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내게는 모자란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아브라다브라’부터 에프엑스의 ‘피노키오’까지, 히치하이커는 지금 가요계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완성도 높은 노래를 만든다. 하지만 너무 성공적이어서, 또 너무 문제없이 평탄해서, 자신이 만든 게 아니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노래 같아서, 불안하다고 했다. 이것은 만족하면 끝이란 말의 부연 설명이었을까? 설리의 토끼 모자가 하늘로 쫑긋 귀를 세웠다.

크림색 재킷과 팬츠는 모두 이스트 하버 서플러스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하늘색 셔츠는 커스텀멜로우, 모자는 베른스톡 스피어스 BY 애딕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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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나 롤러코스터를 할 때만 해도 음반이 몇만 장 팔렸다는 건, 어느 정도 음악의 대중성과 완성도를 의미했다. 작곡가 히치하이커의 입장에서는 꼭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당신이 아티스트가 아니란 점에서, 음반 시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에서. 작곡가 히치하이커에게 음반은 어떤 의미인가?
음반이 갖는 의미가 다소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내가 참여한 음반을 받아 들면 기쁘고 설렌다. 디지털 싱글이 명함을 주는 거라면, 음반은 자기 집을 다 보여주는 거다. 가요계에서도 정규 앨범에 대해 가지는 자존심은 남다르다.

당신 앨범이 아닌데도?
내가 아티스트라면 한 장의 앨범에 담긴 구성이고, 디제이라면 1, 2시간동안의 플레이리스트다. 그것을 한 곡에서 표현하는 게 지금의 작업이다.

한 곡에 대해 이전보다 더 많은 공을 들이나?
내 음반을 만들 때는 곡마다 공을 들이는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 정도면 됐겠지’하는 생각으로 작업한 적은 없다. 게다가 요즘은 사람들이 앨범 단위로 잘 듣지 않고, 한 곡씩 골라서 음원으로 바로바로 들을 수 있으니까, 비교하기 너무 쉽다. 나만 해도 내가 작업한 곡을 듣다가 다른 곡을 들었는데 그 사운드가 더 좋은 것 같으면, 얘네 어디서 했지? 누가 작업했지? 하면서 막 찾아본다. 그러니까 결국엔 자존심 대결이다.

‘이 정도면 됐겠지’를 안 한다는 게 말은 쉬워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한 곡에 꼭 필요치는 않은 좋은 코드 진행과 섹션이 있으면 다음 앨범에 써야지 하면서 빼놓는 경우가 있었다. 좋은 진행이 있으면 쪼개서 두 곡으로 만들지 뭐, 이랬다. 그런데 지금은 심지어 세 곡을 만들어서 그 세 개의 가장 좋은 점을 하나로 뭉치는 작업을 한다. 세 곡이 죽고 하나가 사는 거다. 한 곡에 쏟는 에너지가 한 앨범에 쏟는 에너지일 수밖에 없다. 한 곡으로 그 가수와 프로듀서의 평가가 좌우될 수 있으니까.

해외 작곡가가 들어오는 상황은 어떤가?
외국에서 들어오는 곡들은 작곡가가 서너 명 이상 붙어 있다. 그렇게 뭉쳐서 치고 올라오는데, 거기에 대항하려면 대충 할 수가 없다.

누군가와 같이 하면 좀 편하지 않겠나?
나는 리듬이 강하니까 멜로디 잘 만드는 친구랑 같이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해봤다. 근데 작업이 몇 개 안 나올 것 같다. 한두 개 새로운 걸 하면 똑같아지지 않을까? 내가 새로운 걸 개발하는 수밖에 없다.

해외 작곡가들은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이를테면, 한 에이전시 소속의 각각 다른 나라와 도시의 작곡가들이 모여 며칠 동안 곡을 쓰고 흩어지는 방식으로 작업해놓으면, 에이전시에서 몇 백 곡을 모아서 각 나라에 데모로 돌린다. 국내처럼 유명 작곡가조차도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해야 하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보통은 ‘누구에게 어울리는 노래’를 써달라는 식의 의뢰가 들어오지 않나?
그런 경우가 있기는 한데, 예컨대, 에프엑스한테 어울리는 걸 만드려면, ‘NU ABO’ 같은 게 생각나고 해서 작업이 잘 안 된다. 처음 곡을 만들 때는 그냥 막연한 이미지만 생각한다.

클라이언트는 어느 정도의 가이드를 제시하나?
이번에는 좀 강한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이번에는 밝고 신나는 건데 귀여운 건 아니고요, 하는 정도다. 장르 얘기를 해도, 약간 록적인 느낌, 일렉트로 성향의 어떤 것, 같은 식. 노하우가 있는 회사들은 그렇게 설명하는데, 신생 회사들은 아예 ‘리퍼런스’ 곡을 준다. 어떤 가수의 어떤 곡처럼 만들어 달라고. 근데, 그러면 곡 잘 못 쓴다. 그 노래 생각나서. 그냥 두루뭉술 얘기하는 게 편하다. 근데 요즘엔 특별히 가이드를 주기보다, 내 전작들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어려워도 써야 하는 경우, 꽤 있을 것 같다. 요구하는 대로 쓰자면 그 노래를 모티브로 한 곡이 나와야 되는데, 그건 표절이 되기 쉽고, 방법적으로도 틀린 것 같다. 내가 그렇게 해서라도 히트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재미가 없어지니까, 그건 창작이 아니니까. 기운이 좀 빠질 거다.

에프엑스의 ‘피노키오’의 경우 공동 작곡이자 편곡을 맡았다. 작곡과 편곡은 당신 안에서 어떤 역할로 구분돼 있나?
작곡은 감성, 편곡은 이성적인 면에서 접근하는 것 같다.

최근엔 작곡과 편곡의 구분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측면이 있다.
편곡이 곧 작곡이다. 특히 일렉트로 성향의 곡을 만든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킥, 스네어, 하이햇이 전부, 반주가 아니라 보컬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스들이다. 이를테면, 이런 악기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노래를 만드는 수도 있다. 그런 작업 프로젝트는 이름을 테스트라고 붙이는 데, 테스트가 노래가 되는 경우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시선들이 있지 않았나? 드럼을 왜 찍나, 드럼은 쳐야지.
실제로 롤러코스터 할 때, 스튜디오를 같이 쓰는 친한 퓨전 재즈 밴드가 있었는데, 그들과 술 먹으면 항상 그랬다. “지누야, 넌 왜 드럼을 찍니?” 너넨 자존심도 없니, 실력이 없으니까 그런 거 깔고 있지, 하는 투였다. 그 방식도 이해는 하지만, 우리에게 그건 편법이 아니라 새로운 표현이었다. 그런데 요즘 재즈 하시는 분들 , 뭐 틀어놓고 색소폰 부는 그런 시도 많이 한다. 그런 거 보면 이제 알겠냐, 하는 생각도 들고. 하하.

당신의 자존심을 이루는 노래에 대한 고집은 뭔가?
클라이언트든, 아티스트든 어떤 요구가 있더라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 나만의 사운드랄까.

‘나만의 사운드’를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쫄깃쫄깃하고, 빡빡한 것. 하하.

파스타에 대한 얘기로 혼동할지도 모른다.
아, 진짜 요리랑 비슷하다. 원재료와 여러 악기의 소리를 적절히 배합하는 게 중요하다. 작업할 때 항상 하는 얘기가 그거다. 더 쫄깃쫄깃해야 돼, 더 빡빡해야 돼. 아무래도 댄스 뮤직이니까.

함께 음악을 틀었던 디제이들에게, 레코드를 녹음해서, 일종의 리마스터링까지 거친 노래를 시디에 구워 와서 틀더라는 얘길 들었다. 이것도 원재료에 대한 중요성 때문이었나?
음악 작업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랬다. 레코드가 따뜻한 느낌은 좋지만, 레벨이 그렇게 빡빡하게 나오질 않는다. 그렇다고 또 레벨을 너무 올리면, 바늘 때문에 하울링이나 피드백이 생긴다. 일렉트로 하우스랑 디스코 하우스를 함께 틀고 싶은데, 일렉트로 하우스가 너무 세니까, 디스코 하우스를 컴퓨터로 녹음해서 킥도 더 넣고 편집도 바꿔서 나만의 리믹스를 만들었다. 클럽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던 거다. 하지만 사운드를 만들 때는 아날로그 악기이든 가상 악기이든 노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소스가 많을수록 좋으니까, 일부러 그걸 연구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게 노하우라면 노하우다. 옷이 그렇듯이, 많이 실패해 본 사람이 잘 입는다. 또 클럽에서 자주 음악 틀 때, 다른 곡에 내 곡 슬쩍 끼워서 틀고 그랬다. 집에서 들을 땐 별 차이 없는 곡도 클럽에서 들으면 좋은 소스 안 좋은 소스 확 티나니까. 집에 와서 사운드 다시 만지고, 다음 주에 또 틀고, 그러면서 얻은 게 참 많다. 아, 킥은 이래야 하는구나, 베이스는 이래야 하는구나, 하는 결론이 클럽에서 생겼다.

당신이 작업한 곡 중 대중가요로서의 이상에 가장 가까운 곡은 뭔가?
일본에서 먼저 공개된 동방신기의 ‘I Don’t Know’ 라는 곡이 있는데, 록과 일렉트로를 조합한 지금까지의 작업들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 같다. 긴장감 있는 인트로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이 곡에서의 느낌이 이상에 가깝다. 하지만 사실 ‘아브라카다브라’도 나오기 전에 만들었다. 3년쯤 됐나. 에프엑스 ‘아이스크림’ ‘빙그르’, 소녀시대 ‘쇼쇼쇼’, 동방신기 ‘I Don’t Know’, 브라운 아이드 걸스 ‘아브라카다브라’를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었다.

어디서 그렇게 에너지가 솟았나?
그때 우리 애가 태어났다. 아빠니까 열심히 해야 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최근에 만든 곡은 소녀시대 ‘비주얼 드림’이나 ‘Wake Up’ 정도고, 지금 나오는 곡들의 상당수가 그때 만든 것들이다.

갑자기 솟아났는데, 언젠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안 하나?
한다. 분명히 그럴 거다. 항상 새로운 게 나온단 보장이 없다.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문제인 것 같다. 내가 이 정도 만들었고, 이 정도까지 했는데, 왜 내 곡을 클라이언트들이 안 쓰지? 이렇게 생각하면, 거기서 끝인 것 같다. 나한테 부족한 게 뭔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음악의 트렌드를 잠깐이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놓쳤다가 다시 잡으면, 아무리 새로운 걸 하려고 해도 흉내 밖에 안 된다.

롤러코스터가 아티스트로서 인정받을 때와 ‘아브라카다브라’가 지누의 곡이라는 게 알려지고 사람들로부터 화자될 때의 느낌은 달랐나?
완전히 달랐다. 롤러코스터는 천천히 유명해졌다. 어떤 식이었냐면, 처음에 2만 5천, 그 다음에 5만, 그 다음에 10만장, 이런 식으로 음반이 팔렸다. 지누라는 가수로 메이저 데뷔해서 어떻게 보면 점점 더 언더그라운드로 내려가는 음악 생활이었다. 그래서 안 좋았다는 건 아니고. 결국 클럽까지 갔는데, 그때 더 이상 작곡가로 가요 신에서 활동할 순 없겠단 결론을 내렸다. 클럽 음악만 듣고 만들다가 아이돌 음악을 어떻게 하나 싶었다.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었다. 마지막 음악 작업이 ‘아브라카다브라’였고, 나중에 타이틀곡이 된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괜히 잘못되서 나한테 화살이 쏟아질까 봐 걱정이 앞서고, 회사가 너무 무리한다고 생각했다. 첫 방송을 보고도 완전히 망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내가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데를 보더니 반응이 너무 좋다고 했다. 나는, 그래? 이상한데?, 그랬고.

 

파란색 재킷과 팬츠는 모두 L.B.M. 1911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화이트 셔츠는 이스트 하버 서플러스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운동화는 나이키, 알바 77 리이슈 스케이트 보드는 알바 BY 안티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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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가 잘될 거 같단 감이 어떻게 그렇게 없었나?
‘아브라카다브라’는 인트로나 리듬, 곡 구성까지, 일본의 ‘와사비트’에서 음원으로 발매하려고 디제이 지누란 이름으로 만든 노래였다. 일렉트로 하우스 계열의 음반을 만들어서 일본에 발매하려고 했는데, 그쪽에서 음원을 듣고 가사 붙여서 가요로 해보자고 했다. 전혀 가요가 아니어서, 후렴은 이민수 씨와 함께 작업해서 완성한 곡이다. 나는 소녀시대의 ‘Gee’가 무슨 노래인지도 몰랐다. 아내가 들려줘서 샤이니의 ‘줄리엣’도 처음 들어봤을 정도였다. 충격적이었다. 가요를 등한시하는 사이, 그렇게 달라진 줄 몰랐다. 감이 전혀 없었다. 음악을 다시 해야겠다 싶었다. 그 노래 때문에 자신감이 생긴 게 아니고, 내가 음악을 너무 오래해서, 대중들의 인정에서 오는 희열에 무뎌져 있었구나, 해서 아차 싶은 순간이 있었다.

그때 당신은 음악가로서 뭔가 바뀌었나?
내 음악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반응하는 것에 대한 감을 놓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음악한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기획사마다 전화도 돌리고 데모도 보냈다. 꼭 ‘아브라카다브라’가 잘돼서 그렇다기보단 이 노래를 녹음하는 과정에서 다시 음악에 대한 재미를 느낀 게 컸다.

그것을 당신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장의 요구가 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장의 요구에 의해 내가 변한 것도 있고, 시장도 변했다. 시장이 내가 평소에 하고 있던 음악에 가까워졌다. 시장에 의해 내가 변한 부분은 이를테면, D파트를 더 터지게 한다든지, 댄스브레이크를 넣는다는지 하는 거다. 나라면 댄스브레이크나 D파트 같은 거 없이 페이드아웃 할 텐데, 무대에서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보니, 그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작업들을 한다. 거기에서 많이 배우고 있다.

‘피노키오’의 D파트는 몹시 좋았다.
그것도 원곡에는 D파트가 없었다. 같이 작업하는 해외 작곡가들과 SM의 A&R 팀과 상의해서 새로 만들었다.

클럽에 가까운 음악들이 유행하고 있긴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변화가 가요계에 있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대중은 익숙한 것을 좋아했다. 발라드의 인기가 남달랐던 것도 그 친숙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점점 대중이든, 기획사든, 새로운 것, 독특한 것을 요구한다. 어디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생각하나?
온라인 때문이 아닐까. 유튜브만 검색해봐도 전 세계 트렌드가 뭔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세계의 유행이 거의 비슷하게 움직이는 시대가 됐다. 어쩌면 우리가 새로운 걸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젊은 대중들은 다 알고 있는 세계적인 걸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진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욕심을 내고 있다.

지금 히치하이커 음악의 완성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뭔가?
같이 작업하는 어린 아티스트들에 대한 책임감. 내가 대충 작업하면 그 친구들 음악 인생에 폐가 될까 봐.

책임감이라니, 너무 어르신 같아서 멋없다.
실제로 소녀시대나 에프엑스 멤버들이 아빠라고 한다. 설리 어머니가 나보다 한 살 많다. 그러니까 나이론 삼촌이자 아빠다. 하하. 물론 그런 것도 있고, 완성도라면 될 때까지, 잘 나올 때까지 하니까.

처음 완성된 곡에 대한 수정은 어떻게 이뤄지나?
일단 자기검열에 의해 믹싱까지 한 데모를 회사에 넘긴다. 그걸 듣고 회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추가해서 또 작업하고, 그 상태에서 아티스트와 한 번 녹음한다. 녹음된 데이터로 또 집에서 리듬, 베이스까지 완전 다 바꿔서 믹싱하고, 그런데도 마음에 안 들면 또 수정하고, 이런 식의 반복이다. 프로듀서가 다 이끌고 간다면 그 사람 안에서 밖에 못 나올텐데, 아티스트와 A&R 팀, 믹싱 엔지니어의 손까지 거치니까, 아이디어도 풍성하고 곡 구성도 다채롭다.

프로듀서로서, 최근의 몽구스 앨범은 만족스럽나?
만족스럽다. 다시 밴드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신 좀 차리고 보니까 그들은 몽구스고 나는 프로듀서였다. 하하. 어렸을 때 밴드 하던 생각도 나고, 너무 즐거웠다. 작업하는 동안에는 수록곡들이 참 풋풋하고, 특별히 나쁜 곡은 없네,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앨범이 나와서 들어보니까 객관적으로 들어도 좋은 것 같다. 항상 조금 더 해보자고 요구하는 게 프로듀서이다 보니, 멤버들이 가진 재능을 높게 평가하지 못했다. 결과물을 들으면서, 굉장히 잘하는 친구들이었는데 작업하느라 몰랐다는 걸 알았다.

좀 더 어렸다면 몽구스는 멤버로 들어가고 싶은 밴드인가?
다른 인디 밴드가 나한테 프로듀서 해달라고 한 적 있는데, 나랑은 음악이 안 맞는 것 같아서 거절했었다. 하지만 몽구스는 음악적으로도 그렇고 재밌을 것 같았다. 실제로 멤버들 각각도 다 재밌어서 멤버로 들어가도 좋을 것 같은데?

함께 공연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단독공연 같은 거 할 때 같이 올라가서 해보는 것도 재밌겠다고 얘기한 적은 있다. 객석에 있다가 가방에서 기타 꺼내갖고 올라가서 앰프에다가 스윽, 잭 꽂는 아저씨가 있을 거다.

노래 이외에 다른 부분에는 관여하지 않나? 몽구스든 아이돌이든.
관여 못한다. 워낙에 전문가들이 붙어 있으니까. 하지만 몽구스는 아이디어를 좀 냈다. ‘변해가네’ 뮤직비디오가 내 아이디어를 반영한 작업이다.

음악에 관한 것이라면, 보컬 디렉팅에서는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나?
가수들에게 믿고 맡기는 편이다. 큰 틀은 내가 만들지만 표현은 가수 자신이 하는 거다. 마음에 들 때까지 해보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훈련된 친구들이라서 노래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규칙도 많이 알고, 아직 어려서 어른들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려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맘에 들 때까지 한 걸 듣고, 어디를 고쳐보자고 말한다. 어떤 음악을 원하는지, 틈틈이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기억도 해둔다. 대형기획사다 보니까 직원들이 많아서, 노래만 해도 믹싱, 콘셉트 등등 의사소통하는 분이 다 따로 있다. 아티스트와 음악 얘기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은 셈인데, 아티스트가 원하는 음악과 회사가 원하는 음악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그 중간 지점을 조언한다. 실제로 그 절충점을 찾으면 노래도 더 잘 부른다.

심사위원이나 멘토 같은, 최근 들어 작곡가들이 텔레비전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나는 인터뷰도 한 6년 만이다. 작업보다 나를 나타내고 표현하는 데 더 시간을 들이게 될까봐 자제하고 있었다. 그런 건 나중에 해도 좋지 않나 싶다. 원래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름은 작업을 많이, 또 잘 할수록 알려질 거다.

당신은 아티스트에게 또 디제이에게 하나의 선례가 됐다. 그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가요 작곡가’란 길을 열었다. ‘가요 작곡가’는 그들에게 추천할 만한 길인가?
자기 작업에 매몰되기보다 다른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함께 하는 게 아티스트들한테는 큰 도움이 된다. 피처링이든 세션이든 관계없다. 실제로 페퍼톤스가 그렇게 하는데, 만나서 얘기해보면 되게 재미있다고, 새로운 자극도 된다고 말한다. 보기 좋은 것 같다.

당신에게 가요 프로듀서는 도착점인가?
사실 도착점은 애니메이션 제작이다. 뭐든지 혼자 하는 걸 좋아하는데, 혼자서 음악과 영상, 스토리 등 수많은 장르를 응축할 수 있는 극한이 애니메이션 같다. 신카이 마코토 혼자서 만든 <초속 5미터>를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나는 혼자서 뭔가 만들어보겠다는 욕구가 굉장히 크다. 음악 그만두려고 했던 것도 그 영향이었다.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써놓고 그랬다. 실제로 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하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지 않나?

음악은? 그렇다면 음악은 점점 더 일인가?
물론 전혀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음악은 아직도 음악이다.

물론 그걸 구분할 필요도, 구분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저 자존심을 걸고, 충실하고 정직해지는 수밖에.
음악 만드는 과정 자체를 너무 좋아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말이다. 목숨 걸고 하는 사람들한테 너무 가볍게 느껴질까 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오히려 취미에 가까울 만큼 좋아한다. 너무나 사랑하는 취미인 동시에 일이어서, 작업하는 내내 좋다. 요새는 정말 희한하게 음악이 속을 안 썩인다. 물 흐르듯이 잘 된다.

의도대로 수월하게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좀 더 자기 자신을 믿게 되겠다.
근데 사실 뭐가 잘되면 더 불안하다. 다음 작업이 ‘피노키오’보다 못할 까봐 겁나는 게 아니고,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요즘 만든 곡들이 음악적 고뇌 보다는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그 곡을 이끌어가는 힘이 된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감각적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어떤 곡은 나중에 들어보면, 내가 만든 것 같은 느낌이 없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잘되면, 그 다음부터 하늘에서 뭔가 뚝 안 떨어지면 어떡할까 걱정스럽다.

영원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당신이 말한 것, 수많은 예술가들이 말한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뭔가가 내 몸을 통과했다’는 얘기인데?
맞다. 그런 느낌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나?
옛날하고 거의 비슷한데, 달라진 게 있다면 좋은 음악이라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 나는 그게 굉장히 좁았다. 쉽게 얘기해서 멋있어야 하고, 나 이런 거 듣는다고 내놓을 수 있을 만큼 근사하고 거창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는 좋은 음악은 그 음악이 갖고 있는 역할에 충실한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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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책, 음반, IT를 담당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