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들이 달라졌어요

왜 유독한국 청소년 대표팀의 성적이 성인 대표팀보다 앞설까? 세 명의 전문가가 청소년 대표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짚어봤다.

남녀를 불문한 우리 청소년 축구의 희망적 미래를 접하면서 떠오르는 한가지 물음이 있다. 과거의 한국 축구에도 ‘좋았던 청소년기’를 보낸 일군의 선수들이 틀림없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 뻗어 나가지 못한 채성인이 되어 존재 자체가 미미해지는 경우까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지금의 청소년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물론 이것은 비단 한국 축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스포츠, 그리고 심지어 상이한 분야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예를 들어 어려서 국제적인 경시대회에서 입상한 한국의 학생들이 꾸준히 성장해 훌륭한 학자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근본 원인은 다르나 이는 외국 축구계에서도 빈번한 현상이다. 대표적인 예로 어려서 ‘제2의 마라도나’소리를 들은 아르헨티나의 유망주는 꽤나 많지만,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 칭호에 부합하는 선수로 인정받은 경우는 지금껏 리오넬 메시 단 한명에 불과하다.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청소년’은 당연히 한국축구 이외의 곳들에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 축구 특유의 문제들이 청소년들의 ‘조로’를 야기한 측면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 축구의 뿌리 깊은 ‘성적지상주의’. 국제대회에서의 결과물, 혹은 상급 학교로의 진학 등을 목적으로 하는 성적지상주의에 입각한 훈련은 어린 선수들 개개인의 기술적, 창의적 측면의 계발을 등한시한 채 하나의 팀으로서 상대 팀을 꺾는 요령에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어린 나이에 배워야 할 것들을 제대로배우지 못하는 까닭에, 선수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역시 성적지상주의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써, 연령 제한을 어긴 선수들이 학원축구에서 각 학교의 중심 선수로 활약하는 경우들도 있는데, 다른 청소년들보다 나이가 많으면 그 덕에 어느 시점까지는 잘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향후의 발전 가능성은 낮은 법이다.

또한 과거 우리 선수들은 혹사와 부상에도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진학이나 대표 선발 같은 목표를 위해 부상을 숨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며, 잘하는 선수들일수록 모든 국제대회(예를 들어 청소년, 올림픽,국가대표)에 불려 다니며 겹치기 출전을 하는 것이 예사였다.

끝으로, 청소년 축구의 발전을 저해했던 다른 문제점은 역시 인프라와 시스템, 지도자 및 각종 환경의 미비함이었다. 예전의 우리 어린 선수들에겐 지금과 같은 잔디구장도, 프로 구단 산하의 유스팀도, 축구협회의 연령대별 육성 프로그램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들을 세심하게 관리해줄 전문적인 지도자 수도 부족했다. 심지어 과거에는 어린 선수들이 TV를 통해 외국의 선진 축구를 시청하며 모방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한준희(KBS 축구해설위원)

1983년 멕시코 대회를 빼면 한국 청소년 축구의 호성적은 2000년 이후 근래에 집중됐다. 특히 최근 2년간의 성과가 두드러진다. 2002년 월드컵 아이들의 성장이다. 2002년 월드컵 4강을 가까이 지켜봤고, 박지성 등 선배들이 유럽무대에 진출해 쟁쟁한 스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뛰는 것을 바라본 덕에 요즘 어린 선수들은 세계대회에 나가 어떤 상대, 어떤 선수와 맞서더라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맞선다. 또 선수들의 체격과 체력등 신체조건이 좋아지면서 경쟁력이 더해졌다. 주위에서 말하는 서구화된 체형의 긍정 단면이다. 세계대회에 맞춰 상비군 체제로 연령별 대표팀을 운영하고 각급 대표팀에 전임지도자를 배치하는 등의 시스템 정비도 주효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국 축구의 국가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의 간극을 모두 설명하기는 충분치 않다. 주관의 열정을 뛰어넘는 객관의 냉정한 시선이요구되는 지점이다. 먼저 변수의 확대다. 나이 어린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일수록 우승 등의 결과가 예상 밖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선수 개인의 기량과 팀 전술의 완성도가 부족한 나이라 그만큼 경기 결과에 미치는 변수가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통계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국가대표 A팀들의 월드컵 우승은 유럽과 남미 두 대륙만이 차지한 성취다. 두 대륙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대륙도 결승전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남아공 월드컵 결승 매치업도 스페인과 네덜란드, 즉 유럽 간 대전이었다. 그러나 연령별 대회로 내려올수록 유럽과 남미의 투톱 체제는 힘을 잃는다.1992년부터 23세 이하 선수들이 출전한 올림픽에서는 1996년과 2000년에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이 우승을 차지하며 남미와 유럽의 양강체제를 무너뜨렸다. U-20 월드컵에서는 아프리카 팀들이 5번이나 결승전에 올랐고, 아시아의 카타르와 일본이 각각 1981년과 1999년에 준우승을차지했다. U-17 월드컵의 판세는 아예 아프리카가 쥐고 있다. 아프리카는 13번의 역대 대회 중 최다인 5번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남미와 유럽은 각기 3번의 우승에 머물렀다. 눈에 띄는 또 하나는 아시아의 대회 제패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89년 스코틀랜드에서 치른 U-17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이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축구의 성장과 맥을 함께한 결과지만, 한편으로 연령별 대회의 변수 확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집중의 차이기도 하다. 유럽과 남미 축구가 연령별 세계대회를 바라보고 치르는 시선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그것과는 차이가 비교적 크다. 유럽과남미는 표현 그대로‘경험’에 중점을 두고 대회에 나서는 반면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대회에 임한다. 유럽과 남미는 연령별 세계대회 말고도 자체적으로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육성시킬 수 있는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올림픽 이하 연령별 대회의 성적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전 세계 축구 스타들의 경연장인 프로리그 시스템이 마련돼 있는 유럽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유럽은 올림픽의 경우 별도의 예선조차 치르지 않는다. U-21 유럽선수권 성적에 준해 올림픽 출전권을 나눈다. 나이 제한규정에 적용받지 않는 와일드카드 제도도 활용하지 않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경험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대회에 나설 수 있는 연령이더라도 이미 프로리그나 국가대표팀에서 기량을 인정받은 선수는 연령별 세계대회 출전에서 제외하는 것이 일반적인 유럽 축구의 흐름이다. 반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경우 결과를 중시하는 축구문화에다 현실적으로 연령별 국제대회가 선수 자신의 이름을 세계무대에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유럽과 남미선수들에 비해 대회를 치르는 집중도가 다른 게 사실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 한국 축구의 연령별 대회 선전을 바라보면서 뜨거워지는마음을 누르려 애쓴 건 이 때문인지 모른다.
박문성(SBS 축구해설위원)

청소년 월드컵에서 달성한 가시적인 성적을 성인 월드컵 성적과 직접 비교할 순 없다. 결과에 집착하는 한국과 달리 유럽은 청소년 월드컵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성인 축구로 성장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 월드컵은 성인 월드컵에 비해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내용이다. 과거에 비해 청소년들의 기량이 확연히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청소년 축구의 기량이 이렇게 성장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크게 3가지를 꼽고 싶다. 하나는 인프라의 발전이다. 요즘은 잔디가 깔려 있는 초등학교를 쉽게 볼 수 있다. 또 지역마다 유소년 축구교실도 활성화되어 있다. 그것이 인조 잔디인지 천연 잔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릴 때부터 맨땅이 아닌, 잔디에서 볼을 찰 수 있는것 만으로도 기본기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두 번째는 선수들의 의식 변화다. 요즘 어린 선수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기본적인 계획을 명확히 밝히는 선수가 많다. 심지어는 자신이 왜 축구선수가 되려고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까지 하는 선수도 있다. 해외 리그를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자신의 확실한 롤 모델을 형성할 수 있고, 확실한 종착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엔 그저 차범근 선수처럼 되고 싶은 선수가 많았다면, 요즘 어린 선수들은 박지성보단 샤비처럼 패스를 잘하는 미드필더가 돼서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등의 구체적이고도 뚜렷한 목표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동기부여를 가지고 어떤 훈련과정을 통해서 발전을 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은 이른 나이에 더 좋은 축구를 배우고 싶은 욕구로 이어질 수 있고, 최근 유럽 리그에서 훌륭한 유망주로 성장하고있는 손흥민이나 석현준과 같은 유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볼튼의 이청용이 프로팀인 FC서울에 가기 위해 중학교를 중퇴하는 결정을 한 것도 본인의 목표의식이 뚜렷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세 번째는 제도적인 변화다.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학원 축구의 리그제 전환은 아직 시간을 두고 평가해야 할 부분이지만, 합숙문화와 성적지상주의등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인 요소로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은 역시 2002년 이후부터 시행하고있는 전임지도자 육성 제도다. 협회에서 연령별 혹은 권역별 전임지도자 체제를 시행하면서, 일단 각급 대표팀의 선발 과정에서 잡음이 줄었다. 이 제도가 있기 전엔 대회에서 성적을 냈던 지도자들이 대표팀 감독으로 들어오다 보니 학연과 지연 등이 얽힌 불공정한 선발 관행이 빈번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전임지도자 제도가 시행되면서 철저히 실력있는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릴 수 있게 된 부분은 고무적인 변화다. 월드컵 원정 16강을 비롯, 청소년 대표팀을 넘어서는 국가 대표팀의 성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까닭이다.
장지현(SBS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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