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돌’, 어디까지 와 있니

뮤지컬에서 아이돌을 보는 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잘하고 있는 걸까? 무대는 왜 자꾸 아이돌을 원할까? 30년 경력의 뮤지컬 배우 이경미가 답했다.

정말로 아이돌이 나오는 뮤지컬은 다 성공하나? 아이돌의 티켓 파워는 허상에 가깝다. 물론 팬층이 두터운 경우, 그들의 팬덤이 관객 수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기존 팬덤 이외의 일반 관객들은 아이돌이 나온다고 반사적으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 홍보 효과가 있을뿐이다. “아 얘가 나오는구나” 정도지, 티켓 파워와 직결되진 않는다.

실패한 경우도 있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일례로 강인과 희철이 주연으로 출연한 <제나두>는 슈퍼주니어, 그중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두 멤버가 주연배우로 출연했지만 흥행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비평적 측면에서의 실패가 아닌, 흥행성적의 실패라는 점이 의외다. ‘잘한다’ 는 입소문이 날 때야 비로소 일반 관객과 마니아 층이 들어온다. 사실 입소문만 나면 일반 뮤지컬 배우가 출연했을 때보다 더 폭발력이 있다. ‘쟤들이 정말 그렇게 잘해?’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그런데 잘 못하면 더 망한다. 초반 어느 정도까지는 팬덤의 힘으로 끌고 갈 수 있지만, 배우의 역량이 부족할 경우 뒷심이 떨어져 일반 관객에까지 파급력이 전파되지 못한다. 특히 긴 공연일수록 입소문을 많이 탄다.

기본적으로 아이돌 스타의 출연은 제작자가 원하는 건가, 아이돌 기획사가 원하는 건가? 제작자 측인 경우가 많다. 티켓 파워에 대한 환상 때문에 어떻게든 섭외를 하려고한다. “두 명, 세 명 붙여서 가르쳐줄 테니까 일단 해요” 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무대 위에서까지 두 명, 세 명이 붙을 수가 있나? 기본적으로 연습량이 부족하면 혼자서 무대를 감당할 수가 없다.

아이돌 스타들도 뮤지컬 배우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모든 연습에 참여하나? 노래해야지, 예능 나가야지, 잠도 못 자는데 언제 연습을 하나. 참여한다 해도 피곤한 모습이 역력해 연습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제시카는 <금발이 너무해> 할 때 너무 힘들어해서 막과 막 사이, 쉬는 시간 등을 이용해 쪽잠을 재워가며 진행했다고 하더라.

당신은 <모차르트>에 시아준수와 함께 출연했다. 시아준수는 어땠나? 정말 잘했다. <모차르트>에 출연한 4명의 주연배우 중 대사, 동선, 가사를 가장 먼저 외웠다. 연습을 열심히 하는 건 물론이고 기본적으로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며칠 전에 ‘더 뮤지컬 어워드’ 에서 신인상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되레 그의 연기를 제대로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를 ‘인기에 영합한 수상’ 정도로 평가절하할까 걱정이다. 내 역할이 모차르트를 괴롭히는 악역이었는데, 연기를 너무 잘해서 괴롭히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연기를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줬다. 본인도 뮤지컬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

아이돌 스타들이 뮤지컬 무대에 서는 현상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 건가? 작품 잘 만들고 연습 열심히 시켜서 올린다면 나쁠 게 뭐가 있나? 뮤지컬 배우들도 뮤지컬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나도 연극도 하고 드라마도 한다. 장르라는 건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등 정말 잘하는 사람만 살아남는 거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능력을 썩힌다는 건 아까운 일이니까.

처음이라는 점에서, 신인 뮤지컬 배우와 비교할 때는 어떤가? 콘서트나 연극이나 뮤지컬이나 무대는 같은 무대니까, 경험이 있다는 측면에서 나은 점이 있다. 일단 올라가면 배포도 있고, 신인 배우들처럼 떨지않는다. 연기 수업도 따로 받는 것 같고. 그러나 쉽게 ‘낫다’ 고 말할 수는 없다. 신인 뮤지컬 배우들은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죽어라 연습한다. 그렇지만 아이돌 스타들은 실수가 없을 때까지 연습하는 대신, 임기응변을 부린다. 무대 경험이 있으니까. 그런 건 무대에 대한 경외감이 없는 거다. 무대가 무서운 줄을 알아야지, 자기들 부업하듯이, 재미로 하는 것처럼 하면 안된다.

재능보다 열의의 문제인 건가? 자기 의지로 왔다기보다, 기획사에서 등 떠밀어 온 경우가 많다.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종종 있지만,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나도 아직까지 새 작품을 시작할 때면 3개월 내내 아침저녁으로 연습한다. 그래도 첫 무대는 어느 정도 긴장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게 무대다.

답답할 땐 어떻게 하나? 혼도 내나? 아이돌 스타들과 같이 작품을 진행한 선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것저것 말해주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연습이 끝나기 무섭게 사라지는 통에, 같이 모여서 연기 얘기도 나누고 조언도 해주고 싶어도 만날 기회가 적다는 말이다. 연극이나 뮤지컬은 교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배역을 맡은 사람들과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극을 진행해야 한다.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를 기획사 측에서 뺏고 있는 거다.

모든 아이돌 스타들이 다 그런 건가? 그렇진 않다. 시아준수는 물론이고, <남한산성>에 출연한 예성도 무척 열심히 한다는 평이었다. <캣츠>의 대성, <소나기>의 승리도 잘했다고 들었다. 제시카도 시간이 부족해서 그렇지 하고자 하는 의욕은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가 제일 안타깝다. 의지는 있는데, 상황이 안 따라주는 경우.

그렇다 해도 오랫동안 무대 하나만 보고 준비한 뮤지컬 배우들은 억울할 것 같다.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형국 아닌가.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열심히 해도 무대에 설 수 없다면, 누가 연습을 열심히 하겠나? 열심히 하는 사람은 어쨌든 남는다. 같이 나갈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거다. 어차피 아이돌 배우 단독 캐스팅으로 가는 경우는 없다. 뮤지컬 배우와 함께 더블, 트리플 캐스팅을 하게 되고, 항상 뮤지컬 배우를 위한 자리는 존재한다. 제작자 쪽에서 일방적인 배정은 하지 않는다.

더블, 트리플 캐스팅을 하는 건 형평성 때문이라기보다 단지 제작사에서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닐까? 배려도 분명 존재한다. 어쩌면 하나의‘상도’라고 할 수도 있다. 혹은 양심. 제작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부분의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 아이돌이 뮤지컬을 전면적으로 장악하는 일은 아마 없을 거다. 위험부담 이야기를 해서 말인데,아이돌 스타들이 주인공 대신 조연으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형태로 위험부담을 줄이곤 한다.

2000년대 초.중반은 한국 뮤지컬의 황금기였다. TV 스타, 영화배우, 가수들이 앞 다퉈 뮤지컬 무대에 섰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아이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 때와 지금의 뮤지컬 시장을 비교하면 어떤가? 거품이 빠지고 있는 단계다. 옛날 같지 않아서, 투자자가 많이 줄었다. 붐이 일었을 때만 해도 너도나도 투자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확실한 게 아니면 안 한다. 아무래도 투자자들이 보기에 아이돌만한 카드가 없으니까, 제작사에서도 데려오는 거다. 특히 신생 제작사들이 그렇다. 아이돌을 데려온다고 만사형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뮤지컬 관객에 대한 오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관객은 무엇에 의해 움직이나? 신뢰다. 우리나라의 뮤지컬 관객들은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한다. 한 작품만 30번 이상 보고 이런 사람이 수두룩하다. 내 한 팬도 <맘마미아>를 33번 봤단다. 뮤지컬은 특히 재구매율이 높다. 한두 푼도 아니고, 검증된 작품만 팔리는 구조다. 그런 면에서 영화나 연극과는 다르다. 섣불리 한번 찔러보는 걸론 꿈쩍하지 않는다. 현재 조승우의 어마어마한 관객 동원력이 배우와 관객 사이의 신뢰가 쌓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음악, 영화는 다 망하는데 뮤지컬만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올해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라이선스는 비용도 많이 들고 창작 뮤지컬에 눈을 돌려야 하는데, 창작이 지지부진하다. 규모가 큰 창작 뮤지컬이 많이 올라가고 성공해야 시장이 살아난다. 8월에 시작하는 <서편제>, 유노윤호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궁> 등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이돌 스타들의 라이선스 뮤지컬 출연은 드물다. <캣츠>, <모차르트>, <금발이 너무해>정도가 전부다. 왜일까? 규모가 큰 라이선스 뮤지컬은 외국 스태프가 일일이 와서 오디션을 본다. 아이돌 스타라고 그냥 캐스팅하는 경우는 없다. 즉,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기획사에서 웬만해선 아이돌을 오디션에 세우지 않는다.

창작 뮤지컬에는 오디션이 없나? 물론 오디션은 있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와서 얼굴만 비추고 가는경우가허다하다. 전부그런건아니지만‘, 너무하자가없으면 뽑겠다’는 식인 경우가 있다.

미국, 영국 등 뮤지컬이 대중화된 해외시장의 경우에도 아이돌 스타의 뮤지컬 출연이 빈번한 편인가? 반응은 어떤가? 아이돌 스타보다는 가수들이 많이 한다. 그렇지만 영향력이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우리나라와는 관객의 특성이 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미국이나 영국의 뮤지컬 시장은 우리나라처럼 마니아 시장이 아니다. 그들에게 뮤지컬은 콘서트, 미술관 관람 등과 같은 하나의 일반적인 문화생활일 뿐이다. 하루는 박물관 갔다가, 하루는 연극도 보고, 어떤 날은 오페라도 보고 이런 식이다. 한국의 뮤지컬 팬들은 마니아적인 만큼 열광적이다. 아무래도 20∼30대 여성 팬이 많다 보니 남자 배우들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첫날 첫 공연에 앙상블로 출연했던 남자 배우들까지 그 다음 날 팬클럽이 생겨 팬들이 도시락 싸오고 그런다. 이런 관객들이 아이돌에게 문을 열 때, 파괴력이 생기는 거다.

뮤지컬 무대에 서는 아이돌 스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평생을 갈고 닦아도 오르기 힘든 무대에 선다는 걸 하늘이 준 기회라 생각하고 전력투구했으면 좋겠다. 뮤지컬의 완성도는 둘째 치더라도, 이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문제다. 왜 다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할까? 뮤지컬 무대가 한번 들렀다 가는 곳이라는 생각을 버린다면, 좋은 연기,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