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없는 시대의 수많은 ‘보아’

대체로 아픈데, 아파봐야 결국 88만원 받는다는 저 유명한 ‘청춘’을 아예 생략하려는 시스템이 있다. 바로 오디션. 이 시스템은 과연 특정 기획사에 국한된 것일까?



스펙 경쟁에 내몰린 20대들은 ‘청춘’이야말로 고도성장 시대의 잉여 생산물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1988년에 출간한 <분석과 해석>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내 육체적 나이는 늙었지만 내 정신의 나이는 언제나 1960년의 18세의 나이에 멈춰 있었다.” 그는 1942년생 동갑내기인 이건희 회장과 김정일 전 위원장과 함께 18세가 되었지만,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그해 4월을 통과한 덕분에, 불혹을 넘어서도 청춘의 감각을 팽팽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위의 인용 문장에는 4.19 세대의 일원이 지닐 법한 자의식이 흠뻑 묻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어령이 “화전민 세대”라고 불렀던 이전의 전후 세대가 두 번의 전쟁을 치르면서 불임의 상태로 젊음의 혈기를 소모한 반면, 미국식 교육을 받은 4.19 세대는 구체제와 정면 대결을 벌여 잠시나마 승리를 거두었고, 그 경험을 원형으로 삼아 세계와의 접촉면을 확대해 갔다.

실제로 김현 또래의 소설가 상당수는 ‘성장’ 소설의 작가이기도 했다. 그 소설들은 지방 출신 대학생이 도시적 일상과 인문적 교양 사이에서 방황하다 ‘현대적인 청춘’으로 거듭나는 통과의례의 세목들을 제시했다. 이를테면, 첫사랑의 순정과 유곽에서 분실한 동정,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실존주의 철학서, 고향으로 향하는 열차 등은 주인공들이 청춘의 자아를 발명하고 연기하는 데 필수적인 소품이었다.

4·19 세대가 만든 청춘의 골격은 적어도 90년대 중반까지 유지되었다. 한 극점에는 20대 배우들이 청춘의 낭만주의를 설파했던 <사랑이 꽃피는 나무> 같은 드라마가 있었고, 다른 극점에는 386 세대의 여성 작가가 자신 세대의 정치적 급진주의를 다룬 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는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라고 외치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청춘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90년대식 낙관주의의 정점이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들이닥쳤고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청춘에 관한 메시지들은 빠른 속도로 공중에서 사라졌다. 기성세대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위로의 말을 되풀이했지만, 자기계발의 스펙 경쟁에 내몰린 20대들은 ‘청춘’이야말로 경제성장률 10퍼센트룰 맴돌던 고도성장 시대의 잉여 생산물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취업난에 허덕이다가 마침내 청춘의 불필요성을 자각했다고나 할까? 바야흐로 낭만과 방황과 고뇌의 수사들을 ‘중2병’의 병리적 징후로 받아들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이런 변화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SBS의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에 심사위원으로 등장하는 가수 ‘보아’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주지하다시피, 6·70년대생 음악생산자들은 포스트 서태지 시대에 대비해 문화의 산업화라는 야심찬 목표를 내걸고 아이돌 매트릭스를 기획했고, 보아는 그 매트릭스가 창조한 첫 ‘완전체’였다. 1986년생인 그녀가 오디션을 본 해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이TV라는 사실은 우연이겠지만 대단히 상징적이다. 바로 그해부터 그녀는 SM엔터테인먼트의 주력 무기로 관리받기 시작했고, 14세의 어린 나이로 데뷔했다. 그리고 지금, 26세의 그녀는 코스닥 상장기업의 이사다운 시선으로 자신을 롤 모델로 삼는 오디션 참가자들을 응시하며 세련된 어조로 그들의 퍼포먼스를 품평한다.

아마도 보아가 <K-팝스타>를 자신의 ‘에고트립’ 무대로 만들려는 박진영에 유일하게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것도 그녀의 이런 이력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박진영이 주연으로 남고자 하는 아이돌 매트릭스로부터 처음으로 ‘Peace B’라는 암호명을 발급받은 ‘초호기’면서, 어린 시절부터 문화산업의 생리를 자신의 일상 습속으로 내면화한 ‘허리케인 비너스’니까. 그래서일까? 박진영이 <드림하이>풍의 과장된 ‘연기’를 펼쳐 보인다면, 보아는 그냥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박진영이 여전히 청춘인 중년으로 보이는 반면, 보아는 청춘을 살아본 적 없는 20대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아에게 인큐베이터 구실을 해준 연습생 시스템을 눈여겨볼 만하다. 그것은 일종의 실험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청춘’을 말소 처리한 뒤 소년기와 성년기를 바로 이어 붙여 ‘뉴 타입’의 인간형을 양산하려는 시도가 거듭되는 실험실 말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특정 매니지먼트사에만 국한된 것일까? 자, 그러면 디즈니랜드에 대한 장 보드리야르의 낡은 농담을 되풀이하면서 마무리. 혹시 <K-팝스타>의 보아는 한국의 청춘들이 ‘배틀로열’ 식 생존게임을 통과해 새로운 인간형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감추기 위해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