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우리는

이정향 감독의 신작 <오늘>은 ‘용서하지 않을 자유’를 말한다. 전작인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그녀의 신작이 10년만 이어서가 아니라, 이 영화로부터 ‘오늘’의 의미가 굳건해진 탓이다.

윌리엄 골딩은 평생 첫 작품인 <파리 대왕>에 시달리면서 살았죠. 당신은 지난 세월 동안 <미술관 옆 동물원>에 시달리지 않았나요? <오늘>이 늦어지는 걸 부담감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저는 시달림 같은 거 진짜 없었어요. <집으로…> 할 때도 전혀 신경 안 썼거든요. 저는 얘깃거리가 생기면, 딱 두 가지만 검토해요. 이 얘기가 정말 이 사회에 필요한가, 내가 이것을 영화로 완성하면서 인간적으로, 영화적으로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 있을까. <미술관 옆 동물원> 이후 로맨틱 코미디 하나 더 만들라는 주변의 조언도 많았지만, 연달아서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1백 미터 고지의 산을 올라갔다 왔으면, 그 다음에는 조금이라도 더 높은 산을 가고 싶은 거예요.

<미술관 옆 동물원>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 빠지지 않는 게 ‘대중과 평단 양쪽의 찬사를 받았다’는 대목이에요. 어때요? 당신에게 양쪽은 다른 집단으로 분류되나요? 일반적으로 어느 쪽이 더 좋아하는 표현이 있다고 말하니까요.
그냥 저는 열심히 성실하게 만들면, 두 가지 다 따라온다고 믿어요. 평론가나 기자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들의 자유이자 특권이죠. 자기 개성에 따라 다양한 평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도 그래요. 모든 기자들의 평에 의존해서 영화를 고르지 않아요. 제가 딱 의지하는 기자가 몇 명 있어요. 이 사람과 나는 작품의 취향이나 보는 눈이 비슷하다는 걸 아니까요. 제가 찍어놓고 참고하는 네티즌도 몇 명 있고요.

여기 삼청동에 있는 <미술관 옆 돈까스> 같은 곳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나요?
재미있다! 그리고 이 가게 오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내 영화 제목을 생각해보겠네 이런 생각?

지금 가장 대중적인 코드인 위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위로가 대중적인 코드인가요? 몰랐어요.

힘들지? 아프지? 하고 묻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공감의 형식이 유행이죠. 특히나 젊은 친구들에게 잘 통하고 있고요.
과연 그들에게 필요한 게 위로일까요? 오히려 정신 차려! 편하게만 살려고 하지 마! 그런 지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당신도 <오늘>을 통해 피해자 유가족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위로가 만연해 있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아, 내가 또 기획영화를 만든 거구나! <집으로…>를 만들었을 때 저한테 가장 상처가 된 말 중 하나가 “이정향은 기획영화를 잘한다”는 거였어요. 이정향은 진짜 영악하다, 쟤는 기획영화만 만든다. 기획영화, 심지어 요즘 관객들에게 어필하려면 어떤 소재가 좋을까란 생각조차 해본 적 없어요. 기획영화는 후다닥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처음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다 5년씩은 걸렸어요. 누구한테는 그게 칭찬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니에요. 또 기획영화 만들었다고 욕먹는 건가요?

오해받을 소지가 있긴 해요. 이를테면 노란 우산 같은 것도 노란 손수건에서 파생된, 격려의 의미가 있잖아요.
노사모에서 자기네를 대표하는 색이라고 좋아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정치적으로 생각할까 봐 그것도 겁나. 아무 생각 없이 배우한테 어울리는 색이어서 고른 건데 말이에요.

또 남지현 씨가 극중에서 그런 얘길 하잖아요. “지구를 쓰다듬고 싶네.”
아, 맞다. 위로구나. 나 정말 기획영화 하고 있나 봐요. 하긴 용서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빠진 피해자들에게 조그만 위로라도 건네고 싶었던 게 제 진정성이었으니까, 그건 맞아요. 하지만 건방지게 쓰다듬어주겠다는 게 아니라 소박한 위로의 말이었으면 했어요.

한편에선 ‘고발영화’라고도 부르던데요?
또 되게 해박하게 쓰신 분들 중에 제가 이 영화에서 용서가 뭔지 가르친다는 분도 있어요. 용서에 대한 인터넷 강의를 봤다는 혹평도 있죠. 용서에 대한 모든 상황을, 다 용서에 빗대어 얘기했어요. 뭘 설명해주려는 게 아니었어요. 누가 그런 표현을 썼던데, 용서의 그림자를 말하고 싶었죠. 용서의 위선에 질린 자들, 용서의 강박증에 짓눌린 자들, 용서의 위선에 속고 있는 자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행간의 의미를 좀 봐줬으면 했는데,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좀 지겨워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표현 방식이 좀 더 노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요.

송혜교 씨가 무대 인사에서 “처음으로 여러분이 공감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았다”고 했죠. 배우 스스로 밝힐 만큼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지닌 배우를 섭외하는 모험을 했어요.
혜교가 그랬나요? 똑똑하네, 그 자식. 나는 뭐랄까, 믿음이 있으면 그냥 밀고 나가요. 김을분 할머니나 승호도 오디션 한 번 안 보고 뽑았어요. 어느 순간, 아 이 사람이면 된다, 어울린다는 믿음이 생길 때가 있어요. 혜교는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전에 먼저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연락이 온 건 고마웠지만, 그래도 이건 혜교는 아니다, 하고 일언지하에 잘랐는데, 프로듀서가 만나나 보고 결정하라더라고요. <미술관 옆 동물원> 때도 전 심은하가 진짜 안 어울린다고 했거든요. 하지만 심은하를 기용하고, 결국 결과가 좋았잖아요? 주연 배우는 회사의 의견을 많이 수용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전 시나리오에 너무 빠져서, 넓은 걸 못 볼 수도 있으니까. 혜교는 우리가 TV에서 보는 송혜교와는 너무나 달라요. 정말 어른스럽고, 애늙은이죠. 어리광 부려가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 애가 아니에요. 굉장히 절제력 있게 표현하고, 그래서 다혜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거죠.

당신의 믿음을 배반하는 형편없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없었나요?
인간성이 좋다고 연기도 좋은 건 아니죠. 하지만 연기를 정말 잘하는 사람들은 인간성도 나쁘지 않아요. A급은 두 가지를 어느 정도 갖췄죠. 인간은 아닌데, 연기만 잘하면, 그 사람의 연기는 사실 B급이에요. 무엇이든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인간의 성숙도도 같이 온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일단 그 역할의 느낌에 맞고, 본인이 하고 싶어 해야죠. 주연이니까 하고 싶어 한다든지, 다른 작품 없으니까 이거라도 하자든지, 이런 마음을 저는 용납하지 않아요.

당신이 만드는 이야기가 그렇긴 한데, 상당히 제한적으로 인물을 써요.
제가 원하는 주제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딱 필요한 인물 외에 사사롭게 등장하는 게 싫어요. 비중이 없다면, 아무도 등장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동거를 해야만, 가족이나 형제들을 차단하고 집중할 수 있죠. 본의 아니게 동거 시리즈를 만드는 이유예요.

다혜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자신이 한 용서가 무슨 의미였는지 자각해요. 당신도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뭔가 자각한 경험이 있나요?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지금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는 춘희의 독백이 있어요. “사랑이란 게 풍덩 빠지는 걸로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젖어드는 건 줄 몰랐어.” 하지만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누굴 좋아하면 첫 눈에 반했어요. 하지만 그 작품을 만들면서 변했죠. 항상 사람을 첫 느낌으로 결정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많이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실수도 많고 편견도 많았어요.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부분이 많이 바뀌었죠. 그렇다고 남자를 잘 보는 건 아니지만요. 하하.

<오늘>에서 다혜는 용서를 이렇게 표현해요. 바다에 차가 빠졌을 때, 아무리 차 문을 열려고 해도 안 열렸지만 차 안에 물이 꽉 차니까 자연스럽게 열렸다고요. 많은 사람과 오랫동안 고되게 작업하는, 영화의 완성 과정 또한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까지 심오하게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목숨을 걸고 찍는다는 생각은 있어요. 체력적, 정신적 최대치를 고갈시키면서 찍으니까요. 영화 작업을 한다는 건 산고의 아픔을 망각하고, 또 애를 갖는 엄마들의 심정이랄까? 전 진짜 영화 만드는 거 싫거든요. 촬영 있는 날은 죽고 싶어요, 진짜로. 언제 크랭크 업 하나, 그때까진 살아 있을까, 촬영 있는 날마다 하늘 보면서 아, 지구가 망했음 좋겠다 그래요. 죽도록 무섭고 싫지만,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거리가 생겼을 때, 또 시나리오 쓰고 싶어지고, 반복되는 거죠.

하지만 지금 영화 산업은 점점 감독 개인의 동기와는 관계없는 일이 되어가고 있죠.
맞아요.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십 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 더 심해졌어요. 모든 것이 금권으로 시작해서 금권으로 결과가 나와요. 이번 작품은 상당히 빠듯한 예산 안에서 기적처럼 찍었지만, 그래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운 편이었어요. 배우의 감정선을 유지하는 순서로 촬영 스케줄을 잡는 건 예산이 더 들 수밖에 없는데도, 최대한 그렇게 했어요. 가난한 살림이었으나 그 안에서 최선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처음 당신이 데뷔할 땐 한국의 문화예술 전반이 ‘일상성’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때였죠?
지금은 무엇이 주목받나요?

‘충격’ 아닐까요? 최근에 잘되는 영화를 봐도 그렇고. 이제 당신이 했던 일상적인 얘기로 대중적인 호응까지 얻기는 상당히 힘들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충격을 이렇게 해석해도 될까요? 선동의 소재 거리가 있는가? 그건 정말 좋아하지 않는 건데. 하지만 저 같은 부류를 좋아하는 관객들도 있을 거라고 믿어요. 선동의 무리 속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이 모두 자기와 같은 바를 지향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반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거든요. 영화의 완성도가 문제일 뿐이죠.

당신은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의식이 있어 보였어요. 하지만 <오늘>은 좀 달라 보여요.
<미술관 옆 동물원>의 춘희 캐릭터가 저랑 좀 비슷했고, <집으로>는 제 외할머니를 추억하면서 했죠. 이번 작품은 솔직히 좀 이성적으로 많이 썼어요. 계속 감정을 이입해보려고 노력하면서. 이전처럼 마음먹은 대로 술술 풀리지 않았죠. 논문을 쓰는 것처럼 힘들게, 힘들게 쥐어짰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