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과 이완, 이완 맥그리거

이완 맥그리거가 리차드 아베돈의 < 아메리칸 웨스트 > 시리즈에서 튀어 나온 인물처럼 ‘정직하게’ 카메라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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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머리 렌튼(< 트레인스포팅 >의)을 잊을 순 없겠지 만, < 아이 러브 유, 필립 모 리스 >에서 렌튼을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이완 맥그리거는 영화에서 그의 배역 사상, 아니 어쩌면 영화 사 상 한 사람에게 가장 열렬히 사랑 받는 인물, 필립 모리스 로 분했다. 지금까지 그는 용맹스럽기보단 비겁한 쪽, 착 하기보단 영악한 편에 서는 역할이 많았다. (비할리우드 출연작일 경우엔 더더욱) 하지만 그조차도 뻔뻔한 악당 은 못 됐다. 순한 얼굴로 자기 안의 악에 대해 고민하지 만, 원하는 걸 포기할 수도 없어 갈등하는 나약한 인간형 들이었다. 분류하자면 ‘중간자’였다. 그러나 필립 모리스는 다르다. 필립 모리스는 ‘널 증오해’라는 말도 ‘사랑해’로 들리게 하는 남자다. 사랑했던 상대(짐 캐리, 스티브 러셀 역)가 죽음을 위장한 탈옥을 감행해 그의 앞에 나타나자 그는 울면서 세차게 뺨을 날린다. “이런 개자식!” 욕을 하는 게 아니라 안아달라는 투로. 짐 캐리는 < 아이 러브 유, 필립 모리스 >에서 이완 맥그리거와 나눈 키스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드림스 컴 트루.”

“감옥도 다른 곳처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곳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엘런 드제너러스의 토크쇼에서 나온, 그가 < 아이 러브 유, 필립 모리스 >에 등장하는 감옥이란 공 간을 두고 한 말이다. 사랑에 관대하면서도 분명한, 이완 맥그리거를 잘 보여준다. 그는 모국인 스코틀랜드를 “미 칠 듯이” 사랑한다. 두 번에 걸쳐 1백일이 넘는 여행을 함 께 떠난 오토바이를 사랑한다. 드럼과 기타, 프렌치 호른을 연주하며, 음악을 연주하듯이 연기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한다. 딱 한 번 만나 사랑에 빠진 뒤 15 년간 결혼생활을 지속해오고 있는 다섯 살 연상의 프랑 스 출신 미술감독 이브 마브라키스를 사랑한다. 유니세프 대사이자 소아암 환자 재단의 후원자이면서, 유니세프 활동 중에 만난 몽고계 아이 자미얀을 자신의 세 번째 아이로 입양한 이완 맥그리거는 인류를 사랑한다!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퍼스 레퍼토리 시어터에서 연기 활동을 시작한 이완 맥그리거의 첫사랑은 연극이다. 한동안 영화와 드라마로 바빴던 그는, 1999년에 연극 활동을 재개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 마친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 오셀로 >. 그의 역할은 디아고였다. 18년차 배우에게도 무대는 여전히 긴장감 넘치는 공간이었다. “런던에서 < 오셀로 >를 할 땐 정말 다른 차원의 긴장감을 느꼈어요. 연극 첫날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정말 후회했죠. 죽을 것 같았어요.” 그러나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면 긴장감은그의 삶에서 중요한 ‘뭔가’다. “긴장하고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하죠.” 이완 맥그리거가 덧붙였다.

< 뉴요커 >의 필자 말콤 글래드웰은 인간이 긴장감을 느끼는 상태를 ‘당황’과 ‘위축’으로 구분했다. 당황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고, 위축은 생각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의 의견에 따르자면 이완 맥그리거는 위축의 사례다. 현재 이완 맥그리거가 출연한 작품 가운데 개봉을 기다리는 작품이 한 편, 후반작업 중인 작품이 네 편, 프리 프로덕션 단계인 작품이 다섯 편이다. 그가 얼마나 많은 노동과 창조의 골 머리, 즉 ‘위축’과 맞닥뜨려 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올해만 해도 이미 상영중인 로만 폴란스키의 < 유령작가 > 를 비롯, < 영 아담 >을 함께했던 데이비드 맥킨지 감독과 다시 만난 < 라스트 워드 >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내년 개봉 예정작으로 범위를 넓히면 스티븐 소더버그의 < 녹 아웃 >, 마이크 밀즈의 < 비기너스 >, 테리 길리엄의 <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의 < 까마귀 > 같은 엄청난 라인업이 있다. 다만 ‘살아 있다는 기분’을 위해 위축과 싸우면서 얻은 전리품 목록이다.

‘톰 포드의 구찌’였던 시절, 톰 포드가 구찌의 아트 디렉터로 영입해 마침내는 구찌 그룹 전체의 아트 디렉터로 일했던 마티아스 브리엔스가 ‘더러운’ 이완 맥그리거를 찍은 주인공이다. < 더치 매거진 >의 아트 디렉터에서 패션 브랜드의 아트 디렉터로 이직한 바 있는 그는 현재 포토그래퍼로 활동 중이다. 이 사진은 리차드 아베돈의 < 아메리칸 웨스트 > 시리즈에서 영감 받았다. 리차드 아베돈은 미국 서부의 노동현장을 집적 찾아가,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분투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흰 배경, 최소한의 장치만을 사용해 정직하게 담아냈다. 이완 맥그리거에게 < 아메리칸 웨스트 > 시리즈의 인물들과 공유하는 어떤 모습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니까 피 묻은 앞치마를 두른 푸줏간 아저씨, 온몸이 시커먼 탄광 노동자, 직접잡은 뱀을 들고 서 있는 열세 살 소년과 말이다. 이완 맥그리거가 가진 ‘긴장’이란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몰고 가는, 노동과 유사한 것임을 알아챘는지 모른다.

< 아이 러브 유, 필립 모리스 >에서 스티브 러셀은 이완 맥그리거, 즉 필립 모리스를 두고 “넌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남자야” 라고 한다. 이 사진에서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남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 트레인스 포팅 >의 첫 시퀀스에서 있는 힘을 다해 달리던 이완 맥그리거가 여전히 달리고 있다고 보는 쪽에 가깝겠다. 그를 만나게 되면, 제일 먼저 한국말의 ‘이완’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해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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