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소리가 들려 < 2 >

가창력 논란도, 고음 논쟁도 피곤한 지금. 희귀하지만 녹록치는 않은, 날카롭지만 유일한 다섯 명의 보컬리스트를 권한다. 천국보다 낯선 목소리를.

정기고
노래를 청하자 쳇 베이커의 나른한 재즈곡을 불렀다. “지금은 없는 낭만 같은 게 있잖아요.” 볼륨은 내내 같았고, 부드럽게 기어를 변속하듯이 진성과 가성이 섞였다. 언제 어디서 바뀌는지 알아내긴 어려웠다. “제가 알앤비 보컬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가 선을 그었다. 목소리도 그 말처럼 구획이 뚜렷하다. 무리하지 않고, 낼 수 있는 소리를 극대화한다. “보컬이 꽉 밀고 들어와서 감정을 꼼짝없이 받아들여야 되는 순간은 못 만들겠죠. 잘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할 게 많아요.” 정기고의 노래는 절정에서 울컥하면서 가슴을 치기보단, 쭉 흥얼거리게 되는 쪽이다. 따라 부른다고 노래 실력을 칭찬받는 일은 드물 것이다. 대신 취향을 날카롭게 가다듬듯 무두질해온 성실한 보컬리스트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거기엔 장르나 창법으론 말하기 어려운 어떤 분위기가 있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솔 노래 부문을 수상한 ‘Blind’는 꽤 박진감이 넘치는 곡이다. “뿅뿅”거리는 악기도 썼다. 그런데 쉽게 눈치채기가 어렵다. 정기고가 부르면 결국 목소리가 이끄는 ‘무드’가 앞선다. 노년의 쳇 베이커가 부르던 노래처럼.

 

김아일
노래하듯 랩을 한 적은 있지만, 노래를 한 적은 없다. 그런데 신곡 ‘V*$*V’엔 김아일을 그저 래퍼라 부르기 머뭇거리게 되는 순간이 여럿 있다. “목소리는 색채를 만드는 도구예요. 노래가 필요하면 노래를, 내레이션이 어울리면 그렇게 할 거예요.” 뮤직비디오에선 화사한 파스텔 톤의 티셔츠와 짧은 바지를 입은 여자들이 걷고 눕는다. 김아일과 프로듀서 신세하는 총천연색 칵테일을 만들고, 둥근 비눗방울을 분다. 영상과 곡, 보컬, 가사가 전부 한 덩어리의 색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김아일이 선택한 목소리는 눈썰미 있게 잘 고른 물감으로 작용한다. 그게 노래든 랩이든. “좋아하는 보컬의 특징을 기억하고 습득하는 능력이 뛰어난 편이에요. 뉘앙스랄까? 예를 들면 음절이 시작될 때, 끝날 때의 느낌 같은 거. 전 완전한 창작자라기보다 인용을 하는 사람이죠.” 색은 고유한 듯하지만, 대개 섞어 만든다. 김아일의 보컬에도 그가 인용한 수많은 재료가 숨어 있다. “제 음악을 들은 사람들이 ‘레퍼런스’를 낱낱이 파헤쳐줬으면 좋겠어요. 힙합에선 뿌리가 드러나는 보컬이 멋지다고 생각하거든요.” 곧 발매될 데뷔 음반 은 안경을 쓰고 들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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