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수위 아저씨

 

style_5609e8d289b91-1024x561수위 아저씨

세상이 좋아지고 사회질서가 얼추 유지되다 보니, 다들 책임감 있고 체계화된 삶을 꾸려나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품위 있는 사회에 대한 기준이 행동 범위 전반에 이른다면, 순수하고 순진한 그 생각, 당장 바뀔 거다. 거리에서 남자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꽂고 걷는 여자, 벤치에 앉아 아밀라제를 내년까지 교환하는 커플, 버스 정류장에서 포옹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합체 수준으로, 몸의 모든 요철을 맞댄 채 사지가 바쁜 남녀가 개똥처럼 흔한 판국에….

욕망을 탐식하는 남과 여는 화창한 날씨에도 궂은 날씨에도 서식한다. 모든 세대뿐만 아니라 모든 세기에 걸쳐 그랬다. 동양의 변방에선 방앗간이나 콩밭 정도가 남녀상열지사를 위한 유곽이자 꽃침대였다. 지금, 동네 공원이 빈대떡만 한 비키니 한 장 달랑 붙이고 일광욕하는 여자들의 게토가 된 건 아니지만, 외려 지하철이건 영화관이건, 열린 어디든 곧추선 몸의 회합 장소이자 매음굴이 되었다. 아니, 도시 자체가 여자들에게 집적대고 추근대는 잠재적 매춘부들의 일터가 되었다…. 참 재미 없다. 스캔들이 나라를 온통 가득 메웠다는 게….

글쎄, 전통적인 가족이 주는 응집력은 진부하고, 만취는 자유의 상징이며, 방종은 청년의 사회적 의무이기 때문일까? 정치는 타당성을 잃고, 범절의 가치는 추락하고, 호의는 식고, 도시는 더 이상 애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서?

사생활에 대한 존중과 나눔을 긍정하는 자세는 의심할 것 없이 이상적인 삶의 요소다. 물론, 인간 종족에게 교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구름처럼 홀로 떠돌아다녔다”는 건 워즈워스나 달마대사 정도가 하는 말이지. 혼자는 처량한 일. 계율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성직자도 예쁜 가정부 친구 한 명쯤 두는 게 뭐 어때? 성 스테판이 뭐라뭐라 정죄하려나?

성장이 아니라 이기는 게 목적인 세상에서 윤리나 순결, 도덕이란 정신 나간 소리. 정의 사회, 일, 법이 정한 기준을 무조건 따르는 것만이 방책은 아닐 테다. 그래도 공분을 사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 모든 걸 단번에 잠재울 누군가 있었음 좋겠다. 하지만 그런 일에 대처하는 교육을 받은 이도 없을 테고, 있다 해도 곳곳에 배치되었을 리 없지. 그저 마을회관 앞에서 흘레붙은 개들에게 뜨거운 물을 끼얹어 모욕적으로 떼어놓았다는, 어른 남자의 치사한 무용담만 안남미처럼 풀풀 날린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잘 모르겠다. 답이 많다 한들 그중 어느 하나 흡족할 것 같지 않다. 어쩜, 사람들 보는 데서 선 채로 뒤엉킨 만수산 드렁칡 남녀를 징벌하는 덴 경찰보단 수위 아저씨가 한 수 위지 싶다. 은빛 수갑을 채우려는 ‘교본 식의 럭셔리한 몸짓’보단, 손전등을 재수 없게 쫙 비추며 “어이, 시방 뭣들 하는 겨? 발정난 겨? 그러코롬 하고 싶음 집에서, 네 부모 보는 데서 하드라고!” 소리 빽 지르면 즉효일 텐데. 이참에, 대한민국 치안을 경찰 대신 수위 아저씨에게 맡길까 보다.

 

인생엔 얼마나 공간이 필요한가

내 눈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개가 줄어든 걸까. 그러나 분명 21세기의 한 장면이다. 트렌치 코트를 입은, 얼추 지적으로 보이는 볼록 렌즈 몸매의 여자가 슈렉 같은 레인지로버를 몰고 주차장에 들어온다. 곧 차가 멈추면, 모과만 한 강아지가 홀랑 뛰어내려 주인의 또각또각 힐 소리를 따라 실성한 듯 달려간다. 그런데, 가족용 승합차 열기는 지난 것 같은데, 그렇게 큰 차라면 그 안에 래브라도 리트리버쯤은 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패션 트렌드처럼 사회적 경향도 잠깐 머물다 사라진다. 특정한 개나 차에 대한 강박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 길렀던 개는 개 가운데서도 소수계층이었다. 웬만해선 똥개를 애완견으로 데리고 있진 않을 테니까. 우리 개는, 게다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을 만큼 체구도 작았다. 그래서 어디 산보라도 나갈 땐, 저쪽에서 딴전을 피던 주인이 부르기 전, 스모 선수만 한 수입 개새끼가 우리 개를 물어 죽일까 봐 3초마다 눈 흰자위를 희번덕거렸다.

언제부턴가 큰 개들이 봄철 서리처럼 사라졌다. 사실 개가 작아진 진짜 이유는, 그게 도시 처녀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장신구이기 때문이다. 작은 개는 쇼핑백에도, 에르메스를 걸친 어깨 아래와도 황홀하게 어울린다. 다시 말해 ‘소녀’들은 작은 개를 사랑한다. 남자들은 꼭 그렇진 않다. 헤어진 여자의 푸들을 입양한 한 친구는, 발뒤꿈치에 보풀보풀 테니스공 같은 강아지를 달고 다닐 때마다 번번이 자아를 다쳤다.

사실 큰 개는 미니멀한 도시 주거 공간의 액세서리론 좀 맞지 않는다. 딸려오는 애견용품을 담는 여분의 공간도 적다. 작은 개는 정신적, 육체적인 것을 포함,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프리미엄 공간을 침해하지 않는다. 도시는 강아지에 관한 한 스몰, 미디엄, 스탠더드 사이즈까지만 안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개가 작아진 건, 모두가 도시 공학의 미덕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큰 개들은 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하고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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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