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는 늙지 않는다

한화가 김응용 감독을 비롯한 해태 사단을 코칭스태프에 영입했다. 해태식 리더십은 여전히 유효할까?

해태 왕조의 주역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다. 한화는 김응용 감독을 영입했다. 김성한, 김종모, 이종범, 이대진 등 해태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들도 코치로 합류했다. KIA가 지난해 선동렬 감독과 이순철 수석코치를 동시 영입한 데 이어, 2년 연속 해태 출신 지도자들의 주가가 높아지고 있다.

한화의 움직임은 2000년대 초반 삼성을 연상시킨다. 우승 멤버를 보유하고도 창단 후 20년간 한국 시리즈 우승이 없었던 삼성은 라이벌 팀 해태의 수장 김응룡 감독을 데려오며 체질개선에 나섰다. 전통적으로 프런트의 개입이 강한 팀이었지만 김 감독이 들어선 이후 악습이 사라졌다. 개성 강한 스타 선수들도 예외 없이 휘어잡았다. 이승엽에게조차 “영양가 없는 홈런은 많아봐야 소용없다”며 6번 타순으로 내리는 충격 요법도 아끼지 않았다. 과감한 결단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2004년 핵심 투수 노장진이 무단 이탈하자 가차 없이 트레이드시켰다. 김 감독이 아니라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근 몇 년은 소통 능력이 뛰어난 감독들이 인기였다. 권위형 감독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최근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양승호 감독에 대해 롯데 선수들이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건, 양 감독이 그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줄 아는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화는 김응용 감독을 선택했다. 김응룡 감독은 여전히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김 감독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못하면 죽는다”이다. 그러나 한편 김 감독은 “못하면 죽는다는 건 프로의 세계가 그렇다는 뜻이다. 나는 원래 선수들에게 훈련을 많이 안 시킨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자율 야구의 원조는 김응룡 감독이라는 의견도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감독을 일컬어 매니저란 용어를 쓰는데, 김 감독이야말로 큰 틀에서 볼 때 매니저형 감독이라는 말이다. 김응용 감독 역시 “난 선수들에게 개인적인 말은 안 한다. 훈련도 코치들이 알아서 다 시킨다. 지켜보기만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만큼 코치들의 역할이 크다. 김성한 수석코치는 김응룡 감독과 선수단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는 “수석코치는 권위보다는 선수들과 얼마나 소통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개인적인 애로사항이나 불만들을 들어주며 소통하겠다. 불필요할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주입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김성한 코치는 KIA 감독 시절 시즌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군산~광주 간 도로 행군을 지시할 정도로 강한 근성을 주문했던 지도자다. 2002 시즌 중에는 선수 폭행 파문도 있었다.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해태 시절 김응룡 감독, 김성한 코치와 함께한 장성호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신 분들이 온 만큼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선수들 모두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응룡 감독도 “모든 포지션이 약하다, 거포다운 거포가 없다, 베테랑이라고 봐주지 않겠다, 김태균은 살 좀 빼야겠다”는 등 거침없는 발언으로 선수단을 휘어잡고 있다. 아무리 부드러워졌다 해도 해태 시절 강한 카리스마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한 야구인은 “한화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유하다. 팀도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팀이 순식간에 바뀔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화는 2008년부터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최근 4년 사이엔 3번이나 8위에 머물렀다. 물론 김응룡 감독이라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팀을 개혁할 수 있다. 프런트든, 베테랑 선수든 신경 쓰지 않는다. 한 야구인은 “어이없는 실책과 주루·플레이는 정신무장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응룡 감독 밑에서라면 적어도 어이없는 플레이는 줄어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김응룡 감독은 젊은 선수를 보는 안목이 있다. 한화에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한화의 바람처럼 당장의 성적을 보장하기엔 2년이라는 계약기간은 너무 짧다. 이상학( 야구담당 기자)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김응용 감독의 복귀가 ‘노장들의 역습’으로 비치고 있는 점이다. 한동안 프로야구엔 젊은 감독 바람이 불었다. 지도방식은 따져보지 않고 일단 젊은 감독이라면 덕아웃에 앉혔다. ‘파격인사’란 말이 따라붙었다. 일각에선 구단이 노장 감독들과 마찰을 빚는 데 진절머리가 나서라는 말도 있었지만, 본심은 알 수 없는 일. 그게 불과 1~2년 전이다.

올해 프로야구엔 유난히 프로야구의 수준에 대한 논쟁이 많았다. 8개 구단의 하향평준화에 대한 얘기였다. 경기는 역동적일지 몰라도, 전술적 치밀함은 떨어졌다.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덕아웃에 초보 감독들이 많은 것도 야구계의 하향평준화에 영향을 끼쳤을 법하다. 구단주는 야구는 잘 안 봐도 뉴스는 본다. 본헤드 플레이가 난무하고, 실책으로 승부가 판가름 나는 경기를 좋아할 리가 없다. 경기에서 나타나는 선수들의 모습은 곧 기업의 이미지다. 다시금 베테랑 감독에 대한 향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화의 감독 선임 과정에선 주로 노련한 이름들이 물망에 올랐다. 김성근, 김응용, 김재박, 심지어 김인식 감독의 이름도 거론되었다. 상상 가능한 베테랑 감독들의 이름들이 모두 있었다. 마찬가지로 KT가 10구단 창단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에 이어 가장 먼저 발표된 뉴스는 김성근 감독이 과연 KT 감독을 맡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이런 보도행태에 난처함을 표했다. 그는 이미 고양 원더스와 2년 연장 재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의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이미 홍역을 한 번 치른 터였다. 양승호 감독이 물러난 롯데 역시 김시진 감독을 선임했다. 김시진 감독과 함께 감독 후보로 거론된 감독은 조범현 감독이었다. 모두 감독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다.

지금 야구계는 기성품 고르듯 감독을 고르고 있다. 5년 전에 나온 물건과 지금 당장 나온 물건엔 고유한 특징이 있다. 그러나 감독이라면 다르다. 50대 감독만의 특징, 70대 감독만의 특징 같은 건 없다. 감독마다 다른 지도 철학이 있을 뿐이다. 제각각의 지도 방식에 대해선 감안하지 않은 채, 노장 감독은 모조리 환영이란 식이라면 곤란하다.

한화는 감독 선임 과정에서 김성근 감독과 접촉했고, 결국 김응용 감독을 선임했다. 어째서 김성근과 김응용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감독이 한 팀의 감독 자리를 두고 동시에 논의되어야 하는 걸까? 한화는 그 팀에 필요한 감독의 색에 대해 확신이 없었던 건 아닐까? 감독이 바뀐다고 팀의 체질이 개선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팀이 처한 상황에 맞는 감독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KT의 수뇌부가 김성근 감독의 강연을 자주 찾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이 KT의 감독으로 적절한 게 아니라, KT란 팀을 창단하고, KT에서 뛰게 될 선수들의 면면을 살피는 게 먼저여야 한다.

한화가 강력한 카리스마를 원했다면, 김응용 감독은 적절한 선택일 수 있다. 그렇지만 과연 한화는 김응용 감독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김응용 감독에 대한 예측은 양극단으로 치닫는다. 어느 매체엔 “강력한 카리스마로 지휘하겠다”는 감독의 코멘트가 들어가고, 어떤 매체에선 “나도 이제는 부드러워질 거다”란 말이 나온다. 선수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벌써부터 혼란스럽다. 물론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해태 출신 지도자들은 지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렇다면, 해태 출신 지도자들의 장점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이기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게 알맞다. 카리스마와 이기는 방법은 동의어가 아니다. 선동열 감독에게 흔히 알려진 ‘해태 출신’의 강성 유전자를 얼마나 찾을 수 있을까? 양승호 감독이 해태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 해태 출신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노장 감독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닌 것처럼.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