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종로구와 서대문구 사이에 홍지문이 있고, 내천 건너 홍지 마을엔 가수 장사익이 산다. 그 집 마당을 비집고 올라온 작은 꽃을 내려다보면서 작설차를 나눠 마셨다.

머리가 희고, 체구는 작지만 속을 뭔가로 꽉 채운 것 같은 사내가 무대 위에 서서 인사도 없이 노래를 시작했다. 2007년 가을 한강 난지지구에서 열린 쌈지사운드페스티벌 무대였다. 관객은 반으로 갈려 있었다. 양쪽 무대를 맡은 밴드가 번갈아 연주했다. 빅뱅이 ‘거짓말’과 ‘하루하루’를 부르고, 언니네 이발관이 ‘순간을 믿어요’를, 드렁큰 타이거가 ‘난 널 원해’를 불렀던가? 정확지 않다. 오른쪽 무대가 끝나고 왼쪽 무대에서 장사익이 노래할 때 젊은 관중들은 어리둥절해했다. “누구야?” “장, 누구?” “할아버지 한복 입었어.”

아무렇지도 않게, ‘찔레꽃’은 소곤거리는 소리로 시작됐다. 어린 목소리들은 그때까지 맨정신이었다. 맥주를 마시거나 담배를 태우는 식으로, 반대편에서 끝난 다른 무대의 여흥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누군가는 취해 있었겠지. 또 누구는 지루했겠지. 바람은 육지에서 강으로 불었다. 한강 둔치엔 사람이 그렇게 많아도 바람 때문에 한갓졌다. 노래가 곧 고조됐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할 때까지만 해도 덩실덩실 조용했다. 강바람이나 노래나 같았다. 그러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할 때 사람들의 고개가 무대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누구는 오징어를 입에 문 그대로, 다른 누구는 맥주병을 기울인 그대로였다.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장사익이 냅다 질렀다. 그때 바람의 방향이 조금 바뀐 것 같았다. 사람들이 홀린 것처럼 모여들었다. 한 대 후려 맞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절창’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딘가 끊기는 소리가 들렸으니 그건 저녁이니까 으레 강 쪽으로 불던 바람길이었거나, 거기 모여 있던 사람들이 노래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 같은 게 뚝뚝 절단나는 소리인지도 몰랐다. 장사익은 거기 모인 사람들과 바람을 어떤 식으로든 끊고 흔들고 흩어놓았다. 지금, 장사익은 종로구 홍지동에 고요하게 산다. 4월 어느 날 오전 10시에, 그날 저녁에 대해 말했더니 그가 말했다. “나는 거 맞지도 않는데 거기 놔가지고. 그 사장이 오라고 해서 간 건데 시행착오지 뭐.” “나중엔 안 그랬어요. 끝나고 나가면서도 ‘그 한복 입은 할아버지’ 얘기를 했어요.” “그려요? 헤헤.”

이런 식이다. 장사익과의 대화는 신나게 이으려다 멍하니 산세를 보거나, 봄이라서 몸이 풀린 흙을 비집고 올라온 야생화를 칭송하는 식이었다. “저쪽 앞에 보이는 독수리 같은 저 산이 인왕산입니다. 요 뒷산 바위 있는 산이 북한산 끝자락이고. 그래서 우리 집은 이렇게 산에 둘러싸여 있어가지고 자연 사계절을 다 볼 수가 있는. 혹시 마당에 가시면 꽃 밟지 마셔요. 노오랗게 올라왔잖아? 기맥히잖아요? 정말 아름다워요.” 밑에서 문고리 소리가 ‘철컥’ 나면 장사익은 “누구셔요~!”, ‘찔레꽃’ 부를 때의 백 분의 일 정도로 외쳤다. 쩌렁쩌렁했다. 창밖으론 북한산 바위 직벽, 아래로는 작은 정원, 가까이는 장사익이 직접 만든 풍경과 잣나무, 소나무, 멀리로는 인왕산이 보였다. 가수가 노래할 때, 소리의 근본은 굳이 찾지 않아도 전해진다. 누구 소리는 뒤통수에서 나오고, 다른 누구 소리는 목젖 언저리에서 긁혀 나오고, 또 다른 누구는 가슴을 기어 올라와 입 안을 휘돌다가 마이크에 닿는다. 장사익이 내는 소리는 그게 감춰져 있는 것 같았다. 혹은 너무 드러나 있었다. 그건 한 점에서 비롯된 소리가 아니었다. 면이었다. 작은 체구 전체가 진공관이거나 떨림판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조금 더 듣다 보면 또 달라졌다. 면은 2차원인데, 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숫제 사방에 장사익이 있는 것 같은, 모든 공기가 소리가 된 것 같은…. 그러니 바람길도 끊기고, 장사익이 내는 소리가 모든 입자에 묻어서, 관객들은 넋이 다 빠져서 무방비로 앉아 있을 수밖에.

“몸에 터럭까지 다 정성을 들여야만 그런 소리가 나와요, 실은. 어떤 사람은 목으로만 노래를 하고, 가슴이나 배로 막 노래하잖아요? 내가 한 걸 이렇게 보면은 이 발끝에서 손끝, 머리끝까지 전부 다 꽈악! 전체에서 나오는 그런 것 같아. 난 그걸 모르지요. 하지만 내가 봐도 그러니까. 이 몸이, 보니까 난 항상 율동을 하더라고. 얘가, 이 몸이 뭔가 노래를 막 그냥 율동으로 해요.” “노래할 때는 모르셨어요?” “예, 내가 보니까 율동을 하더라고. 그 음악에, 장단이나 고조 같은 게 전부 다 일치 돼가지고 그니까, 가만히 서서는 그런 노래를 못해요. 그 노래에 막 내가 쏙 들어가가지고 노래가 만약에 올라가면 나도 올라가고 내려가고 그렇게 부르는 거야. 하나가 돼 버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여기 팔 끝은 올라가는데 가만히 있으려고 해봐, 이게 안 되잖아? 무릎서부터 전신이 음악이랑 전부 다 같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되는 거죠.” “이렇게 이렇게” 말할 때, 작고 단단한 몸이 슬렁슬렁 움직였다. ‘봄비’나 ‘허허바다’를 부를 때도, 그 몸은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양이 꼬리처럼 움직였다. 춤도 아니고추임새도 아닌 채, 바람이 부니까 흔들리는 것같이 산들거렸다. “어떤 때는 발에 막 쥐가 나. 그럼 발을 꾹 누르고 점점 쓰러지지. ‘찔레꽃’ 같은 노래할 때 뒤에 엄청나게 소리를 지르는데, 거기서 현기증이 반짝반짝 나요. 거기서 0.01초만 아차, 하고 마음을 놔도 무대에서 쓰러져버려요. 그런 게 있어요. 그러니까 모든 몸이 노래 하나에 그냥 다 스며들어요. 정신 놓으면 그냥 쓰러져, 죽어.” 노래가 끝났을 때, 장사익은 얼굴 모든 주름으로 웃는다. 눈썹은 거꾸로 된 팔자八字가 되고, 눈은 안 보인다. 입에서 생긴 파문이 얼굴 전체를 덮는다. 그러다 노래할 때와는 좀 다른 얇은 목소리로 “안녕하셔요, 장사익입니다~” 인사하면 관객들은 긴장이 탁 풀린다. 이 가수가 방금 생사를 왔다갔다 했다는 걸 관객은 알까 모를까? 두루마기나 한복을 입고 그러니, ‘순박’ ‘질박’ 같은 단어만 무표정하게 따라붙는다. 그가 ‘죽을 힘을 다한다’는 말엔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 말하면 또 그런 게 아닐까? 무대에서 생사를 오갈 때 객석에선 박수를 친다. 그게 관객의 최선이다. 그래서, 어떤 극점에 있는 예인의 소리나 몸짓엔 몹시 외롭고 잔인한 구석이 있다.

노래하기 전엔 열일곱 개의 직업을 전전했고 마지막엔 ‘카센타’에서 3년 정도 일했다. 그동안 노래는 쭉 불렀다.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딱 3년’ 스스로 약속하고 일을 그만 두고 태평소를 불었다. 이불 속 혹은 잠실 쪽 한강 둔치 어느 토끼굴 속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2집 ‘하여가’ 후렴구에 들렸던 태평소 능게 가락이 장사익의 것이었다. “세상은 그런 게 있어요. 사람도 그렇고 모든 행위도 그렇고. 첫 번부터 익사이팅하면 나중에 더 이상 어떻게 올라가? 첫 번부터 익사이팅 허면 좋지. 근디 여기서 더 이상 익사이팅 해야 될 데를 못헌단 말여. 여기 이렇게 숨겨놓고 있다가 사악 벼락치듯이 허고, 또 줄였다가 해 갖고. 적은 걸 적게, 큰 걸 크게. 그게 음악이고 그런 거예요. 요샌 다 평범하게 가잖어?” 매일 쓰는 것같이 다 닳은 빛이 나는 다기에다 장사익은 계속 작설차를 내렸다. 그걸 주거니 받거니, 비우면 채우고 차면 마시고 했다. 네 잔 정도 마셨을 때 몸이 더웠다. 더디 온다던 봄이 갑자기 온 것 같은 날이었다. “창문 열어? 더우면 창문을 살짝 열어요. 그럼 아주 시원해요.” 10센티미터 정도 열어놓았더니 북한산 자락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밖에선 풍경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그 사이로, 장사익이 “적은 건 적게, 큰 건 크게. 이렇게” 하면서 ‘찔레꽃’의 도입부를 불렀다. 계속 말하던 소리보다 반 정도 작은 소리. 하지만 마주 앉은 저 몸 어디가 울려서 나오는 건지 가늠하기 어려운 소리. 뒤에도 장사익, 옆에도 장사익. 공기에 묻어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목소리, 간간이 풍경 소리. 그러다 노래를 멈추고 또 얼굴 모든 근육으로 웃으면서. “이런 거여. 하하. 소리를 햐아악 줄이는 거. 이게 바로 비움이라, 비움.” 마흔 몇 살에 데뷔한 절창에게 역정이 없을 리 없었고,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숱한 인터뷰에 다 있다. 봄은 그냥 봄이라서 봄인 것처럼, 노래하는 장사익의 모든 건 사실 풍경 좋은 집이 아니라 무대 위에 있을 것이다. 노래를 말로 설명하는 건 가보지 않은 사막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게 아닐까? 노래든 춤이든, 시간을 몸으로 지탱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두려운 것도 별로 없다.

“무섭냐고? 나 무서운 거 없어요. 어디 ‘숙자’같이 있다가 그냥…. 숙자가 뭔지 모르지? 노숙자. 맨날 잠자고, 쏘다니니께. 아, 한 보름 전에 아주 죽겄다 살아났는디, 병이 우리한테 얘기해주는 게 있어요. 장염에 걸려서 일 년치 다 앓았는디 앞으로 일 년 제대로 살아야 되겄다 이런 생각도 있고. 그런 게 무서운 거지 딴 건 무서운 거 없어. 먹는 거 욕심 그거만 줄이면 되는디, 그게 안 돼. 참을라 해도 안 돼. 미치겠어 이거. 아하하하.” 어떤 땐 동굴로 확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희열을 느끼고, 내장을 다 토할 듯 노래하다 정신을 놓으면 죽을 것 같아도 장사익의 무대는 전국에서 한 달에도 몇 번씩 열린다. 장사익은 고려장 하려고 “어머니 업고 꽃구경 가자”는 아들과 등에 업혀서 바닥에 솔잎을 뿌리는 어머니를 노래하거나, ‘하늘가는 길’에서 상여 소리를 하다가 ‘봄비’ ‘동백아가씨’ ‘대전부르스’로 한 판 논다. 3월 말엔 7집 <역>이 나왔다. 1번 트랙 ‘역’은 이렇게 시작한다. “잎사귀 하나가 가지를 놓는다. 한 세월 그냥 버티다 보면, 덩달아 뿌리 내려 나무 될 줄 알았다. 기적이 운다.” 나무에 달려 있으니 나무가 될 줄 알았다가 잎사귀 떨어질 때 들리는 기적 소리와 꿈 속에서 갑자기 날아가는 나비는 같을까 다를까? 종로구 홍지동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한 그릇씩 먹고 내천을 따라 홍지문 쪽으로 걸을 때 물 아래엔 송사리가 많았다. “저기 좀 봐요. 여기는 물고기가 저렇게, 저렇게 아주 많어. 아유, 참.” 그는 아흔 살까지 늙은 소리로도 계속 노래하는 생각만 하면 아주 즐겁다 말했다. 조금 더 걸었더니 내천가에 크고 흰 새가 앉아 있었다. 백로나 두루미라고 하기엔 현실 같지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장사익은 다시 집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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