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 이효리

2000년대 초반 댄스 가요를 연상시키는 음악이 종종 등장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나 이효리가 바라보는 과거는 조금 다르다.

이효리의 새 앨범 <모노크롬>은 솔, 훵크나 블루스, 로큰롤, 컨트리에서 트립합까지 ‘가요 앨범’다운 종 다양성을 보여준다. 롤러코스터의 이상순, 포크 블루스와 컨트리를 구사하는 김태춘, 로큰롤 밴드 고고보이스, 일렉트로닉 팝 밴드 더블유 앤 더 웨일의 배영준, 그리고 노르웨이의 프로듀싱 팀인 디자인 뮤직 등이 작곡, 편곡에 참여했다.

자칫 어수선해질 수 있는 이 조합을 봉합하고 있는 것은 복고 성향이다. 당장 첫 곡 ‘Holly Jolly Bus’만 해도 버스 안내양 ‘기믹’으로 곡을 시작한다. 복고풍 취향은 이미 이효리의 캐릭터를 이루는 한 부분이었다. 예전의 곡들에서도 유쾌한 뮤지컬의 한 장면을 만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곡들은 동시대적인 댄스 음악에복고적인 취향을 더한 것이라면, 이번 앨범은 장르적으 로도 과거지향적인 곡 일색이다. 그나마 전자음이 두드러지는 ‘Love Radar(feat. 빈지노)’조차도 90년대 알앤비를 연상시킨다.

타이틀곡 ‘Bad Girls’ 또한, ‘이효리가 늘 하던 것’과 무척 닮았음에도 조금 다르다.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가 주도하는 이 곡은 밴드가 연주해도 어색함이 없다. 후렴구가 상대적으로 길게 반복되고 분위기의 기복도 제법 있어, 후크를 살리면서도 꾸준히 새로운 자극을 던져주는 최신 곡의 형태를 띠기는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연주의 변화가 주도하고 있어, 밴드의 연주로 이뤄질 때 맛깔스러울 수 있는 편곡이다. 무대 퍼포먼스 중심의 ‘케이팝’ 분위기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수록곡들 대부분이, 사운드나 스타일만이 아닌 작법마저 과거지향적인 성향을 보인다.

구체적인 소재를 통해 전달하는 가사와 메시지 또한 복고적이다. ‘미스코리아’, ‘Bad Girls’ 등에서 전하는 격려는 어떤가. 또한 그것이 자전적 고백의 형태로 이뤄지기도 한다는 점(‘쇼쇼쇼’, ‘Special’)은 다분히 90년대 가요를 연상시킨다. ‘나쁜 여자’를 묘사하면서 “남들이 모르게 애써 웃음 짓는,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 있는( ‘Bad Girls’)”이라니, 무척이나 예스러운 표현이다. 이외에도 “떠나는 그대를 환하게 웃으며 보내지 못하는 내가 미워요(‘내가 미워요’)”, “내 맘에 하나뿐인 사랑을 훔쳐간 사람(‘누군가’)” 등, 거의 신파에 가까운 가사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심지어 앨범 후반부는 90년대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연상시키는 정서마저 드러낸다.

대중이 아이돌과 일렉트로닉에 피로감을 느끼는 가운데, 2000년대 초반 댄스 가요를 연상시키는 음악이 종종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효리가 그리는 과거는 좀 다르다. 흔히 ‘뽕끼’로 대표되는 가요 멜로디를 동원하기보다 사운드와 작법, 가사와 정서에서 사뭇 ‘다른 과거’를 소환한다. 현재 케이팝의 큰 축인 해외 프로듀서를 영입하면서 그런 복고를 이뤄냈다는 점도 흥미롭다.

국내 인디음악가와 해외 프로듀서들을 한데 묶는 일은 쉽지 않다. 열여섯 곡의 풍성한 부피를 일관되게 조직하면서도 하나의 맥락을 가진, 성공적인 앨범으로 평가한다. 아이돌 위주의 댄스 가요와는 사운드에서 한 걸음 거리를 두고, 가요로의 회귀라는 최근의 흐름과도 차별화를 이뤘다. 수록곡의 반을 작사하고 한 곡을 작곡한 것으로 이효리의 음악적 성장을 논할 수는 없다. 앨범의 방향성를 세우고 적합한 곡들을 쇼핑하고 조율한 데서, ‘프로듀서 이효리’를 평가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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