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의 아이돌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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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위키피디아에서 ‘한국 아이돌’ 을 찾아보면 그 분량이 한국어 위키보다 방대하다는 걸 알게 된다. 거기엔 ‘한국 아이돌의 목록’이란 문서가 있는데(심지어‘Sasaeng fan ’이란 문서도), 좀 애매한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 리쌍, 넬, 브라운 아이드 소울, 십센치 등이 눈에 밟힌다. 그리고 한국어 위키에는노이즈,솔리드,듀스,원타임이있다. 한번 상상해 볼까? 2013년 2월에 스무 살 언저리의 가수가 데뷔해 솔리드, 리쌍, 듀스와 똑같은 활동을 한다면,그들을 아이돌이라 부르게될까?

시대마다 사람마다 아이돌에 대한 정의는 조씩 다르다. 그렇다면 가장 좁은 의미의 아이돌과 넓은 의미의 아이돌이란 무엇일까? 예를 들어 “인피니트가 비스트보다 더 아이돌답다”라는 식의 비교도 가능할까? 영문 위키에는 2011년과 2012년 사이 무려 1백 30여 팀이 이름을 올렸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아이돌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정의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영미권과 일본에도 아이돌 개념이 있다. 하지만 우리와는 꽤나 다르다. 먼저 영미권에서는 다소 고전적인 모델을 갖고 있는데, 성적 매력으로 10대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대를 구분하는 유명인이란 개념에 가깝다. 우리로 치자면 방송인이나 재벌 손녀도 아이돌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서태지가 아이돌의 기초 문법을 모두 제시했다고는 하나, 그중 상당수는 이미 영미권에서 확립된 것들이었다. 아이돌 산업은 대중문화가 발생하던 1950년대에 시작됐고, 반세기에 걸쳐 전략과 경험을 쌓으며 노하우를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아이돌이라 불리던 미국의 옛 남자 가수들이 젊은 여성들에게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어서 가슴을 제모해야 했다는 일화는 세월을 느끼게 해준다.

한편 일본에서는 아이돌의 의미가 제법 변천을 겪었다. 요즘엔, 연예계 전반에 걸쳐 젊고 외모가 뛰어나며 아직 성장중인 연예인을 아이돌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실력을 검증 받고 자신의 커리어를 걷기 시작하면 배우나 아티스트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 분위기와 견주어, 일본은 아이돌을 팬의 입장에서 정의한다는 인상을 준다. 미숙하지만 매력적인 상대가 점차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랄까. 그래서인지 기획사의 존재감도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아이돌이 미숙하기 때문에 기획사가 붙어 있다는 느낌에 가깝고, 심지어 개인 아이돌도 있다. 우리로 치면 한 ‘얼짱’이 팬덤 을 구축하며 소속사 없이 아이돌이 되기도 한다는 얘기다. 완벽한 상품 개념에 가까운 우리 분위기와는 꽤 다르다.

그럼 오늘날 우리에게 아이돌은 무엇인가. 영어로 ‘우상’ 을 뜻한다는 얘기는 잠시접어두자. 현실에서 아이돌이 지칭하는 바는 조금 다르니까. 그 특징을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해본다. 첫째 성적으로 어필해 가상의 연애대상이나 우상으로 기능한다는 점, 둘째 세대를 구분하는 장벽을 구축한다는 점, 셋째 자본에 의한 전면적인 기획과 통제가 일어난다는점, 네째 작곡과 의상과 안무 등 각 분야 전문가에 의한 공장형 분업이라는 점이다. 일단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경우를 가장 좁은 의미에서의 아이돌로 상정할 수 있겠다. 한두 가지 요소가 약하거나 변칙적 일수록 넓은 의미의 아이돌에 해당할 것이다. 우선 성적인 어필에는 여러 측면이 존재한다.육체적인 섹스 심벌일 수도 있고, 동성간의 ‘야릇한’모습을 망상하는 대상일 수도 있다. 아이돌은 결국 빼어난 외모를 바탕으로,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어필하는 존재다. 일본에서 미숙한 아이들이 아이돌로 사랑받는 것 또한 일본의 팬들에겐 그것이 매력적이기 때문 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성애자 팬의 마음은 대개 세 가지로 정리된다. “나도 구하라처럼 예쁘고 싶다”나 “내가 아이유와 사귀고 싶다” 혹은 “종현이랑 온유랑 부끄부끄….”가 그것이다. 아이돌도 사람인데 연애 좀 한다고 세상이 뒤집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 정말 삼촌일 뿐이라니까요!”라고 말하고 싶다면, 그 경우는 변종 아이돌이라고 해두자.

세대 간의 장벽은 조금 미묘한 문제다. 전통적으로 아이돌 팝은 기성세대가 싫어하도록 만들어졌다. 그 점이 사춘기 감성의 10대들을 더욱 매료시키는 것이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애정만큼 중독성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서태지현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서태지 이전에도 우리의 80년대에는, 해외의 새로운 댄스 음악을 갖고 들어온 젊은 가수들이 있었다.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기성세대는 팬들에게 ‘오빠부대’ 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경계하곤 했다. 문제는 지금 아이돌이 30대까지 사로잡는다는 점이다. 2000년 대 후반의‘삼촌팬‘, ‘이모팬’ 현상은 ‘길티 플레저’가 세대 갈등을 대체하면서 한국의 아이돌이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 다른 두 조건인 자본의 기획과 통제, 그리고 분업은 세계를 아우르는 아이돌의 정의다. 여기에는 데뷔 과정과 작곡, 프로듀싱, 콘셉트 등이 모두 포함된다. 모든 것이 기획사의 의지와 전문가들의 손길에 의해 이뤄지면 일단 아이돌이다. 연습생이 사장님 결정으로 그룹을 결성하고 데뷔한 경우, 이 조건을 대개 무난하게 충족한다. 반면 자기 자신의 의지와 발언권이 강해질수록 아티스트에 가까워진다. 보아가 그런 예다. 또, 노래를 정말 잘하는 가수라면 트레이너의 도움 없이 스스로 노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돌과 거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아이돌이 자신의 의지로 연습을 게을리하거나 사고를 치는 일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다.

작곡과 프로듀싱은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자력으로 데뷔한 싱어송라이터를 아이돌이라 칭한다면, 아이돌은 ‘인기 가수’와 거의 동의어에 불과할 것이다. 까다로운 것은, 작곡을 하는 아이돌이 있다는 점이다. 프로듀서가 다 해주는 ‘자작곡’은 예외로 치자. 자신의 힘으로 본격적인 작곡을 하고 음악적 결정을 내린다면 아티스트를 향해 나간다고 할 수 있겠다. 지드래곤의 경우가 그렇다. 물론 어디부터 완전히 아티스트로 분류해야 하는가는 사람 마다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굳이 말하자면, 능력치 개념으로 서 작곡을 할 줄 아느냐 여부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를 눈여겨보자는 제안을 해본다.

당신에게 아이돌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이 글에서 제시하는 것 보다 더 좁은 의미의 아이돌을 말할 것이다. 이를테면 “진정한 아이돌 이라면 크리스탈의 외모와 효연의 춤, 보아의 카리스마, 한승연의 야심 정도는 있어야 한다”라든가 하는 식으로. 다만 지나간 시대나 외국의 개념을 그대로 가져다 적용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나는 네 가지 판단의 축을 제시했다. 각각의 조건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두며 판단할지, 그 기준에 당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얼마나 ‘아이돌 다운지’ 가늠해보길 권하고 싶다. 그러나 어쩌면 이 모든 것 보다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은 결국 상업적 성공일 것이다. 아이돌의 모든 것을 갖췄으나,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데 아이돌이라 불러도 될까? 어쨌거나 우리앞엔 수 많은 아이돌이있다. 이미 그들은 인기의 정도와는 무관하게 위에 나열한 조건들에 의해 아이돌이라 불리고 있다. 그들 모두가 ‘우상’이라 할 만큼 성공할 순 없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우상처럼 우뚝하게 소중한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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