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할인

옆자리의 직장 동료가 오전반 섹스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점심시간엔 할인도 받을 수 있다.

여자는 일찍 일어났다. 중요한 미팅에 나서는 날이었다. 여자는 조심스러웠다. 앞코가 막힌 구두에 스타킹을 신었다. 더위 먹은 아스팔트의 복사열에 허벅지 안쪽이 축축해졌지만, 그보다 긴장한 탓에 손에 땀이 차는 게 더 신경 쓰였다.

남자는 들떠 있었다. 처음으로 여자와 외근을 나가는 날이었다. 타이를 고르다 말고 셔츠 팔을 한 번 더 접었다. 티셔츠를 입고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옷장엔 가슴 근육이 드러나는 브이넥 티셔츠가 많았다. 어깨를 앞으로 툭, 털면 쩍, 갈라진 곳이 보였다. 허브 향이 지독한 고체 향수를 맥박이 뛰는 곳에 딱풀처럼 문지르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남자는 그런 수풀 냄새야말로 남자답다고 생각했다. 달거나 그윽한 향 같은 건 애들이나 뿌리는 거라 여겼다.

여자는 까다로운 편이었다. 주말 밤을 허투루 보내는 법은 없었지만, 아무 남자와 어울리진 않았다. 싫어하는 게 많았다. 스티치가 야구공 실밥마냥 드러난 청바지는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벨트가 드러날 정도로 짧은 티셔츠에 암행어사 마패 부럽지 않은 버클, 코와 턱 언저리에 간신히 자리 잡은 수염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남자는 허리가 잘록한 셔츠, 옷깃에 단추가 두 개쯤 달린 옷을 입고 출근했다. 여자는 남자의 주말 복장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 남자를 사랑할 일은 없겠군. 가벼운 마음이니, 칭찬은 더욱 부담 없었다.

“대리님 셔츠 너무 예뻐요.”

우쭐한 남자의 승모근이 종으로 바짝 섰다. 여자는 맘에 없는 칭찬으로 승승장구해왔다. 이직하면서도 연봉을 절반 가까이 올려 받았다. 미팅만 했다 하면 계약을 따왔다. 여자의 이름은 업계에서 유명했다. 여자의 지난 직장엔 남자가 적었다. 새 직장에 출근한 지는 두 달째였다. 이번엔 여자가 드물었다. 여자의 무기는 이제 사내에서도 통했다. 보수적인 옷차림에 단아한 얼굴로 칭찬을 내뱉으면, 남자들은 벙어리처럼 입술만 쳐다봤다. 입술엔 복이 가득한 점이 있었다. 남자들은 침대에 올라서야 그 점이 야하다고 고백했다.

여자는 점만큼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다. 직장에서 다른 맘을 품을 생각은 없었다. 애인은 여자의 이상형에 가까웠다. 눈과 귀가 모두 즐거웠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덴 거리낌이 없었지만, 왁싱하거나 치마를 입는 부류는 아니었다. 무제한 요금제가 없었다면 결혼하는 편이 돈을 아끼는 길이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대화는 끊일 줄을 몰랐다. 여자는 꽤 오랫동안 다른 남자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직장을 옮긴 후, 여자에게 새로운 남자친구들이 생겼다. 모두가 여자에게 잘해줬다. 여자는 출근할 때마다 남자의 책상을 지나쳤다. 남자는 여자의 직속상사였다. 책상은 그의 선명한 삼두근만큼이나 명확했다. 구획은 직선으로 나뉘어 있었고, 물건도 큼직하고 뚜렷했다. 음반이나 책, 사진, 둥근 펜꽂이 같은 건 없었다. 대신 한정판 맥주 병따개, 에너지 드링크, 자동차 미니어처가 보였다. 여자는 애인의 사무실을 몰래 방문한 적이 있었다. 벽에는 그림이, 선반엔 DVD가 가득했다. 애인의 책상에 있는 건 남자의 책상엔 하나도 없었다. 여자는 조조할인 옆자리의 직장 동료가 오전반 섹스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점심시간엔 할인도 받을 수 있다. 남자가 퇴근한 후 몰래 물건을 만져보기도 했다. 처음 보는 남자의 물건은 궁금한 것 투성이였다.

마케팅 부서는 유독 외근이 잦았다‘. 사수’인 남자와‘ 부사수’인 여자는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남자는 뒤에서 봐도 단단하고 넓었다. 오늘처럼 얇은 셔츠를 입은 날은 잔근육이 그대로 주름으로 남았다. 예고 없이 뒤에서 와락 안기면 근육 때문에 튕겨나가는 게 아닐까? 여자는 애인의 몰캉한 배 위에 누워 있는 걸 즐겼다. 남자의 배는 육안으론 평평했지만, 머리를 대면 폭신했다 여자는 남자 몸에서 단단한 데는 한 군데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배울 게 많았다. 배우다 보면 살이 부딪혔다. 가장 가까운 쪽의 피부부터 남자는 애인과 완전히 달랐다. 마우스를 같이 잡으면 여자의 손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야구 글러브 안에 낀 야구공, 아니 두꺼비집에 갇힌 손처럼 아늑했다. 섬세하고 긴 애인의 손과는 달랐다. 남자는 여자의 상상을 부추겼다. 남자의 민망한 옷차림을 사랑할 일은 없어도, 사랑해야 섹스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3년 차라면서 이런 것도 할 줄 몰라요?”
“대리님이 가르쳐줘요 그러니까.”

과외선생님과 제자 따위의 관계를 남자들이 에로틱하게 여긴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언젠가 애인에게 이벤트를 해주겠다며 검은 뿔테 안경을 산 적도 있다. 그날 밤엔 콘돔이 모자랐다. 오늘은 남자가 선생님이었다. 다른 사람에겐 학생주임 같았지만, 여자에겐 여고 체육선생님처럼 상냥했다. 둘의 대화는 서로의 책상만큼이나 가까웠다. 붙어서 뭔가를 배우다 보면 여자의 팔과 남자의 팔이 엇갈렸고, 여자의 손바닥이 남자의 허벅지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여자는 굳이 손을 치우지 않았다.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남자는 선을 넘은 적이 없었다. 어깨를 툭툭 치거나 팔을 잡아끌긴 했지만, 어깨를 감싸 안거나 손을 잡진 않았다. 근무시간엔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가끔 밤에 잔업을 핑계로 전화를 걸어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곤 전화를 끊었다. 그럴 때만 말을 놓았다. 감질나게.

“점심 나가서 먹을까요? 외근 나가는 길에.”

남자는 대답도 듣지 않고 먼저 일어섰다. 여자는 마침 구내식당 식권이 다 떨어진 차였다. 회사 차는 남자의 차나 다름없었다. 남자는 영업수완이 뛰어나 유독 외근이 잦았다. 남자의 갑을 관계는 주말이면 무너졌다. 거래처의 콧대 높은 직원들도 주말 밤이면 남자를 찾았다. 여자와 남자의 공통점이었다. 여자의 점과 남자의 몸은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보다 훨씬 더 요긴했다.

“대리님은 여자친구 없어요?”
“만나는 사람이야 있죠.”

여자가 조수석에 앉았다. 사무실에서와 똑같은 냄새가 났다. 좀 더 진하게. 요즘 여자의 머리카락에 배어 있는 냄새였다. 여자는 그게 무슨 냄샌지 몰랐다. 목이나 귀를 애무하던 애인이 불쑥 물어봤을 땐, 의심받는 게 싫어 방향제 냄새일 거라고 둘러댔다. 남자는 기어 옆에 놓인 고체 향수를 디오더런트 바르듯 다시 한 번 손목에 찍어 발랐다.

몇 시간 후, 여자는 애인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걱정되긴 했지만 숲속에 들어온 것 같은 청량한 기분이 싫진 않았다. 남자와 향기는 아주 잘 어울렸다. 애인은 향수를 쓰지 않았다. 밀폐된 차 안에선 냄새가 목소리보다 설득력 있었다. 굳이 팔을 조수석 뒤로 두르고 후진하지 않아도 차 안은 긴장으로 팽팽했다. 미팅은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퇴근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기엔 애매했다.

“난 일 좀 보고 들어갈 거예요. 사무실 데려다줄까요?”
“저도 데려가요. 어차피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데. 우린 한 몸이잖아요. 네?”

남자는 한 몸이 되는 대신 여자를 약속 장소로 데려다줬다. 여자는 애인의 배에 누워, 수동 기어를 꽉 잡고 휘두르던 남자의 못생긴 손가락에 대해 생각했다. 애인은 내일 떠날 미국 출장으로 들떠 있었다. 신신당부하는 말들과 서로가 가짜로 지은 아쉬운 표정을 뒤로하고, 여자는 스마트폰으로 시차를 검색했다. 시차는 여자에게 유리했다. 애인이 술에 취할 시간에, 서울은 대낮이었다. 여자가 화장을 지울 땐, 미국은 이른 새벽이었다.

“나 내일부터 저녁 누구랑 먹어?”
“나 없는 동안에만 회사 사람들이랑 먹어. 좀 친해져야지.”

여자는 특별한 일이 없을 땐 항상 애인과 저녁을 먹었다. 이제 공식적으로 남자와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남자는 헤어지기 전까지 방향제 냄새가 너무 고약하다며 투덜댔다. 향수라기엔 찐득하고 달콤한 맛이 덜해 의심하진 않았다. 적외선을 비춰야 드러나는 손목도장처럼, 남자는 은밀하게 여자의 몸에 체취를 남겼다.

“대리님,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요?”
“남자친구 안 만나요?”
“출장 갔어요.”
“그래요? 참, 오후에 미팅 있는데.”

오후 두 시쯤 차를 타고 나선 남녀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남자의 단골 모텔은 사무실에서 멀지 않았다. 지금쯤 여자의 애인은 면세점에서 여자를 위한 선물을 사고 있을 것이다. 여자의 참을성은 이륙시간까지였다. 애인이 현해탄 상공에서 잠들었을 시간, 여자가 남자의 요란한 바지를 내렸다. 남자의 몸은 마호가니 식탁처럼 검붉고 단단했다. 여자가 짝이 잘 맞는 의자를 포개듯 남자의 몸 아래로 스르르 기어 들어갔다. 단단한 몸은 한편으로 미끈하기도 했다. 딱딱한 건 하나로 족할지 몰라도, 매끈한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었다.

“색깔만 예쁜 줄 알았는데, 두드려볼 만하네요?”
“여기 점심시간엔 할인돼요.”
“저, 밥 먹을 땐 통화 안 해요.”

점심시간이면 10분 만에 밥을 뚝딱 먹고 운동장으로 뛰쳐나가던 고등학생들처럼, 여자에게도 체육시간 외에 방망이를 잡을 일이 생겼다. 애인이 육지에 발을 딛기까진 아직 아홉 시간이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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