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수

아홉 개의 물건을 골랐다. 순전히 9월이라서.

RALPH LAUREN

1 THREE PIECE SUIT
뭘 입더라도 제대로, 끝장난다, 소리 듣게 입는 게 이번 계절의 핵심이다. 그래서 수트도 이왕이면 베스트를 포함한 스리피스 수트를 고른다. 회중 시계나 몽크 스트랩까지, 갖출 수 있는 건 다 갖춘다. 베스트도, 호사스러운 소품들도 과하다 싶을 땐 일단 빼고 묵혔다가 다시 쓰면 그만이다. 아, 이왕이면 트위드 소재를 고른다. 적어도 50년은 후회하지 않을 거라 장담한다.


GUCCI

2 LUXURY LUGGAGE
얄팍한 포트폴리오 백을 끼고 다니는 것. 이제 지겹다 못해 지친다. 남자 가방은 아무튼 큼지막해야 한다던 시절이 있었는데…. 모든 건 순환된다. 크고 고급스러운 가죽 가방이 각광받던 시대로. 종이 몇 장 달랑 넣어도 삼두박근에 힘이 팍 들어가는 가방으로.


DRIES VAN NOTEN

3 HOMEWEAR
시어서커 파자마 한 벌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서울에서 질 좋은 실내복을 사는 건,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는 수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이번 가을부턴 대안이 늘었다. 파자마의 넉넉한 재단, 로브의 부드러운 세부를 흉내 낸 옷이 눈에 띄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건 꼭 고급한 실내복을 입는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인지 알리는, 부유한 패션 하우스의 충고같다.


AMI

4 CITY JOGGERR
명동 거리에 가면, 쓰나미같이 몰려드는 인파의 반은 러닝화를 신었다. 세상에 러닝화가 차고 넘치는데도, 새로운 모델이 쉴 새 없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걸 또 산다. 자존심이 있다면, 이럴 때일수록 사뭇 다른 걸 골라 살짝 다르게 신어야 한다. 라프 시몬스와 알렉산드레 마티우시처럼, 두껍고 복잡한 러닝화를 폭이 넉넉한 바지 밑단으로 살짝 덮는다.


MARC JACOBS

5 CHELSEA BOOTS
이번 가을, 여전히 부츠를 신고 싶다면, 역시 첼시 부츠가 정답이다. 아무래도 검정색이 확 끌리지만, 더 멋 부리고 싶은 남자들은 남색이나 와인색, 혹은 송치로 고른다. 어쨌든, 뭘 골라도 이번 가을엔 그게 전부 준비되어 있다.


HERMES

6 THIN TURTLE
올 가을 니트웨어계의 주인공은 단연 터틀넥이다. 넉넉하거나 꽉 끼는 것, 올이 굵거나 촘촘한 것, 목이 길거나 짧은 것. 수백 가지의 터틀넥 중에서도 과연 눈길이 가는 건 얇고 날씬한 것. 색깔이 도드라진 걸 코트와 같이 입는다. 물론 재킷, 혹은 색깔이 다른 셔츠와 함께여도 좋다.



PRADA

7 VINTAGE EYEWEAR
이번 가을 선글라스는, 더 과감한 복고풍으로 치닫을 거다. 두 렌즈의 각도가 180도에 가깝고, 구경과 농담의 차이는 더욱 커지고, 테의 빛깔과 두께는 몹시 과장되는 쪽으로. 이 모델처럼 ‘베이비 펌’을 하거나, 영화 <샤프트>의 리처드 라운트리 같은 구레나룻과 콧수염까지 갖춘다면 더 이상은 없다.


BURBERRY PRORSUM

8 TOP COAT
갑옷처럼 단단한 더블 코트는 4백 년 된 느티나무처럼 듬직하다. 정답 같은 코트가 지겨울 땐, 어깨를 부풀린 레글런 톱코트를 고른다. 단단한 톱코트를 골무처럼 뒤집어쓰면, 기세 좋은 가을바람도 그저 우습다.


KELTY

9 OLD OUTDOOR PACK
‘아웃도어’는 언젠가 ‘핫한 트렌드’였다가, 지금은 너도나도 일단 하고 보는 익숙한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여전히 ‘아웃도어 룩’이 쓸 만한 소재라고 생각한다면, 더 넓고 깊게 파고드는 쪽을 선택한다. 수트에 로 알파인 TFX 안나푸르나를 매는 건 우스운 일이지만, 1952년형을 그대로 재현한 켈티 프레임 팩이라면 박수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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