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여행 리스트 60

바야흐로 여름이 온다. 생각보다 늘 앞서 오는 계절, 올여름은 또 어떠려는지. 일단 60가지 여행 계획을 세운다.

여럿이 뗏목을 탄다. 서귀포 쇠소깍.

서귀포 쇠소깍에서 여럿이 뗏목을 탄다. 제주도엔 재밌게 들리는 지명이 많은데, 쇠소깍이야말로 그렇다.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지점에 조용히 운하처럼 파고드는 곳. 커다란 뗏목에 정원이 차면, 노젓는 사공 대신 줄을 당기는 힘으로 뗏목이 흘러간다.  왠지 그 속도와 풍경은 뗏목 밑에서 악어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을 만든다. 제주도는 겪을수록 기이한 곳이다.

태백으로 간다. 이왕이면 싸리재를 넘는 코스가 좋다. 고갯마루 터널을 빠져나온 뒤 차창을 열면, 과연 완전히 다른 공기가 들이닥친다. 태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도시이고, 여름 평균기온은 섭씨 26도다.(매년 조금씩 상승 중이라지만) 유난히 더위를 타는 지경이라면 ‘살 것 같다’ 소리가 절로 나올 테다. ‘추운’ 용연동굴에 갔다 나와서 질 좋은 태백 한우를 굽는 식당에 가면, 연탄불이 되려 따뜻할지도 모른다. 태성실비식당 033-552- 5287

해질 무렵 전주 거리에 나가 맥주를 마신다. 통영에 ‘다찌’가 있다면, 전주엔 ‘가맥’이라는 재밌는  술문화가 있다. 가맥은 ‘가게+맥주’라는 뜻인데, 오가며 가게에 앉아 맥주 한잔 하던 것이 아예 장르가 되었달까? 몇몇 집은 유명세를 타서 줄을 서기도 하는데, 연탄불에 구워 각각 ‘특제’ 소스에 찍어 먹는 전일수퍼의 갑오징어구이와 초원편의점의 명태포구이는 거의 맥주 잡는 귀신급이다. 전일수퍼 063-284-0793 초원편의점 063-287-1763

유월이 지나면서 가리왕산 장전계곡 이끼는 빼곡하게 자란다. 가랑비 끝자락 아침 일찍 계곡으로 들어서면, 글자 그대로 원시적인 풍경이 일순간 조여온다. 검은 바위마다 들어찬 이끼 그리고 도망치듯 흐르는 계곡물, 들여다보면 헤엄치는 열목어. 정선읍내로 나가 후루룩 장칼국수 한 그릇 하고, 뮤직아트에 들러 옛 가수의 음반을 산다. 정선면옥 033-563-0240 뮤직아트 033-563-0709

삼척에 있는 호산비치호텔을 예약한다. 우선 호텔 프런트에서 전화를 받으면 다행이다. LNG 생산기지 예정 부지라서 언제 헐릴지 모르는 형편이라서다. 전화를 받는다면, 기쁜 마음으로 방을 예약한다. 동쪽으로 난 큰 창을 열면 참한 소나무숲이 내려다보인다. 그러고는 곧장 바다. 밤이면 머리맡에서 파도가 우르릉쾅쾅 몰아친다. 그런데도 이보다 조용할 수 없다. 호산비치호텔 033-576-1001

무주로 가서 건축가 고 정기용 선생의 공간에 들어가 본다. 한길의 버스 정류소부터 등나무 그늘이 시원한 운동장이며 “마을회관은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하나 짓지” 하는 동네 주민의 말로부터 완성된 목욕탕 딸린 마을회관까지. 무주엔 선생의 역작인 무주프로젝트가 편안하게도 서 있다. 무주는 지대가 높아 평지보다 시원하니 있는 힘껏 페달을 밟는 자전거 여행도 좋다.

부산에서 빈티지 옷가게를 순례한다. 일본과 가깝다는 이유에서, 부산은 오래전부터 빈티지 패션의 메카였다. 빈티지에 대한 젊은이들의 선호가 번지면서 인터넷 사이트가 개벽하듯 늘어났는데  거점은 거진 부산이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겸하는 가게들이 있어서, 직접 만져보고 구입할 수 있다. 간 김에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도 보물찾기를 해본다. 얼마 전, 브루스 웨버의 80년대 사진집이 책장 한쪽에 꽂혀 있는 걸 목격한 바, 보물찾기는 계속된다. 소수 607 www.sosu607.co.kr

군부대를 찾아간다. 그쪽을 향해선 소변도 보지 않을 거라던 다짐이 어느새 추억이 되고 나면, 슬그머니 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정작 가장 들여다보고 싶은 내무실을 들어가 보기 어렵겠지만, 진지공사 때 어깨에 타이어를 네 개씩 끼고 오르던 3백 고지라든지, 60킬로미터 유격 복귀행군을 했던 고갯길이라든지, 외박 때면 늘 잡지를 샀던 서점 등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한편 대표적인 신병훈련소가 있는 논산 연무대 소룡리 곳곳엔 뜬금없이 초코파이가 상자째 놓여 있기도 하다는데, 누가 그러는지 제대한 남자라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우애는 제대 후에도, 예비군을 지나 민방위가 무색하도록 계속된다.

뙤약볕만 피해서 남한강으로 돌을 주우러 간다. 수석이 취미인 이들에게 남한강은 최후의 성지. 탐석하기 좋은 지점은 상류의 삼합리, 중류의 강천리, 하류의 가산리 등이다. 장마가 끝나고 한바탕 뒤집어진 강에서 어떤 녀석이 ‘날 좀 보소’ 뒹굴고 있을지, 야무지게 빛나는 오석 하나를 품어오는 꿈을 미리 꿔도 좋겠다.

고창 수박 축제에 참여한다. 고창군 대산면.

고창 수박 축제에 참여한다. 고창군 대산면에서는 해마다 수박 축제가 열린다. 가장 큰 수박 뽑기, 수박 들고 달리기, 수박 빨리 먹기 같은 유쾌한 행사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연이어 펼쳐진다. 구경만 해도 푸짐하고 재밌지만, 직접 참가하는 것도 좋겠다. 혹시라도 순위권에 든다면 두 손으로 안기도 버거운 수박을 덤으로 받을 수 있다. 고창 수박은 ‘황토배기G’라는 고유한 브랜드를 꾸리면서 더욱 상품 가치를 높이는 중이다. 냉장고에서 꺼낸 수박에 칼을 대자마자 쩍쩍 갈라지는 소리야말로 더위를 썩 물렀게 한다. 그걸 한껏 베어물고 씨를 툽툽 뱉는 맛.

논산시 연산면에서 오골계 백숙을 먹는다. 오엑스 퀴즈. 오골계는 살도 검다? 엑스. 오골계는 비싸다? 오. 오골계의 검정 깃털은 매우 아름답다? 오.

김제에서 지평선을 향해 걷는다. 김제평야에 서면 과연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칫하면 공간감을 잃기 십상이다. 석양에, 수북히 자란 벼 사이로 서쪽을 향해 걷다 보면 얼굴 가득 햇살이 스민다. 피부엔 어떨는지 몰라도, 마음엔 그렇게 이로울 수 없다. 만경읍 지평선호프에서 얼음장 같은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

태안 신두리 해변에서 축구시합을 한다. 힘껏 달려도 빠지지 않는 판판한 모래가 축구장보다 넓다. 남자는 가끔 강아지만큼 단순해서, 공 하나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동물이 된다. 가끔 비키니걸이 달아난 공을 집어 던져주기도 한다.

무형문화재 선생님을 찾아 뵙는다. 어디든 행선지를 정했다면 그 고장에 무형문화재가 있는지 검색해본다. 대부분의 무형문화재들은 외롭게 작업한다. 그토록 소중한 작업이 이렇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그건 결국 우리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반성으로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통영에서 뵌 소목장 조용호 선생님도 전주에서 뵌 선자장 조충익 선생님도 당신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참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그 시간이 얼마나 ‘교육적일 수’ 있는지는 스스로 경험해보면 안다.

서핑 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한국에서도 서핑이 가능해?” 묻는 사람이 많지만, 해운대든 강원도 어디든 생에 한 번뿐이라는 그 파도를 찾아다니는 서퍼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서핑 사진을 찍는 동안 파도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느껴질 것이다. 강원도 양양군에 문을 연 가게 서퍼스나 서울과 부산에 있는 안티도트, 국내 최초로 서핑보드를 만드는 간다서프 같은 곳에서 힌트를 얻어도 좋겠다. 서퍼스 www.surfers.co.kr  간다서프 www.gandasurf.com

7번 국도를 따라가다 아무 항구에나 들른다. 현지에 가보면 ‘자연산’이라는 말은 오히려 의심 많은 서울 사람이 쓰는 괜한 소리 같다. 속초 동명항, 삼척 임원항, 울진 강구항 같은 곳엔 그날그날 배에서 올라온 온갖 것들이 있다. 동명항에서 털게와 아귀, 임원항에서 새끼 고등어회 한 점, 강구항에서 박달대게랑 한치랑. 알뜰한 조합.

최고의 콩국수집을 수소문한다. 체험한바, 내로라하는 냉면집은 거진 서울에 몰려 있다. 하지만 콩국수는 좀 더 개척과 발견이 필요한 분야다. ‘진주’로 시작하는 서울의 유명한 콩국수집 두 곳에서 이미 만족했다면 굳이 나설 필요까진 없겠지만 말이다. 직접 콩을 불려서 믹서에 갈아보는 것도 좋겠다. 이땐 국수가 더 중요하다. 경상도권을 꽉 잡고 있는 구포국수처럼 콩국수용 국수가 따로 나오는 곳도 있다.

크리스털 와인잔을 챙긴다. 어디라도 좋다. 함께할 수 있는 둘만의 곳이라면, 기꺼이 크리스털 와인잔에 와인을 따른다. 종이컵으로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극치가 있다.

고향 지도를 그린다. 은평구 녹번동이든, 익산시 망성면이든 고향은 편안한 곳이다. 그리고 마음 같지 않은 곳이다. 기억은 가지런한데, 모습은 자꾸 변한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향 지도를 그려본다. 등굣길을 중심으로 그려도 좋고, 어렸을 적 기지로 삼았던 공터를 기준으로 시작해도 좋다. 어디에도 없는 아주 사적인 지도를 그린다.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역사다.

의령에서 뜨거운 걸 먹는다. 그리고 차가운 걸 또 먹는다. 마지막으로 달큰하게 입가심 한다. 의령에 가면 먹어야 하는 세 가지가 있는데, 뜨끈뜨끈한 쇠고기 국밥, 속 시원한 메밀국수, 그리고 쫄깃한 망개떡이다. 종로식당에서 뻘건 쇠고깃국에 흰 쌀밥 한 주걱을 텀벙 말아 먹고, 제일소바에서 장조림을 얹은 시원한 메밀국수를 먹고, 남산방앗간에서 망개떡이 나오길 기다린다. 모두 5분 거리에 있다. 종로식당 055-573-2785 제일소바 055-572-3863 남산떡방앗간 055-572-2422

굴 속에 들어갔다 나온다. 환선굴과 대금굴이 있는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는 보존 상태가 뛰어나고 서식하는 동물도 다양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신비스런 풍경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건 어쩌면 다행이 아닐까? 그런가 하면 유네스코가 지정한 자연유산인 제주도 거문오름 지대에도 깊은 동굴이 있다. 동굴은 뭘까, 거기서 사는 생명은?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는 게 있다. 지구는.

방학 중인 학교 운동장에 들어가 본다. 봉화군 분천초등학교.

시골 학교에 들어가 본다. 국도와 지방도를 달리다 보면, 작은 학교를 만나곤 한다. 학교엔 학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있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세경이(신세경)가 학교에서만 나는 냄새가 있다고 말했을 때 같은 그런. 이순신 동상, 유관순 동상, 신사임당 동상, 독서하는 소녀상, 둥글둥글 깎은 향나무, 멈춘 분수대, 배웠던 동요들.

이른바 ‘홍상수 모텔 투어’를 떠난다. 태안 노을빛은혜 펜션에서 <해변의 여인>을 보거나, 통영 나폴리 모텔에서 <하하하>를 보거나 하는 하릴없는 영화 여행이다. 한편 <생활의 발견>은 춘천 에덴파크 모텔과 경주 콩코드 호텔에서 각각 두 번 보는 것도 괜찮다. 태안 신두리 해변 나무 세 그루 앞에서 절하기, 통영 호동식당에서 졸복국 먹기, 경주역 광장에서 사루비아 따먹기는 덤이다. 이런 것까지 얘기해야 되나 싶어, 모텔 전화번호는 생략한다. 영화를 함께 볼 파트너는 현지에서 만난다.

서강대교 남단 밑에 돗자리를 깐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를 읽어도 그만, 라디오로 <싱글벙글쇼>를 듣다가 낮잠을 자도 그만이다. 생각보다 피서객이 많은 곳이므로 일찌감치 명당을 차지하는 게 중요하다.

농부를 만나러 간다. 마트에서 포도를 한 상자 샀는데, 그 맛이 참 좋았다면, 상자에 적힌 농부의 전화번호로 감사인사를 해도 좋을 것이다. 혹은 아예 그 포도가 어떤 나무에서 열린 건지, 어떤 곳에서 자란 건지 찾아가 확인해도 좋을 것이다. 쉽게 쉽게 먹는 파 한 뿌리에도 농부의 정성은 보름달처럼 차 있다. 그의 여문 손을 잡아보는 일, 감사하는 마음. 더없이 좋은 일이다.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배운다. 그걸 체험하는 데 장터 만한 곳도 없을 것이다. 마산 다르고 울산 다른 경상도 사투리의 섬세함부터, 일단 눙치듯 메기고 받는 전라도 사투리의 끈기, 오히려 가장 화끈할지 모르는 충청도 사투리의 반격, 들을수록 종잡을 수 없는 강원도 사투리의 리듬, 이슬람 글자보다 생소한 제주도 사투리와 여러 가지가 뒤섞여 더욱 아리송한 충청북도 사투리. 하루아침에 사투리가 사라질 일도 없지만,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외국인에게 영어를 배우듯 경상도 아저씨에게 사투리를 배우는 학원이 생기면 어떨까. 폭삭 망하려나.

닭강정집 앞에 줄을 선다. 속초 중앙시장에 있는 만석닭강정과 인천 신포시장에 있는 신포닭강정은 닭강정계의 양대 산맥이다. 두 집 모두 기다리는 줄이 산맥처럼 뻗어 있다. 양념통닭과 뭐가 다르냐 물으신다면, 너무 달라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정신없지만 시간이 흘러도 누지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하도록 너무 다르다고 답한다. 과연 길게 줄을 서도 아깝지 않은 맛. 그런데 속초 만석닭강정은 택배로도 주문이 가능하다. 김이 잘 빠져나가도록 만든 특수한 상자에 배달된 것을 먹으면, 식어야 더 맛있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신포닭강정 032-762-5800 만석닭강정 033-632-4084

통영에서 연을 사서 아무 데서나 날린다. 욕지도에서도 날리고, 금강하구둑에서도 날리고 한강에서도 날린다. 연을 날리면 숨을 크게 쉬게 되고, 모든 걸 잊게 된다. 그런데 통영 전통연을 보고 뚱딴지 같은 생각을 했다. 이걸 혹시 마르지엘라가 디자인한 게 아닐까? 임진왜란 때 생겨난 신호체계라지만, 그게 하필 너무 ‘모던한’ 디자인이라 눈물이 핑 돌만큼 놀라고 만다. 통영전통공예관 055-645-3266 

서천군 한산면에서 이것저것 산다. 모든 게 변하니까 고향도 변한다. 어쩔 수 없이. 머물렀으면 하는 것들은 야속하리만치 빠르게 변해버린다. 어느 날 쳐다본 어머니 얼굴에서 익히 알고 있던 그 얼굴보다 훨씬 늙으신 모습을 뵙는 것과 같다. 그래도 서천군 한산면은 조금쯤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곳이다. 낙후되어서가 아니라 단정하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예를 들어 한산초등학교 앞엔 함석집이 있다. 물조리개며 연통이며 풍향계에 쓰레받기까지 간판도 없는 집에서 여전히 쓸모 있고 참한 물건들을 만들어 판다. 얼마 전부턴 ‘한다韓多 공방’이 문을 열었다. 무형문화재가 만든 공작선, 3대째 내려오는 대장간에서 만든 농기구, 그 유명한 한산 모시, 짚풀로 만든 아름다움 물건들, 천연비누와 밀랍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전통 공예를 소개하고 사고파는 가장 멋진 예로서, ‘한다’는 참 아름다운 프로젝트다.

바다로 멀리 걸어나간다. 제주 김녕해수욕장.

제주도 김녕해수욕장 파라솔 밑에서 두꺼운 책을 읽는다. 대규모 함덕해수욕장이 가까이에 있어선지, 김녕해수욕장은 상대적으로 한적하다. 2010년 시세로 1만원을 내면 파라솔과 눕는 의자를 빌릴 수 있는데, 바람도 파도도 모두 잔잔해서 책을 읽기에 좋다. 하루만에 두꺼운 책의 끝장을 넘길 수도 있다. 남춘식당에서 사온 고기김밥을 집어 먹으며 사이다를 마시면 금상첨화. 그리고 저녁 무렵이면 해변 저 멀리로 초승달 모양의 육지가 드러난다. 바다로 멀리 걸어나간다. 남춘식당 064-702-2588

홍성군 결성면 읍내 사거리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어쩌면 꼭 있어야 할 것만 저렇게 골라서 있을까. 경찰서, 다방, 중국집, 슈퍼마켓, 면사무소, 학교, 가로수, 구멍가게, 콜택시 연락소…. 초등학생이 ‘우리동네’라는 제목으로 그린 크레파스 그림 같다. 뭔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버려지지도 않은 지조. 농사짓고 살던 사람들의 반듯한 마음씀이 여전히 읍내 사거리 풍경에 고여 있다. 인발루라는 중국집의 푸짐한 짬뽕과 결성칼국수의 칼칼한 충청도식 칼국수는 맛집 대열에서도 손색이 없다. 인발루 041-642-1725 결성칼국수 041-642-8073

막걸리 양조장에서 방금 나온 막걸리를 마셔본다. 논에 물이 찰 때면 뱃속에 막걸리도 채워야 하는 법이라고 했다. 경기도 양평에 가면 버드나무 한 그루가 떡하니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지평막걸리 양조장이 있다. 괴산군 덕산면에 가면 양조장 건물 자체가 문화재인 덕산막걸리 양조장이 있다. 신태인에 가면 태인막걸리가 있고, 단양 대강면에 가면 대강막걸리가 있다. 부산이라면 금정산성을 올라가 금정산성막걸리를 만난다. 술에 취하고 술에서 깨고.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하면 여행 시간이 곱절로 는다. 하지만 여흥은 더 할 나위 없이 커진다.

전라도에서 할머니 세 분을 차례로 만난다. 정읍 충남집에서 쑥국을 끓이는 서금옥 할머니, 영암 어란의 집에서 어란을 만드는 김광자 할머니, 진도 읍내에서 홍주를 내리는 허화자 할머니. 각자의 영역에서 유일무이 최고의 자리에 계신 우리가 마땅히 기억하고 모셔야만 하는 어른들이다. 정읍 충남집 쑥국과 영암 어란의 집 어란과 진도 홍주를 2011년 전라도를 대표하는 맛이라고 하면 어떨까. 문득 세 분이 함께 계신 자리가 어떤 풍경일지 상상하니 그저 미소가 생긴다. 정읍 충남집063-531-8482  영암 어란의 집 061-473-3163 진도 홍주(허화자 할머니) 061-543-0463

가랑비 오는 날 경주 오릉을 산책한다. 비 오는 날 장화를 신으면 산책의 무드는 그만 깨지고 만다. 비오는 날일수록 구두를 신고 싶다면, 겉멋이 구두에 사과해야 하는 일일까? 경주 오릉엔 범절을 갖춘 모양으로 크게 자란 나무가 있고, 바닥은 배수가 빨라 웅덩이 하나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둥그런 능이 있다. 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고개를 돌리면 능은 내내 그 모양 그대로다. 다만 구두가 흠뻑 젖었을 것이다. 그대로의 멋이 있다.

갈 때 가더라도 구룡포 철규분식에 잠시 들러 찐빵 하나 먹고 간다. 막상 하나만 먹진 못 할 것이다. 이천원에 여섯 개, 단팥죽을 소스처럼 뿌려 먹으면 그게 또 맛있어서 몇 개 더.  구룡포초등학교 앞에서 50년째 찐빵을 파는 맛있는 가게다. 철규분식 054-276-3215 

선암사에서 여름꽃을 그린다. 선암사는 봄이 절정이라 한다. 6백 년 된 선암매가 6백 년째 새로운 꽃을 피우니 과연 그렇다. 하지만 그건 여름 선암사를 모르는 소리가 아닐는지. 선암사가 멋을 풍기는 이유는, 덧칠하지 않은 단청처럼 두고두고 보는 멋 때문이다. 화초들이 자신의 기품을 다하는 6월, 비라도 내린다면 팔손이와 파초는 얼마나 크게 싱그러울는지, 수국과 불두화는 아직도 우리를 구분하지 못하겠느냐며 갸웃거릴지, 대궁을 내민 상사화는 또 어떨지. 몰스킨 수첩에 그것들을 쓱쓱 그려봐도 좋겠다.

화천 비수구미 마을을 찾아간다. 아스팔트를 벗어나 파로호를 따라 비포장 도로로 접어들면 막무가내 네 글자가 떠오른다. ‘무장공비.’ 여기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르겠구나 싶은 적요가 고주파로 에워싼다. 그 길을 따라 한참 걷다 보면 민가 세 채가 사는 비수구미 마을이 나온다. 오지 중의 오지지만, ‘오지여행’ 덕분에 세 채 모두 단정하게 민박을 운영한다. 마을 바로 앞으로 너무 차가워서 1분 이상 발을 담그기 어렵다는 계곡물이 흐르는데, 1분은 고사하고 10초도 만만치 않다.

목포에서 민어회를 먹는다. 민어는 독하게 생겼다. 산 놈이든 죽은 놈이든 그 눈매며 이빨이며 심상찮다. 그런 민어가 제철을 만났으니, 바로 여름이다. 민어회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는 곳은 목포의 영란횟집. 막걸리식초라는 특별한 소스가 그 유명세의 근원이다. 고추냉이를 푼 간장이나 흔한 초고추장과는 차원이 다른 오묘한 맛. 살은 살대로 두툼하게 회로 먹고, 껍질은 껍질대로, 부레는 부레 따로, 내장은 내장만, 버릴 것 없이, 먹는 족족 보신이다. 영란횟집 061-243-7311

진도에서 돈가스를 먹는다. 진도 읍내에 ‘그냥 경양식’이라고 있다. < GQ >가 지난 통권 100호 특별기획으로 전국의 맛 100그릇을 소개했을 때 돈가스 대표로 선정한 집이기도 하다. 실내엔 그때 만든 듯한(< GQ >에선 그런 걸 제작하지 않았다) 명패가 하나 붙어 있는데, ‘대한민국 100년, 100대 맛집, GQ 창간 100주년 기념 선정’이라고 쓰여 있다. 올해로 10주년인데 ‘창간 100주년’이라니 해도 너무했다. 따지자면 ‘그건 아니지만’, 미소 지으면 그만인 일이기도 하다. 그런 말이 아니어도 충분히 소중하고 맛있는 집이니까. “밥으로 드릴까요 빵으로 드릴까요?” 묻던 시절, 텁텁한 인스턴트 수프가 먼저 나오고, 깍두기 단무지가 함께 나오는 바로 그런 돈가스다. 그냥 경양식 061-543-5050

고택에서 자고 일어나, 종부가 차려주는 아침상을 받는다. 안동 농암종택.

안동 농암종택에서 자고 일어나, 종부가 차린 아침상을 받는다. 안동 농암종택에 갔다가 진귀한 경험을 했다. 어찌된 일인지 강변에 있는 집인데, 모기가 한 마리도 없었다. 별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데, 모기가 없다. 하늘에 에어컨이 달린 듯 시원하고, 모기가 없다. 고택에서 나무 냄새 맡으며 잠들면, 이상하게 몇 시간 안 자도 개운하게 눈이 떠진다. 그러곤 평소엔 거르기도 잘했던 아침밥을 먹는다. 종부가 차린 아침밥상엔 취나물 하나를 무쳐도 기품이 있어 보인다. 큰 현판 밑 대청에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 마루밑 옥잠화가 두런두런 피어 있을 것이다. 농암종택 www.nongam.com

전라도에서 안숙선의 가야금 병창 ‘호남가’를  듣는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허고, 제주어선 빌려타고 해남으로 건너갈제, 흥양에 돋든 해는 보성에 비쳐 있고, 고산의 아침 안개 영암을 둘려있네. 태인하신 우리 성군 장흥하니 삼태육경이 순천심이요, 방백수령이 진안이라, 고창성 높이 앉아 나주 풍경을 바라보니, 만장 운봉이 높이 솟아 층층한 익산이요. 백리 담양 흐르난 물은 구부구부 만경인디, 용담의 맑은 물은 이아니 용안 처며, 능주의 붉은 꽃은 골골마다 금산이라, 남원에 봄이 들어 각생화초 무장허니 나무나무 임실이요, 가지가지 옥과로다. 풍속은 화순이요 인심은 함열인디, 기초는 무주허고 서해는 영광이라, 창평한 좋은 세상 무한을 일삼으니, 사농공상이 낙안이요 우리 형제 동복이로구나. 강진의 상고선은 진도로 건너갈 제, 금구의 숲을 이뤄 쌓인 게 김제로다. 농사하던 옥구 백성 임피 상의 둘러입고, 정읍의 경략법은 납세인심 순창허니. 고부청청 양유색은 광양춘색이 팔도에 왔네. 곡성에 묻힌 선비 구례도 하려니와, 흥덕을 일삼으니 부안제가 아니냐. 우리 호남의 군은 법선 전주 백성을 거느리고 여산석에 칼을 갈아 남평에 꽂았으니 삼례가 으뜸인가 거드렁 거리누나.” 경상도 돌과 전라도 돌을 바꿔치기 한다. 예쁜 돌을 줍는 버릇으로부터, 가끔은 거제도에서 주운 돌을 구례 섬진강변에 놓고 오기도 하고, 강원도 인제에서 주운 돌로 부여 백마강에서 물수제비를 뜨기도 한다. 딱 그만큼의 재미로서.

춘천 중도에서 후투티를 본다. 후투티는 영어가 아니다. 후투티목 후투팃과의 새 이름일 뿐이다. “나 오늘 희한하게 생긴 새를 봤어”라는 얘기를 들었다면 후투티였을 가능성이 높다. 흔한 새는 아니지만 과연 그런 말에 어울리는 새로는 후투티가 제격이다. 춘천 호반 중도에 가면 심심찮게 곤충을 잡느라 분주한 후투티를 볼 수 있다. 연어색과 갈색과 희고 검은 줄무늬 그리고 왕관처럼 솟은 벼슬이 휘리릭 하늘을 가른다. 보면, 후투티! 하고 불러본다. 듣거나 말거나.

보령 머드 축제에서 신분을 감춘다. 외국인 척해도 좋고, 문워크를 해도 좋다. 그걸 철푸덕 뒤집어쓰고 못할 게 뭐 있을까.

일어나자마자 경주 석굴암에 간다. 하절기 입장시간은 아침 6시30분부터. 반듯하게 머리를 빗고, 하나하나 갖춰 입으려면 5시엔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 정도는 예의다.

서산 마애삼존불에서 노을을 본다. 온화한 미소로 유명한 국보 제84호인 마애삼존불은 해질 무렵 노을이 감쌀 때, 더욱 따뜻하고 평화로운 인상을 준다. 내려오는 발걸음이 차분하고 묵직해진다.

국도에서 걸핏하면 뭘 산다. 복숭아철에 충북 음성 쪽을 지나거나, 무화과 익을 때 영암 쪽을 지나거나, 한참 참외 딸 때 성주 쪽을 지나거나, 양파를 무더기로 캐낼 때 창녕 쪽을 지나거나. 트렁크는 점점 무거워진다. 달리 부자인가.

남산공원에서 바람이 멈추는 순간이 있는지 체크한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 정문에서 육교를 건너 남산공원으로 들어간다. 남산은 여전히 ‘숨겨진’ 곳이 많은데, 보광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공원 한쪽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가 서울에서 제일 시원해. 여기는 바람이 안 불 때가 없어.” 기상청 예보는 못 믿지만, 그 말씀은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그런지 우람한 플라타너스 그늘 밑에 앉아본다.

누워서 하루 종일 구름을 본다. 서울 종로구.

프랭크 시나트라의 1966년 앨범 < Strangers in the NightB>를 어디서든 듣는다. 1번 트랙 ‘Strangers in the Night’부터 10번 트랙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까지 온통 풍요의 한마당이다. 왁자지껄 먹어 재낀 식탁, 썩은 나무에 돋은 버섯에조차 환희일 멜로디, 브라스와 브라스가 만든 갈채, 모자 쓴 남자가 모자를 벗지 않고 부르는 노래. 여름밤은 짧아도 로맨스는 끝이 없으니.

최고의 자장면과 짬뽕을 가린다. 포천시 이동면 미미향, 천안시 성환읍 동순원, 군산시 복성루와 쌍용반점, 송탄 영빈루, 강릉 교동반점, 공주 동해원…. 자, 또 어딘가? 에디터의 선택은 천안 동순원이다. 탕수육과 볶음밥 또한 ‘최고’ 반열. 동순원 041-581-2070

영흥도 소사나무 숲에 아침저녁 한 번씩 들어간다. 해풍에 휜 나뭇가지엔 만지고 싶다는 감각이 앞선다. 소사나무는 분재용으로 널리 쓰이는 수종이니만큼 타고나길 아름다운 수형으로 자란다. 아침저녁으로 숲은 어떤 표정일는지. 보지만 말고 슬쩍 만져본다.

태안에서 독살로 물고기를 잡는다. 독살은 독화살의 줄임말이 아니라, 밀물 때 들어온 고기들이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돌로 쌓은 담장에 가두고, 거기서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 방식이다. 이런 독살이 남아 있는 곳은 태안과 안면도 일대.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관광상품화한 곳들이 꽤 많다. 운동장만 한 독살에 여럿이 떼지어 들어가 그물로 , 바구니로, 또 맨손으로 고기를 잡는 맛은 고기도 고기지만 그 왁자지껄함 속에 특별한 재미가 있다.

아침가리 마을에서 아침해를 본다. 강원도 인제엔 6.25도 피해갔다는 오지마을이 여럿 있다. 아침에만 잠깐 해를 볼 수 있다는 아침가리 마을 같은 곳 말이다. 인제군 기린면 현리에서 산나물의 성지 곰배령 쪽으로 가다 보면 아침가리 마을로 들어가는 비밀의 입구가 있다. 근처에서 톡 쏘는 방동 약수를 한 병 담아도 좋겠다.

완도수목원 온실에 들어간다. 더위에 겹쳐, 솥뚜껑을 연 듯 습기가 끼쳐올 것이다. 완도 수목원 온실은 우리나라 열대 온실 중 규모나 구성이나 단연 으뜸이다. 원숭이도 아나콘다도 없이 그곳은 온통 밀림이다. 마침내 흠뻑 젖어 온실 밖으로 나오면 산등성을 넘어온 바람이 속옷까지 파고든다. 완도수목원 www.wando-arboretum.go.kr

반딧불이를 찾아간다. 무주에선 반딧불이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고장의 ‘무공해’를 상징하는 축제이기 전에, 그저 반딧불이를 향한 순수한 호기심이 먼저 생긴다. 옛날엔 여름 저녁 마루에 켠 백열등으로 달려들던 땅강아지며 물방개며 참 많았는데 말이다. 밤이 기울면, 상수리나무 숲으로 손전등을 들고 사슴벌레를 잡으러 가도 좋을 것이다. 동행자로는 그 동네 꼬맹이들이 최고인데, 섭외하려면 낮부터 공을 좀 들여야 한다.

담양 명옥헌에서 배롱나무 붉은 꽃이 물 위로 떨어지는 걸 본다. 그리고 물길을 따라 천천히 흘러가는 붉은 것을 또 본다. 그냥 그러고만 있어도 피안인 듯, 아득하다. 담양은 가사문학권이라 해서, 조선시대에 지은 정자가 곳곳에 들어서 있다. 환벽당 방문을 열면 마치 풍경이 방 안으로 빨려들어 올 듯 선연하고, 면앙정에서 내려다보면 시선이 자꾸만 멀리 퍼져간다. 백로의 목처럼 굽은 계단을 올라가면 식영정 옆 소나무가 불호령하듯 서 있고, 송강정엔 소나무의 기개가 넘친다. 그리고 어디서든 대숲을 지난 바람이 분다.

낙동강에서 노를 젓는다. 래프팅은 동강이 유명한데, 동강에서 뭘 하려면 자꾸 지구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봉화와 안동 사이 낙동강 상류에서도 래프팅을 즐기는 곳이 많다. 산세가 기개가 넘치니, 노를 젓는 폼도 제법 그럴싸해진다.

동네 꼬맹이들과 물놀이를 한다. 여름에 여기저기 지나다 보면 동네 애들 여럿이 물놀이를 하는 걸 볼 수 있다. 슬그머니 끼어들어 논다. 저 사람은 누군가? 풍으로 쳐다보면, 이름 석 자를 말해준다. 그러다 아이들과 이것저것 얘기해보면 여전히 아이들은 아이들이라서 참 밝구나, 생각하게 된다.

해운대에서 대놓고 사람 구경을 한다. 각자 벗을 만큼 벗은 남녀가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의 진창을 만들어놓았겠다, 아침에 갈 해장국집도 정해뒀겠다, 무엇이 걱정인가. 올 젠틀맨스 두 잇, 올 레이디스 두 잇. 아저씨 대구탕 051-746-2847

어떤 날엔 호텔에 누워서 구름을 본다. 때 되면 밥 달라고 프런트에 전화를 건다. 그걸 먹거나 말거나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책은 무슨 책. 그러다 밤이 되면 누군가를 불러들인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www.grandhyatt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