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정재 <2>

그의 얼굴에서 <인터뷰>의 은석이 보였다. 미간을 찌푸리니 <태양은 없다>의 홍기가 스쳤다. 활짝 웃으니 <오! 브라더스>의 봉구같았다. 이정재가 물었다. “지금은 어때요?”

<하녀>, <도둑들>, <신세계>, <관상>까지 감독이며, 스태프, 상대 배우 모두 쟁쟁한 작품들이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역시 감독인가?
여태껏 내가 지닌 재능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한다. 아직까진 연출자한테 많이 의존하고 싶다. 사실 나는 연출자에 따라 확 바뀌는 타입이다. 꼭 베테랑 감독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 브라더스>는 김용화 감독의 입봉작이었는데, 초보 감독에다 장르가 코미디로 명확해 기대가 크지 않았다. 한데 보통은 한두 번 하는 리딩을 2주일 정도 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내가 옛날 스타일의 연기를 하고 있었구나. 꾸밈이 많고, 내가 정해놓은 선을 넘지 못하고 있구나. 그때부터 김용화 감독을 의존하고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딱 들었다. 좋은 감독과 일하고 싶다는 욕망이 커진 것도 30대로 접어들면서부터인 것 같다.

당신이 30대였던 시절과 달리 지금 젊은 남자배우들은 확실히 넘쳐난다. 에너지가 넘치고. 한편으론 여유가 없어 보인다.
지금 대중은 반짝 반짝 빛나는 걸 좋아한다. 나만 해도 그런 세대가 아니라서 확 튀는 연기를 하는 훈련이 안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 색깔도 중요하다. 또 안 좋은 평을 좀 받으면 어떤가? 그런 기복을 감내하면서 도전하는 것도 이 직업의 재미다.

상상은 잘 안 되지만, 홍상수 영화는 어떨까?
안 그래도 몇 분이 소개시켜줘서 홍상수 감독님과 만났다. 윤여정 선생님이 자리를 마련해주시기도 했고. 만약 내가 출연한다면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가 많이 바뀌지 않을까? 유준상 선배가 들어가면서부터 좀 활기가 보이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기대감이 있지만 아직 작품으로까지는 연결이 안 됐다.

어떤 배우는 캐릭터가 감독의 머릿속에만 있어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홍상수 감독과 절대 작업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는 상황에선 감독을 따라가는 편인가?
올해로 딱 20년째 연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장면을 이렇게 찍으면 이런 효과가 있겠다는 걸, 몸이 먼저 안다. 그런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다 한다. 대신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만 말한다. 이번 영화 <신세계>도 촬영 들어가기 직전까지만 박훈정 감독에게 엄청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어차피 결정은 감독이 하기 때문에 모두 따라간다. 연출자가 각본이나 편집에도 관여하는 한국영화 상황에선 결국 연출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연출자의 의견에 반해서는 이도저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쪽 색깔이라도 명확히 내는 게 낫다. 물론 결과물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 그걸 끝까지 고집하는 배우들도 있다.

 

회색 수트와 흰색 셔츠 모두 디올 옴므, 구두는 살바토레 페레가모, 타이는 버버리.
회색 수트와 흰색 셔츠 모두 디올 옴므, 구두는 살바토레 페레가모, 타이는 버버리.

최근 배우와 감독의 갈등 때문에 큰 문제가 있기도 했다.
나와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그 방식도 옳다고 생각한다. 연출자라고 해서 무조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제작자도 마찬가지고. 물론 굉장한 티켓파워를 지닌 막강한 배우라고 결정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작품은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다. 같이 고민하고, 같이 결정해야 한다.

배우로서 욕심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한때 당신에게 연기는 부업처럼 느껴졌는데.
사업은 궁금증 해소였다. 예전엔 투잡이 가능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아니었다. 내 마지막 직업은 역시 배우다. 사업을 하면서 많은 일도 있었고.

사업과 관련한 스캔들도 있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이 있나?
최근까지 없다. 김민희 씨랑 헤어진 지 꽤 오래되었으니까. 중간에 있었던 스캔들은 말도 안 되는 루머여서 좀 안타깝다. 정우성 씨 보면<무릎팍 도사>에 기껏 나가 이지아 씨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좀 없애주려고 어렵게 이별에 대한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는데, 어떤가? 지금 네티즌이나 혹은 ‘증권가 찌라시’에선 이지아 씨의 임신을 막으려고 출연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나? 얼마 전 우성 씨에게 그런 소문은 너무 악의성이 짙으니까 사이버 수사대에 의뢰를 하든지, 아니면 직접 인터뷰를 한번 하라고 했다. 그러자 우성 씨가 연예인이니까 겪는 것이고, 내가 아니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스캔들 당시엔 나도 고소하겠다고 했지만. 그게 또 무슨 소용일까 싶다. 배우여서 누리는 것이 굉장히 많은데 항상 득만 보고 살 수 없지 않나?

마흔이 넘으면서 좀 여유로워졌을까?
혈기가 많이 죽었다. 그래서인지 이해심이 커졌다.

아쉽다. 옛날 이정재의 상징은 그런 혈기였는데.
아니, 아직 제대로 보여준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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