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애플 사장님께 편지를 써요

 

E.L.
대놓고 말하자면, 지금까지 나는 애플이란 회사에 관심이 없었어요. 90년대에 나온 매킨토시 클래식 말고는요. 그것도 귀엽기만 했지 기사를 쓸 땐 한 글자마다 버퍼링 팍팍 먹는, 짜증 완전 작살인 타자기에 불과했어요. 나중엔 벽돌 깨기 게임만 했죠, 뭐.

근데, 아이팟이 나오고 그 다음 두 번째 시대가 도래하자 상황이 좀 달라졌네요. 지구의 시민들은 기꺼이 자아 존중감을 내던지고 당신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으니까요. 꼭 예수의 옷자락 한 번 만지자고 손 내밀며 몸부림치는 혈우병 여인 같다니까요. 이번에 아이폰 4를 한국에 출시할 때도, 침낭 안에 몸을 구겨 넣고 유리 큐브 같은 당신 가게 앞에서 죽치던 뉴욕 풍경까진 아니었지만, 5천만 중의 누구보다도 서두른 근면 청년들도 참 많았잖아요.

기술은 분명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과시와 비교의 섬유조직을 놀라운 속도로 풀죠. 핵심을 바꿔 새 본질을 만들기도 하구요. 아무튼 난, ‘제3의 기계’가 왜 필요하냐는 거예요. 새 디지털이 꼭 인생을 편하게만 만드냐는 부정하기 힘든 논점, 좋거나 나쁘거나 혹은 둘 다인 변화 속에서, 기술을 빌리는 대가로 활동의 본질을 버릴지 말지 선택하는 문제는 논외로 칠게요.(선택한다기보단 선택 자체의 어려움이 사실 더 크죠.) 요즘 기계들이 워낙 나노의 속도로 출시되다 보니까 아싸리 모르는 게 난 속 편하네요. 새로 나온 기술이라고 꼭 사용해야 하다니, 세상의 모든 이미지를 어떻게 다 가질 수 있어요? 새 기계가 출시되는 기간과 운용 체계에 일일이 익숙해지고, 이런 예민한 시각과 감각을 보통 인류의 생활에 이식하는 건, 잔디가 자라는 소리나 모기가 피 빠는 소리, 다람쥐 심장 박동 소리까지 들으며 사는 것과 같지 않아요? 시끄러워서 어디 살겠어요?

기술을 받아들이는 건 선택의 문제고, 우린 다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요. 그래서 최신 기술을 공깃돌 놀리듯 하는 현대의 강자들은 계속 영지를 확장해가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생각 없는 지진아들은 절망적인 여생을 보낸다, 뭐 이런 얘기죠. 아무래도 패배를 스스로 인정하도록 나 자신에게 시간을 줘야겠어요. 딜레마에 초연한 이들도 있지만 내 입장은 또 그게 아니거든요. 철학자가 기술자는 아니듯 기술자도 철학자가 아니에요. ‘왜’를 알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를 알고 싶은 사람과 서로 소통하지 않아요. 근데 난 무식한데도 질문이 많군요. 성찰의 시간과 디지털화된 삶을 동시에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깊이 읽는 법을 지킬 수 있을까요? 어떻게 트위터들이 쏟아내는 아이디어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속도에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요? 불특정 다수에게 휘둘리지 않는 진실은 없을까요? 그렇게 취득한 지식이 어떤 부분에서 진정한 지식이고, 어느 시점에 제재가 필요할까요?

내 생각에 아이폰이 대단한 건, 그게 3년 전에 나왔다는 거예요. 그야말로 놀라운 신세계였죠. 근데, 기다리다 늙어 죽는 줄 알았던 아이폰 4는 처음 아이폰에 비해 성능 강화된 기종일 뿐이네요. 어쩌면, 그때 아이폰의 국경 근처도 못 갔던 다른 회사 제품들이, 이젠 기능도 고만고만하고 (아이패드도 마찬가지에요) 서로 나은 점과 못한 점을 아득바득 견주게 된 지금이야말로 애플에겐 다른 의미의 위기란 생각도 들어요. 아이패드가, 역으로 갤럭시 탭을 겨냥해 7인치 짜리를 개발한 것도 어떤 점에선 역전 아닌가요?

그런데도 내가 애플을 구입할까요? 당연하죠! 애플은 학교에서 놀고 싶은 인기 있는 친구 같거든요. 영화배우나 아이돌 가수들이 자기 아이나 조카에게 아코스 제품을 쥐어줄 거란 게 상상이 돼요? 드라마 주인공이 히타치 노트북을 두들기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난 애플 안티지만, 당신의 독점적 세계 지배에 대한 진부한 비판은 안 할래요. 당신 제품이 중국의 노동 착취 공장에서 만들어진들 어때요? 어느 누가 하루에 18시간씩 그걸 조작하길 마다하겠어요? 또 당신이 딴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비밀이 아주 많다 해도 누가뭐라 하겠어요? 반대론자들은 북한에 대해서도 비슷한 비판을 하지만, 김정일에게 직접 도전하는 이는 없잖아요? 딴 회사들이 추구하는 사이버 유토피아를 만드는 데 합류하지 않음 어때요? 당신은 헛웃음 나오도록 기막힌 제품을 디자인하느라 지구를 살릴 시간이 없잖아요. 빌 게이츠가 아무리 세계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암을 치료하는 약물을 발명한다 해도 당신보다 멋질 순 없어요. 터틀넥이 좀 땀띠스럽게 더워 보이긴 해도, 비틀스의 팬이라고도 하고….

솔직히, 애플 제품이 다른 회사 것들과 어떻게 다른지는 몰라요. 엇비슷한 다른 기계보다 상당히 비싸다는 것, 보증기간이 심히 짧다는 건 좀 알지만요. 타사 제품들의 가격이 ‘합당’하단 이유 하나로 애플 거보다 열등하다고 믿는 건 옳지 않지만, 어쨌든 나 같은 안티 때문에 이윤 차액을 맘대로 더 올리진 않을 거라 믿어요. 그나저나 남자한테는 아무튼 힘든 세상이에요. 진정한 현대의 일원이되기 위해선 불알 두 쪽이 아니라 웬만큼 돈이 필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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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