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예 웨스트의 야망

서로의 필요가 맞아 떨어진 협업이 아니라면, 실질적인 해외 진출 성과나 지속적은 교류는 기대하기 어렵다. “협업을 통한 뮤지션 간의 시너지 효과” 같은 말은 더욱 멀다.

카니예 웨스트가 새 앨범 로 돌아왔다. 애칭 Yeezy와 예수Jesus를 섞은 타이틀 ‘Yeezus’는 무모할 만큼 기고만장하지만, 그는 이미 동시대의 걸작 와 힙합의 왕 제이지와 함께한 을 내놓았다. 레이블 ‘굿 뮤직’의 컴필레이션 음반까지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니, 예수란 자칭이 지나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그 녀석들은 흑인들을 가두려고 하잖아. 새로운 노예를 만들려 하지”라며 절규를 통해 체제에 눈 멀어가는 흑인들을 비판한 ‘New Slaves’가 공개된 방식을 살피면, ‘Yeezus’라는 이름은 자만을 넘어 스스로 흑인 예수가 되려는 결연한 의지처럼 보인다. 세계 66개의 건물 벽에 자신이 랩을 하는 얼굴을 투사하며 선보인 비디오는 재림한 예수의 형상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 같았다. 며칠 후 등장한 에서는 앙각으로 과히 가깝게 잡은 얼굴을 무대 뒤로 펼친 채 바득바득 악을 쓰는 카니예를 만날 수 있었는데, 거기서도 절대자의 모습을 구현하려는 의도는 완연했다. 센 비트에 정치적인 노랫말을 뱉는 방식에선 길-스캇 헤론과 사울 윌리엄스가 엿보이기도 한다. (전작 가 길-스캇 헤론의 목소리로 끝난다는 사실은 꽤 의미심장하다.) 앨범 발매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참여진조차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는 미지의 영역에 놓여 있다. 그저 아이튠즈 음원 예약이 돌연 취소되고, 조지 콘도의 작품이 담긴 앨범 커버가 부클릿도 없이 휑한 모습으로 바뀌는 변덕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수밖에. 문동명(자유기고가)

카니예의 데뷔작을 두고 혹자는 “이렇게 ‘날로 먹는’ 비트를 만들면 안 된다”고 했다. 대부분의 곡이 그저 원래 샘플을 빨리 돌린 뒤 비트를 입힌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808s&Heartbreak>에선 오토튠을 남용했다. 그의 가사에서 사색이나 성찰을 바라는 이는 적겠지만, 호평 받은 전작 조차 랩에는 의구심이 남았다. 물론 논란 속에서도 카니예가 입은 카라바지오의 ‘그리스도의 매장’ 프린트 티셔츠는 잘 팔리고, 그가 샘플링한 음반은 가격이 오른다. 몇몇 명품 브랜드는 그의 입김으로 스트리트 브랜드 같은 제품을 내놓았다. 프로듀서 피트 락이 카니예와 제이-지처럼 돈 많은 뮤지션들의 무성의한 ‘통 샘플링’을 비웃자, 카니예와 제이-지는 합작 음반 에 보란 듯이 피트 락을 모셔온다. 즉, 좋든 나쁘든 카니예가 해내는 일들은 대번 주목을 끈다. 그렇다면 좀 더 독창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란 이름에선 제이-지가 자신을 호바HOVA, 여호와라 칭했던 순간이 먼저 떠오른다. 유명 작가의 일러스트가 잔뜩 수록된 전작과 반대로, 신보는 빈 CD 케이스에 빨간 테이프만 붙여 발매된다. 하지만 새롭다기엔 록 밴드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이 이미 시도한 방식이다. 에서 펼친 ‘New Slave’의 무대 역시 기시감이 든다.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 얼굴을 배경으로 배치했는데, 이런 연출은 플레이밍 립스의 전매특허다. 전반적으로 카니예의 행보는 계획적이라기보다는 충동적이라는 인상이 앞선다. 누드를 찍고 싶으면 찍고, 열심히 써오던 트윗을 갑자기 삭제해버리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유명인과 광기 어린 예술가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시대다. 한상철(뮤지션, 밴드 불싸조)

카니예 웨스트를 검색하면 “카니예는 크리스천인가요?”란 질문이 쏟아진다. 자신을 ‘Yeezus’라 칭하고, ‘I Am A God’이란 노래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질문의 의도는 “크리스천이 그런 노래를 불러도 되나요?”에 가깝다. ‘Yeezus’에 대한 논란은 그 대상이 다름 아닌 지금의 카니예 웨스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이미 2006년 <롤링 스톤스>와의 촬영에서 면류관을 쓰고 예수 분장을 한 적이 있다. 힙합 신에서 카니예만 예수 행세를 한 것도 아니다. 나스는 ‘Hate Me Now’ 뮤직비디오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랩을 한다. 투팍의 유작 의 커버엔 투팍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다. 요즘 뜨거운 오드퓨처 멤버의 뮤직비디오엔 성경을 찢어 담뱃불을 붙이는 장면마저 나오는 통이니, ‘Yeezus’란 신조어 역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힙합이란 틀을 벗어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그 안에서 용인되는 패러디, 자기과시에 대한 방어막이 사라지는 것이다. 카니예는 이미 힙합 뮤지션이라 규정하기 어려운 위치까지 올랐다. 그가 원한 건 어쩌면 논란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극찬을 받은 전작 이후 그는 제이-지와의 협업 음반과 자신의 레이블 ‘굿 뮤직’ 컴필레이션 음반을 내놓았다. 바로 솔로 음반을 내기보다 우회적으로 신보를 발표한 것이다. 그는 일종의 부담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점을 찍은 뮤지션들의 신작에 대한 부담.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도발적인 방법으로 음악계의 주목과 새로운 콘셉트를 동시에 획득했다. 6월 초 에서 ‘I Am A God’의 첫 번째 라이브가 공개되었을 때, 관중들은 환호하는 대신 모두 카메라를 들고 카니예를 촬영했다. 곡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Yeezus’가 “I Am A God”이라고 처음으로 소리치는 순간만큼은 유일할 테니까. 그것이야말로 카니예의 전략이자, 음악시장이 그를 소비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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