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날은 모두 뒤로 1

밑바닥부터 올라왔다. 실패를 이야기하며 성공했다. 잃을 게 많이 늘었지만, 리쌍의 두 남자는 여전히 자신 있게 볼륨을 높인다.

의상 협찬/ 개리가 입은 셔츠는 워모, 재킷은 D by D, 보타이는 브리오니, 선글라스는 엠 아이웨어 by Optical W, 반지와 목걸이는 마코스 아다마스.
의상 협찬/ 개리가 입은 셔츠는 워모, 재킷은 D by D, 보타이는 브리오니, 선글라스는 엠 아이웨어 by Optical W, 반지와 목걸이는 마코스 아다마스.

앨범 발매 당일, 새 앨범 수록곡이 몇몇 주요 음원 차트에서 1위부터 10위까지를 독식했다. 이 정도일 거라 예상했나?
개리 진짜 말도 안 되게…. 예상 못했다. 기대는 좀 했지만. 매니저가 캡처해서 보여줬는데, 장난치는 건 줄 알았다. 합성한 줄 알고.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많이 좋아하실 줄은 몰랐다.

두 사람 다 주말 예능에 출연 중인데, 음반 작업하면서“ 변하는지 두고 보자” 같은 시선이 부담되진 않았나?
개리 대놓고 얘기는 못하니까. 난 예능 나간 지 1년 정도 됐는데, 작업하면서 절대 음악을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예능 때문에 가사가 바뀌었네, 색깔이 바뀌었네 같은 얘기를 듣기 싫어서 스스로 더 깐깐히 검열했던 것 같다.
같이 일하는 분들이 10년 전 1집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작업하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음반 나오면 피드백에 많이 신경 쓰는 편인가?
앨범 나오기 전의 피드백을 중요시 여긴다. 오늘 뭘 만들면 그날 만나는 친구, 형, 동생한테 다 물어본다. 가이드만 되어 있는 것도 다 들려준다. 그리고 그 사람의 반응을 관찰한다. 앨범 나오고 나서의 피드백은 별로 신경 안 쓴다. 다 나오고 나서 이 부분 이상해요, 이 가사 좀 그래요, 이 사운드 별로예요 해봤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동료 뮤지션이나 전문가의 반응보단 대중의 반응이 더 중요한 건가?
더 중요하다. 듣는 사람의 눈빛이 제일 중요하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 오늘 처음 만나서 우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다 들려준다. 그게 어렸을 때는‘ 쪽팔렸다’. 지금은 무조건 한다. 물론 우리 생각이 제일 중요하다. 우리가 듣기에 좋은 노래면 술자리 가서 더 자신 있게 볼륨을 키운다.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음악이 지난 음반과 비슷하다는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비슷하겠지. 한 사람이 만드는데. 도자기 장인이 도자기를 만들 때, 우리가 보기엔 똑같아도 다 부순다. 이런 예를 들기 좀 민망한데, 어쨌든 음악도 똑같은 것 같다. 상대방이 듣기엔 똑같지만 내가 듣기엔 예전보다 발전되니까 내놓는 거다. 비슷하다고 평가를 하시면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개리 가사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좋고 나쁘고하는‘ 퀄리티’의 문제라기보단 작법의 문제에 가깝다고 본다. 여성 보컬의 참여, 따뜻한 샘플링 위주의 사운드처럼 리쌍이 오랫동안 지켜온 것들.
그런 걸 쓰면 꼭 타이틀이 된다. 그 분야에선 잘하고 있는 거 아닐까? 난 오히려 이번 앨범에서‘ 강남 사짜’를 타이틀로 하고 싶었다. 외국의 특정 음악과도 닮지 않은 새로운 곡이라고 생각했고, 정말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다‘. TV를 껐네’보다 더 먼저 가고 싶었다. 그런데 스태프들의 의견은 좀 달랐다. 식구들 생각을 배제할 순 없으니까.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국카스텐 같은 색다른 장르의 뮤지션들이랑 작업하면서, 기존의 리쌍표 음악과 다른 것도 만들고 있다. 어느 날 그런 곡이 타이틀로 선정되고 사랑을 받으면 비로소 나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엔 망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걸 한번 해볼까 하다. 그룹 갱스타Gangstarr의 구루Guru가 갱스타의 색깔과는 좀 다른 〈Jazzmatazz〉시리즈를 만들었듯이. 언플러그드가 될 수도 있고, 일렉트로니카가 될 수도 있다.
개리 그래도 자기 색깔이 있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우리는 리쌍 하면 떠오르는 색깔이 진한 편이고, 벌써 7집까지 왔으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예전에 한 번 신경 쓴 적이 있는데, 주변에서“ 야, 이런 음악은 너희밖에 못하는 건데 그냥 해”라고 했다. 개인적으론 다르게 가사를 써본 적도 있는데, 안 맞는다. 안 어울린다. 색깔을 가꾸고 유지하는 것도 무척 힘든 작업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신곡‘ 독기’의 가사를 보면, 10억을 채우는 게 목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쨌든, 리쌍은 밑바닥부터 올라와 성공했다.
개리 성공의 기준이 좀 애매한 게, 물론 옛날처럼 맨땅에 헤딩할 때보다야 잘산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대한민국 상위 몇 프로 수입 같은 거 나오면 읽어보는데, 그 안에는 드는 것 같다. 너무 행복한 일이다. 그래도 아직 외국 뮤지션들의 사이즈에 비하면 뭐….

주로 자랑하거나, 뽐내는 이야기보단 좀 더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가사를 쓴다. 진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돈 번 사람이 돈 벌었다고 하는 것도 어떤 측면에선 솔직한 것 아닐까? 오늘 사진 콘셉트에 돈이나 금붙이를 등장시킨 건, 그런 맥락이다.
개리 요즘 스웨거, 스웨거 얘기 많이 하는데 물론 스웨거란 말의 뜻처럼 실력을 자랑하는 건 좋다. 뛰어난 친구도 많고. 그런데 물질적이고 금전적으로 의미 없는 자랑은 좀 별로인 것 같다“. 정말 나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차 한 대 샀어. 이제 여자친구 태울 수 있어” 같은 건 진짜 멋있지. 그런데 내가 들어도 허무맹랑한 자랑들이 있다. 써본 적이 있긴 한데, 영 안 어울린다.

리쌍이야말로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닌가?
개리 정말 그런 가사 쓰려면 전 세계 들쑤시고 다니고, 마이바흐랑 페라리 하나씩 있고, 풀장 있는 주택에 살고 그래야지. 집 하나 차 하나 막창집 하나 있는데…“. 난 오늘도 막창을 팔지. 사람들이 줄서 있어 대기 시간 한 시간.” 이게 뭐야. 웃기다.

인디 신에서도‘ 스웨거’란 단어나 개념이 유행처럼 퍼지면서, 별로 부자도 아닌데 부자 행세하는 뮤지션들은 더 많다.
개리 그런 프라이드는 존중한다. 실력도 좋다. 그런데 좀 더 진솔한 얘기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흐름 따라가기보다 메시지가 좋은 음악.

지난 앨범부터 다른 장르의 뮤지션들과 꾸준히 곡을 함께 만들었다. 장기하, 김바다, 이적, 국카스텐 등 면면도 다양하다. 그러나 간혹 다른 뮤지션과의 협업에서 리쌍의 색이 묻히고 상대 뮤지션의 색이 강하게 난다는 아쉬움이 있다.
국카스텐과 함께한‘ 격산타우’는 국카스텐의 느낌에 우리가 피처링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작업하면서 서로 얘기를 많이 했다. 사이키델릭으로 하려다가 다시 먹통으로 갔다가 결국 그런 사운드로 결정했다. 첨엔 드럼도 안 치려고 했고, 기타도 전자음에
가깝게 내려고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좀 안 어울리는 부분이 있다 보니 결국 국카스텐 쪽으로 많이 흘러갔다. 그렇다고 다 그런 건 아니다. 곡마다 다르다. (이)적이 형이나 (백)지영이 누나, (강)산에 형은 우리 스타일에 맞춰주셨다. 산에 형 스타일로 만들면‘ 죽기 전까지 날아야 하는 새’ 같은 노래가 안 나왔을 거다. 어떤 방식이든 좋은 곡이 나오면 된다. 우리 둘의 목소리와 같이 만드는 분의 목소리가 한 곡으로 태어나는 거기 때문에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TV를 껐네’는 리쌍과 다른 뮤지션들이 만났을 때 나올 수 있는 모범답안 같았다. 윤미래의 랩과 권정열의 보컬, 그리고 길의 작법과 개리의 랩이 각각의 특성을 모두 살리며 절충점을 찾았다. 그래서‘ 격산타우’ 같은 노래가 좀 더 아쉬웠고.
정확한 분석이다. 미래도 그런 랩을 하는 애가 아니다. 원래는 굉장히 파워풀하지 않나? 정열이도 리쌍 안의 정열이로 노래했다. 연기해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곡이 우리한테 주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 그 친구들랑 우리가 힘을 합쳐 전에 없던 새로운 걸 만들었다. 노랫말 역시 예전에도 야한 걸 좀 하긴 했지만, 이것처럼 풋풋하게 흘러간 노래는 없었다. 다 만들고 나서 용기가 생겼다. 다음 앨범에선 좀 더 획기적인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리 좀 다른 말이지만‘, TV를 껐네’처럼 솔직한 노래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같은 낭만적인 노래도 좋지만, 누가 요즘에 여자 꼬실 때 별 따주고 그러나. 그냥 술 마시고 키스하고 그러지. 흔한 얘기, 솔직한 얘기를 많이 했으면 한다.

리쌍의 시작을 생각하면, 지금같이 부드러운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허니패밀리 안에서도 제일 거친 이미지의 멤버 아니었나? 언제가 터닝 포인트였나?
‘TV를 껐네’같이 우리에게 중요한 방향을 제시한 곡이 있는데, 바로‘ 리쌍부르쓰’다. 그 때만 해도“ 아니 힙합이 이런 걸 얘기해? 사랑 노래를 해?”하는 생각이 많았다. 하면 안된다는 이상한 정서가 있었다.
개리 나도 그전부터 랩을 했었지만, 사랑 노래는 한 곡도 안 했었다.
그런데 2집 때 둘 다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그걸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당시 그런 시도가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 좀 놀랐었다. 변절이네, 변심이나 할 만도 한데.
말 많았다. 소위 말하는 마니아란 사람들이 리쌍에 대해 분석하고 그런 걸 우리도 보니까. 힙합 뮤지션들은 뭐 사랑 안 하나? 만날 분노, 고민 이런 걸로 맘이 가득 차 있어야 하나‘? 리쌍부르쓰’나‘ Fly High,’ ‘Slow Down’ 같은 걸 부르면서 굉장히 음악에 대해 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다. 우린 갱스터도 아니었고, 깡패도 아니었다. 그냥 조금 노는 날라리, 양아치, 이런 동네에 있는 애들이었데, 마치 갱스터인 양 가사 쓰면 가짜지. 어쨌든 이제 래퍼들 중에 사랑 노래 이별 노래 안 하는 사람 없다. 다 그렇게 되었다.
개리 힙합적인 가사가 도대체 뭔지, 그런 게 있긴 한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흑인들은 “난 컨테이너에서 태어났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우리 아빠는 감방 갔지” 이런 게 된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니까. 우리는 그런 경험도 없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그래서 2집 때부터 그런 가사를 쓰면서 이게 내 가사고, 우리 문화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 이런 건 할 수 있겠지“. 난 오늘도 본드를 불었어, 가스는 다 떨어졌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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