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겸장 양동근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지만, 생존을 약속하진 않는다. 양동근은 오랫동안 방어만 해왔다. 그리고 이제, “변했다”고 말한다.

검은 울 수트와 셔츠는 띠어리, 구두는 루이비통, 모자는 에르메스.
검은 울 수트와 셔츠는 띠어리, 구두는 루이비통, 모자는 에르메스.

요즘 당신 관련 기사 제목에 ‘사회화’가 종종 붙었다. 대놓고 ‘양동근 변했다’도 있었고.
내 입으로 얘기한다. 어제도 일간지 네 개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예전엔 기자 분들이‘양동근을 만났는데 (말이 없어) 곤혹을 치렀다’는 기사를 많이 읽었다. 어제는 다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가신 것 같다. 하하호호 즐겁게.

이유가 뭔가? 군대가 사람을 어떻게든 바꿔놓긴 하지만….
언제부턴가 인터뷰 철학이 생겼다. 어렸을 때는 받아들이길 잘못 받아들인 건지 그들이 그런 인상을 준 건지 모르겠지만, 질문들이 공격적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예의나 배려 없이 ‘막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리다고 하대하는 느낌을 받은 건가?
하대까진 아니고 막 대하는 느낌. 뭐랄까, 어렸을 때부터 단지 친근한 걸 원했던 것 같다. 이 바닥에서 어렸을 때부터 인터뷰가 익숙지 않았는데, 그럼 경험이 많은 어른이 좀 이끌어 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일말의 호의를 보여줬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거다.

그런 상처라면, 오래 묵었겠다.
이해도 했다. 아, 저 사람들도 인터뷰 하루 이틀 한 거 아닐 테고,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인터뷰는 대화 아닌가?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도 대화다. 한두 마디를 하더라도 친근하게, 재미있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최대 목표가 ‘즐거움’아닌가? 거두절미하고 그냥 ‘즐겁게 하자’ 생각하니까 어느새 대화하는 것도 편해졌다.

‘군대에서 천국을 찾았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글쎄, 듣기에 따라 어떨는지. 특히 많은 현역병들이 공감하기는 어려운 얘기 같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이렇게 사회와 더 소통하는 길을 못 찾았을 것이다. 많은 시간, 생각, 영감을 받았다. 나는 그랬다. 군대는 그런 의미다.

열한 살 때부터, 연예계에서, 어른들하고만 지내다 군대에 갔을 땐, 거기엔 분명 반가운 침묵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거기는 군대다. 처음부터 천국이었을 리가 있나? 그럴 리가.
맞다. 반가운 건 한 이십 퍼센트. 그보단 처음 직면하는 상황에 일단 적응하고, 초코파이 하나에 감사하는 날 보면서 ‘여기서 천국이구나’ 생각한 거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뜨거운 물로 샤워 한번만 해도 바랄 게 없을 때.

전에도, 당신이 욕심쟁이 같진 않았다.
‘욕심은 안 돼, 안 돼’하면서 욕심을 눌렀던 것 같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그렇게 됐다. 욕심이란 단어 자체에 반감이 있었다. 욕심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긍정적이지 않은 뜻을 가진 단어는 완전히 배제하고 살았다. 예전보다, 그런 단어들에도 더 관대해졌다.

그렇게 예민하게 날이 서 있었다면, 분노가 쌓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20대 때. 분노가 내 안을 꽉 메우고 있었다. 그걸 누른 거다.

내지르는 것보다, 누르는 게 더 힘들다.
화내지 말라는 말들이 많지 않나.

참을 인 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 같은 거? 그런 말에 어떤 영향을 받기도 하나? 좀처럼 휘둘릴 것 같지 않은 당신이?
왜 수많은 책에서 화를 내지 말라고 얘기하는 건지 스스로 알고 싶었다. ‘이유가 뭐지?’ 일단 하라는 대로 따라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화나는 상황이 생겨도 극복할 수 있는 그릇이 되려면, 일단 참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 같았다.

대책없이 누르기보단 어떻게든 자기 식대로 표출하는 게 건강한 거 아닌가? 백과사전을 보면, 분노는 생후 3개월부터 인지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뭘 좀 알게 되니까 그게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이고.
솔직해지되, 피해를 안 주는 선에서 표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욕도 금기시했었다. 요즘은 아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야 이 새끼야’하고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확, 한 방 시원하게 할 수도 있는 거다.

분노도, 욕도, 표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싸움도, 연애도 참는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방황도 할 만큼 해서 이젠 다 겪어서 자신 말고 다른 건 신경 안 써도 자연스러운.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게 신경이 쓰이니까 신경 안 쓰기 위해 발악을 했다. ‘신경 안 쓴다’는 말은, 신경 쓴다는 뜻이다.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영화도 그랬다. 당신은 냉정할 정도로 자신보단 대본과, 감독의 요구에 충실한 배우라는 걸 강조해왔다. 주어진 연기만 열심히 한다는 식으로. 이번엔 달랐겠다.
달라진 내 모습을 확인했다. 너무 재밌게 찍었다. 촬영현장에서 완전 다른 삶을 살았다. 일단 매니저 없이 혼자 다녔다. 운전도, 먹는 것도 혼자 했다.

보통 챙겨주지 않나?
(매니저가) 없었으니까. 옛날엔 다 챙겨주니까 맡겨버렸다. 세상 돌아가는 걸 몰랐다. 그래서 한번 부딪혀 본 거다. 전엔 현장 가면 대본만 보고 농담도 안 하고 혼자 떨어져서 계속 장면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제는 농담도 삑삑 하고 스태프들하고 좀 더 어울리려고도 해봤다. 술자리도 싫어해서 많이 안 어울렸는데, 한 번이라도 대화를 하려면 술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 관리도 완전 포기해버렸다. 힘들지만 술 한번 더 먹고, 관계에 더 집중했다. 전에는 시나리오 안에 있는 걸 최대한 잘 뽑아내려고 연구했는데, 이젠 시나리오에 없는 걸 연구하고 써보고 했다.

김태희 앞에서 ‘태양을 피하는 방법’ 춤을 췄던 것도 당신 생각이라 들었다.
맞다. 그런 아이디어 같은 거…. 그래서 현장이 너무 재밌었다. 아다시피 게다가 상대배우는 김태희고. 이렇게 즐거운 작업은 두 번 다시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아마 주연이었다면 그런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을 거다. 촬영 횟수가 적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 여유를. 다른 스태프들 촬영 가면 나는 숙소 바로 앞 바닷가에서 수영하고 선탠하고 놀았다. 하하. 이게 노는 건지 일하는 건지 모를 정도의 작업이었다. 복귀작인데, 긴장도 안 하고.

미안한데, ‘상대 배우는 김태희고’ 이후로는 희미하게 들렸다. 그러니까 그 얼굴을 가까이서, 입술을 맞대고 보면 어떤가?
아우라가 있다. ‘여신’이니 뭐 그런 수식어가 많다보니, 어쩔 수없이 범접할 수 없는 산이 있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이긴 하지만 여배우’ 이런 거. 그걸 깨 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래서 지금까지 친한 여배우가 없다. 현장에선 둘 다 배우니까.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으면 남자로서, 동물적으로 감사했다. 확실히 <그랑프리>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내는 데 그 친구가 자극제이자 활력소가 됐다. 그걸 무시할 순 없을 것 같다. 아, 난 진짜 태희한테 고마워해야겠다고 항상 생각했다. 이런 얘긴 아무데서도 안 한 것 같다.

‘여자복 터진 양동근’같은 기사도 유난히 많다. 한채영, 한가인, 이나영, 김태희….
산해진미가 그림의 떡이라는 건 날 두고 하는 말이다.

첫 질문에 대답할 때, 당신의 혀가 가벼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엔 말하는 법을 잘 몰랐다. 군대에서 잘 배운 거다. 육하원칙에 의거해 확실하게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배우는 연기를 하지 않나.
평소 얘기한 거 아닌가?

매번 육하원칙에 따라 보고하는 게 연습이 됐다면, 대사도 연습이 될 수 있으니까.
평생 내 말보다 대사를 많이 했다. 옛말을 너무 믿었던 게, 그동안 말이 없었던 이유 중 하나다. 입조심해라, 발 없는 말천리 간다 같은 진짜 옛날 말씀들…. 한 마디를 뱉어도 그냥 편하게 하면 되는데, 이 얘길 해도 되나 안되나를 항상 두번 세 번 곱씹어 생각하다 보니 말하기 전에 여백도 길고 대답도 짧고 그랬던 거다. 근데 군대에서 말하는 습관도 잘 들고, 또 생각이 나를 가두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생각나는 대로 막말하기로 했다. 이제 상대가 상처 받아도 일단 얘기하고 ‘미안해’그런다. 진정으로. 그러면 되는 거였다. 이렇게 쉬웠다.

고백할 땐 어떤가? 엄마나 여자한테 사랑한다고 얘기하는 편이, 그래도 미안해라고 말해야 할 때보단 더 쉽지 않나?
맞다. 엄마한테도 그런 말은 잘못했다. 하지만 군대 갔다 와서 ‘미안하다’이 말을 처음으로 해봤다.__

처음이었다고?
그런 것 같다. 일단 내가 받을 사과부터 생각하니까.

사과 받을 일이 원체 많이 생기지 않나?
삶이 그렇다.

아니, 연예계라는 곳이.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이 해를 끼치기보다 그 반대가 훨씬 많다는 거다. 연예인을 둘러싼 다른 것들이.
자기 방어하는 차원에서,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크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죽겠나. 아무도 모른다. 호소해도 안 알아준다, 그건. 그냥 혼자 잘 서 있는 수밖에 없다. 난 공격과 방어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근데, 그냥 연연하지 않고 혼자 잘 서 있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힘들다. 강해야 된다. 잡초 같이.

혼자 설 수 있었던 돌파구는 뭐였나? 힙합은 확실히 그렇게 보였다.
마음을 많이 찢었다. 사람이 뭔가 내려놓을 수 없는 게, 이렇게 내려놓기 힘든 게 있다고 생각한다. 내려놓기로 결정한다고 바로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려놓을 때는 마음을 찢었다. 그리고 그 조각을 내려놓았다. 찢지 않으면 내려놓을 수도 없다. 나한텐 그게 힘이다.

래퍼로 돌아오기 직전의 시기가 궁금했다. 세상 모든 방황과 방탕은 다 겪어봤다는 징한 느낌이 있었다.
돌아온 건 아니고, 계속 방황 중이다. 방황에 끝은 없는 것 같다. 1집 땐 한창 방황 중이었다. 그 와중에 보이는 걸 얘기한 거니까, 그렇게 느꼈을 수 있다.

이제 랩도 달라지겠다. 독기가 다 빠져서.
타협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 가사가 달라지는 거다.

왜 힙합이었나? 그게 자연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힙합은 가사를 직접 써야 되니까. 영어 랩 들어보면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계속 얘기한다. 나랑은 완전 달랐다. 나는 사전에 네, 아니오만 있는 사람인데. 1집에선 두서없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많이 지껄였다. 지금 들어보면 뭐라는 거야 싶다. 갈수록 내용이 들어가고 연계성도 생기고 그렇게 바뀌었다. 앨범이 거울 역할을 해줬다. 앨범을 들으면서 나를 보게 됐다.

영화나 드라마도 거울이었나?
예전에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지금 생각하는 영화와 드라마는 얼마나 내가 거짓말 선수였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그것도 거울이긴 하다. 연기는 다 거짓말이다. 다 거짓말. 근데 되게 의아한 건 작품을 보면 다 나 같다는 거다. 내가 할 수 없는 걸 한 건데 나 같다고. 그러니까, 내가 그 거짓말을 잘하는 거다.

어른들이 유난히 당신을 칭찬했다. 윤여정은 ‘자신의 연기가 (양동근에게) 달린다’고 말했다. 길용우, 박근형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것 같다는 식으로. 하지만 당신은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스스로의 평가가 외부와 다르면 싫지 않나? 난 아닌 것 같은데 자꾸 잘한다 잘한다 그러는 거.
아니, 일단 칭찬은 좋다. 그런 말을 들었단 건 영광이다. 그건 좀 다른 얘기인 것 같다.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 뭐 약간의 진심….

지금, 제일 열심히 하고 싶은 건 뭔가?
오락. 그저께 오락기를 샀다. 이십 대 때 오락에 빠져 있을 땐 정말 오락만 했다. 그러다 군대 전후로 안녕을 고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 계속 TV만 보고 혼자 꺼져 있고 그러니까, 정신만 있으면 좀 나가서 어울리려고 집에 텔레비전도 안 놨다. 그런데 요즘 영화 홍보하다 보니까, 또 돌아다니기가 힘들어졌다.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락기가게에 가서 살까 말까를 한 시간 고민했다. 역시나 아홉 시간을 주구장창 논스톱으로했다. GTA라고,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미션 깨는 오락이다. 어제 스케줄이 있어서 하루 못했는데, 근질근질해 죽겠는 거다.

오락을 대하는 자세엔 두 가지가 있다. 끝을 봐야 되는 사람과, 이게 어떤 오락인지 알기까지만 하는 사람.
그게, 오락이 두 가지인 거다. 어떤 오락인지 알기만 하면 싫증나는 오락이 있고 끝을 봐야되는 오락이 있다. 이 GTA는 끝을 봐야만 하는 오락이다. 어쩔 수가 없다. 중간에 끊을 수가 없다. 뭔가를 하고 싶단 느낌이 굉장히 오랜만에 왔다. 오락기를 결정하기 전까지 굉장히 무료했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흥미 없고. 그냥 떠나고 싶은데 떠날 순 없고. 영화가 끝난 후유증이었다. 그러다 결국 질렀다. 난 스스로 인색한 편이다. 남한테 해주는 건 막 돈이 숭숭 샌다. 그래서 여태까지 재미도 못 보고. 다른 사람 주긴 쉬운데 자기한테 하긴 힘든 것 같다.

배우나 가수는 평생 주는 직업 아닌가? 즐거움과 고뇌와 감동과….
다 빼줘야 한다. 도마 위에도 올라가 줘야 하고. 하하.

거절할 수도 없고, 올리는 건 언론이 알아서 올리고.
다 올라가 줘야 한다. 겸허하게.

어디선가 ‘제일 행복한 상태는 자유로운 상태일텐데,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한 걸 봤다. 그게 그러니까, 뭔가 갇혀 있다는 생각인가?
옛날엔 눈치 한번 더 보고, 생각한 번 더 하느라 스스로 갇혀 있었는데, 지금은 뭐….

아역부터 스타였으니까 세상물정 모르고 주변에서 다 해주면 오히려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더 익숙해지지 않나?
그게 어떻게 학습이 되냐 하면, 대본에 있는 것만 잘하게 학습된다. 그런데 ‘본연의 나’라는 걸 형성할 시간은 아예 없는 거다. 이런 삶 저런 삶, 남의 삶을 사니까. 일반 삶으로 돌아오면 얘는 없는 거다. 그게 익숙해져서 성인이 됐어도 어떤 작품이 끝나면 빨리 일을 해야 했다. 일을 하면 맘이 편하고 신나니까.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어수선했다. 자아가 없으니까.

그건 주말에 가족들하고 있는 게 어색해서, 일거리 들고 회사 가는 중년의 주말 아닌가. 차라리 일하는 게 행복한.
그거랑은 좀 다른 거 같기도 하고. 가정환경이 중요한데 우리 집은 너무 삭막해서 집에서 대화가 없고 하니까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거다. 그 묵혀 놨던 걸 대사로는 표현할 수 있으니까 2백, 3백 퍼센트 뿜어냈던 거다.

그 갈증이 가장 많이 해소됐던 역할은 뭐였나?
<네 멋대로 해라>에서 가장 많이 됐을 거다. 고복수 캐릭터가 어땠다기보다 그가 뭔가를 할 때 묻어 나오는 게 많이 닮았었다. 근데 뭐 그 다음엔 하기 싫은 걸 많이 해서.

영화 얘기도 할까? <그랑프리> 반응은 어떤가?
이제 다른 연기는 다 해본 거 같다. 질질 짜기도 하고 액션도 해보고. 그래서 웃음을 주고 싶었다. 즐거움. 인생 최대의 목표인, 즐거움. 돈 내고 와서 와 멋있다 이런 느낌 말고 한번이라도 더 웃었으면 좋겠다. 오죽했으면 ‘웃어요’가 OST가 되게 영화를 만들었겠나. 근데 시사회에선 빵빵 터졌다. 일단, 다행이다.

지금, 하고 싶은 배역이 있나?
드라마나 영화들이 너무 허덕이고 헤매는 갈등만 쓴다. 그런 걸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런 거 말고 갈등에 좀 의연하고 뭔가 그 다음 단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걸 하고 싶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갈등을 이겨내는 방법은 공식처럼 똑같다. 그걸 너무 힘들게 말고 위트 있게 헤쳐 나가는 걸 하고 싶다.

이젠, 인터뷰도 즐길 수 있나?
예전엔 말이 안 됐다. 일처럼 하니까. 물론 일이기도 하지만. 인터뷰를 즐겁게 할 수 있느냐 힘드냐는 ‘누구와 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옛날엔 극단적이었고 지금은 중간지점을 찾은 거다.

극단적이긴 해도, 폐가 되는 사람은 아니지 않았나?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고 끙끙 앓던 스타일.

오늘 밤엔 무슨 계획이 있나?
오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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