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남자들- 안도현

시집은 제목을 <북항>이라 달고 있었다. 어떤 소비자들은 “이 안도현이 그 안도현 맞느냐”며 출판사로 항의 전화를 걸었다. 안도현은 저녁에, 서울의 다방에서 그 말을 전해 듣고, 웃었다.

5월에 시집이 나왔고 지금은 11월입니다. 코트를 입고 오셨네요.
열 번째 시집인데 5년 만에 냈어요. 꽤 오래 걸린 거죠 저한텐.

제목이 ‘북항‘인데요, 그저 짧다기보다는 어떤 선언처럼 보였습니다.
한반도 남쪽에 사는 사람들한테 북이라는 글자가 갖는 이미지 혹은 느낌 같은 게 복잡하지요, 그 ‘북’이라는 글자의 복잡함을 이참에 쓰려고 했습니다. 북이라는 글자는 방향을 가리키는 북도 있지만, 달아난다, 패배한다, 도망간다, 이런 게 다 있어요.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죠. 특히 휴전선 이남에서의 북은, 그 글자를 듣는 순간 증오가 있고, 애잔함 같은 것도 있고, 글자 하나가 우리한테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죠. 저는 그 ‘북’자에 대해서 쓰고 싶었던 건데요. 그 이면엔, 남쪽은 따뜻한 곳이고 북쪽은 차가운 곳인데, 남쪽에서 따뜻하게 살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도 필요했습니다. 간판은 웬만하면 짧게 달고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 시집이 이미 나온 안도현 시집과 무엇이 달랐는지, 출판사로 항의 전화가 온다고 들었습니다. 이걸 쓴 안도현이, 내가 아는 그 안도현 맞냐고.
하하, 그렇답니까? 잘됐네요. 딱 내 의도와 맞아떨어져요. 나는 시를 쓰면서, 독자들이 많이 찾는 시인이라는 평가가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그렇다고 내가 시집을 내서 억만금을 취하는 것도 아닌데, 툭하면 사람들이 누구 누구 누구 거기에 제 이름을 하나 더 얹어서 패키지로 인식하는데, 그건 견디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개인적으로 친한 분들이라서 웃으며 넘어가고 흘리고 넘어가는 거지, 시인이 가고자 하는 세계를 그렇게 패키지로 묶어서 이해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북항’이라는 말에서 느끼는 정서가 또한 그렇습니다. 이건 그런 시 아니다, 나는 그런 시인 아니다.
방법상으로는 그동안 쉬운 시를 너무 많이 썼던 거 같아요. 시 속에 안도현이라는 사람의 자의식을 투여하기 마련인데, 그걸 너무 많이 조절했기 때문에 쉬운 시로 가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읽는 사람에 대한 고려보다는 저 자신에 대한 고려, 시인으로서, 그런 시를 더 쓰고 싶은 거죠. 변화보다는 갱신을 하고자 했습니다.

시인이 몸을 바꾼다는 건 어떤 걸까요? 안도현이라는 이름은 곧장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로 이어지곤 했으니 말입니다. 오늘,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생각하다가, 연탄재를 발로 차는 장면은 어떨까? 그런 못된 생각도 했습니다만.
하하, 그 연탄재도 말이죠, 들을 만큼 너무 많이 들은 거 같아요. 많은 시를 썼는데 사람들이 연탄 시인으로만 나를 기억하는 점은 좀, 불쾌함까지도 나죠. 하하.

이 시집엔 저녁이 많습니다. 저녁이 좀, 남자들의 시간 아닌가요? 하루 중에 가장 시적인 순간이라는 생각도 해요. 저녁이 되면, 나무들이 제일 먼저 어두워지거든요. 이상하게 나무들이 빨리 시커매지는 거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런 나무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게 아닌가, 하죠.

안도현의 시는 따뜻합니다. 연탄재를 차든, 차지 않든 그렇습니다. 뭔가를 대하면서 쌀쌀맞아지는 거, 돌연 돌아서는 거, 그런 정서는….
나도 시에서 그러고 싶어요.

안 그러시잖아요. 못하시잖아요.
나도 그러고 싶어요. 하필 그걸 앞에 두고 아니야 이러고 싶어요. 까칠한 시인이고 싶어요.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이 시집 말미의 글에 “너무 잘 쓰지 마라” 하셨던데요.
살짝 회초리를 드신 거죠. 그러지 않으려고, 잘 쓰지 않으려고 쓴 시집인데, 그런 선생님의 지적을 들으니, 나는 아직도 많이 고쳐가야하는구나 느끼죠. 거칠음의 미학이라는 게 제게 좀 부족한가 봐요. 그 동안 바느질 자국이 안 남는 시를 너무 오래 쓴 거 같아요. 자국도 좀 보이고, 한 땀 한 땀의 길이도 들쭉날쭉하고, 실밥도 좀 삐져나오는. 이번 시집 쓰면서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내가 실패했는가?

하하, 따뜻한가 차가운가, 쉬운가 어려운가 그런 시선이 아닐 겁니다. 결국엔 이 시가 좋은가, 아름다운가가 남겠지요. 2012년은 안도현이 <북항>을 낸 해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는지요. 올해 본 것 중에 이 시집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나 그거 할 수 있어요. 사물 앞에서 냉정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