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의 성인식

아이돌은 언제까지나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의 성인식이 시작됐다.

2013 MTV VMA 어워드에서 마일리 사이러스의 무대는 최고는 아니어도 최강임은 확실했다. 처음부터 어딘지 불길한 징조를 몰고 등장한 사이러스는 곧장 아낌없이 벗고 흔들며 객석을 기함시켰다. 그건 거의 사투 같았다. 사이러스는 열네 살 때 디즈니 채널의 ‘한나 몬 타나’ 시리즈의 주연을 맡으며 미국 초등학생들의 대통령으로 추대됐다. 그러나 집권 기간이 끝나고 나이를 먹 어가면서 이 남부 출신의 소녀는 피나는 활로 모색을 시 작했다. VMA에서의 퍼포먼스는 그 정점이었다. 그녀 는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아이돌이 성인이 되는 과정은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단절을 선언해야 하기 때문이 다. 때로는 의도치 않은 쪽에서 마디가 잡힐 때도 있다. 지난해 일본의 한 잡지가 폭로한 승리의 스캔들은 파장 이 컸다. 무엇보다 폭로 방식의 선정성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악재일까? 아니, 꼭 그렇진 않다. 승 리는 그 스캔들로 기획사의 통제 바깥에 있는 존재란 걸 각인시켰다. 그런 부분에 대해 본인도 익히 알고 있는 것 같다. SBS <화신>에 출연한 승리는 자신의 스캔들에 대 해 “어른의 세계를 노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노크했던 문은 일단 한 뼘쯤 열린 게 아닐까?
그런데 아이돌은 나이를 먹지 않는 존재다. 아이돌 은 음악이나 춤, 예능감만 파는 것이 아니다. 몇 살에 데뷔해도 아이돌은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지역에 놓인 것으로 의제된다. 그리고 그 시간에만 가능한 모든 드라마를 판다.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인류의 상상력이 결집 된 이 드라마는 아이돌만이 팔 수 있는 특수상품이다. 상 품성이 유지되는 한, 나이 먹기는 계속 미뤄진다. 환상을 파는 쇼비즈니스의 속성은 아이돌에 이르러 환각으로 까지 강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서른이 넘어도 미혼으로 부모의 집에 얹혀사는 시 대에, 아이돌이 구축하는 가상의 세계는 새삼스레 상품 성이 높다. 기획사는 정교한 통제로 가상세계의 작동을 관리한다. 작동의 기본 원리는 아이돌에게서 욕망이란 걸 끊임없이 탈락시키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아이돌 의 ‘클리셰’가 생명력을 획득하는 이유는 그것이 팔리기 때문이다. ‘정석’은 언제나 똑같다. 음악방송 첫 1위 때의 메소드 눈물 연기, 서툰 숙소 생활 공개, 노련한 MC들에 게 당하는 막내, 이런 ‘순결한’ 관문을 거쳐야 아이돌의 꼴이 대강 잡힌다. 자칫 범상한 욕망을 드러냈다간 예측 불가능한 자율성이 있다는 사실만 탄로나고, 그렇게 현 실이 소환되면 상품가치는 급전직하하기 마련이다.
일찌감치 영역 확장에 성공한 미스에이 수지는 1백 억을 벌었다고 말하면서, 활짝 웃는 게 아니라 일단 눈물부터 흘렸다. 소득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데 먼저 썼다면서. 아이돌의 정석이 제시하는 풀이법에 따라 도출할 수도 있는 답이다.
말하자면 이건 일종의 ‘변태적인’ 상품이다. 아이돌 의 유통기한은 그만큼 짧다. 전환기는 벼락처럼 찾아온 다. 한류라는 게 호흡기 구실을 하면서 조금 연장되었지 만, 대개 아이돌의 수명은 5~6년 남짓이다. 싫든 좋든 구 태가 되어버린 데뷔그룹 활동을 끝내고 현실에서 홀로 서기를 시도해야 한다. 아이돌에게 성인이 된다는 것은, 그저 물리적 시간의 흐름에 따른 위치 변화가 아니라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과업이 다. ‘어른의 세계’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연예계의 문 도 닫힌다. 얼핏 보면 자동으로 한 살씩 나이를 먹는 것 과 비슷해 보이지만, 아이돌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지금껏 소비자와 공유해온 게임의 규칙을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팬은 당혹스러워하고 대중은 냉소하기 쉽다.
물론 아이돌 이후의 미래에 연착륙해서 인생이모작 가을걷이를 하는 아이돌도 있다. 이효리는 빛나는 예시다. 아이돌과 섹시스타로서 각기 전성기를 누리고 이 제는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또 다른 시장을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많지 않다. 대개는 사라진다. 시장을 떠난 뒤 보통의 한국인으로서 커피나 치킨 관련 사업에 여생을 의탁하거나, 여전히 방송국 일대에서 예전과는 제법 달라진 대우와 함께 살아간다.
마침 2000년대 중후반에 데뷔한 소위 3세대 아이 돌의 유통기한 종료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각자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느라 골몰한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 원더걸스의 멤버였던 선미는 프로듀서 박진영의 감각에 힘입어 복귀식을 제대로 치렀다. 일본 활동을 마치고 컴백한 카라는 남장 페티시를 동원했고, 절대적 미소년 이었던 김현중은 피트니스와 태닝으로 범벅된 성인 남 성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박유천은 이미 드라마 주연감으로 자리 잡았고, <타짜 2> 주연으로 거론되는 빅뱅의 탑처럼 초반부터 매끄럽게 전환하는 사례도 보인다. 드물게는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을 향하는 지드래곤 같은 유형도 있다. 데뷔부터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중간지대 에 자리 잡았던 터라, 그럭저럭 잡음 없이 대중에게도 승인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여러 시도가 있지만 아직 성패를 가리긴 어렵다. 행복만을 전도하던 품 안의 아이돌이 당장의 생존 과 대결하는 상황에서, 불안해진 팬들은 각자 자신의 ‘오빠’의 말년운을 따지느라 당사자보다 더 큰 고민에 빠진다. 그런데 이 전환점의 결과는 아마도 2023년쯤, 앞 선 세대를 향수의 대상으로 소비할 때나 결정될 것 같다. 그때까지 명실상부한 톱스타의 지위를 보유하고 있는 아이돌도 있을 테고, 현란한 과거팔이로 재차 인기를 끌 기도 할 것이다. 드물게는 ‘자멸하는’ 뉘앙스가 훌륭한 상품이 되기도 한다. 앞서 얘기한 마일리 사이러스의 퍼포먼스는 전미를 강타했다. 현지 매체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든 납득하려고 노력했는데,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한 칼럼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했다. “구설수 에 오르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단 하나뿐이다.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 것이다.” 원조 아이돌 재활용 방안인 ‘핫젝갓알지’가 갑자기 주목받았던 것처럼,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아이돌이 성인으로서의 흥망을 결정하게 될 투쟁 의 장이 이제 막 시작됐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