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왜 그래요?

허구한 날 드라마를 본다. 그러다 문득 생겨난 질문에 정색하고 답변을 청했다.

언제부턴가 부쩍 등장인물의 혼잣말 장면이 늘었다. 어쩐 일일까?
강명석( 기자) 트렌디 드라마가 범람한 이후 갑자기 데뷔한 어설픈 작가들의 관습이다. 능력은 없는데 마감 시간은 다녀오고, 캐릭터를 설명할 에피소드는 못 만드니 그냥 독백하는 수밖에. 김수현 작가가 독백으로 고백하는 것 본적 있나?
박현정(전 <드라마틱> 편집장) 타깃이 40대 이상임을 숨기지 않는 경우고, 스토리나 등장인물을 헛갈려 하는 연령층을 위한 철저한 배려다. 이환경 작가는 어려운 내용을 등장인물마다 한 번씩 뜻풀이를 해주기도 했다. 사극엔 스토리 설명용 방백은 필수요소. “중전의 회임에 이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단 말인가. 정녕 그렇단 말인가. 한낱 아녀자의 손에….”
장우철 ( 피처 디렉터) 이야기를 인물이나 사건으로 풀지 못하는 작가들의 역량 탓이다. 차라리 성우의 해설이라면 일부러 저런 설정을 했나 보다, 속아넘어가기라도 할 것이다.

아침 드라마나 저녁 여덟 시대 일일연속극은 왜 그 정도에 머물까?
강명석 포르노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인간의 예술과 순수에 대해 묻는 건 할 일이 아니다. 아침저녁 ‘식후 땡’ 으로 보는 드라마는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뇌를 포맷하길 바란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오락성 있는 작가주의 시트콤’ 을 만든 김병욱 감독뿐이다.
박현정 주부 시청층을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신선한 기획과 연출을 해봤자, 잘 키운 막장 하나 못 이기니 그렇다. 하지만 쏠쏠한 맛도 있다. 최근 서지영이 나오는 <당돌한 여자>는 젊은 시아버지라는 설정에, 재혼한 시어머니 이유리를 ‘갈구는’ 서지영 캐릭터가 드라마틱한 절대악이 아닌 현실계의 ‘찌질악’ 을 생생하게 구현한다. 이웃 같은 악녀가 심판 받는 모습을 보기 위해 별안간 교통사고 좀 내면 어떤가.
장우철 기존의 관점으로 이 드라마들을 평가절상하기는 무리다. 하지만 서브 장르쯤으로 – 이를테면 문학에서 추리소설이니 SF소설이니 하는 장르 문학의 범주가 다른 것처럼 – 볼 수 있다면 오히려 색다른 지점이 있다. <당돌한 여자> 같은 경우, 짜릿한 면도 있다. 작년엔 <아내의 유혹>이 그랬고.

<동이>같은 경우가 대표적일 텐데, 조연은 왜 웃겨야 하는 ‘감초’ 역할에 한정될까? 그런 역할이 왜 필요한가?
강명석 아이돌 그룹에 해외파와 래퍼, 리드보컬이 각자 있는 것과 같다. <대장금>과 <동이>를 연출한 이병훈 감독의 작품처럼 주인공이 계속 죽었다 살아났다 하는 작품일 때는 그‘찐득한’맛을 줄이기 위해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유치한 코미디가 섞여야 60분을 버틸 수 있다.
박현정 <동이>에선 숙종도 웃긴다. 조연이 감초를 한다기보다 감초가 조연이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션 해결형 드라마에서는 문제 풀이의 실마리를 주거나 남의 말을 전해주는 역할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들이 울려주기보다는 웃겨주는 게 남는 장사가 아닐까?
장우철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이라기엔, 주된 이야기의 긴장이 너무 약하다. 으레 그러려니 하는 관습일 뿐이다.

방송국과 외주 제작사 사이의 관계는 한국 드라마의 총체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어떤 상황인가?
강명석 지상파 방송사가 시장을 독점하니, 외주 제작사도 죽겠다고 하고, 지상파 감독들도 죽겠다고 한다. 독점적인 시장 지배자인 지상파 방송사가 먼저 바꿔줄 리도 없다. 외주 제작사가 <막돼먹은 영애씨>같은 케이블 TV의 알짜 작품들을 기획할 필요가 절실하다.
박현정 오랜 화두였던 방송국과 외주 제작사 간의 분쟁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끼어들면서 다시금 불씨가 타오르고 있다. 방송사들은 일방적인 외주사 편들어주기라며 강력하게 반발 중이다. 무슨 정책이든 이 정부가 끼어들면 ‘찝찝한’ 일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더이상은 노코멘트.
장우철 외주 제작사 스스로 뭔가를 창조해내기엔 방송국의 그늘이 지나치게 크다. 제아무리 참신해도 기획과 아이디어만으로는 어려운 얘기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의 숫자는 적절한가?
강명석 갑자기 여주인공이 아랍 귀족의 몇 번째 아내였다는 설정이 나오는 <분홍립스틱>이 20퍼센트 이상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이런 드라마로 어쨌건 광고수익을 챙기고, 그 수익 중 일부는 상식적인 드라마를 만드는 데 쓰인다. 적절하다면 적절한데, 짜증은 난다.
박현정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단막극 부활과 신인 작가와 연출가의 등용문을 늘려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좀 더 늘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관점도 존재한다.
장우철 드라마는 언제나 너무 많다. 배우도 넘친다. 하지만 좋은 작가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

김혜자와 김희애와 신세경의 차기작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강명석 신세경은 송강호의 차기작에 나온다. 영화가 되든 안 되든 연기 잘하는 청순 글래머의 자리는 굳힐 것이다. 김희애는 피눈물 흘리면서 샤우팅하는 작품만 피하면 좋을 듯하다. 김혜자야 월드컵 하는 해마다 <마더> 같은 작품 한 편씩만 해도 보는 입장에선 영광이다.
박현정 김혜자는 <마더>에 이은 강한 역할로 쐐기를 박는 게 좋다. 다시 ‘국민 어머니’ 로 돌아온다면 반짝쇼처럼 빛이 바랜다. 김희애는 특기인 야무지고 깔끔한 거 한 번. 신세경은 ‘지적인 사차원’ 이미지 중 하나만 골라서 하면 좋겠다. 다만 사차원스러운 게 좀 촌스럽게도 보이는 시점이라서, 차라리 연기파스러운 선택이 어떨는지.
장우철 김혜자는 ‘엄마’ 를 삭제시킨 신경질과 권태가 뭉개진 ‘여자’ 로, 신세경은 털털한 ‘삼순이’ 캐릭터만은 피하면서, 김희애는 아무래도 김수현 드라마가 아니면 떠오르지 않는다.

문영남, 임성한, 김순옥은 다음에도 여전히 문제적 작가로서 유효할까?
강명석 임성한은 결혼 이후 독기는 빠지고 편협함만 남았다. 유감스럽게도 문영남은 할 게 바닥난 것처럼 보인다. 김순옥은 막장 드라마계의 시드니 셀던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최소한의 자료 조사도 안 하는 것 같다. 이 사람들도 공부란 걸 할 때가 됐다.
박현정 임성한을 막장이라 부르면 안 된다. 그는 언쟁물의 대가다. 막장스러운 설정은 언쟁의 스펙터클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김순옥은 스릴러 장르로의 발전 가능성이 있다. 문영남 작가의 위상에는 경배라는 말이 앞선다. 모두 유효하며 장대하리라.
장우철 임성한만의 기괴함은 민망한 상황 설정으로 퇴색했다. 문영남은 초반부의 섬세함을 억지 전개 속에 쑤셔박는 게 문제다. 김순옥은 다음 드라마가 분기점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쯤은 더 문제적일 수 있다.

소위 ‘선생님’ 이라 불리는 중견배우들은 다 연기를 잘하는 걸까?
강명석 임성한의 페르소나 한혜숙의 경우, 그렇게 울고 비명 지르는 드라마에 출연하면서도 연기력이 화제가 되지 않았다. 드라마 속 캐릭터가 아니라 ‘한혜숙’ 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미자도 출연작이 분간이 안 되기 시작한 지 오래다.
박현정 반드시 그렇진 않다. 고두심도 2년 전 <춘자네 경사났네>에서 천박한 춘자로 분하더니 연기의 디테일을 몽땅 잊은 것 같은 경우가 있었고, 김해숙도 너무 오열 연기가 화제가 되어서 그런지, 요즘은 연기가 다소 진부하게 보이기도 한다. 매너리즘이란 게 있긴 있는 듯 하다.
장우철 화면의 안정감만으로도 훌륭한 연기겠지만, 언제나 완벽하진 않다. 배우의 연기보다는 작가의 능력 문제로 보인다. 대개 조연일 그들에게 캐릭터는 없고 대사만 주어진 경우가 허다한 상황이니 말이다. 노련한 배우는 그 와중에도 캐릭터를 만들어내지만, 과장되기 쉽다는 약점이 있다. <수상한 삼형제>의 이효춘, 이보희, 노주현의 연기가 아슬아슬해 보이는 이유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김수현에게 어떤 작품일까?
강명석 그의 세번 째 시즌이다. 데뷔 후 파격적인 작가로 명성을 드높이던 시절을 지나 1990~2000년대 완전한 대가로 인정받은 뒤, 이제는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재구성하는 수준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용서받지 못한 자>가 있다면 김수현에게 <인생은 아름다워>가 있다.
박현정 그가 언제나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작품. 방송에서 금기시 되던 소재를 다루거나 결말이나 형식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은 항상 있었고, 다양화된 시대 탓에 상대적으로 70~80년대의 파격에는 비할 바 없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장우철 김수현은 언제나 어른됨을 묻는다. 지금을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도 합당하며 아름다운 것일까. 김수현에게 ‘가족’ 은 처한 입장이자 돌파구이고, 방법은 서로를 껴안는 것이다. 그리하여 뭔가를 회복하는 것이다. <부모님전상서>와 <엄마가 뿔났다>에 이은 <인생은 아름다워>는 김수현의 21세기 가족 삼부작을 완성할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왜 눈물을 닦지 않고 내버려둘까?
강명석 화장이 지워지니까.
박현정 오랜 세월, 내버려두라는 피디의 지시가 있었다. 요즘은 반드시 그런 추세는 아니지만. 열심히 흘린 눈물이 아까워서?
장우철 닦으면, 웃다가 울고 울다가도 웃는 현실로 주저앉는다. 한쪽 눈으로 조르륵 흘리든 반 방울만 살짝 떨구든 내버려둘 일이다. 볼이 간질거려도 배우는 참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결과로부터 올해의 작품상과 배우상을 선정한다면?
강명석 작품상은 아직 없음. 남자는 드디어 자신이 놀 곳을 만난 <추노>의 장혁. 여자는 어떤 로맨틱 코미디에도 일상의 느낌을 불어넣는 공효진. 그리고, <지붕뚫고 하이킥>의 마지막 회 마지막 순간은 ‘올해의 시간.’
박현정 작품상은 <지붕 뚫고 하이킥>, 여자는 <신데렐라>의 서우, 남자는 <나쁜 남자>의 김남길, 최악은 <수상한 삼형제>.
장우철 작품상은 <지붕 뚫고 하이킥>, 남자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최정훈,
여자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김용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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