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와 제이크 2

제이크 질렌할의 얼굴은 여러 가지다. 데이트하는 모습, 미친듯 자전거 타는 모습, 모르는 사람의 주차 요금을 내주는 모습…. 그런데 그게 진짜일까? 그는 그저 인상 좋은 동네 청년일까, 아니면 기세등등한 카멜레온일까?

생각에 잠긴 그에겐더 이상 배우 같은거만함이나 폭력성은없었다.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순간,내가 누구에게 인사를하고 있는지 도무지알 수가 없었다.
생각에 잠긴 그에겐
더 이상 배우 같은
거만함이나 폭력성은
없었다.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순간,
내가 누구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질렌할은 배우가 된 건 우연한 계기 때문이다. 그는 늘 영화 업계에 들어와 있는 아이였지만 전형적인 아역 배우는 아니었다. 감독인 아버지 스티븐 질렌할과 시나리오 작가 겸 제작자 겸 감독인 어머니 나오미 포너는 그가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길 바랐다. 그는 열한 살에 <굿바이 뉴욕, 굿모닝 내 사랑>으로 처음 스크린에 등장했다. 그러나 그의 학교생활(컬럼비아 대학에서 불교와 영문학을 공부했다)이나 방과 후의 일들(안전요원이나 웨이터, 때론 둘 다)을 방해하진 못했다. 할리우드의 덫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폴 뉴먼은 그에게 자동차 레이싱을 가르쳐 주었고, 젊은 시절 스티븐 소더버그는 질렌할 가족의 창고에 딸린 아파트에 세 들었다. 그들은 질렌할의 말에 따르면 대체로 ‘영화 제작 언어에 유창한’ 사람들이었다. 급기야 누나는 그에게 ‘연기병’을 전염시켰다. “매기는 언제나 연기했어요. 그러다 마사 플림튼과 리버 피닉스가 시드니 루멧과 함께 공연한 <허공에의 질주> 리허설을 봤죠.” 골든글러브상을 받은 이 영화의 각본은 그의 어머니가 썼다. “전 일곱 살이었고, 그 사람들이 누군지 전혀 몰랐지만, 뭔가 마법 같은 일을 목격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질렌할은 이제 영화 제작사도 차렸다. 샐린저의 단편집 제목을 따 ‘나인 스토리즈’라는 이름을 붙였다. 질렌할은 어릴 때 느꼈던 그 마법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성공을 통해 진짜 얻게 되는 건 자유예요. 실패할 수 있는, 그리고 다시 시도할 수도 있는.” 이건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트레이드마크가 된 점이기도 하다. 이 트레이드마크는 좋게 작용하기도 했지만 그를 불리하게 만들기도 한다. 질렌할은 같은 방식으로 테이크를 이어가는 법이 거의 없다. 여기에 대해 <자헤드>의 감독 샘 멘데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좀 성가시기도 해요. 한 가지 생각에 빠지면 포기하는 법이 없어요. 완벽하게 훌륭한 연기를 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한달까요? 그리고 그는 절대 정해진 대로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에요.”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질렌할의 방식은 이따금 동료 배우들의 혼을 빼놓는다. 그러나 그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 그 결과가 어땠는지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배우가 그의 상대역으로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다. 마크 러팔로, 제니퍼 애니스톤, 토비 맥과이어, 히스 레저까지. “우연이 아니에요. 제이크는 모든 걸 진지하게 대하지만, 동시에 편한 마음으로 일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죠.” <러브 앤 드럭스>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그와 함께 연기한 앤 해서웨이가 설명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제 마지막 장면은 히스와 통화하는 장면이었어요. 히스는 그때 <카사노바> 때문에 베니스에 있었죠. 제이크가 자청해서 히스의 대사를 대신 읽어줬어요. 마지막 테이크에서, 그는 대사를 아주 살짝 바꾸었어요. 그게 제게서 뭔가를 끌어냈고, 결국 그 테이크가 영화에 쓰였죠.”

“저는 카메라 반대편에서 자랐어요.” 질렌할이 말했다. “그리고 영화에 출연하는 것만큼이나 영화 만드는 것도 좋아해요. 배우들을 좋아하고, 그들을 지켜보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카메라 밖에서 연기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는 정말 다정한 사람이지만, 진짜 어둠을 가지고 있죠.그 격렬한 분노에서 그는 도망치고 있어요. 모든 위대한 배우가 갖고 있는 거죠, 정말이에요. 문제는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예요.”의 감독 데이비드에이어가 말했다.
“그는 정말 다정한 사람이지만, 진짜 어둠을 가지고 있죠.
그 격렬한 분노에서 그는 도망치고 있어요. 모든 위대한 배우가 갖고 있는 거죠, 정말이에요. 문제는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예요.”
<엔드 오브 왓치>의 감독 데이비드
에이어가 말했다.

그날의 만남 이후, 난 질렌할의 토론토 영화 촬영장 찾았다. “리허설 없습니다, 바로 찍어요” 라고 <언 에너미>의 감독, 드니 빌뇌브가 현장을 향해 소리쳤다. 질렌할이 평범한 아파트의 거실을 서성이는 게 전부인 컷이었다. 단순하지만 영화의 주축이 되는 장면이다. 교수 아담이 집으로 들어와, 전화기로 달려가서 아무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젠장”이라고 말한 뒤, 노크 소리를 듣는 것이다. 문밖에는 아담 몸집의 두 배처럼 보이는 불량스러운 안소니가 있다. 그들이 만나는 장면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아담이 극중 도플갱어로 나오는 안소니를 만난다. 제이크가 제이크를 만나는 것이다. 다음 테이크에서 빌뇌브는 좀 더 동작을 작게 해주길 부탁했고, 질렌할은 그에 응답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잘되지 않았다. 빌뇌브는 테이크 사이에도 계속 카메라가 돌아가게 놔두었다. “계속 촬영하고 있으면, 배우가 우리를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이끌어갈 때가 있어요. 제이크는 이런 부분에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죠.”
안소니 역의 질렌할이 위협적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내가 정신이 나간 건가? 그는 멱살을 쥐고 때리며 가슴으로 떠밀, 가슴 높이의 스펀지 패드에 다가갔다. “내가 정신이 나간 거냐고!” 아직 리허설이었지만, 안소니를 연기하는 질렌할의 위협은 이미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한창 그 장면을 바라보는데, 조연출이 공항으로 나를 실어줄 차가 기다린다고 했다. 내가 짐을 챙기는 동안, “내가 정신 나간 거냐고!”라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가 패드를 너무 세게 때린 나머지 세트가 흔들렸다.

현장을 나설 때, 빌뇌브는 복도 끝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남자 모두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내가 빌뇌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때쯤, 옆에 있던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그 남자는 질렌할이다. 여전히 안소니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생각에 잠긴 그에겐 더 이상 배우 같은 거만함이나 방금 보여준 폭력성은 없었다.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순간, 내가 누구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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