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우사의 노래

조광래 대표팀 신임감독은 한국 축구에 스페인 축구를 접목할 것이라 선언했다. 기술의 불모지라 할수있는 이 땅에서 스페인 축구가 가능할까?

바야흐로 스페인 축구 전성시대다. 압도적인 점유율과 칼날 같은 패스, 쉴 새 없는 움직임으로 세계 정상에 오르는 일은 세상 모든 감독의 꿈일 것이다.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며‘스페인 축구를 본받겠다’고 선언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물론, 조 감독의 발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조 감독은 허무맹랑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한국과 스페인은 다르다. 타고난 체형이 다르고 각국 엘리트 축구의 토양을 이룬 프로 리그의 역사와 규모에도 격차가 있다. 조 감독이 이러한 차이를 무시한 채 단순히 스페인 축구의 모방을 노린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체질개선은 금세 완성되지 않는다. 본인 임기 안에 모든 걸 완결 짓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대표팀 감독으로서 한국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하는 게 더 적절하다.

스페인 축구를 언급한 조 감독의 지향점은 빠른 속도와 패스의 강화다. 조 감독은 취임 전후 발언과 지난 두 차례의 평가전을 통해 이 두 가지를 꾸준히 강조했다. 공수 전환과 경기 전개 속도를 높이는 한편, 빠르고 공격적인 패스로 경기를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조 감독은 이미 K-리그를 통해 이 같은 철학을 구현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변변한 스타플레이어 하나 없는 경남FC를 리그 정상급 팀으로 이끈 것이다. 경남FC는 기존에 약체로 평가 받던 팀들이 선 수비 후 공격 전략으로 승점을 쌓던 것과 달리 패스 위주의 공격적이고 스피디한 경기로 강호들을 연달아 물리쳤다.

그러나 대표팀은 다르다. 한국 축구의 엘리트와 스페인 축구의 엘리트는 머리에 박힌 철학과 몸에 익힌 기술부터 같지 않다. 현 스페인 대표팀 축구의 근간은 FC바르셀로나다.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에 나선 14명 가운데 절반인 7명이 FC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출신이다. FC바르셀로나는 높은 점유율과 끊임없는 패스, 4-3-3 포메이션에 최적화된 공수 전환을 기조로 선수들을 길러낸다. 이렇게 배출된 선수들이 유럽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속도감 있는 경기를 펼치는 프리메라리가 동료들과 만나 완성한 축구가 바로 지금의 스페인 축구다. 그들과 다른 토양, 다른 문화에서 성장한 우리 선수들에게 그들의 스타일을 입히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지금 나는 한국 축구가 스페인 축구의‘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축구와 스페인 축구는 서로 다른 기반 위에 서 있다. 스페인 축구를 꿈꾼다면 그 시작은 대표팀 훈련장보다는 학교 운동장이 더 어울린다. 다행히 지금 어린 선수들과 젊은 지도자들이 땀 흘리는 현장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토너먼트보다 리그, 무리한 반복보다는 창의적 마인드가 배양될 수 있는 환경에서 유망주들이 성장하고 있다. 조광래 감독의 스페인 축구 선언은 변화된 기반 위에 새로운 한국 축구가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 평가할 만하다.
서형욱(MBC ESPN 해설위원)

아시아는 유행을 따르길 좋아하고 특히 대한민국은 더 그렇다. 따라서 조광래 감독이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된 후 스페인 축구 얘기를 꺼낸 것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향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스페인이 유로 2012예선에서 탈락하고, 독일이 환상적인 축구로 우승을 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 그렇다면 스페인 축구를 버리고 독일방식을 따를 것인가? 2014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가 우승한다면? (그렇다. 나의 바람이다.) 이번엔 다시 독일 축구를 버릴 것인가?

스페인 축구를 배우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공 점유율이 높고 빠른 패스가 장점인 스페인 축구는 보는 것만으로 환상적이다. 그러나 이는 스페인 대표팀에 이니에스타, 사비 알론소, 사비 같은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을 지키며 패스를 연결하는 플레이에 능숙하다. 스페인이 지난 몇 년간 뛰어난 경기력을 보인 이유는 창조적인, 스페인만의 방식으로 경기하는 훌륭한 선수들 때문이지 결코‘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유전자’같은 것이 아니다. 선수와 감독들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독자적인 경기 스타일을 갖추게 된 것이다.

과거를 살펴봐도 독일, 브라질, 이탈리아 등 월드컵에서 수 차례 우승한 강팀들은 모두 자신만의 스타일로 경기를 이끌며 성공했다. 결코 다른 국가의 플레이를 좆는 일은 없었다. 한국은 한국의 축구를 해야 한다. 근래 10년간 한국 축구는 국제대회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었고,좋은 지도자들 아래서‘한국 축구’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조광래 감독은 이런 자양분을 충분히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스페인 축구를 거론하며 가장 먼저 빠른 패스를 구사하는 플레이를 정착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스페인 축구에서 배워야 할 점은 공 점유율을 높이는 일이다. 화려하고 빠른 패스 능력은 나중에 연습해도 늦지 않다. 일단 선수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공을 뺏기지 않는 능력을 키운다면 조광래 감독은 그를 바탕으로 어떤 방식이든 그가 원하는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 선수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 스페인은 대표팀의 많은 선수들이 FC 바르셀로나에서 뛰며 호흡을 맞춘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이는 스페인의 세밀한 축구를 완성하는 큰 부분이다.
존 듀어든(<골닷컴> 아시아 편집장)

조광래호의 데뷔 무대였던 첫 경기, 나이지리아전에서 대표팀은 이전보다 빠르고 세밀한 패스를 이용해 기회를 창조해내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은 신임 감독의 포부와 의지에 고개를 끄덕이며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두 번째 이란과의 대결에선 첫 경기에서 보여준‘스페인 축구’와 거리가 먼 내용으로 일관하고 만다. 왜 한 경기 만에 다시 거꾸로 돌아온 걸까?

지금의 스페인 축구는 요한 크라이프로 상징되는 네덜란드 토털 풋볼의‘적자’라 할 수 있을 만큼 토털 풋볼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다. 이는 물론 지금의 스페인대표팀이 크라이프의 클럽이라 할 수 있는 FC바르셀로나를 근간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바르셀로나의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토털 풋볼을 구성하는 두 개의 기둥은 다름 아닌 압박과 점유다. 토털 풋볼은 상대에 대한 적절한 압박에서부터 출발한다. 예를 들어 최대한 높은 지역에서 상대를 압박해 공을 빼앗게 되면아군은 유리한 위치에서 공격을 재개할 수 있다. 압박으로 공을 빼앗은 이후에는 그것을 점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점유가 가능케 하는 것은 전체 선수들의 유기적인“패스&무브”다. 바르셀로나식으로 표현하자면“리시브(공을 받고), 패스(패스하고), 오퍼(볼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찾아들어가 동료가 자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다. 스페인 대표팀의 사비, 이니에스타 같은 선수가 바로 이“리시브, 패스, 오퍼”가 몸에 밴 대표적 인물이다.

대표팀이 이란전에서 실패한 것이 바로 이 압박과 점유다. 한국의 미드필드 압박은 오히려 네쿠남, 테이무리안, 누리가 버티는 이란 미드필더들에 뒤졌다. 스리백의 중앙 수비수가 미드필드 싸움에 가담해주지 않고 양 측면 미드필더들 까지도 수세적으로 내려앉으니 압박이 잘될 리 없었고, 이란의 공격 전개를 제어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공을 소유했을 때 주변 동료들의 움직임도 좋지 않았다.공을 지니지 않은 선수들의 움직임이 둔하다 보니 이란 선수들에게 둘러싸이며 볼을 빼앗기는 장면도 자주 보였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 축구에 스페인 옷을 입히고자 하는 조광래 감독의 의지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물론 우리가 현재(어쩌면 계속) 스페인 선수들에 비해 볼터치의 부드러움이나 볼을 지켜내는 개인 전술dl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토털풋볼의 기본을 차근차근 익히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축구를 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한준희(KBS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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