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르겐 텔러와의 인터뷰

유르겐 텔러를 알고 세상의 천재는 모두 독일 남자, 괴짜에다 변태라는 생각을 했다. 아인슈타인, 칼 라거펠트, 헬무트 뉴튼으로 이어진 추론은 유르겐 텔러에 이르러 확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유르겐 텔러는 군청색 마르지엘라 재킷과 목선이 둥근 회색 티셔츠, 두툼한 소재로 만든 진회색 트레이닝 팬츠 차림이었다. 분홍색과 하늘색이 고루 섞인 가로줄무늬 양말과 아식스 러닝화를 신고, 목걸이와 반지와 시계를 하나씩 하고 있었는데 모두 적당히 낡고 고상한 것들이어서, 한눈에도 안목이 좋은 사람이란 게 보였다. 약속 시간을 조금 넘겨서 갤러리에 도착한 그는 룸 안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모닝” 이라고 아침 인사를 했는데 ‘모’와 ‘닝’ 사이에는 짧지만 정확한 간격이 있었다. 그렇게 딱 떨어지는 모닝은 처음이었다. 차가 막혀서 제 시간에 도착 못했다는 사과를 하면서 그는 테이블을 둘러싼 네 개의 의자 중 호랑이 쿠션이 놓인 쪽에 풀썩 앉았다. 의자에 앉느라 한 번 돌려 묶어서 재킷 안으로 집어 넣은 머플러가 삐져나왔는데, 작은 꽃이 수놓인 검정 실크 머플러는 몇 해 전에 나온 드리스 반 노튼 것이었다. 프린지가 달린 실크 머플러를 한 유르겐 텔러라니, 상상도 못했다. 그는 종종 찍는 셀프 포트레이트 속의 부루퉁한 남자보다 훨씬 젊고 날씬하고 세련돼 보였으며, 결정적으로 수줍고 상냥했다. 배불뚝이에 수세미 같은 머리, 더러운 청바지와 운동화를 걸치고 줄곧 독한 담배를 피워댈 거라는 예상은 틀렸다. 다만, 파랗다 못해 시린 눈 색깔은 익히 보던 대로,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당신이 옷을 너무 잘 입어서 놀랐다.
진짜? 우리가 어제 만났어야 했다. 어제는 훨씬 잘 입었다. 오늘 내가 뭘 잘했지?

‘밸런스’가 좋다. 스타일이 뭔지 아는 남자만 이런 식으로 입을 수 있다. 패션을 좋아하나?
물론. 돈이 많이 오가고 규모가 큰 일이니까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진지해진다. 하지만 패션은 즐거운 일상이다. 내겐 안감에 레오퍼드 무늬가 있는 드리스 반 노튼 검정 롱코트가 있는데 그걸 입을 때마다 내 자신이 아름답고 우아해진 기분이 든다. 저녁 약속에 가려고 한껏 꾸미는 여자는 또 얼마나 사랑스럽나. 그 옆에서 나도 덩달아 좋은 타이를 골라 맨다. 그런 매일의 기분들이 패션의 아름다운 기능이다. 패션 일을 하면서 좋은 기회도 많이 얻었다. 일을 시작할 무렵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브랜드 광고와 잡지 화보를 찍으면서 내가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알게 됐다. 패션이 나와 사람들을 잇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사실 당신 전에는 누구도 광고 사진을 그렇게 찍지 않았다.
내가 찍는 광고 사진이 어떤데?

즉흥적으로, 엉뚱하게, 마음대로. 셋 다 아니다.
클라이언트와 일할 땐 목적을 먼저 생각한다.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건지, 제품을 보여주기 위한 건지. 그걸 먼저 정하고 그 다음 과정도 다 상의한다. 내키는 대로 멋대로 찍는 게 아니다. 하지만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고, 브랜드에 맞는 방식을 내가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마크 제이콥스와 일할 땐 누구를 찍을 지 상의하고 피비 파일로와 일할 땐 어떻게 찍을 지 궁리한다. 이번 셀린느 광고는 슈퍼모델이나 유명인이 아닌 옷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옷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게 제일 중요했으니까 어떤 컷은 머리가 뚝 잘리거나 발목이 댕강 잘리기도 했다. 다들 왜 그랬냐고 묻지만, 의도는 없었다. 내 작업의 대부분은 협업이다. 충분히 상의하고 함께 결정한다.

마크 제이콥스 광고에서 늘 논란이 되는 건 모델이다. 하모니 코린과 샬롯 램플링, 킴 고든은 당신 생각인가 마크의 결정인가?
보통은 내가 먼저 얘기한다. 샬롬 램플링과 로니 혼, 하모니 코린과 사만다 모튼은 내가 제안했고 신디 셔먼, 킴 고든, 소닉 유스는 마크가 먼저 생각해냈다. 우리 둘이 좋아하는 어떤 그룹 같은 게 있다. 대체로 일치하지만 의견이 다를 때도 있다. 이 사람 어때, 하고 둘 중 하나가 말했을 때 굉장히 별론데, 해도 서로 화는 안 낸다. 캠페인의 모델은 그 계절의 컬렉션 분위기에 누가 제일 맞나를 기준으로 정한다. 마크가 빅토리아 베컴 얘기를 했을 때 오 마이 갓, 소리를 질렀다. 좋아서 그랬다. 난 빅토리아는 생각 못했었다.

그런 기세등등한 여자가 순순히 봉투 안으로 기어들어갈 줄 몰랐다. 하긴, 뷔욕이 오징어 먹물 칠갑을 하기도 했으니까.
뷔욕의 사진은 미국 <보그> 촬영 때 찍은 거다. 촬영지가 베니스였고 거긴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이 널렸다. 이건 딴 얘기지만 이태리 음식은 이태리 식당 말고 진짜 이태리에서 먹어야 된다. 어쨌거나, 베니스에 왔으니 그걸 티 내려고 곤돌라에 타는 건 싫었다. 함께 파스타를 먹는데 뷔욕이 오징어 먹물이 든 걸 시켰고 그걸 먹느라 얼굴에 검정이 튀고 이는 새까맣게 물들었다. 미친 것 같으면서도 멋졌다. 그래서 그대로 한 번 찍어보자고 설득했다. 신나게 찍었으니 당연히 재미있는 사진이 나왔다. 아주 마음에 든다.

수레에 실린 케이트 모스는 어떻게 된 건가?
케이트 모스가 시골집으로 날 초대해서 놀러 갔었다. 집 주변을 둘러보니 수레가 덩그러니 있었다.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여기저기 끌려 다니는 그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찍고 싶었다. 그래서 수레에 태웠다. 힘없이 수레에 실려 끌려가는 걸 표현하고 싶었는데, 찍고 보니 이게 또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 컷을 이번 전시 포스터로 썼다.

샬롯 램플링이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전시실에서 발가벗은 것도,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벗은 것도 모자라 다리를 슬쩍 벌린 것도, 다 믿을 수 없다. 사람들은 당신이 원하면 그렇게 뭐든 다 해주나?
난 모든 걸 다 얘기한다. 그게 누구건 미심쩍어하면서 얼렁뚱땅 찍히게는 안 한다. 왜 그런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면, 그렇게들은 못할 거다. 그래서 사람을 찍을 땐 촬영 전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영문도 모르고 봉투에 들어가게는 안 한다.

어떤 사람에겐 이유고 명분이고 상관없이, 절대로 안 하는 행동이 있다. 로니 혼이 가슴을 드러낸 사진은 그래서 충격이었다.
로니는 휘트니 미술관과 테이트 모던에서 회고전을 열 정도로 훌륭한 작가지만 자신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늘 남자 옷을 입고 머리도 짧게 자르는 식으로 자신의 정체성만을 강조할 뿐, 절대로 몸은 내보이지 않는다. 그런 이미지를 그대로 살린 사진을 몇 년 전 마크 제이콥스의 남성복 광고에 쓴 적이 있다. 남자 옷을 입고 맥주잔을 들었으니, 그때는 모든 게 자연스럽고 흔쾌했다. 얼마 후 <더블유>에 로니의 인터뷰가 실리게 되자, 로니는 사진가로 나를 지목했다. 그녀의 아파트에서 촬영을 하기로 하고 찾아갔다. 우리는 사진 찍을 준비는 하지도 않고 두 시간 동안 떠들기만 했다. 술도 굉장히 많이 마셨다. 줄곧 그녀의 가슴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선지 꽤 많이 긴장했다. 다른 이유 없이, 그녀가 아름다운 여자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하필 그날이 내 전시 오프닝이었고 여섯 시까지 갤러리로 가야 했는데, 한 컷도 못 찍은 채로 네 시 반이 됐다. 결국 내가 그녀에게 셔츠 단추를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완성된 사진에 관해서는 그녀도 나도 만족했다. 로니와 내가 서로를 몰랐다면, 그리고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면 못했을 일이다. 요즘도 로니와 나는 자주 만나 수다를 떤다. 주로 여자 얘기를 한다. 그녀도 나도 여자를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