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연비 자랑

‘한 번 주유로 전국일주도 가능.’ 푸조 308 MCP의 보도자료를 읽는 순간,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MCP의 연비는 6단 수동변속기보다 8퍼센트나 높다. 제어장치가 똑똑한 데다, 변속시간마저 더 짧아서다. MCP가 기어를 올려붙이거나 내리꽂는 데 걸리는 시간은 0.5~1.2초다. 스포츠 모드에선 0.4~0.8초로 줄어든다. MCP는 원가가 저렴하고 구조가 간단하다. 반면 효율은 값비싼 듀얼 클러치 변속기 못지않다. MCP의 매력은, 이처럼 허를 찌르는 반전에 있다.

여기에 1.6리터 HDi 터보 디젤 엔진을 어울렸다. 디젤 수입차 가운데 배기량이 가장 적다. 푸조의 동급 휘발유 엔진과 성능은 비슷하되 연비는 56퍼센트 이상 높다. 308 MCP는 지난해 국내에 데뷔했다. 그런데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은 올가을, 엔진을 다시 한 번 개선해 선보였다. 엔진 연소실 부품의 절반 이상을 갈아치웠다. 연료 분사 압력도 더욱 높였다. 그 결과 최고출력이 110마력에서 112마력으로 올라갔다. 최대토크도 12.5퍼센트나 치솟았다. 동시에 무게 또한 115킬로그램이나 늘었다. 이 때문인지 제로백과 최고속도는 11.3초, 시속 190킬로미터로 이전과 같다.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연비가 더 좋아졌다. 이전의 리터당 19.5킬로미터보다 8퍼센트 이상 개선됐다.

연비를 논하기 위해서는 공인연비의 실체부터 아는 게 먼저다. 공인연비는 국가에서 공인한 시험기관에서 측정한 연비다. 소비자가 각 차종의 연비를 쉽게 가늠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나라마다 측정하는 기관과 방식, 연비의 단위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자동차공해연구소, 자동차부품연구소,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 에너지기술연구소에서 측정한다. 연비를 측정할 땐 항온,항습을 유지한 시험실에서 운전보조장치를 단 차의 바퀴를 동력계의 구름판 위에 올린 뒤 주행한다. 그런데 연비는 연료 소모량이 아닌, 머플러에서 나오는 배출가스의 농도를 분석해 측정한다. 이산화탄소, 탄화수소, 총탄화수소의 단위 주행거리당 배출량을 분석해 산출한다.

공인연비 측정은 정교한 시뮬레이션이다. 하지만 차는 사람이 몬다. 운전자는 보조장치의 지시에 따라 차를 가속하고 감속하며 때론 멈춰 세운다. 수동변속기는 기어도 바꾼다. 핸들은 조작할 필요가 없다. 국가별 측정 모드에 따라 주행시간은 11~31분, 평균속도는 시속 22.7~33.6킬로미터, 최고속도는 시속 90~120킬로미터 정도다. 국내에선 197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가지의 주행 흐름을 모의한 CVS-75 모드를 쓴다. 우선 적산거리 160킬로미터 이하의 차를 섭씨 25도의 항온,항습실에 12~36시간 보관해 엔진을 완전히 식힌다. 그러곤 31분 15초 동안 가감속을 반복하고 23차례 멈춰서면서 평균시속 34.1킬로미터, 최고시속 91.2킬로미터로 총 17.85킬로미터를 주행한다.

11월 1일, 서울 성수동에서 시승차를 받았다. 연료계의 바늘은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자료에 나온 대로 서해안을 먼저 훑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월요일이어서 정체가 걱정됐다. 동선을 뒤집었다. 동해안부터 밟기로 했다. 경유지 속초는 강릉으로 바꿨다. 내비게이션으로 거리를 가늠해봤다. 부산까진 600킬로미터를 살짝 넘었다.

보도자료의 ‘전국일주’란 단어는 308 MCP 연비 테스트에 뛰어든 단초가 됐다. 호기심과 성취욕을 뿌리 끝부터 뒤흔드는 주제였다. 애써 욕심을 다독이고, 실제 상황에서의 연비를 가늠하는 데 중점을 뒀다. 핵가족의 1박 2일 여행을 가장했다. 동승자를 한 명 태우고, 배낭 두 개 분량의 짐도 실었다. 운전도 힘을 뺐다. 가속페달은 가급적 부드럽게 밟되, 연비 레이스의 필살기인 이른바 ‘깻잎 밟기’는 자제했다. 정차 때마다 시동을 끄는 하이브리드카 흉내 내기도 반칙으로 규정했다. 에어컨은 틀되 실내온도는 섭씨 23도에 맞췄다. 헤드램프와 오디오는 항상 켜기로 했다. 도로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달리되 최고시속은 130킬로미터에 못 박았다.

서울에서 3번 국도를 거쳐 곤지암 IC까지 달린 뒤 중부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호법인터체인지에서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탔다. 한적한 평일엔 공사구간이 잦았다. 차선이 줄어들 때마다 정체가 반복됐다. 원주 부근에서야 도로가 뚫렸다. 속도계 바늘이 자주 시속 130킬로미터에 걸쳤고, 이때마다 액셀에서 발을 떼야 했다. 강릉까진 ‘후다닥’ 이었다.

강릉부턴 7번 국도를 탔다. 신호등이 있지만 평균속도는 높아 연비 테스트에 적당한 코스다. 그런데 7번 국도가 변했다. 신호등이 거의 없는 데다 번듯한 갓길까지 곁들인 자동차 전용도로가 됐다. 공짜 고속도로나 다름없었다. 한편, 308 MCP의 연료계 바늘은 이제 작은 눈금 한 칸만 내려섰을 뿐이었다. 도로가 좋고 교통량이 적은 데다 ‘급’자가 빠진 운전이 반복되니 지루했다. 띄엄띄엄 이어지던 동승자와의 대화마저 어느 순간 끊겼다. 땅거미가 질 즈음, 우린 대게 축제가 한창인 영덕을 지나 경주로 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곁눈질로 살핀 정보창의 적산거리는 450킬로미터를 갓 넘었다. 경주 도심을 지나 경부고속도로에 올랐다. 두 눈에 불 밝히고 맹렬히 달리는 흐름 속에서, 308 MCP는 굳은 맹세를 잊고 종종 시속 140킬로미터의 벽마저 기웃거렸다. 가속페달을 깊숙이 밟아 공격적인 추월도 서슴지 않았다. 휘영청 밝은 부산 톨게이트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비로소 이성을 되찾았다. 다음 날 아침엔 중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부산에서 목포를 거쳐 서울로 되돌아가는 거리는 650킬로미터 이상이었다. 정보창의 주행 가능 거리는 600킬로미터였다. 공인연비 이상의 주행 거리만 나와 주면 전국일주도 허황된 꿈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여정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308 MCP는 끝끝내 공인연비를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전국일주는 포기했다. 바득바득 달리다 서해대교에서 최후를 맞느니, 지름길로 종단해 귀경의 기쁨이라도 맛볼 심산이었다. 내비게이션에 따라, 부산~대구 민자고속도로와 중부내륙, 중부고속도로를 누볐다. 이튿날 오후 서울에 들어서면서, 한반도 종단 여정은 막을 내렸다. 기대했던 전국일주의 실패로 잔뜩 풀이 죽었다.

그런데 계기판의 정보창을 확인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틀간의 주행 거리는 1007.6킬로미터였다. 그럼에도 연료계 바늘은 작은 눈금 하나를 남겼다. 주행 가능 거리는 140킬로미터, 평균 연비는 리터당 18.1킬로미터였다. 웬만한 핵가족의 총중량과 필적할 남자 둘의 몸무게와 이성보다 본능이 앞섰던 아마추어적 운전 행태를 감안하면 긍정적인 결과였다. 이제 말할 수 있다. 푸조 308 MCP과 함께하는 전국 연비 자랑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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