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중형

측광분할 개수 2016개. 퍼즐이면 맞추다 포기하겠지만, 카메라는 이야기가 다르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그게 자선단체지 회사냐고들 말한다. 누가 말했는지는 몰라도, 원저작권자를 따져볼 필요는 없다. ‘생일 축하곡’처럼 모두 알고, 모두 쓴다. 저작권료를 지불하기에, 선량하지 않은 회사란 너무 관습적이어서 효력이 없다. 신제품은 그중에서도 회사의 선량하지 않은 잔머리를 극대화한 최전선이다. 신제품에는 더 나은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에 부응하기 보단, 선택지를 하나 더 늘려 소비자의 욕구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차원이 있다. 이전과 별반 다를 것 없어도 가격과 기능에서 얄미운 터울을 만들고 나면, 소비자들은 다른 회사 제품과 비교해보고 같은 회사의 다른 라인업도 두루 살펴가며 수수께끼를 푼다.

이례적으로, D7000은 니콘이 낸 아주 쉬운 수수께끼다. 올해 캐논이 550D로 보급기의 혁신을 도모했을 때는 ‘하극상’이란 말로 충분했을 테지만, 당시를 상회하는 격렬한 반응이다. ‘DSLR의 준중형’이란 말이 들려온다. 배기량을 기준으로 하는 자동차 분류법에서 가져온 그 말이 맞다. 터무니없지 않다. 니콘에서는 ‘보급기’라고 수식하지만, D90이나 D3100과 비교하는 것보단 중급기인 D300S와 비교하는 쪽이 좀 더 격에 맞아 보이는 하드웨어다.

단순히 이미지 프로세서와 ISO 감도만 보아도, D300S보다 높은 1620만 화소의 이미지프로세서와 ISO 3200(최대 ISO는 6400)까지는 무난한, 고감도 저노이즈를 지녔다. 니콘에서 언제나 아쉬운 부분이 동영상이었지만, 이 역시 1920×1080, 초당 24프레임으로 D7000이 더 뛰어나게 달성한다. 3인치 92만 화소의 라이브뷰 LCD는 D300S를 이어받았다고 보는 쪽이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D7000의 ‘결정구’는 노출계 센서다. D7000의 2016픽셀 RGB 센서는 D300S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능력이다. 보다 정확한 초점과 노출, 화이트 밸런스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2016개의 측광분할 개수를 보여준다는 뜻이다. 캐논 최고 기종의 측광분할 개수가 60개 수준임을 떠올린다면, 정말 괴물 같은 수치다. 스팟측광 만큼 활용성이 크지는 않았지만, 2016개 면의 평균으로 내는 노출은 과연 ‘칼노출’이라는 니콘의 명성에 걸맞다.

D7000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캐논 60D보다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색감과 정확한 초점과 노출에 대한 재발견도 지지를 얻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수수께끼 풀이를 귀찮아한다는 점도 주효하다. ‘준중형’ ‘하극상’ 이란 말처럼 ‘이전 제품들보다 훨씬 뛰어나고, 손해 보지 않는 장사다’란 인상이 구매력을 확실하게 붙잡은 것이다. 그러니까 니콘이 낸 수수께끼는 실제 난이도도 쉬웠지만, 보기에도 쉬운 수수께끼였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처럼 순탄하게 D7000의 성공담이 마무리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동영상 불량화소 문제가 한 사용자에 의해 제기됐고,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동영상 라이브뷰 시에 희고 붉은 점이 화면에 나타난다는 것인데, 실제로 많은 사용자가 동조하는 의혹이어서 간과할 일은 아닌 듯싶다. 누구도 회사에게 자선단체가 되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상식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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