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몰라요

2년 사이에 여섯 명의 감독이 바뀌었다. 단장은 제 목소리를 못 낸다. 야구는 야구를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

한국시리즈 5차전, 관중석에서 삼성 그룹의 깃발이 휘날렸다. 조직적이었다. 시구는 김연아가 했다. 김연아는 삼성전자의 에어컨과 태블릿 PC의 모델이었다. 경기 후엔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사장이 류중일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이 기사화됐다. 지난 8월 한화 김승연 감독이 경기장을 찾은 날, 한화는 LG를 대파했다. 경기 후 김승연 감독은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김태균 잡아올게”라고 말했다. 플레이오프 3차전에선 최태원 SK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이 동시에 경기를 지켜봤다. 두 구단주가 같은 날 야구장을 찾는 건 이례적이다. 어떤 이유든 구단 외에도 많은 일을 하는 구단의 주인이 야구에 관심이 있다는 건 좋은 현상이다. 지갑을 여는 건 구단주고, 투자 없는 구단은 살아남을 수 없다. 문제가 되는건 구단주의 애정이 너무 강해 감독과 단장, 즉 현장과 프런트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다.

지난해와 올해를 통틀어 6명의 감독이 교체되었다. 대부분 성적부진이 이유였다. 그 중엔 준우승하고도 잘린 감독과 4년 중 3년을 우승시킨 감독도 포함되어 있다. 교체 자체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결정권자에게 교체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었냐는 것이다. 왜 잘했는지, 왜 못했는지, 왜 못할 수밖에 없었는지. 올 시즌 LG는 감독 교체 과정에서 유난히 잡음이 많았다. “구단주가 야구를 좋아하셔서 야구장에 자주 오세요. 그런데 현장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 줄 사람은 없어요. 프런트에 전문가가 없으니까요. 선수나 감독이 그 일을 할 순 없잖아요.” 올 시즌 LG에 출입한 팀장급 기자 A가 말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당시 구본준 구단주 대행은 ‘올시즌 FA 계약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즌 중 LG는 송신영, 이대진 등을 데려왔다. LG는 6위에 머물렀고, 시즌 마지막 경기 때 박종훈 감독이 사퇴했다. “LG는 일요일 경기를 잘해야 돼요. 임원회의 때 야구 이야기를 자주 하거든요. 송신영이 왔는데도 성적이 안 나면 박종훈 감독 잘라야 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왔다고 해요.” 구단 운영비는 한 해 2백억 정도로 알려져 있다. 감독 연봉은 높아야 3억대다. 구단주는 냉정하다. 야구는 잘 모른다. 프런트는 제대로 된 야구를 구단주에게 알려줘야 한다.

기아는 준플레이오프가 끝난 후 선동렬 감독을 영입했다. 조범현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고 밝혔다. “조범현 감독님과 사퇴 전날 통화를 했는데, 내년 스프링캠프 얘기를 하셨어요. 단장도 감독 교체는 없다고 말하던 상황이었고요.” 야구 칼럼니스트 B는 의아해했다. “조범현 감독과 헤어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기아 단장이 직접 인터뷰한 4일 뒤 감독이 바뀌었다. 프런트가 제 힘을 못 쓰고 있다는 말이다. “아마 우승 후부터 구단과 균열이 있었다고 봅니다. 재계약 당시 얼마 안 되는 금액 차이로 갈등이 있었지요. 조범현 감독은 이범호가 오는 것도 몰랐어요.” 기아 출입기자 C는 좀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았다. 프로야구 감독은 계약직이다. 정확한 근거가 있다면 자를 수 있다. 판단은 프런트의 몫이어야 한다. 단장의 책무는 무겁다. 할 일이 많다. 야구에 대해 빠삭해야 한다. 그래야 권한을 제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현직 단장 중 선수 출신은 SK 민경삼 단장뿐이다. 첫 번째 선수 출신 단장은 히어로즈의 박노준이었다. 프로야구 창단 26년 만의 일이었다. “내가 고용된 게 아니라 이장석 대표랑 같이 팀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장석 대표가 힘을 실어줬죠. 메이저리그 식 운영을 원하기도 했고요.” 특수한 케이스였다는 말이다. 물론 삼성의 김재하, 두산의 김승영처럼 오랫동안 한 팀에서 일하며 비야구인 출신으로도 성공적으로 팀을 운영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아직도 야구문외한인, 그룹 내 계열사 고위급 임원이 낙하산처럼 단장 자리로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메이저리그는 단장의 힘이 세다. 경기 외적인 모든 것을 컨트롤한다. 최종재가는 구단주의 몫이지만, 감독 선임 또한 단장이 거의 알아서 한다. 연봉협상도 구단주가 예산을 정하는 선에 그친다. “감독과 단장이 동반 사퇴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적인 책임은 감독이, 외적인 책임은 단장이 지는 거죠.”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 김형준이 말했다. 권한에 대한 보장이 확실하기에, 그만둘 때도 깨끗할 수 있다.

일본 야구계에선 올해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던 주니치 오치아이 감독이 ‘시즌 후 해임’ 통보를 받은 것이다.당시 팀은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프런트에는 전문가들이 앉아 있습니다. 단장은 물론 사장도 선수출신이 많아요. 프로는 아니더라도,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야구를 해본 사람들이 전문성을 인정받으니 잡음이 없죠.” <스포츠춘추>에서 일본 야구를 취재하고 있는 박동희는 폐쇄적인 일본 야구가 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감독을 뽑을 땐 복수의 후보를 인터뷰한다.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긴 후, “이 사람으로 뽑았습니다”라고 발표하는 한국 프로야구와는 다르다. 감독의 계약기간은 지켜준다. 한국에서 작년과 올해 그만둔 감독 중, 로이스터를 제외하고 계약기간을 채운 감독은 없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현장에 맡겨야 한다. 대신 프런트가 조직관리 면에서 선수, 감독, 코칭 스태프를 모두 뽑되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형태여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구단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2002년, 김성근 감독은 <GQ>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LG 트윈스 감독에서 물러난 직후였다. 9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도저도 아닌 상황은 그대로다. 책임은 감독만 진다. 프런트는 할 일을 못한다. “한 구단주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너희는 머슴이고 나는 머슴을 부리는 사람이다.’ 믿기 어렵죠.” 박동희의 말이다. 어쨌든 야구는 머슴이 한다. 일 좀 해본 머슴을 뽑고 좋은 연장을 맡기면, 머슴은 일을 잘할 수 있다. 주인이 직접 마당에 나와야 할 이유는 없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