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기다리세요?

2012년 런던 올림픽이 열린다. 1998년 서울 올림픽으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 그때 태어난 아이들이 국가대표가되었다. 올림픽은 여전히 그 올림픽일까?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여름이 아니라 가을에 열렸다. 개막식에서는 한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다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손을 흔들었다. 한국은 금메달 12개를 땄는데 종합순위 4위였다. 양궁의 김수녕이 2관왕이 되었고, 양영자와 현정화는 복식으로 유남규는 단식으로 탁구에서 금메달을 땄다. 여자 핸드볼은 결승전에서 소련을 21 : 19로 물리치고 울음바다가 되었다. 폐막식에선 다듬이 방망이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오작교가 놓이는 아름다운 퍼포먼스가 행해져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웬만큼은 다들 기억하는 얘기. 하지만 얼마 전 이런 말을 들었다. “저는 서울 올림픽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요. 이상은이 ‘담다디’ 부르던 모습은 기억나는데 올림픽은 기억이 안 나요. 그때가 내내 그때 맞죠?” 1980년생의 말이었다. 단순한 일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렀으니까. 인류의 꿈인 듯, 86과 88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세대로부터 86과 88에 태어난 이들이 올림픽 국가대표가 될 만큼의 시간이니까. 그러니 그때의 올림픽이 지금의 올림픽일 리 없다는 것도 사뭇 자명한 일일까?

얼마 전 여자 농구 한일전이 있었다. 런던 올림픽 출전 티켓이 달린 경기였다. 결과는 79 : 51 대패. 올림픽 출전권은 진작에 물 건너갔지만 문제는 승패에 국한되지 않았다. 경기 내용이 문제였다. 4쿼터 내내 우리 선수들은 숫제 무기력에 가까웠다. 한국 여자 농구의 상징적인 이름이자, LA 올림픽 은메달의 주역인 박찬숙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 경기를 두고 “국가적 망신”이라고 표현했다. “내가현역 때 일본을 만나면 무조건 묵사발이었다”면서. 선배의 안타까움은 깊었다. 그런데 후배도 과연 똑같은 생각이었을까?

비단 이번 여자 농구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한국 스포츠에서 투지와 정신력 부족에 대한 성토가 부쩍 늘었다. 괜한 인상만은 아니어서,배구 경기를 보다가 천금 같은 서브를 실패하기에 땅이 꺼져라 혀를 차는데, 정작 코트의 선수들은 자기들끼리 별거 아니라는 듯 웃는장면을 보기도 하는 것이다. 실력차로 지는 건 불가항력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어떤 의지가 없는 경기는 새삼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어떻게 저럴 수가! 그런 한편 생각한다. 과연 선수를 비난할 일일까? 경기 한 번 보러 간 적 없이, 선수 개인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그 자리에 섰는지 모르면서 태극 마크를 이유로 무작정 바라도 되나?

투지와 정신력을 유난히 강조하는 건(혹은 그것만을 믿는 건) 한국 스포츠의 오랜 맥락이었다. 돈도 없고 기술도 없지만, 악으로 깡으로 한번 붙어보자는 식 말이다. 실제로 그 정신력이 찬란하게 빛나는 결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사실, 올림픽 금메달은 거의 그랬다.그건 마치 신화처럼 취급되었다. 신화의 든든한 배경은 ‘우리 모두가 어려운 시절을 살았다’는 무의식. 그러니 얼마나 장한가! 고기 한점 못 먹었어도 전 세계 만방에 애국가를 울린 대한의 아들딸들이. 하지만 이제는 통하지 않는 얘기다. 변화는 빠르게 상징적으로 왔다. 바로 박태환과 김연아다.

두 선수는 우선 그 종목 자체가 이전과는 생소하리만치 달랐다. 수영과 피겨스케이트는 대한민국이 뭔가 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종목이 아니었다. 그리고 모습이 달랐다. 김치와 고추장의 힘만으로 뭔가 이루어냈다기엔 그저 요즘 애들의 얼굴이었다. 가로수길에서 홍대 앞에서 마주치는 잘생기고 예쁜 젊은이였다. 그것은 한국 스포츠의 흐름을 바꾼 이름이 되었다. 요컨대 스포츠에서의 승리와 영광이란 국가와 민족의 기쁨인 동시에 철저히 개인적인 성공이라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저 자신을 위해서 이 메달을 갖고 싶었어요.” 이런말이 “대한민국 만세!”의 자리에 대신 들어온 것이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그것은 곧장 상업적인 면면과도 재빠르게 닿았다. 유명 선수들은 몸값이 올랐고, 스타가 되었고 CF에도 출연했다. 그럴 때마다 액수에 대한 보도가 따라다녔다. 이중적이고 삼중적인 시선이 작용하기 시작하는 지점, 바로 돈이 전면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연예인이냐 운동선수냐” 같은 유치한 질문이 밑도 끝도 없이 붙는 건 예상 가능한 일이었지만, 마침내 새로운 올림픽에 도전하겠다는 멋진 뜻을 밝히는 김연아에게, 일부는 격려와 박수가 아닌 다른 것을 안겼다. 말하자면 우리는 아직 애국심이라는 명백한 포장과 한 개인이 성취한 업적 사이에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다.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스포츠이기 때문일 것이다. 투지 하나로 모든걸 뒤엎어버리던 국가대표의 짜릿한 신화로부터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으로 분리하는 것에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 맞는 런던 올림픽이다. 박태환이 첫 번째로 터치패드를 찍는 순간, 왕기춘이 상대를 메치는 순간, 장미란이 으랏차차 바벨을번쩍 들어올리는 순간, 우리는 환호할 것이다. 또한 어떤 선수의 정신력과 투지 부족을 지적하며 혀를 찰지도 모른다. 올림픽이라는 거대 이벤트를 즐기는 합당한 방법들이다. 하지만 태극 마크와 금메달이라는 신화를 뒤집어쓴 관념은 허들 넘듯 넘어서야 한다. 금메달을 따면 병역을 면제받지만, 은메달 따면 관심 자체를 면제받는 씁쓸한 상황으로부터 스포츠를 그저 스포츠로 바로세우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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