.

“대체 어디 말하는 거예요?”
“거기, 배 아래.”

이러다간 ‘배 아래’ 와 ‘어디?’ 만 주고받다 아침이 올 것 같았다. 결국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거기’ 를 발음했다. ‘배 아래’ 가 아닌 ‘거기’ 의 올바른 표현으로.
“응, 거기가 아파. 만져줘.”
“네?”

만져달라니. 여기는 잠실, 여자의 집은 영등포다. 물리적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여자의 ‘거기’ 를 만져줄 수는 없다. 가제트도 아니고.

“어떻게 만져줘요. 우리, 둘 다 집이에요.”
“거기, 만져줘.”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머리가 신도림역처럼 복잡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060이니 ‘후끈 폰팅’ 이니 하는 그런 건가? 아니, 그럴 거면 전화를 내가 걸어야 맞는 거겠지? 당황하지 말자, 당황하지 말자.

“이렇게요?”
한편으로 ‘거기’ 도 말했는데 뭘 더 못할까 싶기도 했다. 체념 또는 작정을 하고 던진 말의 대답으로,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넘어왔다. 아, 이런 식이구나. 귀가 예민하다는 건 이런 거였구나.

“지금 넣어줘.”
눅눅하다 못해 젖어 있는 여자의 목소리. 여자의 요구는 갈수록 대담해졌다.

“넣었어.”
여자를 이해했기 때문일까? 어느새 나도 ‘거대해져’ 있었다. 전화기는 무선 조종이 가능한 블루투스 섹스토이 같았다. 여자의 반응은 메시의 드리블만큼 빠르고 다채로웠다. 대체로 몰아쉬는 숨소리가, 가끔은 날카로운 교성이 수화기를 타고 왔다.

“뒤로, 뒤로.”
신음소리는 더욱 거칠어졌고, 대답이 없어진 건 그때부터였다.
몇 분쯤 지났을까, 규칙적으로 바스락대던 ‘어떤’ 소리가 사그라질 무렵, 여자가 불쑥 말을 꺼냈다.

“어땠어요?”
“당황스러웠어요. 처음이라.”
“그래도 잘하던데….”
“만났으면, 더 잘했을 텐데.”
“난 이게 더 좋더라. 우리 앞으로도 종종 통화해요. 오랜만이라 그런지 피곤하네요. 잘 자요.”

언제 그랬냐는 듯, 여자의 목소리는 명랑했다. 내 방에선 배리 화이트의 ‘I Wanna Lay Down With You Baby’ 가 흐르고 있었다. 축축해진 손으로 불을 켜고, 축축해진 손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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