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승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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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운집한 서울 거리는 맨날 아찔한 라이프스타일로 북적대지만 그런 ‘금빛 포효’야 특정 장소에선 항용 있는 일. 요 몇 해, 세계 경제는 경망스러운 붕괴의 조짐으로 비 맞은 병아리처럼 비틀거렸다. 열띤 패션 소비자들조차 신중한 소비로 우회하는 듯 보였다. 뭐,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특정 시대의 분주한 삶 속에서 금욕은 문화이자 유행이기도 하니까.

언제나 시대의 승자가 있기 마련이다. 90년대는 테크놀로지, 80년대는 일본이었다. 70년대가 금이었다면, 60년대엔 석유였을 것이다. 그럼 21세기의 승자는? 단연코 런웨이다!

매해, 1월과 6월은 불멸의 남자 스타일을 재구축하는 달. 파리와 밀란과 런던에 온 디자이너들은 컬렉션을 통해, 돌아오는 가을, 남자들은 이런 옷을 입으라고 사랑스럽게 종용한다. 동시에, 암흑의 시대가 투자를 악화시켰을지도 모를 스타일의 가치를 방어한다. 시장의 가파른 하강은 늘 견딜 만한 건지, 침식은 순환의 과정이라는 건지, 컬렉션은 여전히 가치 있는 비즈니스라서인지, 이때만큼은 사라진 호시절이 몰려드는 희망으로 대체되고, 번쩍거리는 것에 자리를 내준다. 어쩜 패션을 부상시키는 것은 불황에 저항하는 방법인 것이다.

컬렉션은 반년에 한 번, 젤라틴을 형성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집합체로서, 견딜 만한 의식이자 굉장한 유물이 되었다. 시대는 기본적으로 이벤트의 배경을 만들지만, 패션 위크 땐 더 즐거운 소동이 이어진다. 온갖 차들과 택시들이 도시 중심부를 가르며 절대로 패션 밖으로 나가지 않을 사람들을 나른다. 바와 나이트클럽은 프라이빗 파티로 문을 닫고, 패션 스쿨 학생들은 더미를 이루며, 외국인이 세일 가게를 점령한다. 이런 광경은 훗날에도 상대적으로 별 의미 없는 관습이나 통념에 따라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패션은 옷에 환장한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것 이상의 무엇을 이끌기 때문이다.

패션 위크는 도시의 눈멀 듯한 황금 시대에, 가치를 잴 수 없는(혹은 가치 없는)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생겨났다. 몇십 년 전엔, 이 발표회는 비밀이었다. 객석엔 디자이너가 선택한 제한된 관객만 있었다. 이제 모든 컬렉션은 삽시간에 웹사이트에 올려진다. 바늘 한 땀에조차 민감한 친구들은, 무리를 가르치고 가끔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디자이너의 재능을 발견해 그들의 미적·상업적 목표를 성장시키는 유수 매체의 편집장이나, 한 이름 하는 명사들, 돈다발을 깔고 앉은 바이어가 맨 앞줄에서 보는 것보다 더 가까이서 랑방 쇼를 본다.(그때도 세상사가 다 그런 것처럼 패기 있는 신인 디자이너에 대한 주시는 있지만, 패션 원로들이 사라진 것쯤은 안중에도 없다.)

남자 패션의 충돌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돌연변이 쿠튀르, 클래식의 재해석, 버려진 옷을 뒤지는 것, 죽은 사람들의 옷을 미화시킨 빈티지, 하나의 심으로 된 비단 한 장, 속치마가 된 남자 드레스 셔츠, 신체 각 부분에서 빠르게 흔들대는 커프…. 그런데 런웨이 쇼엔 아주 큰돈이 든다. 옷 수십 벌이 핸드메이드여야 하고, 공간을 빌리는 데도 돈이 들고, 신발도 사야 하고, 스태프도 두루 갖춰야 하고, 비슷한 시간대에 쇼가 잡힌 메가 브랜드가 자기 무대에 서기로 한 모델을 빼가려는 술책과 치사하게 싸워야 한다. 그전에 당장 현금이 필요하다. 옷감을 사고, 패턴을 자르고, 바느질을 하고, 돈이 들어오기도 전에 송금해야 한다. 패션은 대부분 작은 비즈니스. 산업은 신용 압박에 시달린다. 누구나 아는 디자이너들도 자주 후원자가 없다. 즉, 그들은 연 2회 ‘도박’을 한다. 당연히, 패션 위크 이후의 삶은 질책의 경험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패션과 그 장막 밑에서 위험에 빠진 사람들은, 예술과 부자 후원자의 관계와 같다. 돈은 초과되었으되 아름다움을 고수하기 위해 쓰였다는 우아한 명제가 남는다. 결국 컬렉션은 정의하기 모호한 예술과 밑이 빠진 상업의 혼합이기 때문에.

솔직히 남성복 컬렉션을 볼 때마다, 패션의 드러난 과잉과, 독창성의 빈혈과, 무한한 야심 때문에 이따금 속이 꼬였다. 카니발 시대의 나약한 생존자인 나와, 엷은 목소리와 붉은 뺨으로 배신 당하면서도 일단은 예쁘고 봐야 하는 이들이 아직 살아있단 걸 서로 확인하는 친목계 같았다. 패션의 긴장된 기쁨이란 여성 취향의 스릴 속에서 불을 뿜는다는 것도 불편했다. 남자의 언어로 남자를 건축하는 디자이너를 찾는 것조차 일이었다. 남자들이 원하는 것을 알기도 전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예지력이란 얼마나 과민한 것인가.

어떤 때, 컬렉션의 전반부가 그냥 과하게만 느껴지는데, 누가 옆에서 ‘예쁜’ 남자 옷의 미래를 마냥 낙관하는 게 놀랍기만 했다. 사실 남자 패션의 미래는 어떨지, 누가 미래를 준비하는지 그때마다 묻고 싶었다. 나는, 남자 패션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진인 것 같은데. 아니, 양말 한 켤레라고 얘기하는게 낫겠다. 패션에 대한 세심한 인식은, 세상은 더 많은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 패션의 미래가 은색 우주복이라고 믿는 사람에겐 좀 미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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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