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디셔먼의 맨 얼굴

40년 전, 신디 셔먼은 자신을 찍은 사진으로 ‘예술’을 시작했다. 지금은 돈과 명예, 그리고 자유를 모두 얻었다. 지난 2월 26일, 뉴욕 현대미술관은 그녀의 회고전을 성대하게 열었다.

신디 셔먼이 말한다. “1970년대 중반쯤,이 작업을 시작할 때는 그냥 뭐 이거 재미나네, 이 정도 생각뿐이었어요. 내가 정말 예술가가 될 줄은 몰랐죠. 작업을 35년이나 하게 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고요.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진행됐어요. 연작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가 시작되는 식이었죠.”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그의 퍼포먼스 사진(돼지 분장부터,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링, 연출, 포즈, 장소 찾기까지 혼자 다 한다)으로 인해, 그녀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그리고 가장 성공한 여성 예술가가 되었다. 지난해 5월 경매에서 팔린 1981년 ‘센터폴드’ 연작 중 하나는 낙찰 가격이 44억원에 육박해, 여성 작가의 사진 한 컷 가격으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또한 셔먼은 비평가와 큐레이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제 막 모마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시작됐고 2013년에는 미국 순회전이 예정되어 있다.

아마 살아 있는 사람들 중, 방송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가발과 가짜 코와 모자를 그렇게 많이 쓰고 입술과 눈썹을 그렇게 많이 그린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셔먼은 자기가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운이 좋은 건 관객도 마찬가지다. 셔먼은 줄곧 보는 이들의 정신과 의식을 즐겁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가끔은 사진을 보면서 넋을 잃기도 했고, 겁을 먹거나 비위가 상할 때도 있었지만 지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셔먼은 사람들이 자신을 만날 때마다 놀라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놀란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거든요, 많이 실망한 것처럼 보여요. 내가 좀 더 이상한 사람처럼 굴어야 하는 건가 봐요. 생각보다 내 태도가 부드러워서, 내가 그런 미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거죠.” 하지만 셔먼은 작품 속에서나 실제 생활 속에서나 늘 그 자신일 뿐다. 1970년 후반 뉴욕 예술계는 지금처럼 돈과 힘이 최음제에서 나오던 시절이 아니었다. 협회와 상업 갤러리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별려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아이디어는 넘쳐났다. 당시 고전적 ‘대안’ 전시 공간이었던‘ 아티스트 스페이스’의 안내 데스크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신디 셔먼에게 직장은 완벽한 배양 접시였다. 그녀가 간혹 간호사 복장으로, 혹은 재키 케네디풍의 핑크색 정장에 커다란 ‘캣아이’ 안경을 쓰고 일터에 나타나곤 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예술계에 떠도는 전설이 되었다.

“그냥 그렇게 차려입고 집에 있었어요. 메이크업을 다 하고 의상도 입고요. 아마도 할인 매장에서 샀겠죠. 그런데 갑자기 시계를 보니 출근 시간인 거예요. 이런, 일하러 가야 할 시간이네. 그냥 이대로 가지 뭐.” 직장 상사들도 개의치 않았다. 그중 한 명이 셔먼의 첫 갤러리를 만들어줬다. 메트로 픽처스다. 지금도 그녀는 메트로 픽처스에서 쇼를 한다.

1970년대 후반의‘ 필름 스틸’ 연작에서 1980년대 초의 ‘센터폴드’ 연작, 그리고 최근의‘ 할리우드 햄튼’ 연작과 ‘광대’ 연작, ‘사회 초상’ 연작에 이르기까지 셔먼은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작품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녀의 사진과 쇼는 모두 무제지만 사람들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이름이 붙는다. 그동안 그녀는 나이 든다는 것 혹은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한 명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련의 작품을 창조했다. 그녀가 어떤 이미지나 어떤 사진 기술을 사용하느냐에 상관없이, 모든 작품에 그녀의 독특한 시각과 정확한 관찰력이 담겨 있다. 개인으로서 셔먼은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진들은 그렇지 않다. 그녀의 예술은 세부가 다양하고, 유머가 있다. 처음 사진 전시를 시작했을 때, 비평가들은 그녀의 작품이 그 시대 페미니스트 담론에 속한다고 정확히 맥락을 짚었지만, 셔먼 개인에게는 자신의 캐릭터를 가지고 노는 데서 오는 기쁨 같은, 보다 사적인 감정들이 언제나 중요했다.

셔먼 쇼를 기획한 모마의 큐레이터, 에바 레스피니는 말한다. “메이크업 솔, 귀고리,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그녀가 이끌어낸 그 인물과 캐릭터에 대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어요. 셔먼은 언제나 그 캐릭터를 속속들이 장악하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80년대에 ‘당대’ 예술가였어요. 90년대도 ‘당대’였죠. 그리고 2000년대에도 그녀는 여전히 당대의 예술가예요. 그녀의 2008년‘ 사회 초상’ 연작은 구시렁댔고, 비극적이었고, 천박했고, 아주 감정적이었어요. 예의 바른 사회의 최상위 계층에 있는, 특정한 나이대의 여성이었죠. 정치가의 부인일 수도, 예술 후원가일 수도, 리얼리티 쇼의 아내일 수도 있어요. 그 작품들은 젊음, 아름다움, 돈과 지위를 놓고 우스꽝스러운 기준을 세우는 문화와 갈등하는 여성들에 관한 기념비적인 초상이에요.”

또 다른 충격적인 이야기. 수많은 유명 예술가들과 달리, 셔먼은 온전히 혼자서 작업한다. 그가 차린 단출한 스튜디오엔 수년간 모은 소품과 의상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녀는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기 위해 카메라 옆에 거울을 두었다. “갑자기 내가 보고 있는 거울 속 모습이 전혀 내가 아니었어. 갑자기 거울에서 튀어나온 유령이 있어요. 그럼 나는 그 캐릭터가 바로 거기 있다는 걸 알게 되죠. 그런 순간들이 있었어요.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게 되는 순간.”

셔먼은 또한 자신이 모마의 후원으로 전시를 하게 된다는 것을 선뜻 믿지 못하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전통 사진 업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추방된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물론 예술계에서도 마찬가지였죠. 당시만 해도 회화와 조각 일색이었거든요. 그나마도 남자들이 대부분이었고요. 그래서 저를 비롯한 우리 세대 많은 여성이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던 것 아닐까요? 부적응자가 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