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전쟁

요즘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추상적인 연관성과 패턴을 찾는 재능을 타고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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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전쟁
요즘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추상적인 연관성과 패턴을 찾는 재능을 타고났을까…. 오늘 아침에도, 신디라는 여자가 내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는 메일이 왔다. 신디 크로포트나 신디 셔먼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 왜 나한테?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도 못 알아볼 거면서 진짜 마주치면 뭔 얘길 하려고? 근데, 수락한다고 마우스 몇 번 움직이면 당장 나랑 친구 먹는 거야? 이런 게 기존의 사회적 형성이나 혈족 사이의 관계를 바꾸는 참 새로운 관계야? 친구가 되면 서로 얼마나 많이 책임져야 하는데.

물론, 요즘의 사회적 평가 기준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가를 더 쳐준다. 꼭 폭풍의 바다에서도 당신 생명은 무사하다고 알려주는 보험회사를 뒤에 거느린 것 같다. 하지만 네트워킹은 변덕스럽고 감정적이라서 공동의 적과 질투가 만연한 사회를 만든다. 쟤가 네 친구였어? 걘 왜 아닌데? 네 번호로 저장된 베스트 프렌드는 누구야…? 문제는, 사회적 동물의 행동양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다른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10년 간 안정화되어 온 듯한 프렌드스터, 마이 스페이스,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사용자가 이미 아는 이들하고만 연락을 주고받게 했다. 원치 않는 친구는 차단! 어차피 핵가족도 세포조직 같은 가족이 되었다. 트위터 역시 따르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정보만 허한다. 통합적 상호적 삶 속의 관계는 엄격하기보단 상호 보완적인 공생의 형태로 바뀌었지만, 유지하지 않으면 즉시 소멸될 뿐이다.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연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래된 관계에조차 쉽게 냉담해진다. 불화나 오해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나태 때문에 사람을 잃는다. 관계를 끊는 건 일도 아니다. 공항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에서 돌고 돌던 내 가방을 겨우 찾듯이, 터질 것 같은 전화번호 속에서 가물가물해진 사람을 왜 기억해야 하는데? 370명은 3년 이상 못 봤고, 590명은 누군지도 모르는 1000명의 연락처를 왜 갖고 있어야 하나?

내가 변한 만큼 당연히 그들도 변했다. 그래도, 내게 정말 중요하다고 믿던 사람이 삭제 명단에 나를 올리는 것으로 그의 친구 목록에서 퇴출당하고 만다면, 그야말로 관계의 치사한 역습 아닌가. 왜 이런 식의 네트워크일까? 아니, 왜 이런 허구일까? 하지만 이런 관계 변화가 불합리하다거나 불리하달 수도 없다. 이 네트워크 전쟁에 뛰어들어 불길에 같이 타버리는 데는 너도 나도 예외가 없어서….

과거와 미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달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므로 오늘이 되었다. 11월과 12월 사이의 어느 날. 하지만 시간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제대로 기록할 수 없다. 우린 다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보단 옛것을 기억하고, 미래를 논하는 게 더 유익하다고 믿는 족속들이기 때문에….

미래는 기대와 두려움 속에 서식한다. 하지만, 어떤 땐 미래라는 주제 자체가 지겹다. 정말, 지금부터 수천 년이 흐른 오늘을 상상할 수 있을까? (피라미드가 만들어졌던 시간의 두 배, 알프스에서 처음 발견된 미라의 나이보다 두 배 더 긴) 10000년 뒤는 어떨까? 선조들에게서 지금이 된 미래의 의미를 상속받았다 한들, 한 치 앞도 모르고 내년이라는 임박한 미래조차 오리무중인 인생들이 나중을 생각할 여력이 있을까?

미래는 의미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의견이나 제안, 시나리오, 바늘이 움직이는 기괴한 기계에서나 드러날 뿐이다. 하지만 우린 지금 벌써 미래를 살고 있다! 무성생식, 날씨 통제, 언어의 멸종, 리얼리티 프로그램. 글로벌 정부, 행성 간 식민지화, 지각 있는 컴퓨터, 불멸…. 미래의 리스트를 쭉 적어봤으나, 그게 영화나 소설에서 전에 다 본 것들이군. 진짜 이런 역설도 없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 순간에도 과거에 머물러 있다니.

<혹성 탈출>이, 미래는 암울하다고 진작 주의를 주었건, 인구 증가 때문에 인생 참 빡빡해질 거라고 맬더스가 예측했건, 맥락은 같다. 어쨌든 지구는 망할 테니까. 당장 내일은 아닐지 모른다. 모두에겐, 올 크리스마스, 세 달 후 출시될 새 차, 막내가 장가갈 내년이 있으니. 단지 그 다음 100년이 비었을 뿐이다. 하지만 10000년 뒤에도 사람이 살까? 자식을 둔 부모라면 12010년에도 자기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 그 이후의 아이들까지 세상에 남는 쪽에 내기를 걸겠지만, 미래를 안 믿는다면, 그땐 세상이 멈춘 것에 슬퍼할 사람도 없을 텐데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데이비드 보위의 반이상향적 록을 듣는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야 할 것 같아서. 마태복음도,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했지. 확실한 건 섹스 피스톨즈의 가사처럼, 당신과 나에게 미래가 없건 있건, 달력에 나온 날짜를 그대로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2010년은 이미 먼 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Editor in Chief 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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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