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었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황현산이라는 소개는 빈칸 채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비평에서 새로운 시에 대한 전망을, 번역이 단순히 외국말을 한국말로 바꾸는 작업이 아님을 본다. 그에 따르면 ‘깊이가 있다’는 말은 잘 모르겠다는 말과 같지만, 일흔이 가까운 문학가의 첫 산문집 < 밤이 선생이다 >는, 적어도 직함에서 깊이라는 말로 떠미는 바람이다.

산문집 제목이 < 밤‘은’ 선생이다 >가 아니라 < 밤‘이’ 선생이다 >입니다. 철수‘는’이라면, 철수에 관해서 말한다면, 이런 말이죠. 밤을 보고 저것이 내 선생이야, 라고 했으면, 밤‘은’ 선생이다, 했겠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결국 선생은 ‘밤’이다, 라는 거예요. 경험의 표현이죠.

소설가 김훈이 ‘은’, ‘는’과 ‘이’, ‘가’를 구분하면서 주관성과 객관성의 차이라고 말했던 게 생각나네요. 그것도 맞는 말이죠. 아마도 서양말을 가지고 우리말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럴 텐데, 사실 나는 우리말에서 ‘은’, ‘는’이 붙는 건 주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은’, ‘는’은 화제를 준비하는 말이죠. “나는 배가 아프다” 그러잖아요? 나로 말하면 ‘배가 아프다’는 건데, ‘배’가 주어고, ‘나’는 주어가 아니라고.

밤에 일한다고 들었어요. 일을 안 해도 밤을 새워요. 아침에 자서 열두 시쯤 일어나죠.

밤에 자는 습관은 어떻게 생겼죠? 글을 쓰건 책을 읽건 운동을 하건 워밍업을 해야 돼요. 오래 앉아 있어야 시작하는 거죠. 하지만 늘 반성해요.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게으른 것 같아요. 낮에 마냥 일을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밤에 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이 열두 시에서 한 시 사이에는 꼭 자야 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나한텐 그게 안 맞아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열두 시부터 한 시 사이가 나한테는 아침 일곱 시에서 여덟 시 사이예요. 그때는 꼭 자야 할 것 같아요. 그 시간에 못 자면 잠을 잘 못 자요. 또 한 가지, 대학교 다닐 때는 맨날 아르바이트를 했으니까, 내 시간이라는 건 밤에 생겼어요. 밤이 돼야 뭘 할 수 있었어요.

시 또한 밤의 작업이라고 보고 있죠. 네, 그렇습니다. “어둠 속에서 불을 얻어온다”는 말을 문학에서 씁니다. 어둠을 불로 쓰는 것이죠. 내가 비평할 때 분석하는 이유는 분석이 안 되는 것에 도달하기 위해서예요. 깊이가 있다는 말은 나는 모른다는 말과 같아요. 바위 속에 혼이 들어있다는 건 그 안에 귀신이 있다는 건데, 다시 말해 그 속에 내가 모르는 게 있단 거죠. 그게 곧 깊이가 있다는 말이거든요. 밝은 곳에 있는 가능성은 우리가 다 아는 가능성이고, 어둠 속에 있는 길이 우리 앞에 열린, 열릴 길입니다. 때로는 가능성 그 자체가 문학이죠.

더군다나 밤에 일하는 게, “게으르다”는 오명을 쓸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어둠’ 속에서 치열했던 거죠. 치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었을 때 했던 작업을 내내 계속하고 있긴 합니다. 저도 가끔 생각해요. 내가 무슨 신념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고, 이런 삶을 사나. 그런데 신념도 별로 없어요. 하하하. 일종의 강박관념인 것 같기도 해요.

번역가와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는 지점에 당신이 있어요. 아마도 꾸준하게 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난 이게 재미있으니까. 크건 작건 성과도 있었고요. < 잘 표현된 불행 >의 서문에도 썼듯이, 참 어려운 불어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설명하는 게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요. 그 밑바닥으로 내려가면 말에 관한 어떤 열정이 있을 테고요.

평론 ‘번역과 시’에서, 모국어의 가능성을 의심한다는 점에서 번역과 시가 같다고 썼죠. 원래 말이 가진 에너지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우리는 관습적으로, 극히 일부분만 쓰고 있어요. 어렸을 때 그런 경험 있을 거예요. 누군가 잔을 보고 잔이라고 하는데, “왜 잔이야? 잔, 잔, 잔…” 했던 것. 그 잔이라는 말의 원령, 말의 혼에 놀란 거죠. 우리는 말의 정신적인 측면과 물질적인 측면 사이에서 늘 부대끼고 있어요. 시는 말의 온갖 측면을 다 이용하는 것이고,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 또한 말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에서 같죠.

게다가 그냥 번역이 아니라 시 번역이죠. 시를 번역하는 건 해석을 한다기보다 한 시인의 시론까지 사유하는 일 같습니다. 말라르메가 그랬듯이, 시의 목적이 어떤 불가능에 가 닿는 것이라면, 번역가의 목적은 뭘까요? 시 번역은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을 위한 차선의 텍스트가 아니라, 불어로 랭보의 ‘Ophelie’를 잘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어떤 부분을 번역하는 것이죠. 제가 번역가의 임무라고 하는데요. 불어냐, 한국어냐를 떠나서, 보편적인 언어로서의 랭보, 보들레르,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에요.

하지만 시가 그렇듯이, 거기까지 가려다가 실패하죠. 번역에서도 불가능이라고 보는 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말라르메 번역에 관한 글을 한 번 썼어요. 말라르메의 어떤 시를 세 가지 버전으로 번역하고 이게 어떻게 잘못됐는지 자기 비평을 했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번역은 여기까지인데, 이것의 약점은 이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실패했다는 말인데, 말라르메 역시 절대적인 순수에 도달하진 못했어요. 어떻게 실패하는가, 하는 실패에 대한 체험이 중요해요. 시처럼 번역도 실패하지만, 말라르메가 어떻게 고생했는지는 내가 알죠.

‘불가능’을 목표로 삼았던 예술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어떤 시를 옹호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글을 청탁받았어요. 어떤 시를 옹호해야 되느냐는 질문은 처음이었죠. 어떤 시를 좋아하는 것과 옹호하는 것은 다릅니다. 좋은 시는 많죠. 그러나 특별히 옹호할 때는 앞으로 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 또는 그 시가 공공적인 가치가 있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잘 쓰게 만들어주는 것, 다른 사람에게도 길을 열어 주는 것, 그런 시들이 대개 불가능을 목표로 해요. 불란서에는 한때 만 명에 가까운 시인들이 있었는데, 문학사에 남은 시인은 30명 정도예요. 그 30명이 거의 다 번역가들이었죠. 말라르메도, 보들레르도, 랭보는 번역은 안 했지만 방랑자였고요. 번역에 대한 열정이 언어의 한계에 도달하려는 열정과 같다고 보는 거죠.

보들레르가 포를 택했듯이, 당신은 말라르메를 택한 것 아닌가요? 제 전공이 말라르메는 아니었어요.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중간에, 아폴리네르였죠. 말라르메를 읽으면 사람이 엄숙해져요. 말라르메 시를 읽든지 번역을 하든지 그래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말라르메의 특징이죠. 그래서 결국 말라르메를 택한 것 같아요. 제가 1990년에 < 19세기 프랑스 시 >라는 문학사 책을 우리 선생님하고 번역했는데, 그 원고가 지금도 남아 있거든요? 그 원고를 보면 원고지 다른 부분에서는 막 쓰다가 말라르메 부분에서는 내가 정자로 글을 쓰고 있어요. 그런 힘이 말라르메에게 있었어요.

하지만 난해한 말라르메를 읽기에 한국 사회의 속도가, 혹은 이 시대가 너무 빠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요.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말라르메의 친구들도 말라르메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참 잘 쓴 시다, 근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죠. 불란서 사람이 아니라 영국 사람들이 먼저 말라르메를 이해했습니다. 1950년대 영국 불문학자들. 불란서 사람들은 좋은데, 하면 끝이지만, 외국 사람은 일단 무슨 소린지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일본에서도 1959년에 스즈키 신타로가 한 번역이 이후에 한 다섯 개가 나왔지만 가장 뛰어납니다. 제가 말라르메를 번역한 건 일단 이걸 권해서 같이 읽고 토론하자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의 독서 풍토는 말라르메의 시를 읽는다기보다 말라르메의 시에 대한 글을 읽습니다. 꼭 나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거기서 그치는 게 당신으로서는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때요?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말고는 없습니다. 실제로는 사람들이 내 번역을 읽고 좀 따져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말라르메의 번역은 내가 가진 능력을 거의 다 보여줬어요. 원문 그대로 번역하는 동시에 유창하되 상투적이지 않은 우리말로, 그 한계까지 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떤 불어는 한글로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구나, 내 생각과는 다르구나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참 아쉽게 생각해요. 한국이 선후배 따지고 학교 따지고 하니까, 진정한 토론이 불가능한 면이 있긴 하지만요.

경직된 비평 문화 때문일까요? 한 시인은 시에 대한 비평은 예술적인 에세이가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신도 지적했듯이, 시 비평이 ‘코드’를 따르는 것에 대한 반발의 측면도 있고요. 제 생각에도 정말 좋은 에세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머릿속에 논문 형태로 쓰여 있는 채 에세이가 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젊은 비평가의 글을 보면 화가 나는 대목이 있어요. 공공연하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하고 있어요. 비평가가 처음 할 일은 무슨 말인지 아는 거예요. 시를 분석하고 이해하고 그 언어의 근원을 따져보고 전체를 파악해야죠. 하지만 좋은 에세이가 참 어려워요. 첫째는 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글을 잘 써야 하기 때문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사실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촬영이 끝나고 자신의 사진을 확인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제가 쓴 글을 다시 안 보는 것처럼, 제 사진도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요.” 모두가 웃었다. ”자기 글이라는 게, 약점, 비열함, 전략이 다 보이고, 그걸 자기는 다 안다고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촬영이 끝나고 자신의 사진을 확인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제가 쓴 글을 다시 안 보는 것처럼, 제 사진도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요.” 모두가 웃었다. ”자기 글이라는 게, 약점, 비열함, 전략이 다 보이고, 그걸 자기는 다 안다고요.” 아무도 웃지 않았다.

< 밤이 선생이다 >에 수록된 ‘밑바닥 진실 마지막 말’에서 인용한 따님의 말처럼, “칭찬을 하려면 화끈하게 하고, 혹평을 하려면, 이런 작품을 쓴 작가는 바보다, 그 이유는 첫째, 둘째, 셋째…”라고 하는 방식은 어떤가요? 하하. 예. 그것도 필요하죠. 혹평가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한국엔 혹평가가 없죠. 원한에 가득 찬 사람은 많지만. 그런데 나는 혹평가를 못할 것 같아요. 왜냐면, 첫째는 내 마음이 약하고, 둘째는 나이가 들었거든요. 나이가 들면 대개 이해해요. 다른 사람이 못된 애라고 해도, 괜찮은데, 허허, 이러죠. 세 번째는 대개 내 비평이 나쁜 시를 나쁘다고 말하는 것보단 좋은 시를 좋다고 말해요. 물론 나쁜 시를 좋다고 하진 않아요. 언제 기회가 있으면 비평에 대한 혹평을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은 합니다만. 허허.

당신은 아주 고르고 고른 말을, 누군가의 실패담이 있다면 그 고통까지 이해해주는 식의 성의와 아량을 글에서 보입니다. 아폴리네르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시들의 연쇄이기보다는 연쇄로 되지 않는 데 대해 시인이 깊은 고통을 가졌으리라는 것뿐이다”라고 말했죠. 전 표현이 곧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다가 한 문단 써놓고 읽는단 말이에요. 그런데 뭔가 표현이 마음에 안 들어서 보면 상투적인 문장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면 지웁니다. 문장이 상투적인 건, 내가 생각을 잘못했거나, 깊이 안 했다는 거죠. 표현을 고르는 것은 따지고 보면 내 나름대로 진실과 사실에 도달하려는 노력이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칼럼을 보셨나요? 당신이 김현과 곽광수 양쪽을 극복했다고 상찬했습니다. 현장비평과 연구, 어느 쪽에도 소홀함이 없었다는 뜻이었죠. 김윤식 선생님이 잘 봐 주신 거죠. 어쨌든 김윤식 선생님의 칭찬을 들어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아주 많진 않지만, 한국 문학에 관한 정보는 김윤식 선생님께 참 많이 배웠습니다.

현장비평에는 꽤 늦게 참여하신 걸로 압니다. 어떤 계기였나요? 실제로 한국 문학을 처음 비평한 게 마흔다섯이었죠. 제가 서른다섯에 대학 교수가 됐으니까 빨리 된 셈인데, 어렸을 때부터 소설이나 시를 쓰고 싶어 해서 거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김현 선생님이 르네 지라르에 관한 책을 냈을 때 처음으로 서평을 썼죠. 김현 선생님이 제 박사 학위 논문 심사를 했는데, 그게 또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 얼굴 없는 희망 >이고요. 그때 사람들한테 문체에 대한 칭찬을 좀 들었어요. 김현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 르네의 바다- 불문학자 김현 >이란 글을 써서 이름이 좀 알려졌고요. 청탁이 들어오기 시작했죠. 그러니까 데뷔작도 없이, 정식 등단도 하지 않고, 내 제자들 표현대로라면 ‘야메’로. 하하하.

< 밤이 선생이다 >도 현장비평과 이어집니다. 사담이 거의 없어요. 이곳 현실에 대한 얘기죠. 자기 얘기하는 걸 정말 싫어하신다는 걸 알겠습니다. 현장을 통해서 얘기하는 건 우리 선생님한테 배운 거예요. 실증주의죠. 작품으로부터 이론을 끌어내는 겁니다. 방법론을 작품에 갖다 붙이는 게 아니라. 작품으로부터 하나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훈련을 비평하기 오래전부터 한 셈이죠. 현장 비평이라는 진검 승부를 하는 데 있어 굉장한 무기였습니다.

쉬운 글과 어려운 글에 대해 말하면서, 어려운 글을 옹호한 적이 있죠. 비평과 산문을 비교하면, 확실히 비평은 문장도 더 길고 어렵지만, 산문은 굉장히 짧고 쉽습니다. 아무래도 다루는 주제 때문일까요? 다루는 주제도 그렇고, 역시 독자도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검열을 해요. 선생들이 가끔 대학원생들한테 “문장을 짧게 쓰라”고 얘기하는데요, 난 반대합니다. 문장을 짧게 쓰면 명료하게 나오죠. 그런데 어떤 복잡한 생각, 또 그 복잡한 생각의 입체적인 표현은 짧은 문장으론 어려워요. 문장을 잘 쓴다는 건 긴 문장을 명료하게 쓰는 거예요. 제가 비평에서 쓰는 문체적 전략은 긴 문장 쓰고, 짧은 문장 쓰고, 번갈아 배치하는 겁니다. 칼럼은 전체 지면도 작은데 문장 하나가 한 문단이 돼버리면 안 되죠. 이것은 진검승부 중에서도 동네 깡패들하고 싸우는 그런 식이니까. 하하하.

당신의 산문은 의외의 전개나 결말을 보여주곤 합니다. 제가 엉뚱한 이야기에서 잘 시작합니다. 실제로 수업할 때 쓰는 방법이었어요.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주제를 이야기하면 딱 떼어놓고 그것만 이해하고 넘어가요. 그런 건 실제로 생산성이 없으니까,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게 실은 다른 주제와 연결된다고 말하는 거죠. 엉뚱한 것부터 이야기를 하면 한 가지 주제를 상당히 폭넓게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은 결론만이 아니라, 그 결론에 도달하는 내 자신의 과정이 중요한 거죠. 그 과정을 밟아서 그 말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개인적인 실험이에요.

< 밤이 선생이다 >의 1부와 2부에서 같은 주제를 각각 다르게 표현하는 글을 함께 읽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30만원으로 사는 사람’, ‘죽은 시인의 사회’와 ‘시가 무슨 소용인가’가, ‘맥락과 폭력’과 ‘장옥이 각시의 노래’가 겹치죠. 한 사람이 가진 주제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늘 생각하지만, 이렇게 표현하고 또 다르게 표현하면서 반복되는 거죠.

첫 산문집인데다가, 10년이 넘는 세월을 담고 있는데요. 그 사이에 벌어진 한국 사회의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이 젊은이들의 불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젊은이들에 관해서는 늘 동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단에서 대접받고 싶은 생각도 없고, 같이 이야기하고 쌈박질하고, 그게 좋습니다. 요즘에 김미경이라는 사람 있죠. 전 그런 식의 ‘자기계발’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어요. 좀만 참으면 다 좋아진다는데, 그거 다 거짓말이지 않습니까? 네가 노력 안 하니까 그렇다고요? 거꾸로 말하고 있는 거예요. 충격만 주는 거죠. 상당히 많은 사람이 꾸중을 들으면 좋아하는데, 그 방식을 이용하는 겁니다. 문학이나 지적인 작업이라는 건, 우리가 받은 실패와 상처를 상대적 원동력으로 삼아서 싸우는 거죠.

산문에서 직접 다룬 적은 없지만, 평론 ‘잘 표현된 불행’에서 젊은 시인들의 시적 실패담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이 이것과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불행했으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고해라는 표현이 참 맞다고 생각해요. 살아 있다는 것, 생명이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기쁨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주체라는 게 최대의 기쁨이지만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 치러야 할 값이 엄청나게 많지 않습니까? 내내 불행한 거예요. 이 불행에 대해서 늘 선택하고, 이 불행에 대해서 늘 분노하고, 이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문학은 어떤 도움이 될까요? 문학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생명에게 최고의 사치이자 최고의 유희이고, 최고의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앙드레 브르통이 자신의 문학적 이상과 실제 삶과의 괴리 때문에 겪은 괴로움은 많은 젊은 작가가 여전히 공유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저는 상당히 현실주의적인 데가 있습니다. 제게 이상적인 삶이라는 건 제 임무처럼 느껴지는 보들레르와 랭보 같은 19세기 불란서 시인들을 번역하고, 글도 쓰고 그런 거예요. 또 제자들이 안정된 직업을 갖고요. 그러면 더 이상 아무 욕심도 없는데, 그게 잘 안 되죠. 나는 근근이 할 수 있어도, 제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워요. 문학을 꿈꾼다면 글로서 진실을 말한다는 것에 대해 희망을 가졌으면 해요. 현실이 꿈과 어긋난다고 한탄할 게 아니라 꿈을 현실로 가져올 수 있도록.

굉장히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당신이 안도현의 시집 < 북항 > 에 썼던 해설 중에 한 문장이 생각납니다. “시는 영원한 빛과 날마다 만나는 어둠으로 이루어진다.” 날마다 만나는 어둠의 형태는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변하나요? 젊었을 때 김승옥 선생의 단편소설 < 力士 >의 한 구절에서 큰 감명을 받았죠. 역사力士가 청계천가의 술집에서 술 마시고 떠들다가, 청계천의 구정물 속에 맑은 기포가 있다고 말해요. 그런데 청계천변의 그 술집이 참 더러운 개천 속의 맑은 기포 같다고요. 안도현에 대해 말한 건 그런 이미지가 발전해서 나온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어둠은 더욱 많아집니다. 하늘을 꿰뚫을 것처럼 빛나는 순간은 아주 가끔이죠. 그래도 다행인 것이 나이가 들면, 어둠에 익숙해지고, 어둠을 용서하게 된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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